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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57권, 성종 14년 8월 11일 신미 1번째기사 1483년 명 성화(成化) 19년

상사가 와서 사은하니 봉물 중 토산물이 아닌 것을 빼주기를 요청하고 선물을 주다

상사(上使) 〈정동(鄭同)이〉 병이 나아서 대궐에 나아가 사은(謝恩)하고 채단(彩段)과 용뇌도(龍腦刀) 및 지필(紙筆) 등의 물건을 바쳤다.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으로 맞아들이니, 상사가 고두(叩頭)하고 사례하여 말하기를,

"전하께서 소민(小民)을 진념(軫念)하시어 줄곧 의약(醫藥)을 보내어 주시고 또 후사(厚賜)하여 주시니, 전하의 은혜는 몸이 부서져도 갚기가 어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내가 대인(大人)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곳에 와 주시니 대단히 기쁩니다."

하였다. 상사가 말하기를,

"소민은 성의(聖意)를 알지 못하니, 청컨대 가르쳐 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작은 나라가 황은(皇恩)을 두터이 입고 있는데, 무릇 진공(進貢)760) 하는 것을 감히 마음을 다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다만 금과 은은 본국에서 산출되는 것이 아니어서 선왕(先王) 때에 이미 면제(免除)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 일은 대인(大人)이 다 아는 일입니다. 은으로 말하면 때로 귀국에서 주신 일이 있으나, 금은 얻기가 아주 어려워서 지금은 비록 만들어 바칠 수가 있다 해도 이 뒤로는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전날 한명회(韓明澮)가 가는 편에 이미 이런 뜻을 가지고 대인에게 전한 적이 있으니, 청컨대 대인은 유의(留意)해 주시오."

하였다. 상사가 말하기를,

"소민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날 한 재상이 나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자를 책봉하는 일로 예부(禮部)에서 아뢰기를, ‘다만 칙서(勅書)만 있고 관복(冠服)이 없습니다.’ 하기에 소민이 다시 주청하기를, ‘만일 칙서는 있는데 관복이 없다면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청컨대 성심(聖心)으로 재가(裁可)하시어 천은(天恩)을 베푸소서.’ 하였습니다. 그래서 황제께서 특별히 보복(寶服)을 허가하셨는데, 예부(禮部)와 한림원(翰林院)에서 번갈아가며 주청하여 말하기를, ‘조종(祖宗) 이래로 관복을 하사한 일이 없는데 이제 만일 이것을 내리신다면 이는 조종의 법을 무너뜨리는 것이 됩니다’ 하니, 황제게서 소민을 부르시어 묻기를, ‘이번 주청은 예(禮)에 있어서 마땅한데, 장차 이 일을 어찌하겠는가?’ 하셨습니다.

