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장 박성손의 건의에 따라 영북진의 설치에 대해 논의하다
사복장(司僕將) 박성손(朴星孫)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보잘것없는데도 성주(聖主)의 발탁(拔擢)함을 입어서 지방관에 제수되어 밤낮으로 나라에 보답하기를 도모하였습니다. 삭방(朔方)에 있던 날에 보고 들은 바가 있어서 감히 아뢰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진(四鎭)은 장성(長城)이 높고 튼튼하므로, 삼가하여 지키면 근심이 없습니다. 회령(會寧)·부령(富寧)의 백성이 모두 말하기를, ‘보을하(甫乙下) 등지는 옛 영북진(寧北鎭)으로서 적(賊)의 요충지(要衝地)인데, 만약 큰 진(鎭)을 여기에 설치하면 풍산(豐山)·무산(茂山)·옥련(玉蓮)·어유간(魚遊澗)·주을온(朱乙溫)·보로지(甫老知)·보하덕(寶下德)·진파(榛坡)·삼삼파(森森坡) 등의 보(堡)가 모두 내지(內地)가 되어 개간하는 땅이 저절로 넓어져서 백성의 생활이 스스로 족할 것이며, 인하여 구보(舊堡)의 군사로써 힘을 합하여 지키면 방수(防戍)가 저절로 튼튼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보이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은 의논하기를,
"신은 육진(六鎭)의 형세를 알지 못하여 영북진(寧北鎭)을 설치하는 것이 적당한지의 여부를 억측하기 어렵습니다. 청컨대 대신(大臣)을 보내어 친히 살펴보고 계달(啓達)하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조종조(祖宗朝)로부터 마땅히 이 진(鎭)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가 많았으나, 다만 일이 크기 때문에 가볍게 거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전대로 두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윤필상 등의 의논에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159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30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己巳/司僕將朴星孫上書曰:
臣以無狀, 蒙聖主拔擢, 授以方面, 日夜圖所以報國。 在朔方之日, 有所見聞, 不敢不陳。 四鎭長城嚴固, 若能謹守, 則無憂矣。 會寧、富寧之民皆言: "甫乙下等處, 古之寧北鎭, 而賊之要衝也。 若設巨鎭於此, 則豐山、茂山、玉蓮、魚遊澗、朱乙溫、甫老知、寶下德、榛坡、森森坡等堡, 皆爲內地, 耕墾自廣, 民食自足, 仍以舊堡軍士, 幷力守禦, 則防戍自固矣。"
命示領敦寧以上。 鄭昌孫議: "臣不知六鎭形勢, 寧北鎭設置便否, 臆料爲難。 請遣大臣, 親審啓達, 後更議何如?" 尹弼商、洪應、尹壕議: "自祖宗朝, 言當設此鎭者, 多矣, 只以事巨, 未易輕擧, 仍舊何如?" 從弼商等議。
- 【태백산사고본】 24책 159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30면
- 【분류】군사-관방(關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