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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49권, 성종 13년 12월 15일 기묘 3번째기사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사헌부에서 제안 대군의 이혼에 관해 차자를 올리다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니, 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노사신(盧思愼)·이극배(李克培)·강희맹(姜希孟)·서거정(徐居正)·허종(許琮)·이승소(李承召)·이파(李坡)·손순효(孫舜孝)·이극기(李克基)·노자형(盧自亨)·유진(兪鎭)이 입시(入侍)하였다. 명하여 술자리를 베풀게 하고 성균관원(成均館員) 윤현손(尹顯孫) 등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였는데, 강(講)하기를 마치자, 임금이 재상들에게 이르기를,

"각각 강론(講論)하라."

하니, 윤필상 등이 심·성·정(心性情)을 이파에게 물었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판서(判書)1197) 가 만약 대답을 잘못하면 마땅히 큰 술잔으로 벌(罰)을 주겠다."

하였다. 손순효(孫舜孝)가 아뢰기를,

"전하께서 만약 중화(中和)1198) 를 이루시면 병기(兵器)를 녹여서 농기(農器)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자, 허종이 말하기를,

"옛 말에, 육사(六師)1199) 를 크게 대비하면 병기를 녹여 농기로 만들 수 있다.’고 한 말입니까?"

하니, 손순효가 말하기를,

"양계(兩階)에서 간우(干羽)1200) 로 춤을 추는 〈요순(堯舜)의 정치를 행하면〉 병기를 녹여 없앨 수 있습니다."

하였다. 허종이 말하기를,

"창날과 화살촉을 녹여 없앤 것은 진 시황(秦始皇)의 일인데, 어찌 족히 말할 것입니까?"

하니, 손순효가 말하기를,

"온화한 모습으로 읍(揖)하고 사양하면서 적당하게 조처하면 약주를 마시면서도 오랑캐를 제어할 수 있는데, 어찌 군사를 쓰겠습니까?"

하자, 자리에 있는 이가 모두 웃었다. 동지사(同知事) 이극기(李克基)가 말하기를,

"손순효가 주상의 앞에서 이같은 농담을 발하니 불공(不恭)함이 심합니다. 청컨대 죄를 다스리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손판서(孫判書)의 말이 뜻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임금과 신하가 일체로 엄하고 공경하기만 하면 상하의 정(情)이 통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손순효가 아뢰기를,

"신이 성대(聖代)를 만나서 마음에 품은 바를 토로(吐露)1201) 하지 아니함이 없는데, 이극기가 어찌 신의 마음을 안다고 감히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하였다. 이파(李坡)가 말하기를,

"성(性)과 정(情)에는 심(心)이 없습니다."

하니, 이극기가 말하기를,

"심(心)이 성·정(性情)을 거느리는 것인데 어찌 심이 없고서 성·정이 있겠습니까? 이 대답은 잘못한 것입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큰 술잔으로 벌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동부승지(同副承旨) 김여석(金礪石)이 사헌부(司憲府)의 차자(箚子)를 가지고 와서 올렸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부부(夫婦)는 인륜(人倫)의 근본이며 삼강(三綱)의 하나이기 때문에 《시경(詩經)》에는 관저(關雎)1202) 를 첫머리로 하였고, 예(禮)는 관례(冠禮)와 혼례(婚禮)를 첫째로 하였습니다. 옛 성인(聖人)이 배필(配匹)의 만남을 더욱 중하게 한 것은 만화(萬化)1203) 의 근본을 바르게 하는 바인데, 이현(李琄)1204) 은 먼저 김씨에게 장가 들었다가 미워서 보내고 뒤에 박씨에게 장가든 지 수년이 못되었는데 이제 또 버리니, 알 수 없으나 박씨의 불순한 형상이 과연 칠거(七去)1205) 의 의(義)에 합당한 것입니까? 비록 여염(閭閻)의 미천한 백성일지라도 만약 부모에게 불순하면 쫓아 보낼 뿐만 아니라 반드시 법으로 다스리는 것인데, 더구나 박씨는 왕대비(王大妃)에게 은혜로는 고부(姑婦) 사이가 되고 의리로는 군신(君臣) 사이가 됩니다. 만약 불순한 형상이 밝게 드러나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 조정에 회부하여 정당한 법으로 논하는 것이 옳을 것인데, 어찌 버리기만 할 뿐입니까?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이현(李琄)은 나이가 어려서 부부의 의(義)를 알지 못하였고 규방(閨房) 사이에 애정이 쉽게 변하였으므로 매얼(媒孽)1206) 이 따른 것입니다. 만약 불순한 형상이 없는데도 불순하다는 이름을 붙여서 배필을 끊게 한다면 강상(綱常)이 점점 문란해지고 풍속이 날로 야박해질 것이니, 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박씨의 불순한 죄를 밝게 보여서 조정의 신하로 하여금 여러가지로 의논하게 해서 원근(遠近)에서 의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여 떳떳한 윤리를 돈독하게 하고 풍속을 바르게 하소서."

