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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40권, 성종 13년 4월 5일 계묘 1번째기사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선종 판사 중 내호의 국문과 옥야인 구효민이 정성근을 구류한 형량을 논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집의(執義) 강귀손(姜龜孫)이 아뢰기를,

"신정(申瀞)이 범한 바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런데 잡아 오지 말라고 명하시니,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물었다. 영사(領事) 이극배(李克培)가 대답하기를,

"신은 이 일을 듣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무릇 위조(僞造)하는 일은 서인(庶人)의 무지(無知)한 자라도 감히 하지 못할 일인데, 더구나 대신이겠습니까? 대간(臺諫)의 말이 매우 옳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차첩(差帖)을 보니 위조(僞造)한 것이 현저하였다. 다만 신정(申瀞)의 소위(所爲)인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신정의 소위라면 그 죄가 가볍지 않다. 대저 위조하는 일은 무지(無知)하고 용렬한 사람도 오히려 할 수 없는 일인데, 더구나 대신으로서 하였다면 어찌 대신이라고 일컬으며 조정의 반열(班列)에 설 수 있겠는가? 그를 잡아오지 말라고 한 것은 신 정승(申政丞)198) 의 아들이고 또 대신(大臣)이기 때문이다. 그가 올라오면 진위(眞僞)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강귀손이 또 아뢰기를,

"선종 판사(禪宗判事)인 중[僧] 내호(乃浩)가 다른 중에게 피소(被訴)되었으므로, 본부(本府)에서 국문(鞫問)하였더니, 그 가운데에 허위(虛僞)인 것도 있고, 혹은 의심할 만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가 제자(弟子)들을 거느리고 사당(社堂)에 왕래(往來)한 일은, 비록 ‘간음(奸淫)을 하였다고 지칭(持稱)하는 것은 불문(不問)에 붙인다.’는 율(律)에 구애되기는 하나, 중의 도리에 불가(不可)합니다. 신 등이 면대(面對)하여 국문하니, 혹은 자복(自服)하기도 하고 혹은 숨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비전(大妃殿)에서 하교(下敎)가 있었으므로 판사(判事)로 임명하였는데, 그 당자를 추포(追捕)하여 추국(推鞫)하는 것이 법의 규정이 있는가?"

하였다. 강귀손이 아뢰기를,

"《대전(大典)》에 ‘중[僧人]은 바로 추문(推問)한다.’고 하였으므로, 이와 같이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내호(乃浩)가 상언(上言)한 것을 보니, 이 중이 사찰(寺刹) 안의 범람(汎濫)한 중들을 규찰(糾察)하기 때문에, 여러 중들에게 꺼림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중들에 관한 일은 치도(治道)에 관계되는 바가 아니니,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이어서 좌우에게 물었다. 이극배(李克培)가 아뢰기를,

"상교(上敎)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버려두라."

하였다. 지사(知事) 이극증(李克增)이 아뢰기를,

"옥야(沃野) 사람 구효민(仇孝敏) 등이 정성근(鄭誠謹)을 구류(拘留)한 죄는, 율문(律文)에 정조(正條)가 없기 때문에, 신 등이 제사(制使)199) 를 구타(毆打)한 율(律)에 비추어 논죄(論罪)하였는데, 다시 의논하여 의죄(擬罪)하라고 명하시어, 사죄(死罪)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온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봉명 사신(奉命使臣)인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반드시 정성근을 쏜 뒤에야 중죄(重罪)로 논하겠는가?"

하고, 좌우에게 물었다. 이극배가 대답하기를,

"정상은 비록 죄를 줄 만하나, 사형(死刑)이란 중대한 일이니, 참작하여 헤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시독관(侍讀官) 이창신(李昌臣)은 아뢰기를,

"전라도의 풍속이 본래 포악하고 사납습니다. 구효민 등의 정리(情理)는 죄를 줄만하나, 옛말에 ‘형벌이 문란(紊亂)한 나라는 중전(重典)을 쓴다.’고 하였으니, 경솔(輕率)하게 논정(論定)할 수 없습니다."

하고, 좌승지(左承旨) 노공필(盧公弼)은 아뢰기를,

"이 일을 본원(本院)에 내리시어 의논하게 하셨으므로, 신 등이 제사(制使)를 구타한 율(律)을 자세히 참고하니,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사죄(死罪)로써 의논하여 아뢴 것입니다."

