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관찰사가 울산에 있는 수영을 다대포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를 의논하게 하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자정(金自貞)이 아뢰기를,
"좌도 병마 절도사(左道兵馬節度使)와 수군 절도사(水軍節度使)가 모두 울산(蔚山) 땅에 있어서 백성의 폐단이 매우 큽니다. 청컨대 영변(寧邊)의 예(例)에 의하여 울산을 도호부(都護府)로 올려서 부사(府使)와 판관(判官)을 두되,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에게 부사를 겸임하게 하고, 또 한 영(營)은 다른 곳으로 옮기면 폐단이 줄고 백성의 힘이 조금 소복(蘇復)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명하여 병조(兵曹) 및 일찍이 경상도 관찰사·절도사를 지낸 자를 불러서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이 의논하기를,
"울산의 일은 신의 소견이 감사(監司)가 아뢴 바와 같으니 성상께서 재결하소서."
하고, 윤흠(尹欽)·이철견(李鐵堅)·구문신(具文信)·하숙부(河叔溥)·구겸(具謙)·이서장(李恕長)은 의논하기를,
"병사(兵使)311) 가 울산을 겸해서 다스리게 되면 그 폐단이 더욱 심할 것이니 예전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한 영(營)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면 수영(水營)을 다대포(多大浦)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며, 김자행(金自行)·이약동(李約東)은 의논하기를,
"병사(兵使)가 울산을 겸해서 다스리게 되면 두 관아(官衙)의 지대(支待)와 맞이하고 전송하는 폐단이 더욱 심할 것이며 병영(兵營)과 수영(水營)도 옮겨서 설치할 만한 적당한 곳이 없으니 모두 예전대로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김영유(金永濡)·경유공(慶由恭)은 의논하기를,
"울산은 땅이 넓고 백성이 많아서 공사(公事)가 매우 복잡하므로 병사가 겸해서 다스릴 수 없습니다. 또 두 영(營)이 모두 한 고을 안에 있는 것도 적당치 못하며, 다대포(多大浦)는 배를 정박시키는 데는 적당하므로 수영을 옮겨서 설치하기는 가하나 의논하는 이가 말하기를, ‘다대포는 지세(地勢)가 바다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만일 급한 일이 있으면 구원병이 갑자기 이를 수 없다.’고 합니다. 신은 원컨대 선군(船軍)을 많이 세워 제포(薺浦)와 부산포(釜山浦)의 예에 의하여 성을 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안관후(安寬厚)는 의논하기를,
"수군(水軍)과 육군(陸軍)의 장수가 한 고을에 함께 있는 것은 병법(兵法)에 꺼리는 바이므로 적당치 못한 듯하나, 옮겨서 설치하면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폐단이 생길 것이며 또 큰 해가 없으니, 예전대로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며, 권감(權瑊)·노공필(盧公弼)·이맹현(李孟賢)·이세필(李世弼)은 의논하기를,
"만약 관찰사가 아뢴 대로 한다면 절도사(節度使)와 판관(判官)은 모두 가족을 데리고 가는 임무인데 그 공돈(供頓)하는 폐단이 반드시 지금보다 심할 것이며 백성이 괴로움을 겪는 것은 예전과 같을 것입니다. 다만 수군과 육군의 대장이 모두 한 고을 안의 매우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만약 사변이 갑자기 일어나서 두 영(營)이 동시에 적(敵)을 만나면 서로 구원할 수 없으므로 병영과 수영이 각각 딴 곳에 있게 하는 것이 좋은 계책이 될 듯합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 의논을 들으니, ‘병영은 좋은 형세의 땅에 웅거하여 성도 완전하고 튼튼하므로 옮길 수 없다.’고 하며, 다대포는 비록 우도(右道)의 끝에 있으나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역이 넓어서 배를 정박시키기에 적당하므로 진실로 요해지(要害地)가 되니 수영(水營)을 여기에 옮기는 것이 진실로 이익이 됩니다. 만약 이 포(浦)가 우도(右道)의 수영과는 몹시 가깝고 좌도(左道)와는 멀리 떨어져서 만일 적변(賊變)을 만나게 되면 미처 구원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말이 그럴 듯하나 사실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대저 주장(主將)이 중한 병력을 가지고 가운데 있으면서 머리와 꼬리를 서로 구원하게 하는 것은 비록 상책이기는 하나 이제 이 수영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중앙에는 옮길 만한 곳이 없고 이곳으로 옮기는 것은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한 귀퉁이에 있더라도 큰 해가 없으며 우도 수영(右道水營)과는 매우 가깝지 아니한 것이겠습니까? 또 말하기를, ‘이 포(浦)는 왜인(倭人)이 왕래하는 길에 당하여 반드시 이곳에 머물면서 바람을 기다리는데, 허실(虛實)을 밝게 볼 것이므로 영(營)을 설치하기에는 또한 합당치 못하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그렇지 않습니다. 이 포는 앞에 큰 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제 만약 영을 설치하면 왜선(倭船)이 저절로 가까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적에게 허실을 보인다는 것이 어찌 염려할 것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재결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154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6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교통-수운(水運) / 외교-왜(倭) / 과학-지학(地學)
- [註 311]병사(兵使) : 병마 절도사.