하였는데, 임금이 보기를 마치자 재상들에게 보였다. 윤필상(尹弼商) 등이 아뢰기를,

"불순한 자취가 드러나지 않는데 이혼하게 하였으니, 외간에서 의심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왕대비께서 이미 불순하다고 말씀하였는데, 내가 어찌 다시 품(稟)하겠는가?"

하니, 윤필상 등이 아뢰기를,

"금음물(今音勿)의 옥사(獄事)가 얼마 되지 아니하였는데 이제 다시 이혼하게 하는 명령이 있으니, 외간에서 의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혼인의 일을 삼가지 아니할 수 없으니, 청컨대 다시 왕대비에게 품(稟)하여 외간으로 하여금 개운하게 불순한 죄 를 알게 하소서."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다시 품(稟)하겠다."

하였다. 또 명하여 동지사(同知事) 유진(兪鎭)과 대사성(大司成) 노자형(盧自亨)에게 이기설(理氣說)을 강하게 하니, 유진이 대답하기를,

"기(氣)의 근원은 맑습니다."

하자, 좌우에서 많이 부족하게 여겼는데, 임금도 말하기를,

"이 말은 잘못이다. 기(氣)의 근원은 이(理)이다."

하였다. 손순효(孫舜孝)가 아뢰기를,

"‘원수(元首)1207) 가 밝으면 고굉(股肱)1208) 이 어질고 모든 일이 편하며, 원수가 밝지 못하면 고굉이 게으르고 모든 일이 허물어진다.’ 하였으니, 이것은 당(唐) 우(虞)1209)갱가(賡歌)1210) 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판서(判書)는 또한 충서(忠恕)의 도(道)를 논하라."

하자, 손순효가 말하기를,

"속마음[中心]이 충(忠)이 되고 마음과 같음[如心]이 서(恕)가 됩니다. 원하건대 주상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사랑하고 남을 나무라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나무라면 충서(忠恕)의 도가 극진할 것입니다."

하였다. 여러 재상들이 묻고 논란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다가 해가 기울어서야 파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손순효는 마음에 진실로 간사함을 품었는데 밖으로는 우직(迂直)한 것처럼 하여 다른 마음이 없음을 보이고, 이로써 은총을 입어서 매양 충서(忠恕)로써 임금을 권하여 시장(詩章)에까지 발표하여 아첨을 바치는 자료로 삼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149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1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

  • [註 1197]
    판서(判書) : 이파를 가리킴.
  • [註 1198]
    중화(中和) : 치우치지 않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바른 성정(性情)을 말함.
  • [註 1199]
    육사(六師) : 황제가 거느리는 군대를 말함. 1사(師)는 1만 2천 5백 명이니, 6사(師)는 7만 5천 명임.
  • [註 1200]
    간우(干羽) : 춤출 때 쥐는 방패와 새의 깃.
  • [註 1201]
    토로(吐露) :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어 말함.
  • [註 1202]
    관저(關雎) : 《시경(詩經)》의 편명. 《모시집전(毛詩集傳)》에 의하면, 후비(后妃)의 덕(德)을 노래한 것이라 하였음.
  • [註 1203]
    만화(萬化) : 만물의 화육(化育).
  • [註 1204]
    이현(李琄) : 제안 대군(齊安大君).
  • [註 1205]
    칠거(七去) : 유교(儒敎)에서 아내를 내쫓아야 할 일곱 가지 조건. 즉 불순구고(不順舅姑)·무자(無子)·음행(淫行)·질투(嫉妬)·악질(惡疾)·다언(多言)·도절(盜竊)임.
  • [註 1206]
    매얼(媒孽) : 죄에 빠뜨림.
  • [註 1207]
    원수(元首) : 임금.
  • [註 1208]
    고굉(股肱) : 신하.
  • [註 1209]
    당(唐)우(虞) : 요·순(堯舜)의 시대.
  • [註 1210]
    갱가(賡歌) : 화답하여 부르는 노래.

