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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40권, 성종 13년 4월 15일 계축 2번째기사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대사헌 채수가 내시의 폐해, 해청의 일, 역관·의관의 분수 등의 일을 상소하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채수(蔡壽) 등이 상소하기를,

"환자(宦者)의 해(害)는 전세(前世)로부터 현저(顯著)하였으니, 조정(朝廷)을 어지럽게 하고 국가를 뒤엎어 망하게 하여, 사해(四海)에 독(毒)을 퍼지게 하고 만세에 악취(惡臭)를 남긴 자는 모두 이들입니다. 전대(前代)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직 여강(呂强)235)장승업(張承業)236) 만은 가장 양선(良善)하였지만, 소순(蘇洵)237) 은 오히려 말하기를, ‘천백(千百) 가지 중에서 한두 가지도 바랄 것이 없는 것으로서,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화(禍)를 가져올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환자의 해독을 심각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옛날의 성왕(聖王)은 황의(黃衣)238) 수십 명을 두었어도 궁문(宮門)을 지키고 쇄소(灑掃)를 맡게 하였을 뿐이고, 총애하여 관작(官爵)을 제수하고 숭반(崇班)을 가자(加資)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말세[季世]에 이르러 혼란하고 〈이들을〉 가까이하는 데 빠져서, 조정(朝廷)은 믿지 아니하고 환자를 믿으며, 재상(宰相)에게는 맡기지 아니하고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는 자[便佞]에게 맡기니, 대권(大權)이 이미 그들의 손에 있게 되고, 위엄(威嚴)과 복(福)이 임금에게서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뒤에는 천자(天子)를 위협하고 제어하기를 어린아이나 문생(門生)의 말처럼 여기게 되었으니, 슬프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에 이르러서는 〈그의〉 총명 용략(聰明勇略)이 어지러운 것을 제거하고 다시 나라를 바르게 하여, 스스로 영웅 호걸(英雄豪傑)의 임금이라 여기고, ‘저 형여 훈부(刑餘薰腐)239) 의 사람들은 우리 집 종이며, 또 어찌 태종(太宗)의 법을 파괴할 수 있겠는가?’ 하고 그들의 품질(品秩)을 더하여 높여 주었는데, 만년(晩年)에 이르러 이보국(李輔國)에게 쫓겨나서 서궁(西宮)에 유폐(幽閉)되었으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우 한(恨)스러운 일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처음에 조심하여 기미를 방지하고 조짐을 막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성명(聖明)하심이 천성(天性)에서 타고나셨으며, 널리 전적(典籍)을 열람하시어 성패(成敗)의 자취를 갖추어 관찰하셨으니, 환자를 쓰고 버리는 일과 국가의 안위(安危)를 어찌 신 등의 여러 말을 기다린 연후에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근일에 환자 정존(鄭存)에게 가자(加資)하시어 통정 대부를 삼으시고, 최습(崔濕)을 자헌 대부(資憲大夫)로 삼으셨습니다. 대저 통정 대부는 당상관이고, 자헌 대부는 숭반(崇班)입니다. 이것은 바로 임금이 사대부(士大夫)를 대우하여 서적(庶績)을 이루게 하는 것이지, 환관에게 주어 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이와 같이 하셨으니, 신 등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사헌(大司憲) 신(臣) 채수(蔡壽)가 조계(朝啓)에서 아뢰니, 전하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최습은 나이가 늙었으며, 또 정권(政權)이나 병권(兵權)을 맡긴 것이 아니니 고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환관이 정병(政兵)의 권한을 맡는다면, 이것은 혼란이 극도에 이른 것이니, 현인(賢人)이나 군자(君子)는 모두 도망하여 피했을 것입니다. 누가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그 사이에 논박(論駁)하겠습니까? 