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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29권, 성종 12년 5월 7일 신사 2번째기사 1481년 명 성화(成化) 17년

사헌부·사간원이 합사하여 한명회를 국문하자고 청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대사간(大司諫) 강자평(姜子平)과 집의(執義) 박숙달(朴叔達)이 아뢰기를,

"신 등이 여러 번 한명회(韓明澮)의 죄를 청하였으나, 윤허(允許)를 받지 못하여 분격(憤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연전에 정동(鄭同)이 왔을 적에 나로 하여금 남향(南向)하여 앉게 하였는데, 내가 굳이 사양하였으나 할 수가 없었다. 이로써 보건대, 그가 정승(政丞)의 말을 따르겠는가? 만약 그가 격노(激怒)해서 황제에게 말을 만들어서 이르기를, ‘성은(聖恩)이 지극히 융성(隆盛)한데도 덕(德)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고, 진헌(進獻)하는 물건은 그 명목(名目)을 많이 하여서 상공(常貢)으로 삼는다면, 우리 나라에서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정도(正道)로써 그들을 대접할 수는 없으므로, 요컨대 권의(權宜)217) 로써 그들을 접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승(政丞)의 일은 부득이하였을 뿐이다.’

하였다. 박숙달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에서 바야흐로 논죄(論罪)하고 있는데도 한명회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출사(出仕)하고 있으니, 이것이 또한 불가(不可)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자에 개성(開城)에 가는 것을 사양하겠다고 청하였으나, 내가 그대로 따르지 아니하였다. 오늘 아침에도 또 사양하여 말하기를, ‘대간(臺諫)에서 바야흐로 논박(論駁)하는데도 출사(出仕)하는 것이 미안(未安)합니다.’고 하였으나, 내가 또 그대로 따르지 아니하였다."

하였다. 박숙달이 말하기를,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간(臺諫)에서 논박(論駁)한다면, 합문(閤門)에서 대죄(待罪)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임금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의 말을 따르지 아니하고 마땅히 대간(臺諫)의 말을 따르라는 것이냐? 권력이 대각(臺閣)으로 돌아가버리면 나라는 자기 나라가 아닐 것이다."

하고, 이어서 지사(知事) 이극증(李克增)을 불러서 말하기를,

"이 말은 앞뒤가 뒤바뀐 것 같도다."

하니, 이극증이 대답하기를,

"대저 조정 관원이 탄핵을 당하면 출사(出仕)할 수가 없습니다. 한명회는 성상께서 전교(傳敎)하여 이미 출사(出仕)하도록 허락하였으니, 어찌 불가(不可)하겠습니까?"

하였다. 강자평·박숙달이 이를 다시 청하였으나, 임금이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그때 한명회가 영사(領事)로서 또한 입시(入侍)하였는데, 부복(俯伏)하여 사죄(謝罪)하기를,

"대간(臺諫)의 말이 옳습니다. 소신(小臣)이 배우지 못하여 학술(學術)이 없어서 잘못 생각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정동의 일은 성상께서 이미 이를 알고 계시는데, 형세가 부득이하여 그리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말씀 드리지 않더라도 천감(天鑑)께서 밝게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였다. 이날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에서 합사(合司)218) 하여 뜰에 서서 그 죄를 국문(鞫問)하자고 청하였으나, 끝내 윤허(允許)를 받지 못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2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212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註 217]
    권의(權宜) : 그때 그때 임시로 적당하게 하는 것.
  • [註 218]
    합사(合司) : 나라의 중대한 일을 처리하거나 의논할 때 두 개 이상의 관사(官司)가 서로 합하여 일을 보던 것을 말함.

○御經筵。 講訖, 大司諫姜子平、執義朴叔達啓曰: "臣等累請明澮之罪, 未蒙允可, 不勝憤激。" 上曰: "年前鄭同之來, 使我南向而坐, 予强辭不得。 以此觀之, 其從政丞之言乎? 若激怒, 而造言於皇帝曰: ‘聖恩至隆, 而不以爲德也。’ 進獻之物, 多其名目, 以爲常貢, 則我國其能當乎? 不可接之以正道, 要當以權宜待之。 政丞之事, 不獲已也。" 叔達曰: "臺諫方論, 而明澮靦面出仕, 此亦不可。" 上曰: "前者請辭開城之行, 予不從之。 今朝又辭曰: ‘臺諫方駁, 而出仕未安。’ 予又不從。" 叔達曰: "雖然, 臺諫論駁, 則(閤)〔闔〕 門待罪可也。" 上厲聲曰: "然則不從吾言, 而當從臺諫之言乎? 權歸臺閣, 則國非其國矣。" 仍呼知事李克增曰: "此言似乎顚倒。" 克增對曰: "大抵朝官被劾, 則不得出仕。 明澮則上敎已許出仕, 夫豈不可?" 子平叔達復請之, 不聽。 時, 明澮以領事, 亦入侍, 俯伏謝罪曰: "臺諫之言, 是也。 小臣不學無術, 錯料致此。 然鄭同之事, 上已知之矣, 勢不得已而爲之。 臣雖不言, 天鑑孔昭。" 是日司憲府、司諫院, 合司庭立, 請鞫其罪, 而竟未蒙允。


  • 【태백산사고본】 19책 12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212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