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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36권, 성종 12년 12월 17일 정사 1번째기사 1481년 명 성화(成化) 17년

흉년으로 정조의 회례연을 정지하라고 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집의(執義) 이명숭(李命崇)이 아뢰기를,

"금년(今年)에 흉년이 들어 백성이 먹고 살기가 매우 곤란하여 계속해서 유랑(流浪)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명년(明年) 정조(正朝)의 회례연(會禮宴)은 행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정지시키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처음부터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정지하려고 하였다."

하였다. 대비(大妃)가 하교(下敎)하기를,

"조종조(祖宗朝)로부터 세수(歲首)가 되면 회례연을 베푼 것이 오래 되었는데, 이제 어찌하여 그렇게 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다만 선정전(宣政殿)에서 간략한 예(禮)를 잠깐 행하고 이어 삼전(三殿)에 풍정(豐呈)860) 을 바치려 한다. 만약 회례연을 베풀지 않는다면 삼전께서도 반드시 안심하고 받지 아니할 것이니, 나의 생각으로는 무방하다고 여긴다."

하였다. 영사(領事) 홍응(洪應)이 아뢰기를,

"금년은 다른해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이 상당히 많으니, 신(臣)의 의견으로는 회례연을 베풀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여깁니다."

하고, 동지사(同知事) 이파(李坡)는 아뢰기를,

"신의 의견으로는, 이것은 크게 베풀어서 백성에게 폐가 미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조(正朝) 때 진상(進上)하는 음식물로써 잠깐 행할 뿐이라고 여겨집니다. 비록 소민(小民)이라 하더라도 만약 명일(名日)을 맞게 되면 각기 그 어버이를 위로하는데, 지금 회례연을 베푼다고 한들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하고, 이명숭(李命崇)은 아뢰기를,

"곡연(曲宴)을 잠깐 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하필이면 곡연을 하겠는가? 금년에 흉년이 든 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또 내가 본래 잔치를 좋아하지 아니함은 재상(宰相)이 다 안다. 내가 어찌 백성을 근심하지 않고서 이런 회례연을 베풀겠는가? 그리고 대간(臺諫)이 옳지 못하다고 하니, 마땅히 정지해야 하겠다."

하였다. 이명숭이 말하기를,

"나례(儺禮)861) 를 하는 우인(優人) 가운데 양식을 싸가지고 올라온 자가 많아서 서울에 머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례는 조종조(祖宗朝) 때부터 행한 것이니, 경솔히 고칠 수 없다. 우인들은 본래 농사를 짓지 아니하고 양식을 구걸하여 먹고 살며, 또 먼 곳의 사람이 아니고 모두가 경기(京畿)에서 이틀길[二日程] 거리에 살고 있다. 이미 서울에 왔으니, 정조(正朝)가 지난 뒤에 내려 보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136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8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농업-농작(農作) / 정론-간쟁(諫諍) / 호구-이동(移動) / 재정-진상(進上) / 예술-연극(演劇) / 신분-천인(賤人)

  • [註 860]
    풍정(豐呈) :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신하들이 임금에게 물건을 바치던 일. 《세종실록》 제1권에, "국속(國俗)에 임금에게 음식을 차려 바치는 것을 풍정이라 한다." 하였음.
  • [註 861]
    나례(儺禮) :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에서나 민가에서 마귀와 사신(邪神)을 쫓아낸다는 뜻으로 베푸는 의식(儀式). 원래 중국에서 시작된 풍습으로,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정종(靖宗) 6년(1040)에 이미 나례가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우리 나라에는 훨씬 이전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듯함.

○丁巳/御經筵。 講訖, 執義李命崇啓曰: "今年凶險, 民甚艱食, 流亡相繼。 明年正朝會禮宴, 不可行也。 請停之。" 上曰: "予初以年險欲停之, 大妃敎曰: ‘自祖宗朝, 歲首則設此宴久矣, 今何爲獨不然?’ 只於宣政殿, 暫行約禮, 仍欲進豐呈於三殿也。 若不設此宴, 則三殿必不安心受之, 予意以謂無妨也。" 領事洪應啓曰: "今年非他年比也, 民之飢餓者尙多。 臣意以謂 ‘勿設宴爲便。’" 同知事李坡啓曰: "臣意以謂, ‘此非大設, 而弊及於民也, 以正朝進上之物, 暫行耳。 雖小民, 若遇名日, 各慰其親, 今設此宴何妨?" 命崇啓曰: "暫行曲宴可也。" 上曰: "不爲則已, 何必爲曲宴? 今年失農, 人所共知, 且予素不好宴, 宰相皆知之。 予豈不憂民, 而爲此宴乎? 然臺諫以爲不可, 當停之。" 命崇曰: "儺禮優人, 贏糧上來者多, 留京甚難。 還送何如?" 上曰: "儺禮, 自祖宗朝行之, 不可輕改。 凡優人本不業農, 乞糧而食, 且非遠地人, 皆居京畿二日程者。 業已來京, 過正朝後, 下送爲便。"


  • 【태백산사고본】 20책 136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8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농업-농작(農作) / 정론-간쟁(諫諍) / 호구-이동(移動) / 재정-진상(進上) / 예술-연극(演劇) / 신분-천인(賤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