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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34권, 성종 12년 10월 9일 경술 3번째기사 1481년 명 성화(成化) 17년

종자곡을 수송하는 것에 대하여 의논하다

호조 겸판서(戶曹兼判書) 이극배(李克培)·판서(判書) 허종(許琮)·참의(參議) 이육(李陸)이 의논하기를,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을 써서 종자곡을 옮기는 것은 그 폐단이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전라도의 볍씨는 경기·황해도·평안도에는 맞지 않고 오직 충청도의 볍씨만이 옮겨 쓸 만합니다. 조운(漕運)하기가 비록 어렵다 하여도 백성에게는 폐단이 없습니다. 선박은 많이 준비하여 일찍이 운반하였다가 파종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였고, 참판(參判) 이경동(李瓊仝)은 의논하기를,

"볍씨를 선박으로 운반하게 되면 때를 맞추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충청도 여러 고을의 전세(田稅)를 각기 그 근처의 2일정(二日程)이나 3일정(三日程)에 있는 읍창(邑倉)으로 차례대로 옮겨 바치게 하여 경기·황해도로 일단 모이게 하였다가 다시 평안도까지 옮겨 가게 하면 납세하는 백성의 노고와 폐단이 그렇게 심하지 않고도 세 도(道)의 볍씨가 자연히 넉넉해지고 농사철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고, 정창손(鄭昌孫)·심회(沈澮)·윤사흔(尹士昕)·홍응(洪應)·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지금 보건대 호조(戶曹)에서의 두 가지 의논이 육로로 운반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만, 사람과 말의 노력이 실로 어려워서 수로로 운반하는 쉬움만 같지 못합니다. 만약 볍씨가 바다 기운을 쐬일 것을 염려한다면 두껍게 싸서 실으면 될 것입니다."

하였으며, 노사신(盧思愼)·한계희(韓繼禧)·강희맹(姜希孟)·이파(李坡)는 의논하기를,

"평안도황해도는 모두 가뭄이 심해져 종자를 반드시 관가에서 지급해야만 넉넉해질 것입니다. 가령 그 도(道)에서 스스로 준비하게 해서는 백 분의 일밖에 되지 않아서 다른 도(道)를 번거롭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도에서 점차로 옮겨 바치는 일을 두고 말하면 처음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옳지 못한 일입니다. 황해도평안도는 남도 지방과 달라서 고을들이 서로 인접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어 여러 날 왕래하면서 운반할 경우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금년은 피차가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충청도·경기에서 거둔 곡물은 황해도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지방으로 옮겨 바칠 수 있다 하더라도, 황해도의 서쪽 지방은 모두 적지(赤地)인데 무엇으로 평안도에 옮겨 바치겠습니까? 그러므로 차차 옮겨 바치게 한다는 방법은 황해도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지방에만 가능하며 황해도 전체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구나 평안도에 미칠 수야 있겠습니까? 그래서 해로로 운반하는 편리함만 같지 못합니다. 혹 말하기를, ‘평안도황해도는 남쪽 지방에서 멀고 해로(海路)도 대단히 멀어서 바다 기운을 오래 쐬면 곡물의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잘 덮고 두껍게 깔면 혹 만일의 손실이 있다하더라도 모두 못쓰게 되기야 하겠습니까? 또 들으니 1년이 지난 곡물도 잘 간수하면 싹이 나고 열매 열기가 신곡(新穀)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청컨대 양도(兩道)로 하여금 묵은 곡식은 구황(救荒)에 쓰되, 1년밖에 안된 벼는 모두 풀지 말고 종자로 쓰게 하소서."