○慶尙道觀察使金自貞啓: "左道兵馬節度使、水軍節度使, 皆營於蔚山之境, 民弊甚鉅。 請依寧邊例, 陞蔚山爲都護府, 置府使、判官, 以兵馬節度使, 兼爲府使, 且一營移於他所, 則弊袪, 而民力少蘇。" 命召兵曹及曾經本道觀察使、節度使者議之。 尹弼商議: "蔚山之事, 臣所見, 如監司所啓。 上裁。" 尹欽、李鐵堅、具文信、河叔漙、具謙、李恕長議: "兵使兼治蔚山, 其弊益甚, 仍舊爲便。 不得已一營, 移之於他地, 則水營移多大浦, 何如?" 金自行、李約東議: "兵使兼治蔚山, 則兩衙支待、迎送之弊, 益甚。 兵營、水營, 亦無移排可當處。 竝仍舊何如?" 金永濡、慶由恭議: "蔚山, 地廣民稠, 公事甚繁, 不可以兵使兼治。 又兩營俱在一郡之地, 亦爲未便。 多大浦宜於泊船, 移置水營乃可。 議者以爲: ‘多大浦, 地勢入海, 儻有緩急, 援兵不得猝至。’ 臣願多設船軍, 依薺浦、釜山浦例, 築城何如?" 安寬厚議: "水陸之將, 俱在一郡, 兵法所忌, 似未便。 然移設, 則勞民生弊, 且無大害, 仍舊何如?" 權瑊、盧公弼、李孟賢、李世弼議: "若如觀察使所啓, 則節度使、判官, 皆挈家之任, 其供頓之弊, 必甚於今, 而民之受病如舊也。 第以水陸大將, 皆在一邑甚邇之處, 儻有變起所忽, 而兩營同時受敵, 則不能相援, 兵、水兩營, 各在一所, 似爲得策。 今聞衆議, 兵營地據形勢, 城且完固, 不可移置也。 多大浦雖在右道之尾, 藏風廣闊, 宜於船泊, 實爲要害之地, 移置水營於此, 固爲利益。 若曰: ‘此浦與右道水營密邇, 而隔絶於左道, 儻遇賊變, 未及救援’, 此言似然, 而實未也。 大抵主將持重兵居中, 首尾相救, 雖是上策, 今此水營, 則不然。 其於中央, 無可移之處, 移營於此, 似出於不得已也。 雖處一隅, 固無大害, 與右道水營, 不甚相近乎? 且曰: ‘此浦當倭人往來之路, 必於是留泊待風, 洞視虛實置營, 亦爲不合’, 此大不然。 此浦, 前有大山回抱, 今若置營, 倭船自不敢近矣。 示敵虛實, 又何足慮? 伏惟上裁。"
- 【태백산사고본】 23책 154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6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교통-수운(水運) / 외교-왜(倭) / 과학-지학(地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