내부(內府)의 사례감(司禮監)이 또 아뢰기를, ‘이보다 앞서 사량관(四梁冠)을 하사할 것을 응락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하기에, 소민이 또 주청하기를, ‘선덕(宣德)761) 5, 6년 사이에 본국의 세자가 황제에게 알현(謁見)하려고 문화전(文華殿) 동문(東門) 안에 서 계셨는데, 선종 황제(宣宗皇帝)가 조회를 파한 후에 세자를 보시더니 입으신 홍포(紅袍)를 벗어서 세자에게 주셨습니다. 그 옷이 넓으며 크고 또 긴 것을 보시고 선종 황제께서 크게 웃으셨는데, 이는 조선을 대우하는 예(禮)가 두터운 것입니다. 오늘의 사량관은 바로 본국 조신(朝臣)들의 예복이어서 세자의 관(冠)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였더니, 황제가 나의 주청한 바를 들으시어 특별히 표리(表裏)762) 를 하사하고 또 본국으로 하여금 스스로 지어 입도록 하였므으로, 황은(皇恩)이 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조정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다시금 감히 번거롭게 주청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만일 금을 갖추기 어려우시다면 제게 금잔(金盞) 둘이 있으니, 그것으로 봉진(奉進)하면 될 것이고, 또 황제의 선사품 중에도 금이 있을 것이니 이것으로 만들어 올리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때에 면제 받기를 청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 바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 매년 공물로 바치게 되면 이 뒤로 반드시 계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토표피(土豹皮)·초피(貂皮)·서피(鼠皮) 등도 또한 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인데, 이제까지는 모두 야인(野人)들의 지방[地面]에서 수매(收買)하여 바쳤습니다. 또 상아(象牙)도 역시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계속 바치는 것도 또한 어렵겠습니다. 청컨대 대인이 유념해 두었다가 조정에 간곡히 아뢰시어 면공(免貢)되도록 하여 주신다면, 이는 비단 나 한 사람의 기쁜 일일 뿐만이 아닙니다. 온 나라 백성으로 누가 우러러 모시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상사가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마땅히 성심껏 바치실 따름이고, 반드시 빨리 면공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전날 회간왕(懷簡王)을 봉해 주기를 청원하였을 때 예부(禮部)에서 그런 관례가 없다고 주달하였지만 황제께서는 본국의 성의를 중하게 여겨 이에 이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마시랑(馬侍郞)이 주청하여 말하기를, ‘조선 사람이 여기에 와서 활 만드는 뿔을 많이 사가지고 가서는 야인들과 더불어 또 서로 매매하니, 청컨대 이제부터는 수매(收買)를 허락하지 마소서.’ 하여 황제께서 윤가(允可)하셨다가 그 뒤에 본국에서 주청하므로 황제가 특별히 허락하시어 해마다 50부를 수매하게 하였습니다. 소민이 주청하여 이르기를, ‘본국에서는 야인들과 더불어 통호(通好)763) 하지 않는데 서로 더불어 매매하기를 즐겨하겠습니까? 이것은 실로 허언(虛言)입니다.’ 하여서, 황제께서 옳게 여기셨는데, 뒤에 본국에서 주청함에 따라 이에 1백 50부를 수매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또 근년에 있었던 왕비를 봉하는 일과 세자를 봉하는 등의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마는 역시 소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청컨대 전하께서는 빨리 면공(免貢)이 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비유하자면, 급류(急流) 속에 그물을 던져서는 일찍이 물고기를 얻을 수 없고, 완류(緩流) 속에 그물을 던져야 물고기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이 일일 빨리 면공이 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대인과 더불어 이 일을 말하는 것은, 대인으로 하여금 늘 기억해서 마음에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일뿐입니다. 지난해 조정에서 야인을 토벌할 때 우리 나라에서 칙명(勅命)을 받고 정벌(征伐)을 도와서 싸움에 이겨 공로가 있었는데, 마시랑이 그로써 내외(內外)를 계교(計較)하여 수매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실 잘못된 계책이었습니다."

하였다. 상사가 말하기를,

"사람이 붓을 잡고 글씨를 쓰다가도 오히려 잘못하여 붓을 떨어뜨릴 수가 있는데, 하물며 언어(言語)이겠습니까? 비유하자면, 황제는 하늘과 같은데, 큰 가뭄으로 비를 바랄 때에 만일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서 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소민이 마땅히 성심을 다하여 주청하겠습니다마는, 마치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자 하면 반드시 어버이에게 효순(孝順)할 수가 없을 것이고, 어버이에게 효순하고자 하면 반드시 임금에게 충성을 다 할 수가 없는 것과 같으니, 이럴 때에 처신하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가령 큰 가뭄이 있다 하더라도 만일 지성으로 비를 구한다면 문득 비를 얻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자식이 어버이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만일 고할 만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이를 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대인이 안 계시면 누구를 의지하여 더불어 말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사가 말하기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호아(虎牙)를 진헌하는데 만일 전에 바치던 수효보다 적게 한다면 조정에서 반드시 그 까닭을 물을 것입니다. 이런 때를 당하게 되면 소민은 마땅히 이를 위하여 말쓸 드리기를, ‘호랑이는 바로 사람을 상해하는 동물로, 장차 이것을 사로잡으려면 반드시 많은 사람과 말[馬]을 동원시켜도 그것을 사로잡기를 기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호아(虎牙)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사냥[打圍]할 때 만일 토표(土豹)를 만나게 되면 어찌 포획(捕獲)하기가 어렵겠습니까? 다만 토표는 본토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얻기가 또한 어려운데, 더구나 초서(貂鼠)는 다 야인의 지방에서 나오는 것으로, 항상 덫[套兒]을 설치해 두고 이것을 지키고 있다가 사로잡는데, 지키고 있을 때 만일 야인을 만나게 되면 많이 노략질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물건은 진헌하기가 어렵습니다.’고 말하겠습니다. 전하께서도 또한 김 태감(金太監)에게 이와 같은 뜻을 말씀하여 이런 뜻을 알려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 하면, 소민이 주달(奏達)할 때 황제께서 만일 김 태감에게 물으실 경우 김 태감이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잘못 생각하여 망령되게 대답을 하게 되면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청컨대 전하께서 하나같이 내말대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일을 처리하신다면 문득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반드시 장유성(張有誠)황중(黃中)으로 하여금 정조 부사(正朝副使)를 삼아 보내도록 하신다면 소민이 마땅히 가부(可否)를 회계(回啓)하겠습니다. 노한(老韓)께서 북경에 왔을 때 마침 합밀국(哈密國)에서 사자(獅子)를 바치는데, 상 태감(尙太監)노한(老韓)을 인도하여 이것을 보게 하였습니다. 돌아와서 황제께 보고하니, 황제께서 소민을 불러 물으시기를, ‘너의 나라에도 또한 사자가 있는가?’ 하시기에 소민이 대답하기를,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만라국(蠻剌國)에서 거북을 진헌하였는데 그 다리가 다른 거북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길었습니다. 대개 합밀(哈密)의 지역은 왕복 7년이 걸리고 만라(蠻剌)의 나라는 왕복 5년이 걸리는 곳으로 다 먼 곳에 있는데, 누가 그들로 하여금 반드시 진공(進貢)하게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만 조정을 경봉(敬奉)하는 까닭에 그와 같이 진헌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전하께서는 빨리 면공이 되고자 하지 마시고 마땅히 지성으로 진공하십시오. 그러면 소민도 또한 늘 기억해 두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인의 말씀이 여기까지 이르니 희열(喜悅)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사가 말하기를,