전하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생각하시기를, ‘내가 어두운 임금이 아닌데, 어찌 환관을 염려하겠는가? 일을 맡기지 않는데, 어찌 숭반(崇班)인들 해롭겠는가?’ 하셨을 것입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현종(玄宗)의 처음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자신이 〈화를〉 면치 못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어찌 만세(萬世)에 폐해가 없다는 것을 보장(保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臣) 채수(蔡壽)현종의 일을 원용(援用)하여 진계(陳啓)하였던 것인데, 이튿날 지평(持平) 서규(徐赳)에게 하교하시기를, ‘채수가 나를 현종에게 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현종을 박(薄)하게 여기시어, 그에게 비교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것입니다. 이 마음은 삼왕(三王)을 능가(凌駕)하고 오제(五帝)와 비견(比肩)할 만한 것으로, 신 등은 배하(拜賀)240) 하는 마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현종을 박하게 여기시고 삼왕을 사모(思慕)하신다면, 마땅히 현종이 한 바를 고치시고 삼왕의 법제(法制)를 행하셔야 될 것입니다. 만약에 부끄러워하고 박하게 여기시면서 오히려 그의 전철(前轍)을 밝으신다면, 이것은 취(醉)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술을 억지로 마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옛날에 익(益)순(舜)임금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단주(丹朱)241) 처럼 오만(傲慢)함이 없게 하라.’ 하고, 유의(劉毅)진 무제(晉武帝)에게 이르기를, ‘폐하께선 환제(桓帝)영제(靈帝)만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저 순(舜)임금이 어찌 단주의 오만함에 이를 것이며, 진 무제를 어찌 환제영제에게 비교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들 두 신하가 어찌 또 마음에 진실로 그들과 같다고 여겼겠습니까? 이는 진실로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임금이 척연(惕然)히 놀랍게 듣도록 하여 도리(道理)에 합당하게 인도하려 한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의 마음은 지키고 버리는 것이 무상(無常)하니, 한 번만 생각이 어긋나면 저와 같은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것이 두려운 것이므로 이와 같이 간절히 아뢰는 것입니다. 신 채수현종(玄宗)을 원용(援用)하여 전하께 아뢴 것도 또한 이러한 뜻입니다. 더구나 정존(鄭存)응사(鷹師)242) 입니다.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신 처음에, 새매[鷹隼]를 모두 놓아 주시고 원유(苑囿)의 새들을 몰아내시니, 온 나라 사람들이 눈을 씻고 보면서, ‘전하께선 끝까지 새와 짐승을 쫓는 황유(荒遊)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조금씩 매와 개를 부리는 사냥을 일삼고 해청(海靑)243) 을 기르곤 하시니, 나라 사람들이 이미 ‘전하께서 차츰 처음과 같지 않다.’고 의심합니다. 이제 또 까닭없이 정존에게 당상관을 제수하시고 또 안마(鞍馬)를 하사하시니, 많은 외간(外間)의 의논이, 어찌 전하께서 완물(玩物)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정존이 영합(迎合)하여 아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대저 임금이 조금만 좋아하는 것을 보여도 이미 바람을 타고 아첨하고 좋아하는 얼굴을 지어 총애를 받으려는 자가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드러내 놓고 포상(褒賞)을 가(加)하여 아첨하는 사람의 마음을 고무(鼓舞)시키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치란(治亂)과 존망(存亡)이 달린 기틀이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말세(末世)의 어지러움을 징계(懲戒)하시고 현종(玄宗)의 실패를 거울삼으시며 삼왕(三王)의 제도를 따르시어, 속히 정존 등의 관작(官爵)을 거두셔서, 신민(臣民)들의 소망에 부응(副應)케 하소서.

