상중의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에 대해 승정원과 논의하고 정성근의 발언을 추궁하다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정성근(鄭誠謹)이 경연(經筵)에서 동짓날 시(詩)를 지은 것을 가지고 상중에 희롱하는 일이라고 말하니, 이 말이 진실로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희롱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정성근의 말과 같다면, 지금의 월과 제술(月課製述)1307) 과 세화 축역(歲畫逐疫)1308) 등의 일은 또한 모두 희롱하는 일이라고 하여 폐할 것인가?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그대들은 면전(面前)에서만 따르고 물러가서는 뒷말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정성근이 만약 시를 짓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면 즉시 논하여 고집해야 할 것인데, 예(例)에 따라서 시를 짓고는 오늘날에 이르러서 말하니, 이 말과 더불어 상반(相反)되지 아니하는가?"
하니, 승지들이 아뢰기를,
"정성근이 즉시 논계(論啓)하지 아니하고 오늘에 와서 말이 있는 것은 옳지 못한 듯합니다. 월과(月課) 등의 일은 어찌 폐할 수 있겠습니까? 선왕조(先王朝)에서는 기년(期年) 안에 관사(觀射)1309) 등의 일이 또한 있었습니다. 만약 시를 짓는 것을 가지고 희롱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신 등도 시종(侍從)에 참여하였는데 어찌 말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하였다. 전교하기를,
"이제 승지의 말을 들으니, 바로 내 마음과 합한다. 다만 일을 행하는 즈음에 혹시 한 사람이라도 비난함이 있으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세화 축역(歲畫逐疫)은 비록 음사(陰邪)를 물리치기 위한 일이나, 역시 희롱에 가까운 것인가?"
하니, 승지들이 아뢰기를,
"세화 축역(歲畫逐疫)은 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명하여 정성근을 불러서 묻게 하니, 정성근이 아뢰기를,
"속마음으로는 비록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으나 계달(啓達)할 편(便)이 없었고 성지(聖旨)를 받음에 미쳐서 감히 마음대로 폐할 수 없기 때문에 예(例)에 따라 시를 지어 올린 것입니다. 세화 축역(歲畫逐疫) 등의 일은 본래 맡은 곳[有司]1310) 이 있으니, 제목을 정하여 시를 짓기를 명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그 때에 곧 계달하지 아니한 것은 신이 진실로 죄가 있습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그대는 시종(侍從)하는 신하로서 임금이 지나친 일이 있으면 진실로 마땅히 간할 것이며 지나친 일이 아니면 들추어 내어서 말할 필요가 없다. 또 면전에서만 따르고 뒷말하는 것으로써 그대를 허물하면 어찌 죄줄 말이 없음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허물하지 않겠으니, 그대는 알고 있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160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4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의식(儀式) / 인사-관리(管理) / 풍속-풍속(風俗)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307]월과 제술(月課製述) : 달마다 문신들이 글을 짓는 것.
- [註 1308]
세화 축역(歲畫逐疫) : 설날에 그림을 그려서 역귀(疫鬼)를 쫓던 행사.- [註 1309]
관사(觀射) : 임금이, 신하들이 활을 쏘는 것을 구경하고 상(賞)을 주던 일. 무예(武藝)를 권장하는 데 목적이 있었음.- [註 1310]
본래 맡은 곳[有司] : 여기에서는 도화서(圖畫署)를 이름.○傳于承政院曰: "鄭誠謹, 於經筵, 以冬至日製詩, 爲喪中戲事, 此言固當矣。 然予則以爲非戲事也。 若如誠謹之言, 則今之月課製述及歲畫逐疫等事, 亦皆以爲戲事, 而可廢乎? 《書》曰: ‘爾無面從, 退有後言。’ 誠謹若以作詩爲不可, 則宜卽論執, 而隨例作詩, 至今日, 乃言之, 無乃與此言相反乎?" 承旨等啓曰: "誠謹不卽論啓, 而今日有言, 似乎不可。 如月課等事, 何可廢也? 在先朝, 則期年之內, 亦有觀射等事, 若以製詩爲戲事, 則臣等亦參侍從, 安敢不言?" 傳曰: "今聞承旨之言, 正合予心。 但行事之際, 或有一人非之, 則未安於心矣。 歲畫逐疫, 雖爲辟除陰邪之事, 亦近於戲乎?" 承旨等啓曰: "歲畫逐疫, 不可廢也。" 命召誠謹問之, 誠謹啓曰: "中心雖以爲不可, 然無便得達, 及承聖旨, 未敢擅廢, 故隨例製進矣。 若歲畫逐疫等事, 自有有司, 與命題製詩, 不同。 其時不卽啓達, 臣實有罪。" 傳曰: "爾以侍從之臣, 君有過擧, 則固當糾諫, 非過擧, 則不必訐以爲言也。 且以面從後言, 罪爾, 則何患無辭? 然予不罪之。 爾其知之。"
- 【태백산사고본】 24책 160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4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의식(儀式) / 인사-관리(管理) / 풍속-풍속(風俗)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