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화관에 나가 사신을 맞고 경복궁에서 칙서를 받다
지난밤에 중국 사신이 홍제원(洪濟院)에서 자고 이날 서울로 들어오려 하는데, 임금이 소복(素服)·소의장(素儀仗)으로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모화관(慕華館)에 이르러 옷을 갈아 입고 익선관(翼善冠)·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백관은 시복(時服)603) 차림으로 칙서(勅書)를 맞이하였으며, 임금이 먼저 경복궁(景福宮)에 와서 칙서를 받는 일을 모두 의식대로 하였다. 칙서에 이르기를,
"짐(朕)이 생각하건대, 작토(爵土)604) 를 가진 자는 누구나 대를 길이 이으려고 꾀하는 것이니, 적장(嫡長)을 세우는 것은 신하들의 희망에 관계된 바로서 예나 이제나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온 나라의 신민(臣民)이 모두 뜰에 나와 왕자(王子) 아무개를 세자(世子)로 세우고자 명(命)을 청하자 왕이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으므로 사신을 보내어 아뢴다.’고 아뢴 것을 짐이 보고서 특별히 허가한다. 이어서 태감(太監) 정동(鄭同)을 정사(正使)로, 김흥(金興)을 부사(副使)로 임명하여 보내어, 칙서와 저채(紵綵)·사라(紗羅) 등의 물건을 내려, 휘(諱)를 조선 국왕(朝鮮國王)의 세자로 봉(封)하니, 거기에 소용되는 관복(冠服)은 왕의 나라에서 스스로 만들라. 모든 조정(朝廷)605) 의 명(命)은 왕이 받고 번방(藩邦)의 종기(宗器)606) 는 세자가 맡되, 천지(天地)의 분수는 때를 넘길 수 없음을 알아서 윗사람을 섬기는 정성으로 이끌고, 계체(繼體)의 도리는 소홀히 잊을 수 없음을 알아서 예(禮)를 지키는 가르침을 베풀라. 이렇게 하면 근본이 더욱 굳어지고 명예가 더욱 높아질 것이니, 왕의 나라가 복을 누리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공경하라. 조선 국왕의 세자 휘(諱)에게 저채 직금 사자흉배 대홍(紵綵織金獅子胸背大紅) 1필(匹), 백지록(栢枝綠) 1필, 소청(素靑) 1필, 녹(祿) 1필, 나직금 사자흉배 대홍(羅織金獅子胸背大紅) 1필, 흑록(黑綠) 1필, 소류청(素柳靑) 1필, 양록(亮綠) 1필, 사직금 기린흉배 대홍(紗織金麒麟胸背大紅) 1필, 직금복청(織金福靑) 1필, 소백지록청(素栢枝綠靑) 1필, 견(絹) 남색(藍塞) 2필·청색(靑色)·홍색(紅色) 1필·녹색(綠色) 2필을 상준다."
하였다. 임금이 칙서를 받고 나서 소복(素服)·익선관(翼善冠) 차림으로 전상(殿上)에 올라가 사신을 만나서 사례(私禮)를 행하니, 상사(上使) 정동(鄭同)·부사(副使) 김흥(金興)이 재배(再拜)하고 고두(叩頭)하고서, 내려 준 물건이 많고 관소(館所)에서 접대하느라 근로한 것을 사례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 황제의 은혜가 매우 중한 것도 두 대인(大人)이 감싸준 까닭이오. 장차 어떻게 갚아야 할는지 모르겠소."
하니, 정동이 말하기를,
"세자를 봉하는 예(禮)에 대하여 예부(禮部)에서 전례를 상고하니, 영락(永樂)607) 5, 6년 사이에 본국(本國)의 세자가 조현(朝見)하였을 때에 황제께서 입었던 홍포(紅袍)를 벗어 주고 또 옷 한 벌을 내리셨습니다. 무릇 친왕(親王)이 청하여 세자를 봉하면 구류관(九旒冠)·6표리(表裏)608) 와 인(印)을 내리는 것이 예(例)인데, 황제께서 ‘친왕의 예에 따라 관복(冠服)을 내리면 선왕(先王) 때의 전례에 어그러질 듯하니, 갑절을 더해야 마땅하다.’ 하여 특별히 12표리를 내려 왕의 나라에서 스스로 관복을 만들게 하셨으니, 황제의 은혜가 매우 큽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중국 조정에서 우리 작은 나라를 가엾이 여겨 표리를 후하게 내리고 또 왕의 나라에서 스스로 만들라는 명이 있었으니, 이것은 다 분수 밖의 성은(聖恩)이고 또한 대인의 힘이오."