하였다. 이극증이 아뢰기를,

"형벌은 시대에 따라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는 것은 한 시대를 들어 말하는 것이고, 이러한 경우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하니, 이극배가 아뢰기를,

"형벌이 문란(紊亂)한 나라라고 한 언론은 마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였다. 이창신이 아뢰기를,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법(常法)대로 집행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德)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은 진실로 죄를 주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모반 대역(謀反大逆)200) 의 죄는 아닐지라도, 만약에 국가에 관계되는 범죄라면 장래를 염려해야 할 것이니, 가볍게 논(論)할 수 없다. 그러나 마땅히 여러 사람의 의논을 널리 채택(採擇)해야 할 것이다. 대간(臺諫)의 의사는 어떠한가?"

하였다. 강귀손이 아뢰기를,

"전라도의 풍속이 본래 사납고 악(惡)하여서, 노비(奴婢)가 주인을 살해(殺害)한 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형(死刑)이 이 도(道)에서 많이 나오게 되니, 중죄(重罪)로 논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니, 정언(正言) 윤석보(尹碩輔)가 아뢰기를,

"정상(情狀)은 비록 죄를 줄 만하나, 사람을 사형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니, 참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140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1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사상-불교(佛敎)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출판-인쇄(印刷)

  • [註 198]
    신 정승(申政丞) : 신숙주(申叔舟).
  • [註 199]
    제사(制使) : 임금의 사자.
  • [註 200]
    모반 대역(謀反大逆) : 모반(謀反)은 국가를 전복시키려고 기도한 내란죄(內亂罪)이고, 대역(大逆)은 임금이나 아버지를 죽이고 종묘(宗廟)와 임금의 능(陵)을 파헤치는 것임.

○癸卯/御經筵。 講訖, 執義姜龜孫啓曰: "申瀞所犯匪輕, 而命勿拿來, 未便。" 上顧問左右。 領事李克培對曰: "臣聞此事, 不勝驚駭。 凡僞造之事, 在庶人無知者, 且不敢爲, 況大臣乎? 臺諫之言甚可。" 上曰: "予見差帖, 僞造顯著。 但之所爲, 未可知也。 果是之所爲, 則其罪非輕。 凡僞造, 在無知庸人, 猶且不可, 況以大臣而爲之, 則安可謂之大臣, 而齒於朝廷乎? 其勿拿來者, 以申政丞之子, 且爲大臣也。 上來則可辨眞僞也。" 龜孫又啓曰: "禪宗判事僧乃浩, 被訴於僧, 本府鞫之, 其中或有虛事, 或有可疑事。 其率弟子往來社堂之事, 雖礙於指奸勿論之律, 然於僧道不可。 臣等面鞫之, 或服招, 或隱諱, 何以處之?" 上曰: "大妃殿有敎, 故差爲判事, 追身推鞫有法乎?" 龜孫曰: "《大典》: ‘僧人直推。’ 故如是耳。" 上曰: "予觀乃浩上言, 此僧糾察寺內汎濫之僧, 故見憚於衆耳。 僧人事, 非關治道, 棄之何如?" 仍問左右。 克培曰: "上敎允當。" 上曰: "棄之。" 知事李克增啓曰: "沃野仇孝敏等拘留鄭誠謹之罪, 律無正條, 故臣等照以歐制使之律, 而更命議擬, 入於死罪, 似未穩。" 上曰: "知奉命使臣, 而至於射人, 何必射誠謹, 然後重論哉?" 問左右。 克培對曰: "情雖可罪, 死刑重事, 酌量何如?" 侍讀官李昌臣啓曰: "全羅風俗, 本暴悍。 孝敏等情理可罪, 古云: ‘刑亂國用重典。’ 不可以輕論。" 左承旨盧公弼曰: "此事下本院議之, 臣等參詳於歐制使之律未合, 故以死罪議啓。" 克增曰: "刑罰世輕世重, 擧一世而言, 非謂此也。" 克培曰: "刑亂國之論, 似不當。" 昌臣曰: "與其殺不辜, 寧失不經。 此貴其好生之德也。 然此等人, 實可罪也。" 上曰: "雖非謀反大逆, 若關係國家, 則後來可慮, 不可輕論。 然當廣採衆議。 臺諫之意何如?" 龜孫曰: "全羅風俗本悍惡, 奴婢害主者有之。 故死刑多出於此道, 重論似可。" 正言尹碩輔曰: "情雖可罪, 刑人重事, 斟酌何如?"


  • 【태백산사고본】 21책 140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1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사상-불교(佛敎)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출판-인쇄(印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