하였고, 어유소(魚有沼)·이극증(李克增)·김영유(金永濡)·변종인(卞宗仁)은 의논하기를,

"경기와 강원도의 고을 중에 황해도·평안도와 수로(水路)로 통하지 않는 곳은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볍씨를 황해도평산(平山) 등 고을에 바치게 하고, 그 나머지 경기·충청도 각 고을의 볍씨는 본래대로 조운(漕運)에 맡기게 하소서. 그러나 마땅히 먼저 경험 있는 조정의 관리로 하여금 수로의 험하고 쉬운 곳과 선박이 닿을 곳을 조사한 후에 조운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고, 이덕량(李德良)·최영린(崔永潾)·성숙(成俶)·박안성(朴安性)은 의논하기를,

"평안도·황해도의 부족한 볍씨에 대하여 혹은 충청도·전라도의 곡물을 조운(漕運)하자고 하기도 하고 혹은 차례대로 육로로 운반하자고도 합니다만, 전라도의 곡물은 그 풍기(風氣)와 파종 시기가 달라서 다른 지방에 옮겨 심지 못합니다. 차례대로 육로로 운반하는 경우 금년은 각 지방에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이 모두 소요(騷擾)할 것이므로 도리어 폐단이 됩니다. 양도(兩道)의 소출(所出)과 회환(回換)750) 을 제하고도 부족한 고을은 부근 경기·충청도의 곡물을 적절히 조운(漕運)하여 보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자, 노사신(盧思愼) 등의 의논을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13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63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 농업-권농(勸農) / 구휼(救恤)

  • [註 750]
    회환(回換) : 장사아치가 변방 지방에 군량미(軍糧米)를 공급하고 환(換:문권(文券))을 받아오면 근기(近畿) 지방에서 미곡(米穀)을 지급하던 제도.

○戶曹兼判書李克培、判書許琮、參議李陸議: "用飢饉之民, 移轉租種, 弊不可勝言。 全羅道稻種, 不宜於京畿黃海平安等道, 唯忠淸道稻種, 可以移用。 漕轉雖難, 於民無弊。 多備船隻, 趁時移轉, 使之播種爲便。" 參判李瓊仝議: "稻種船運, 有不可時者, 若以忠淸道諸邑田稅, 各其附近, 或三日程, 或二日程, 邑倉, 次次輸納, 轉入京畿黃海, 以至平安道, 則民之納稅者, 不甚勞弊, 而三道稻種, 自然而敷, 且無失時之弊矣。" 鄭昌孫沈澮尹士昕洪應尹壕議: "今觀戶曹兩議, 陸運至便, 然人馬之力, 實難致也, 不若水運之易。 若慮穀種爲海氣所侵, 厚裹載船, 則無患矣。" 盧思愼韓繼禧姜希孟李坡議: "平安黃海兩道, 皆旱荒, 種子必須官給, 然後可贍。 假令其道自備, 亦百分之一耳, 不得不煩於他道也。 然次次輸納之事言之, 初若有理, 實則甚不可。 黃海平安兩道之於南道, 其壤地邈不相接, 累日往來輸納之際, 其弊不可勝言。 況今年, 彼此皆飢, 忠淸京畿所收之穀, 只可納於黃海初面矣, 而黃海以西, 則皆爲赤地, 將何物納於他道乎? 然則次次輸納之論, 但可行於黃海初面, 而不能周於本道, 況達於平安乎? 莫若海運之便也。 人或有言: ‘平安黃海距南道, 海路甚遠, 海氣浸潤旣久, 穀不生芽。’ 然謹其蓋覆, 厚其藉薦, 雖或有萬一之損, 不猶愈於專無乎? 且聞經一年之穀, 若藏之之謹, 則發芽結實, 無異於新稻。 請令兩道, 用陳穀於救荒, 其經一年之租, 專數勿散, 以備種子。" 魚有沼李克增金永濡卞宗仁議: "京畿江原道各官, 與黃海平安道水路不通者, 令民自納稻種于黃海道 平山等邑, 其餘京畿忠淸道諸邑稻種, 自當漕運也。 然當先使諳練朝官, 審定水路險易及船泊處, 然後漕運爲便。" 李德良崔永潾成俶朴安性議: "平安黃海兩道不足稻種, 或云: ‘以忠淸全羅之穀漕運。’ 或云: ‘次次陸運’, 全羅之穀, 風氣與早晩不同, 不可移種於他道也。 次次陸運, 則今年凶歉, 諸道皆然, 飢困之民, 悉皆騷擾, 反爲有弊。 除兩道所出及回換外, 其不足諸邑, 以附近京畿忠淸之穀, 量宜漕轉, 補之爲便。" 從思愼等議。


  • 【태백산사고본】 20책 13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63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 농업-권농(勸農)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