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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58권, 성종 14년 9월 11일 신축 3번째기사 1483년 명 성화(成化) 19년

성균관 생원 이윤 등이 도첩의 남발에 대해 상소하다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 이윤(李胤)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은 벼슬의 직책도 없고 말하는 책임도 없으니, 지위에 벗어나 일을 논하는 잘못을 알지 못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 등은 전하께서 풍성하게 기르시는 덕을 입고 성대히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 외람되게 성균관(成均館)에 처하여 배우고 닦아 쓰이기를 기다리니, 도(道)를 지키는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이 어찌 일찍이 잠시라도 변하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이 우레같은 위엄을 무릅쓰고 피할 수 없는 죄를 범하는 소이(所以)입니다.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혁연(赫然)히 삼대(三代)953) 의 정치에 뜻을 두시어, 정도(正道)를 존숭(尊崇)하고 이단(異端)을 백척하시어 모든 승도(僧徒)로서 도첩(度牒)이 없는 자는 모두 충군(充軍)하게 하셨으니, 온 나라 신민(臣民)들로 어느 누가 기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요사이 영선(營繕)이 한 번 일어나자, 승도들을 불러 모아서 한 달동안 부역을 하면 그 당자에게 도첩(度牒)을 주기를 허락하여, 처음에 정한 액수(額數)954) 가 2천 명에 이르렀으니, 그 수가 이미 많습니다. 또다시 이달 초6일에 전지(傳旨)를 내리시어 액수 이외의 승인(僧人)을 이달 그믐까지 한하여 부역하기를 허락하셨으니, 신 등은 전하께서 이 일을 하신 것이, 그 법(法)을 숭신(崇信)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서 그 노고를 나누게 한 것임은 진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 등이 삼가 살피건대,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명령을 한 번 내리면 오직 행하고 돌이키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법이 한결같으면 백성이 따르고, 법이 이랬다 저랬다 하면 백성이 어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들 도첩이 없는 중들은 모두 전일에 군역(軍役)을 피하고 부세(賦稅)를 도피하여 법을 범한 백성들입니다. 비록 법에 의거하여 징계하지는 못할지라도, 도첩을 주는 것이 가하겠습니까? 신 등은 국가의 법이 이로부터 불신(不信)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신 등은 알지 못하거니와, 한 달을 지나는 사이에 부역하는 중이 몇 천 명이나 되는데 그 수대로 도첩을 주면, 이는 한 달의 공로로 인하여 종신의 역(役)을 면하는 것이며 하나의 궁(宮)을 영건(營建)함으로 인하여 천만(千萬)의 백성을 잃는 것이니, 나라의 근본이 어찌되겠습니까? ‘이들은 도첩을 주나 아니주나 똑같이 노는 백성들인데, 도첩을 주는 것이 무엇이 손해이며 도첩을 아니 주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한다면, 주부 군현(州府郡縣)에서 오히려 수색하여 충군(充軍)한 자도 있고, 형세가 궁하고 일이 절박하여 도망할 곳이 없어서 다시 돌아와 양민(良民)이 된 자도 있습니다. 하물며 봄에 밭갈고 여름에 김매며 몸이 〈물에〉 젖고 발이 진흙에 묻는 농사는 몹시 수고로운 일이며, 방패를 메고 창을 잡으며 몸을 내던져 칼날을 무릅쓰는 군사는 몹시 위태로운 것인데, 사람의 마음이 어느 누가 수고로움을 싫어하고 편함을 좋아하지 않으며, 위태로움을 꺼려하고 편안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특별히 면할 방도가 없고 도망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도첩을 얻기가 쉬움이 이에 이른다면, 신은 두렵건대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아무 역사(役事)가 장차 일어날 것이니, 내가 농사를 버릴 만하다.’ 하고, ‘아무 일이 장차 날 것이니, 내가 군(軍)을 도피할 수 있다.’고 하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상문(桑門)955) 에 의탁하는 자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그 길을 열고 그 방도를 가르쳐서, 양민을 몰아다가 노는 백성[遊民]을 만드는 것이니, 그 폐단이 진실로 작지 않습니다.

신 등이 살피건대,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온 나라 안이 왕의 신하가 아님이 없다.’고 하였으니, 양민(良民)은 진실로 전하의 백성이며, 중들도 역시 전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백성들로 수고로운 자는 양민과 같음이 없고, 백성들로 편안한 자는 중들과 같음이 없습니다. 수고로운 자는 오히려 위의 일을 이바지하고 편안한 자만 유독 위의 일을 이바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수십일의 부역으로도 오히려 도첩을 주어 그 수고를 보상하는데, 저 종신토록 복역(服役)하는 양민(良民)에게 전하께서 장차 무엇으로 그 수고를 보상하시겠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하늘같은 굳센 결단을 내시고 구원(久遠)한 계획을 생각하시어, 모든 승도로서 부역한 자에게 도첩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하며, 우리의 유도(儒道)에 있어서도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토목(土木) 공사를 일으키기 좋아서가 아니다. 지금 창덕궁과 수강궁 두 궁이 모두 비가 새고 기울어졌는데, 수강궁이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부득이하여 이 역사를 일으켰는데, 군졸이 적어서 노는 무리를 불러 모아 그 역사에 나가게 하여 그 일을 속히 마치려고 할 뿐이며, 내가 불법(佛法)을 숭신(崇信)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이들로써 절을 세운다면 너희들이 말한 바가 그럴 듯하다. 그리고 조정에는 의정부와 육조(六曹)가 있어서 정사를 의논하고 그 시비(是非)를 말하니, 진실로 너희들이 의논할 바가 아니다. 너희들은 다만 마땅히 그 도(道)를 닦을 뿐이다."