하였다. 이어서 다례(茶禮)609) 를 행하였는데, 상사가 몸소 다종(茶鍾)을 들고 꿇어앉아 나아가 다종을 교환하고, 부사도 그렇게 하였다. 두 사신이 꿇어앉아 마시고 고두(叩頭)하고서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몸에 효복(孝服)610) 을 입으셨으니, 예(禮)를 행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빈주(賓主)611) 의 예를 그만둘 수 없소."
하였다. 예가 끝나고서 두 사신이 하직하고 나갈 때에 임금이 계상(階上)까지 배웅하니, 두 사신이 그만두기를 청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15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77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
- [註 603]시복(時服) : 관원이 공무를 집행할 때 입는 예복(禮服)의 한 가지.
- [註 604]
작토(爵土) : 작위(爵位)와 봉토(封土).- [註 605]
조정(朝廷) : 중국 조정을 가리킴.- [註 606]
종기(宗器) : 종묘(宗廟)의 제기(祭器)·악기(樂器).- [註 607]
영락(永樂) : 명나라 성조(成祖)의 연호.- [註 608]
표리(表裏) : 옷의 겉감과 안찝.- [註 609]
○壬辰/前夕, 天使宿于洪濟院, 是日將入京, 上素服、素儀仗, 率百官, 至慕華館改服, 具翼善冠、袞龍袍, 百官時服迎勑。 上先詣景福宮, 受勑竝如儀。 勑曰:
朕惟有爵土者, 莫不爲長世之圖, 立嫡長者, 所以係群情之望, 古今然也。 得奏, 擧國臣民, 旅庭請命, 欲立王子某, 爲世子, 王不敢顓, 貢使以聞, 朕覽之, 特加兪允。 乃命太監鄭同爲正使, 金興爲副使, 賣勑幷紵綵、紗羅等件, 封諱爲朝鮮國王世子, 其合用冠服, 王國自制。 凡朝廷之命, 王其承之, 藩邦之器, 世子其主之。 知天地之分不可踰, 時率以事上之誠, 知繼體之道不可忽, 罔替夫秉禮之訓。 若是, 則本愈固, 譽愈隆, 王國享福, 詎有窮耶? 欽哉! 計賞朝鮮國王世子諱紵綵織金獅子胸背大紅一匹、栢枝綠一匹、素靑一匹、綠一匹、羅織金獅子胸背大紅一匹、黑綠一匹、素柳靑一匹、亮綠一匹、紗織金麒麟胸背大紅一匹、織金福靑一匹、素栢枝綠靑一匹、絹藍二匹、靑一匹、紅一匹、綠二匹。
上旣受勑, 以素服、翼善冠陞殿, 見使臣行私禮。 上使鄭同、副使金興再拜叩頭, 因謝贈賜之多、館待之勤。 上曰: "今日皇恩至重, 亦由兩大人之庇也, 將何報之?" 鄭同曰: "封世子之禮, 禮部考舊例, 永樂五六年間, 本國世子, 朝見皇帝, 乃脫所御紅袍以賜之, 又賜衣一襲。 凡親王請封世子,則賜九旒冠、六表裏幷印, 例也。 皇帝以爲: ‘若依親王之例, 賜冠服, 則恐乖先王時例, 宜加一倍,’ 特賜十二表裏, 令王國, 自制冠服, 皇恩至大矣。" 上曰: "朝廷憐我小邦, 厚賜表裏, 又有王國自制之命。 此皆分外聖恩, 而亦是大人之力也。" 仍行茶禮, 上使親執茶鍾, 跪進換鍾, 副使亦如之。 兩使跪飮叩頭曰: "殿下孝服在身, 不必行禮。" 上曰: "賓主之禮, 不可廢也。 禮畢, 兩使辭出, 上送至階上, 兩使請止, 從之。
- 【태백산사고본】 23책 15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77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
- [註 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