"명년에 보낼 성절사(聖節使)는, 청컨대 한치형(韓致亨)을 차견(差遣)하도록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황제께서도 또한 한씨의 족친(族親)으로 돌아가며 차례로 들여보내 달라고 말씀하셨으니, 마땅히 대인의 말과 같이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사가 말하기를,

"한 고랑(韓姑娘)764) 이 소민과 더불어 본국을 향련(向戀)하는 마음은 다 같은 심정입니다. 전날 소민이 중국 조정에 들어갔을 때, 한확(韓確) 재상이 잔치를 베풀어 놓고 저를 맞아서 하는 말이, ‘내 누이가 바로 그대의 누이이고, 그대의 누이가 바로 나의 누이이오, 청컨대 모름지기 긍련(矜憐)히 여겨 주시오’라고 재삼(再三) 말씀하였는데, 나는 그 말씀을 듣고서 친누이같이 보고 조심성 있게 시봉(侍奉)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씨가 병을 얻은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황제께서 제게 묻기를, ‘한 노로(韓老老)765) 가 만일 불행하게 되면 누가 그 일을 맡겠는가?’ 하시기에 제가 주청하기를, ‘노비(奴婢)766) 가 이 일을 맡겠습니다.’ 하였더니, 황제께서 옳게 여기셨습니다. 한씨는 고국[鄕土]을 생각하여 늘 울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한씨는 죽어서도 한조각 마음은 응당 고국의 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한확 재상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기 때문에 대인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대인이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였다. 상사가 일어나 나가려 하니, 도승지(都承旨) 이세좌(李世佐)에게 명하여 선물[人情]로써, 연사폭 유둔(連四幅油芚) 3사(事), 연육폭 유둔(連六幅油芚) 4사(事), 유안롱(油鞍籠) 2부(部), 사의(蓑衣) 1부, 채화석(彩花席) 20장(將), 백록피(白鹿皮) 3장, 대록피(大鹿皮) 2장, 입모(笠帽) 80사(事), 작석차[雀舌茶] 6두(斗), 활[弓] 1장(張), 대전(大箭) 1부(部), 이마 제연(理馬諸緣) 2부, 흑마포 직령(黑麻抱直領) 1, 흑마포 철릭(黑麻布帖衰) 1, 백저포 철립(白苧布帖衰) 2, 마피화 투혜구(馬皮靴套鞋具) 1, 마(馬) 1필(匹), 궁시건복구(弓矢鞬服具) 1부(部), 호피(狐皮) 40장(張), 잡채화석(雜彩花席) 10장, 표피(豹皮) 4장을 주고, 두목(頭目)들에게는 각각 흑마포(黑麻布) 4필(匹), 백저포(白苧布) 1필, 선자(扇子) 3파(把)를 주었다. 상사(上事)가 임금 앞에 나아가 고두(叩頭)하고 사례하며 임금께 자리에 오르기를 청하니, 임금이 굳이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따랐다. 상사가 연이어 술을 두 잔씩 올리며 임금이 잔을 돌리니, 상사가 말하기를,

"몸이 건강하지 못하여 먹을 수가 없으니, 한 잔만 마시겠습니다."

