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가 압구정에서 중국 사신을 위한 연회를 열려고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상당 부원군 한명회가 와서 아뢰기를,
"내일 중국 사신이 압구정(狎鷗亭)에서 놀고자 하므로, 신이 오늘 아침 중국 사신에게 가 보았더니, 중국 사신이 신을 머무르게 하여 주반(晝飯)을 같이하였습니다. 상사(上使)가 말하기를, ‘내가 얼굴에 종기가 나서 낫지 않았으므로, 가지 못할 듯합니다.’ 하기에, 신이 청하기를, ‘나가 놀며 구경하면 병도 나을 것인데, 답답하게 객관(客館)에 오래 있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니, 상사가 말하기를, ‘제가 가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의 정자는 본래 좁으므로 지금 더운 때를 당하여 잔치를 차리기 어려우니, 해사(該司)를 시켜 정자 곁의 평평한 곳에 대만(大幔)을 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경(卿)이 이미 중국 사신에게 정자가 좁다고 말하였는데, 이제 다시 무엇을 혐의 하는가? 좁다고 여긴다면 제천정(濟川亭)에 잔치를 차려야 할 것이다."
하였다. 한명회가 또 보첨만(補簷幔)550) 을 청하니, 전교하기를,
"이미 잔치를 차리지 않기로 하였는데, 또 무엇 때문에 처마에 잇대는가? 지금 큰 가뭄을 당하였으므로 뜻대로 유관(遊觀)할 수 없거니와, 내 생각으로는, 이 정자는 헐어 없애야 마땅하다. 중국 사신이 중국에 가서 이 정자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면, 뒤에 우리 나라에 사신으로 오는 사람이 다 유관하려 할 것이니, 이는 폐단을 여는 것이다. 또 강가에 정자를 꾸며서 유관하는 곳으로 삼은 자가 많다 하는데, 나는 아름다운 일로 여기지 않는다. 내일 제천정에 주봉배(晝捧杯)551) 를 차리고 압구정에 장막을 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한명회가 아뢰기를,
"신은 정자가 좁고 더위가 심하기 때문에 아뢴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아내가 본래 숙질(宿疾)이 있는데 이제 또 더쳤으므로, 신이 그 병세를 보아서 심하면 제천정일지라도 신은 가지 못할 듯합니다."
하니,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강가에 정자를 지은 자가 누구누구인지 모르겠다. 이제 중국 사신이 압구정에서 놀면 반드시 강을 따라 곳곳을 두루 노닐고 난 후에야 그칠 것이고, 뒤에 사신으로 오는 자도 다 이것을 본떠 유람(遊覽)할 것이니, 그 폐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우리 나라 제천정의 풍경은 중국 사람이 예전부터 알고, 희우정(喜雨亭)은 세종(世宗)께서 큰 가뭄 때 이 정자에 우연히 거둥하였다가 마침 영우(靈雨)를 만났으므로 이름을 내리고 기문(記文)을 지었으니, 이 두 정자는 헐어버릴 수 없으나, 그 나머지 새로 꾸민 정자는 일체 헐어 없애어 뒷날의 폐단을 막으라. 또 내일은 제천정에서 주봉배(晝捧杯)를 차리고 압구정에는 유관만 하게 하라."
하였다. 승지(承旨)들이 아뢰기를,
"한명회의 말은 지극히 무례합니다. 중국 사신이 가서 구경하려 하더라도 아내가 참으로 앓는다면 이것으로 사양해야 할 것인데, 중국 사신이 병이 있다고 말하는데도 도리어 스스로 놀기를 청하고서 한마디도 아내의 병을 말하지 않았고, 이제는 아뢰어서 대만(大幔)과 보첨(補簷)을 청하였으니, 대개 그 사치하고 큰 것을 곡진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상의 뜻에 허락하시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서는 말을 바꾸어 아뢰기를, ‘신의 아내가 병이 심하므로 제천정일지라도 가지 못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반드시 성상의 뜻에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을 마음에 언짢게 여겨서 나온 말일 것이며, 마음에 분노를 품어서 언사(言辭)가 공손하지 않았으니, 신하로서의 예의가 아주 없습니다. 신하가 임금의 명에 대하여서는 천리의 먼길이라도 사양하지 않고 가야 할 것인데, 더구나 스스로 청하고 나서 도리어 사양하는 것이겠습니까? 유사(攸司)를 시켜 국문(鞫問)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그 말이 매우 옳다. 그러나 천천히 분부하겠다."