○上御宣政殿, 尹弼商洪應盧思愼李克培姜希孟徐居正許琮李承召李坡孫舜孝李克基盧自亨兪鎭入侍。 命設酌, 講成均館員尹顯孫等經書。 講訖, 上謂宰相等曰: "其各講論。" 弼商等, 問心、性、情於李坡, 上曰: "判書若失對, 當罰大杯。" 孫舜孝啓曰: "殿下若致中和, 兵器可鑄爲農器矣。" 許琮曰: "古云: ‘張皇六師, 則兵器可鑄爲農器乎?’" 舜孝曰: "舞干羽于兩階, 則兵器可銷。" 曰: "銷鋒鏑, 乃 始皇事, 何足道也?" 舜孝曰: "雍容揖遜之間, 措置得宜, 則飮藥酒, 可制戎狄, 何用兵爲?" 在坐者, 皆笑。 同知事李克基曰: "舜孝於上前, 發如此戲言, 不恭甚矣。 請治罪。" 上曰: "孫判書之言, 亦不爲無意。 且君臣一於嚴敬, 則上下之情, 不通矣。" 舜孝曰: "臣逢聖代, 所懷無不吐露, 克基何知臣心, 而敢爲此言也?" 李坡曰: "性、情無心。" 克基曰: "心統性、情, 烏有無心, 而有性情乎? 此失對也。" 上曰: "宜罰大杯。" 同副承旨金礪石, 將司憲府箚子以進。 其略曰:

夫婦, 人倫之本, 三綱之一, 故《詩》《關雎》、禮始冠婚。 古之聖人, 尤重於配匹之際者, 所以正萬化之本也。 先娶金氏, 以疾而去, 後娶朴氏, 未數年, 今又棄之, 未審朴氏不順之狀, 果合於七去之義乎。 雖在閭閻小民, 苟不順於父母, 則非徒去之, 必繩之以法, 況朴氏之於王大妃, 恩則姑婦, 而義則君臣。 若有不順之狀, 昭著無疑, 則付之朝廷, 論以正法, 可也, 豈但棄之而已? 臣竊意 ‘年少, 不識夫婦之義, 而閨房之間, 情愛易變, 媒孽隨之。 若無不順之狀, 而被以不順之名, 以絶伉儷, 則綱常漸紊, 而風俗日薄, 此不可不慮者也。 伏望明示朴氏不順之罪, 令廷臣雜議, 毋令遠近有疑, 以敦彝倫, 以正風俗。

上覽訖, 示宰相等。 弼商等啓曰: "不順之跡未著而離異, 外間莫不疑也。" 上曰: "王大妃旣曰: ‘不順’, 則予何以更稟?" 弼商等曰: "今音勿獄事未幾, 復有離異之命, 外間之疑, 不亦宜乎? 婚姻之際, 不可不謹。 請更稟王大妃, 使外間, 釋然知不順之罪。" 上曰: "予當更稟。" 又命講同知事兪鎭、大司成盧自亨, 以理氣之說。 對曰: "氣之源, 淸。" 左右多短之, 上亦曰: "此說誤也, 氣之源, 則理也。" 舜孝啓曰: "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 元首叢脞哉, 股肱惰哉, 庶事墮哉。" 此之(賚)〔賡〕 歌也。" 上曰: "判書其亦論忠恕之道。" 舜孝曰: "中心爲忠, 如心爲恕。 願上以愛己之心愛人, 以責人之心責己, 則忠恕之道, 盡矣。" 諸宰問難不已, 日昃乃罷。

【史臣曰: "舜孝內實懷詐, 外若迂直, 以示無他。 以此得被恩遇, 每以忠恕勸上, 至發諸詩章, 爲獻諛之資。"】


  • 【태백산사고본】 22책 149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1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