그리고 하늘이 백성을 내시고 이를 나누어 사민(四民)을 삼으셨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각각 자기의 분수가 있습니다. 선비[士]는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고, 농부[農]는 농사에 힘쓰며, 공장(工匠)은 공예(工藝)를 맡고, 상인(商人)은 물화(物貨)의 유무(有無)를 상통(相通)시키는 것이니, 뒤섞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부(士夫)가 농사에 힘쓰고 농부가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려 한다면, 어찌 거슬리고 어지러워 성취(成就)하기 어렵지 않으며, 어찌 전도(顚倒)되어 법이 없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의원과 역관을 권려(權勵)하고자 하시어 그 재주에 정통한 자를 특별히 동·서반(東西班)에 탁용(擢用)하도록 명하셨으니, 신 등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주례(周禮)》를 상고하여 보니, 의원(醫員)은 의정(醫政)을 관장하여 독(毒)과 약(藥)을 모아서 의사(醫事)에 제공하고 세말(歲末)에 의사(醫事)를 고찰(考察)하여 식록(食祿)을 정하는데, 열에 열을 모두 완수한 자를 상등(上等)으로 하고 열에 넷을 잘못한 자를 하등(下等)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등급의 차례를 나누어 녹(祿)의 후박(厚薄)을 정한 것이지, 청직(淸職)의 반열(班列)에 탁용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상서(象胥)244) 와 설인(舌人) 따위와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말[言語]을 전(傳)하여 설유(說諭)하고 사령(辭令)을 화협(和協)하게 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 임무가 본래 가볍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의술(醫術)에 뛰어남이 화타(華佗)245) 와 같은 무리라도, 전사(前史)에서는 모두 방기(方技)로 열기(列記)하고 열전(列傳)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어찌 그 사람이 한미(寒微)하고 그 일이 천(賤)하여서 사대부(士大夫)에 열기(列記)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아조(我朝)에서는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의관(醫官)과 역관(譯官)을 따로 설치하고 그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고찰하여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여 그 녹(祿)을 주었으니, 거의 주관(周官)의 제도에 합(合)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조금 우수한 자는 간혹 올려서 당상관을 삼기도 하고 혹은 2품으로 승진시키기도 하였으니, 이 또한 특별한 은전(恩典)이고 선왕(先王)의 제도는 아닙니다. 더구나 이들은 거의 모두가 미천(微賤)하고 본래 명류(名流)는 아닙니다. 그러니 외람되게 국은(國恩)을 입은 것이 지나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국가의 권려(勸勵)가 지극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분수가 아닌 것을 희망하여 스스로 현관(顯官)을 차지하려 하니, 마땅히 〈죄를〉 추궁하여 엄히 징계(懲戒)해서 그 나머지의 무리를 경계해야 할 것인데, 전하께서 죄를 주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또 채용(採用)하시니, 이는 시축(尸祝)246) 으로 하여금 준(樽)247)조(俎)248) 를 넘어서 포인(庖人)249) 의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과 같아서, 그가 할 일을 하지 않고 그가 맡아야 할 임무를 맡지 않아서 마침내 귀천(貴賤)이 서로 혼란하게 되고 쓰고 버리는 것[用舍]이 어긋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부(士夫)는 동렬(同列)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의원과 역관은 그 업(業)에 전력(專力)하지 않으면, 이것은 두 가지를 다 잃어서 하나도 좋은 것이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저 농부와 공장(工匠)·상인(商人)·무당·의원·약사(藥師)인 사람들은 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농상(農桑)은 백성의 하늘이 되며 예악(禮樂)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니, 의원과 역관에 비교하면 그 경중(輕重)이 만만(萬萬)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의원과 역관을 권려하고자 하여 동·서반에 탁용한다면, 만약에 예악(禮樂)을 흥기(興起)시키고자 하면 악공(樂工)을 동·서반에 탁용해야 하고, 만약에 농상(農桑)을 장려하고자 하면 농부를 동·서반에 탁용해야 할 것이니, 그것이 가하겠습니까? 