하였다. 생원(生員) 정여창(鄭汝昌)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은 중들을 부역시킴이 그르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한달의 수고로 인하여 도첩(度牒)을 받으면 종신토록 역(役)이 없으니, 그 역사를 마친 뒤에도 도첩을 주지 않는 것이 가합니다. 지금 한 궁(宮)의 역사에 도첩을 받는 중이 천만(千萬)에 이르면, 이 뒤에 군적(軍籍)을 면하고자 하는 자가 이를 보고 빙자하여 다투어 일어나서 머리를 깎고 영선(營繕)을 기다릴 것이니, 중이 되는 자가 날로 많으면 우리 유도(儒道)의 불행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너희들이 이른바 역사를 마치고 도첩을 주지 말자는 것은 무슨 법인가? 비록 작은 집을 지을지라도 일할 사람을 모으는데, 하물며 이 큰일이겠는가? 또 너희들이 말한 바는 반드시 곁에서 시킨 자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들 중에게 도첩을 주는 것이 우리 유도에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15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1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 [註 953]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의 세 왕조.
  • [註 954]
    액수(額數) : 사람의 수.
  • [註 955]
    상문(桑門) : 불문(佛門).

○成均館生員李胤等上疏曰:

臣等無官守, 無言責, 非不知出位論事之非也。 然臣等被殿下豐芑之澤, 受殿下大烹之恩, 濫齒虞庠, (莊)〔藏〕 修待用, 衛道之心, 愛國之誠, 曷嘗斯須替哉? 此臣所以冒雷霆之威, 而犯不諱之罪也。 臣等伏覩殿下卽位以來, 赫然有意三代之治, 尊崇正道, 排黜異端, 凡僧徒之無度牒者, 悉令充軍, 一國臣民, 孰不欣忭哉? 今者營繕一興, 募召僧徒, 一月之役, 許度其身, 始定之額, 至於二千, 其數已多矣。 又於今月初六日下旨, 數外僧人, 限是月晦日, 許令赴役, 臣等固知殿下所以爲此擧者, 非崇信其法, 不過恤民隱, 而分其勞耳。 然臣等謹按, 《書》曰: "令出惟行, 不惟反。" 是以法一則民從, 法二則民慢。 今此無度牒之僧, 皆前日避軍逃賦干法之民也, 縱不能據法, 而懲之, 其可從而度之乎? 臣等恐國家之法, 從此而不信也。 且民者, 邦之本也。 臣等不知閱月之間, 僧之赴役者幾千人矣。 如其數而度焉, 則是以一月之功, 而免終身之役也。 以一宮之營, 而失千萬之民, 其於邦本何? 借曰: "此輩度與不度, 均爲遊民度之何損, 不度何益’, 則州、府、郡、縣、猶或有搜而充軍者矣, 亦有勢窮事迫, 跳身無所, 還爲良民者矣。 而況春耕夏耘, 沾體塗足, 農甚勞也; 荷干執戟, 挺身冒刃, 兵甚危也。 人情孰不惡勞而喜逸, 憚危而欲安乎? 然而不去者, 特免之無術, 逃之無路耳。 若度牒之易, 一至於此, 則臣恐人皆曰: "某役將興矣, 吾農可棄, 某功將作矣, 吾軍可逃也。" 髡而爲僧, 托迹桑門者, 何可勝計哉? 是開之以其路, 敎之以其術, 驅良民, 而爲遊民, 其弊固不貲矣。 臣等又按, 《詩》曰: "率土之濱, 莫非王臣。" 夫良民固殿下之民, 而僧徒亦殿下之民也。 然民之勞者, 莫如良民, 民之逸者, 莫如僧徒, 其勞者, 猶可以供上役矣, 其逸者, 獨不可以供上役乎? 數旬之役, 猶且度其身, 以償其勞, 彼終身服役之良民, 殿下將何以償其勞乎? 伏願殿下發乾剛之斷, 慮久遠之圖, 凡僧徒之赴役者, 勿許度牒, 則國家幸甚, 吾道幸甚。

傳曰: "予非樂興土木也。 今昌德壽康兩宮, 皆雨漏傾危, 而壽康宮尤甚, 故不得已擧此役, 而軍卒少, 故召募遊手之徒, 以赴其役, 欲速竣其功耳, 非予崇信佛法而然也。 以此而建設寺社, 則爾等所言, 然矣。 且朝廷有政府、六曹, 與議政事, 而言其是非, 固非爾等所議也。 爾等但當各修其道也。" 生員鄭汝昌等啓曰: "臣等非以役僧爲非也, 臣等以謂 ‘以一朔之勞, 得受度牒, 則終身無役矣, 役畢之後, 不給度牒, 則斯可矣。’ 今此一宮之役, 度僧至於千萬, 則後之欲免軍籍者, 視此爲(籍)〔藉〕 , 爭起剃髮, 以待國家之營繕矣。 爲僧者日多, 則吾道之不幸也。" 傳曰: "爾等所云役畢, 而不給度牒者, 是何法也? 爾等雖作小家, 猶聚役人, 況此大擧乎? 且爾等所言, 必有從旁敎之者矣。 今此度僧, 何害於吾道也?"


  • 【태백산사고본】 24책 15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1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