하고, 고두하면서 사양하고 나아갔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15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96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의생활-예복(禮服) / 역사-고사(故事)

  • [註 760]
    진공(進貢) : 공물을 바침.
  • [註 761]
    선덕(宣德) : 명나라 선종(宣宗)의 연호.
  • [註 762]
    표리(表裏) : 옷의 것감과 안찝.
  • [註 763]
    통호(通好) : 친교를 맺음.
  • [註 764]
    한 고랑(韓姑娘) : 한확(韓確)의 누이로, 명나라 선덕제의 후궁 공신부인.
  • [註 765]
    한 노로(韓老老) : 한고랑(韓姑娘)을 가리킨 말임.
  • [註 766]
    노비(奴婢) : 자기 자신을 가리킨 말.

○辛未/上天使病愈, 詣闕謝恩, 進彩段、龍腦刀、筆紙等物。 上迎入宣政殿, 上使叩頭, 謝曰: "殿下軫念小民, 連送醫藥, 又有厚賜, 殿下之恩, 碎身難報。" 上答曰: "不敢、不敢。" 因語曰: "我願見大人有所言, 大人今到此, 予甚喜悅。" 上使曰: "小民未知聖意, 請敎之。" 上曰: "我小邦厚蒙皇恩, 凡所進貢, 敢不盡心? 但金、銀非本國所産, 先王時, 已請免。 此大人所悉, 銀則時有欽賜, 金則得之甚難, 今雖做進, 後不可繼。 前日韓明澮之行, 已將此意, 達大人。 請大人留意。" 上使曰: "小民已知之矣。 前日韓宰相言於我。 然封世子之事, 禮部奏: ‘只有勑書, 而無冠服’, 小民更奏云: ‘若有勑書, 而無冠服, 則何有光彩? 請裁自聖心, 以發天恩。’ 皇帝特許寶服, 禮部與翰林院, 交奏以爲: ‘祖宗以來, 無有冠服之賜, 今若賜之, 是壞祖宗之法矣。’ 皇帝呼小民問曰: ‘此奏, 於禮當矣, 將若之何?’ 內府司禮監又奏: ‘前此, 應賜四梁冠矣。’ 小民又奏: ‘宣德五六年間, 本國世子朝見, 立于文華殿東門內, 宣宗皇帝, 朝罷見之, 乃脫所御紅袍以賜之。 其衣寬大且長, 宣宗大笑, 其待朝鮮之禮, 厚矣。 今四梁冠, 乃本國朝臣之服, 則不合世子之冠。’ 皇帝聽我所奏, 特賜表裏, 又令本國自製, 皇恩不爲少矣。 其可不度朝廷之意, 而更敢煩奏乎? 殿下若以金爲難備, 我有金盞兩事, 將欲奉進, 且欽賜中亦有金, 當以此做進, 不必欲於此時請免也。" 上曰: "非謂今日難進, 若每年責進, 則後必難繼, 故言之耳。 土豹、貂、鼠皮, 亦非本國所産, 前此皆收買野人地面以進。 且象牙又非本國所産, 繼進亦難。 請大人留心, 曲奏朝廷, 使得免貢, 則非但予一人感喜, 一國人民, 孰不仰戴?" 上使曰: "殿下當誠心備進耳, 不必欲速。 前日請封懷簡王時, 禮部奏以無例, 皇帝重本國事大之誠, 乃許之。 且馬侍郞奏云: ‘朝鮮人到此, 多買弓角, 往與野人, 又相買賣。 請自今不許收買。’ 皇帝允可, 其後本國奏請, 皇帝特許, 每年買五十部。 小民奏云: ‘本國與野人, 不通好, 其肯相與買賣乎? 此實虛言也。’ 皇帝然之, 後因本國更請, 乃許收買一百五十部。 且如近年封王妃, 封世子等事, 最是難事, 亦許准請。 殿下請勿欲速。 比如投網於急流之中, 曾不得魚, 投網於緩流之中, 可以得魚。" 