대저 성왕(聖王)이 사람을 쓰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서, 대소(大小)·장단(長短)을 각각 그 재목에 마땅하게 해야 합니다. 약(弱)한 나무는 동량(棟樑)이 될 수 없고, 큰 재목은 빗장과 문설주[扂楔]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상(宰相)은 모름지기 재상감의 인재를 써야 하고, 육경(六卿)은 모름지기 육경감의 인재를 써야 하며, 아래로 백집사(百執事)에 이르기까지 각기 그 재능에 마땅한 뒤에라야 그 직임(職任)에 칭당(稱當)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의원과 역관으로 하여금 의술이나 통역의 일을 수치(修治)하게 하지 않고 사부(士夫)의 벼슬을 시키고자 하시니, 농부에게 서사(庶事)를 다스리게 하고 약한 재목으로 동량에 쓰려 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옛사람이 비록 ‘어진이를 등용하는 데에는 그 부류(部類)를 따지지 않는다.’ 하고, ‘가르치는 데 달려 있고 종류가 따로 없다.’ 하였으나, 이른바 ‘어진이’와 이른바 ‘가르침’이 어찌 의원과 역관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까? 옛날을 상고하여 보면 맡은 바가 각각 달라서 서로 침노할 수 없으며, 지금에 상고해 보아도 귀천(貴賤)이 길이 달라서 서로 섞일 수 없으니, 뒤석여서는 안되는 것이 명백(明白)합니다. 전하의 흠명 문사(欽明文思)250) 하심은 백왕(百王)에 뛰어나시지만, 오히려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아가시어 학문에 부지런히 힘쓰시고 밤늦도록 독서(讀書)하시어 피로함을 잊으심이, 어찌 유생(儒生)·박사(博士)를 본받아 글귀를 아름답게 꾸미고 입으로 읽는 일을 위함이겠습니까? 전대(前代)를 넓게 살피시고 득실(得失)을 밝게 보아서, 일을 행하는 성왕(聖王)과 귀추(歸趨)를 같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관에게 숭반(崇班)을 가(加)할 수 없고 의원과 역관을 청류(淸流)에 섞을 수 없다는 것을 전하의 명성(明聖)으로 어찌 아시지 못하겠습니까? 만약에 ‘대비(大妃)께서 나이가 많으니 의약(醫藥)을 중시(重視)하지 않을 수 없고, 사대(事大)·교린(交隣)에 역관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시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종(世宗) 시대(時代)에 통역을 잘한 자로 김하(金何)이변(李邊)이 있었고, 오늘날에 의약(醫藥)을 잘하는 자로 한계희(韓繼禧)임원준(任元濬)·권찬(權攢)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천품(賤品)의 출신이 아닙니다. 만약에 거듭 강이(講肄)와 습독(習讀)의 법을 밝히시고, 그 중에 총민(聰敏)한 자를 택하여서, 상벌(賞罰)을 분명히 하여 권려(勸勵)하신다면, 김하이변, 한계희임원준·권찬만한 자가 어찌 장래에 없겠습니까? 이러한 데에는 힘쓰지 않으시고, 반드시 옛법을 변경하고 선대(先代)의 헌장(憲章)을 파훼(破毁)하여 조정(朝廷)을 낮추고 군자(君子)를 욕되게 하시고, 선왕(先王)의 제도를 버리시어 미천한 사람을 높이려고 하시니, 신 등은 그것이 가(可)한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속히 성명(成命)을 거두시어 신민(臣民)의 소망에 부응(副應)케 하소서."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내가 이미 참작하여 시행하였다. 임금이 정사를 하는 데에는 본래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다. 소(疏)의 뜻을 알았으나, 고칠 수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140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2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왕실-궁관(宮官) / 신분-중인(中人) / 신분-양반(兩班) / 역사-고사(故事)

  • [註 235]
    여강(呂强) : 후한(後漢) 때의 환관.
  • [註 236]
    장승업(張承業) : 당(唐)나라 희종(僖宗) 때의 환관.
  • [註 237]
    소순(蘇洵) : 송(宋)나라 때 문장가.
  • [註 238]
    황의(黃衣) : 환관을 말함.
  • [註 239]
    형여 훈부(刑餘薰腐) : 환관을 말함.
  • [註 240]
    배하(拜賀) : 공손히 치하함.
  • [註 241]
    단주(丹朱) : 요(堯)임금의 아들.
  • [註 242]
    응사(鷹師) : 매를 부리는 사람.
  • [註 243]
    해청(海靑) : 매의 일종.
  • [註 244]
    상서(象胥) : 역관(譯官).
  • [註 245]
    화타(華佗) : 후한(後漢)의 명의(名醫).
  • [註 246]
    시축(尸祝) : 축문(祝文) 낭독을 담당한 사람.
  • [註 247]
    준(樽) : 제사 때 술을 담는 그릇.
  • [註 248]
    조(俎) : 고기를 괴어놓는 그릇.