하였다. 승지들이 또 아뢰기를,
"임금과 신하 사이에 어찌 이처럼 패만(悖慢)552) 할 수 있겠습니까? 국문하도록 명하여 신들의 소망하는 바를 시원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어찌 주저하고 결단하지 못해서 그러겠는가? 천천히 분부하겠다. 어찌 서둘러야 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30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237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건설-건축(建築) / 풍속-연회(宴會) / 과학-천기(天氣)
- [註 550]
○上黨府院君 韓明澮來啓曰: "明日天使欲遊(押鷗亭)〔狎鷗亭〕 , 故臣今朝往見天使, 天使留臣同晝飯。 上使曰: ‘予有面腫未痊, 似未得往。’ 臣請曰: ‘出遊觀賞, 則病亦痊矣。 何必鬱鬱長在客館乎?’ 上使曰: ‘吾當往矣。’ 臣之亭本狹小, 今當炎熱, 設宴爲難, 請令該司, 於亭傍平衍處, 設大幔。" 傳曰: "卿旣語天使以亭窄, 今更何嫌? 若以爲窄, 則當設宴於濟川亭矣。" 明澮又請補簷幔, 傳曰: "旣不設宴, 又何補簷? 今當大旱, 不可肆志遊觀, 吾意以爲 ‘此亭當撤去也。’ 天使若說此亭風景之美于中原, 則後之奉使于我國者, 必皆遊觀, 是開弊端也。 且聞構亭江上, 以爲遊觀之所者多, 吾不以爲美也。 明日設晝捧杯于濟川亭, 而勿令帳幔於(鴨鷗亭)〔狎鷗亭〕 , 可也。" 明澮啓曰: "臣以亭窄而熱酷, 故啓之耳。 然臣妻本以宿疾, 今又加發, 臣觀其病勢若劇, 則雖濟川亭, 臣似未得往也。" 傳于承政院曰: "予未知江濱作亭者某某也。 今天使遊狎鷗亭, 必沿江歷歷(偏)〔遍〕 遊, 而後乃已, 後之奉使而來者, 必皆效此遊覽, 其弊寧有旣耶? 我國濟川亭之景, 中朝人自古知之, 喜雨亭, 世宗於大旱, 偶幸此亭, 適遇靈雨, 仍賜名作記, 此二亭, 則可不壞也, 其餘新構之亭, 一切撤去, 以防後弊。 且明日晝捧杯, 設於濟川亭, 而狎鷗亭, 則但使遊觀可也。" 承旨等啓曰: "明澮之言, 至爲無禮。 天使雖欲往觀, 妻苟病, 則當以此辭之, 而天使稱病, 反自請遊, 無一語及妻病, 今乃啓請大幔及補簷, 蓋欲極其侈大, 以誇美也。 及知上意不肯, 乃變辭啓曰: ‘臣妻病劇, 雖濟川亭, 亦不得往。’ 此必以上意不肯, 爲未愜於心而發, 心懷憤怒, 言辭不恭, 殊無人臣之禮。 臣之於君命也, 雖千里之遠, 當無辭而行, 況自請而反辭乎? 請令攸司鞫問。" 傳曰: "此言甚可。 然當徐敎之。" 承旨等又啓曰: "君臣之間, 豈可如此悖慢? 請命鞫, 以快臣等之望。" 傳曰: "予豈優游不斷而然也? 當徐敎之。 何急急爲耶?"
- 【태백산사고본】 19책 130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237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건설-건축(建築) / 풍속-연회(宴會)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