上曰: "我非是欲速免也。 所以與大人言之者, 欲令大人, 尋常記憶, 不忘乎心耳。 往歲朝廷討野人, 敝邦承勑助征, 克捷有功, 馬侍郞所以計較內外, 不許收買, 實是錯計矣。" 上使曰: "人有把筆寫字, 尙錯誤墜筆, 況言語乎? 比如皇帝是天也, 當大旱望雨之時, 天若不雨, 則將何得雨? 雖然, 小民當盡心奏請, 如欲盡忠於君, 則必不能孝順於親; 如欲孝順於親, 則必不能盡忠於君, 處此實難矣。" 上曰: "大人之言, 然矣。 假如天旱, 若至誠求雨, 則便有得雨之時矣。 子之於親, 臣之於君, 若有可告之事, 則必當告之。 雖然, 不有大人, 憑誰說與?" 上使曰: "謀事在人, 成事在天。 今進獻虎牙, 若減於前數, 則朝廷必問其故。 當此之時, 小民當爲之辭曰: ‘虎乃傷人之物, 將欲捕之, 必多起人、馬, 而其捕難必。 故虎牙之得, 甚難。 且打圍之時, 若遇土豹, 則何難捕獲? 但以土豹非本土所産故, 得之亦難, 而況貂、鼠皆出於野人之地, 常設套兒, 守而捕之, 其守之之時, 若遇野人, 則多被搶擄, 故如此之物, 進獻爲難也。’ 殿下亦宜說與金太監, 使知此意也。 當小民奏達之時, 皇帝若問於金太監, 而金太監不知此意, 錯料妄對, 則事不諧矣。 請殿下一依吾言, 寬心處之, 則便得事成矣。 然此事非他人所能得爲, 必令張有誠黃中爲正朝副使而遣之, 則小民當回啓可否。 老韓赴京時, 會哈蜜國獻獅子, 而尙太監老韓使見之。 還報皇帝, 皇帝呼小民, 問曰: ‘汝國亦有獅子乎?’ 小民對曰: ‘無矣。’ 且蠻剌之國獻龜, 其脚比他龜差長。 蓋哈蜜之地, 往還七年, 蠻剌之國, 往還五年, 皆遠處也, 其誰使之, 必令進貢乎? 只敬奉朝廷, 故如此進獻耳。 請殿下不欲速免, 當至誠進貢, 小民亦當尋常記憶矣。" 上曰: "大人之言至此, 不勝喜悅。" 上使曰: "明年聖節使, 請以韓致亨差遣。" 上曰: "聖旨亦有韓氏族親輪流入遣之命, 當如大人之言。" 上使曰: "韓姑娘與小民, 向戀本國, 同是一般。 前日小民入中朝之時, 韓確宰相, 設宴邀我, 謂曰: "我妹是汝妹也, 汝妹是我妹也。 請須矜憐。 言至再三, 我聞此言, 視同親妹, 小心侍奉。 今韓氏得病有年, 皇帝問我曰: ‘韓老老如其不幸, 誰任其事?’ 我奏云: ‘奴婢當任之矣’, 帝然之。 韓氏思想鄕土, 常哭不已, 韓氏之歿, 一點之心, 應還此土矣。" 上曰: "韓確宰相, 有先知, 故依托大人矣。 大人不言, 予安知此事乎?" 上使起立欲出, 命都承旨李世佐, 贈人情連四幅油芚三事、連六幅油芚四事、油鞍籠二部、蓑衣一部、彩花席二十張、白鹿皮三張、大鹿皮二張、笠帽八十事、雀舌茶六斗、弓一張、大箭一部、理馬諸緣二部、黑麻布直領一、黑麻布帖裏一、白苧布帖裏二、馬皮靴套鞋具一、馬一匹、弓矢鞬服具一部、狐皮四十張、雜彩花席十張、豹皮四張, 頭目各賜黑麻布四匹、白苧布一匹、扇子三把。 上使就上前叩頭, 謝請上陞座, 上固讓, 不得已從之。 上使連進杯雙, 上回杯, 上使曰: "身不和喫不得, 只飮一杯," 叩頭辭出。


  • 【태백산사고본】 23책 15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96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의생활-예복(禮服)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