  • [註 249]
    포인(庖人) : 요리하는 사람.
  • [註 250]
    흠명 문사(欽明文思) : 요(堯)임금의 덕을 칭송한 말로, 흠(欽)은 몸을 삼가하는 것이며, 명(明)은 이치에 환한 것이고, 문(文)은 문장(文章)이 외부에 빛나는 것이며, 사(思)는 생각이 깊은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성종이 이러한 덕을 지녔다는 뜻임.

○司憲府大司憲蔡壽等上疏曰:

宦者之害, 著自前世, 濁亂朝廷, 傾覆國家, 流毒四海, 遺臭萬世者, 皆此輩也。 歷觀前史, 唯呂强張承業, 最爲良善, 然蘇洵猶以爲: "不可望一二於千百, 以取必亡之禍," 此深言宦者之害也。 故古之聖王, 猶置黃衣數十, 主宮門備灑掃而已, 不聞寵以官爵, 加以崇班也。 季世昏亂, 溺於近習, 不信朝廷, 而信宦官; 不任宰相, 而任便侫, 大權旣在其手, 威福不出於君, 然後刼制天子, 有同嬰兒門生之言, 可謂於邑。 至於 玄宗, 則聰明勇略, 拔亂反正, 自以爲英雄豪傑之主, 彼刑餘薰腐之人, 乃我家奴耳, 又何能爲始壞太宗之法? 增崇其秩, 及至晩年, 爲李輔國所驅逐, 幽之西內, 至今痛恨, 何者, 不能謹之於初, 防微杜漸也。 殿下聖明, 出於天性, 博覽典籍, 備觀成敗, 其於宦者之用舍, 國家之安危, 豈待臣等之喋喋, 然後知哉? 然近日加宦者鄭存爲通政, 崔濕爲資憲。 夫通政堂上官也, 資憲崇班也。 此乃人君待士夫, 而凝庶績也, 非宦官之所宜授也。 而殿下如此, 臣等未知其由。 大司憲臣蔡壽, 於朝啓啓之, 殿下敎曰: "崔濕年老, 且非任政權、兵權, 不可改也。" 若宦官而任政、兵之權, 則是昏亂之極耳, 賢人、君子, 皆逃遁而避之。 誰敢冒死, 而論駁於其間哉? 殿下之心必曰: ‘我非昏主, 何慮乎宦官?’ 不任以事, 何妨於崇班?" 臣等以爲: ‘玄宗之初心, 亦如是也, 而終不免於其身,’ 殿下容保其萬世無弊乎? 故臣蔡壽, 援玄宗以陳之, 翌日敎持平徐赳曰: "蔡壽比予於玄宗矣。" 是殿下薄玄宗, 而羞與爲比。 此心可以駕三王, 而肩五帝矣, 臣等不勝拜賀。 然旣薄玄宗, 而慕三王, 則當改玄宗之所爲, 而行三王之法制乃可耳。 若羞而薄之, 而猶蹈其轍, 則是猶惡醉, 而强酒也。 昔曰: "無若丹朱傲。" 劉毅 曰: "陛下不如。" 夫豈至於丹朱之傲? 豈比於? 彼二臣者, 亦豈其心, 眞以爲如彼哉? 誠以愛君之心, 欲其君惕然驚聽, 引之以當道耳。 況人心操捨之無常, 一念之差, 庸詎知不至於如彼乎? 是可懼也, 故眷眷如此也。 臣蔡壽, 援玄宗以陳於殿下, 亦此意也。 況鄭存鷹師也。 殿下卽位之初, 盡放鷹隼, 驅出苑禽, 擧國拭目以爲: "殿下終不溺於從獸禽荒之事。" 近日稍事鷹犬, 留養海靑, 國人已疑: "殿下駸不如初。" 今又無故加鄭存堂上, 又賜鞍馬, 悠悠外論, 安知殿下之不玩物, 鄭存之不從臾乎? 夫人君微示好尙, 已有承風, 媚順容悅, 以取寵者, 況顯加褒賞, 以鼓憸人之心哉? 此治亂存亡之機, 不可不察也。 懲季世之亂, 鑑玄宗之失, 遵三王之制, 亟收鄭存等官爵, 以副臣民之望。 且天生黔黎, 分爲四民, 士、農、工、商, 各有其分。 