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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37권, 성종 13년 1월 22일 신묘 3번째기사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정창손·심회·이극배 등과 유향소 복립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다

유향소(留鄕所)를 다시 세우는 것이 좋은지의 여부를 의논하게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우의정(右議政) 홍응(洪應)·선성 부원군(宣城府院君)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이보다 앞서 유향소의 사람들이 향중(鄕中)에서 그 권위(權威)를 남용하여 불의(不義)한 짓을 행하니, 그 폐단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선왕조(先王朝)에서 폐지시켰던 것입니다. 간사한 아전을 견제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것은 수령(守令)이 해야 할 일인데, 만약 모두 유향소에다 위임한다면 수령은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또 국가(國家)에서 수령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올바른 인재(人材)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고을의 유향소의 인원을 선택하면서, 어찌 다 올바른 사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한 고을에 큰 폐단만 될 뿐이고 정치에는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청송 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파천 부원군(坡川府院君) 윤사흔(尹士昕)·좌의정(左議政) 윤필상(尹弼商)·영돈녕(領敦寧) 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유향소를 폐지한 이후로 시골의 풍속이 날로 악화(惡化)되었으니, 그러한 조짐은 키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다시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만 유향소의 인원이 어질고 어질지 못함이 같지 아니하여 혹은 사심(私心)을 품고 폐단을 일으키는 자도 있을 것이니, 징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 금하고 억제하는 절목(節目)을 해사(該司)로 하여금 상의하여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광릉 부원군(廣陵府院君)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주부 군현(州府郡縣)에는 각각 토성(土姓)067) 이 있습니다. 그 서울에 살면서 벼슬하는 곳을 경재소(京在所)라고 하는데, 경재소에서는 그 고향에 살고 있는 토성 중에서 강명(剛明)한 품관(品官)을 선택하여 유향소(留鄕所)에 두어 유사(有司) 또는 간사한 관리의 범법 행위를 서로 규찰(糾察)해서 풍속을 유지시키는데, 그 유래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중간에 폐지한 것은, 세조(世祖) 때에 충주(忠州)의 백성이 그 고을 수령을 고소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유향소에서 수령을 고소한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하여 고소한 사람을 너무 심하게 억압하였으므로, 이것이 마침내 임금에게까지 알려졌기 때문에 폐지시킨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 뒤에는 간사한 관리들이 더욱 거리낌이 없이 마음대로 불법(不法)을 행하나, 경재소는 멀리 있기 때문에 미처 듣고 보지 못하므로 이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수령이 한 번이라도 그것을 말하게 되면 몰래 수령의 허물을 기록해 두었다가 마을 백성을 은밀히 사주하여 그 허물을 폭로시켜서 파직(罷職)이 되게 합니다. 그 때문에 수령들도 은인 자중(隱忍自重)하면서 날이나 보내게 되니, 풍속이 무너짐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탄식할 뿐입니다. 비록 다시 유향소를 세운다고 하여 갑자기 풍속을 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간사한 관리들이 꺼리는 바가 있어 방자하게 굴지 못하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근일에 충청 감사(忠淸監司)가 전의(全義)의 관노(官奴)에게 고소를 당하였으니, 그러한 조짐은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다시 유향소를 세움은 국정(國政)에는 해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유향소에서 폐단을 일으키는 데 대해서 국가의 정해진 법이 있으니 견제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인데, 또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하니, 심회 등의 의논에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137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29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풍속-풍속(風俗)

  • [註 067]
    토성(土姓) : 그 지역의 토박이 성씨(姓氏).

○議留鄕所復立便否。 領議政鄭昌孫、右議政洪應宣城府院君 盧思愼議: "前此留鄕所人員, 在鄕中, 竊其威權, 恣行不義, 其弊多端。 故先王朝革之。 制猾吏、正風俗, 守令事也, 若皆委之留鄕所, 則守令無所爲矣。 且國家選擇守令, 或不得人, 一邑留鄕人員, 豈盡得人乎? 徒爲一鄕巨弊, 無補治化。" 靑松府院君 沈澮坡川府院君 尹士昕、左議政尹弼商、領敦寧尹壕議: "自留鄕所革去以後, 鄕風習俗, 日就淆惡, 漸不可長。 臣意以謂 ‘復立爲便。’ 但留鄕人員, 賢否不齊, 或有挾私作弊者, 不可不懲。 其禁抑節目, 令該司商議施行何如?" 廣陵府院君 李克培議: "州府郡縣, 各有土姓。 其在京從仕者, 謂之京在所, 京在所, 擇其居鄕土姓剛明品官, 爲留鄕所, 有司奸吏所犯, 互相糾察, 維持風俗, 其來已久。 中間廢之者, 在世祖朝, 忠州民告其州守令, 其時留鄕所, 以守令告訴, 爲不可, 侵其人太甚, 乃至上聞, 以此罷之, 非他故也。 其後奸吏, 益無畏忌, 恣行非法, 京在所, 耳目亦遠, 未及見聞, 無由禁防。 橫行里落, 侵擾民戶, 守令一有所言, 則暗錄過失, 陰嗾村民, 發其過惡, 乃至見罷。 以此爲守令者, 亦隱忍度日, 風俗之弊, 一至於此, 可嘆也已。 雖復立留鄕所, 固不可遽變風俗。 然奸吏有所畏忌, 不得放肆, 則有之。 近日忠淸監司, 被告於全義官奴, 其漸可慮。 臣以謂 ‘復立留鄕所, 似無害於國政。’ 其留鄕之作弊者, 自有國法, 制之不難, 又何恤也?" 從沈澮等議。


  • 【태백산사고본】 20책 137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29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