士治庶事, 農力田功, 工執藝事, 商通有無, 不可混也。 若欲士夫力田功, 農夫治庶事, 則豈非逆亂而難就, 顚倒而無章乎? 今殿下欲勸勵醫、譯, 精於其術者, 特命擢用東、西班, 臣等未知所以。 謹按《周禮》, 醫師掌醫之政, 聚毒藥以供醫事, 歲終稽其醫事, 以制其食, 十全爲上, 十失四爲下, 則是分其等次, 以爲祿之厚薄, 未聞擢用於淸班也。 至如象(諝)〔胥〕 、舌人之類, 不過諭言語、協辭令而已, 其任固已輕矣。 故雖神於醫術如華佗之輩, 前史皆列於方技, 不入於列傳。 豈以其人微、其事賤, 不可列於士大夫也歟? 故我朝自祖宗以來, 別設醫官、譯官, 考其勤慢, 迭爲陞降, 以受其祿, 庶合周官之制。 其間稍優者, 或陞爲堂上官, 或陞爲二品, 是亦特恩, 非先王之制也。 況類皆賤微, 本非名流。 猥蒙國恩, 不爲不過, 國家勸勵, 不爲不至。 而猶希非分, 自占顯官, 所當窮推痛懲, 以警其餘, 而殿下不惟不罪, 又加傾採, 是猶使尸祝越樽俎, 代庖人之事, 不事其事, 不任其任, 終於貴賤相亂, 用舍乖及。 士夫恥與爲伍, 醫、譯不專其業, 則是謂兩失, 而無一可者也。 夫農、工、商、賈、巫、醫、藥師之人, 皆國之不可無者也。 況農桑爲民之天, 禮樂治國之本, 比於醫、譯, 輕重萬萬矣。 今旣欲勸勵醫、譯, 擢用於東、西班, 則設若欲興起禮樂, 則樂工擢用於東、西班, 欲勸勵農桑, 則農夫擢用於東、西班矣, 其可乎哉? 夫聖王之用人也, 猶匠之用木, 大小、長短, 各當其材。 弱木不可爲棟樑, 大材不可爲扂楔。 宰相須用宰相之才, 六卿須用六卿之才, 下至百執事, 各當其才, 然後可以稱其職矣。 今欲使醫舌, 不治醫舌之事, 而任士夫之職, 何異責農夫以治事, 用弱材於棟樑乎? 古人雖云立賢無方, 有敎無類, 其所謂賢、所謂敎, 豈醫舌云乎哉? 稽之於古, 則所任各異, 不可以相侵, 考之於今, 則貴賤異路, 不可以相雜, 其不可混也明矣。 殿下欽明文思, 超出百王, 而猶日御經筵, 孜孜學問, 乙夜忘疲者, 豈効儒生博士, 雕篆口讀而已哉? 乃欲洞觀前代, 明見得失, 以處於行事之際, 欲與聖王同歸耳。 然則宦者之不可加以崇班, 醫、譯之不可雜於淸流, 以殿下之明聖, 而豈不知之乎? 若曰: "大妃年深, 醫不可不重, 事大交隣, 譯不可不重," 則有一說焉。 世宗之世, 善於譯者, 金何李邊也, 當今之時, 良於醫者, 韓繼禧任元濬權攅也, 皆非出於賤品也。 若申明講肄、習讀之法, 擇其聰敏, 明其賞罰, 以勸勵之, 金何李邊繼禧元濬權攅, (河)〔何〕 獨乏於將來也? 不務於此, 而必欲變舊章, 毁先憲, 卑朝廷, 辱君子, 棄先王之制, 崇賤微之人, 臣等不知其可也。 伏望亟收成命, 以副臣民之望。

御書曰: "予已斟酌施行。 人君爲政, 自有臧否。 已知疏意, 不可改也。"


  • 【태백산사고본】 21책 140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2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왕실-궁관(宮官) / 신분-중인(中人) / 신분-양반(兩班)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