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 이평 등이 한명회를 국문할 것 등을 아뢰다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장령(掌令) 이평(李枰)이 아뢰기를,
"한명회(韓明澮)가 주문사(奏聞使)로 북경(北京)에 가서 환관(宦官)에게 물건을 빌어 주기를 청하여 감히 사사로이 바쳤고, 또 환관(宦官)의 청을 받아들여 사사로이 궁각(弓角)을 받아 왔으니, 대신으로서 봉명 사신(奉命使臣)으로 간 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명회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비록 조정(朝廷)이라도 나에게야 어찌 하겠는가? 전하도 또한 반드시 나에게 죄주지 못할 것이라.’고 하고, 방종(放縱)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이런 짓을 끝이 없이 하니, 이것은 그에게 조정(朝廷)도 있지 아니하며, 전하도 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스스로 개성(開城)에서 사신을 전별(餞別)하기를 청하였고, 지금 또 맞이하러 가기를 청하니, 국문(鞫問)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경들의 차자(箚子)를 보니, ‘오로지 마음대로 한다.[專擅]’는 말이 있었는데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일이 부득이한 데에는 나와서 그리 하였는데, 어찌 사리(事理)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이를 강재(强裁)하겠는가?"
하고, 이어서 이승소(李承召)를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참찬(參贊)이 여기에 있는데, 정승의 일은 형편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하였다. 정언(正言) 윤석보(尹碩輔)가 아뢰기를,
"무슨 부득이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한명회가 정동(鄭同)에게 아첨하여 큰 절개를 무너뜨려서 후일의 폐단(弊端)을 열며 임금의 명(命)을 욕되게 하였던 것은 오직 재물(財物)을 탐(貪)하였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것은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경들이 사목(事目)을 보고자 하였지만, 그러나 볼 만한 일이 없었고, 또 그런 예(例)도 없다. 내가 사목(事目)을 고찰하건대, 정동이 와서 진헌(進獻)할 물건이 많은가 적은가를 물었는데, 정승이 사실대로 대답하였더니, 정동이 크게 노하였기 때문에 정승이 부득이 〈그가〉 가진 것을 가지고 바쳤을 뿐이지, 정승이 정동에게 구해서 빌린 것은 아니다."
하였다. 윤석보가 또 아뢰기를,
"한명회가 구청(求請)하는 궁각(弓角)을 사사로이 받아서 왔으니, 매우 불가(不可)합니다. 한명회가 만약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감히 받아서 갈 수 없다.’고 하였다면, 정동이 어찌 감히 이를 강요하였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정동이 사리(事理)를 아는 사람이 아니므로, 정승이 받아 온 것 또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하였다. 이승소가 말하기를,
"신이 옛날에 박원형(朴元亨)과 북경(北京)에 입조(入朝)하였다가 돌아올 적에 예겸(倪謙)이 세조(世祖)에게 단자(段子)를 보내기에, 신이 부득이 이를 받아서 왔습니다."
하니, 이평이 말하기를,
"만약 임금에게 보낸다면, 이를 받는 것이 옳지만, 환관(宦官)의 사사로운 청(請)으로 받아오는 것이 옳겠습니까?"
하고, 굳이 청(請)하기를 마지 않았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2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10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사법-탄핵(彈劾)
○甲戌/受常參視事。 掌令李枰啓曰: "韓明澮以奏聞使赴京, 請貸宦官, 敢爲私獻, 又受宦官之請, 私受弓角而來, 大臣奉命之義, 安在? 明澮自以爲: ‘雖朝廷, 其如我何? 殿下亦不必罪我矣。’ 放縱自如, 無有紀極, 是不有朝廷, 不有殿下也。 去年自請餞于開城, 今又請迎, 不可不鞫。" 上曰: "予觀卿等之箚, 有專擅之語, 不已過乎? 事出於不得已而爲之, 何不度事理, 而强之哉?" 仍顧謂李承召曰: "參贊在此, 政丞之事, 勢使然也。" 正言尹碩輔啓曰: "有何不得已之事也? 明澮阿媚鄭同, 虧壞大節, 以開後弊, 以辱君命者, 只貪財物耳。 是可謂不得已乎?" 上曰: "昨日卿等, 欲見事目, 然無可見之事, 且無例也。 予考事目, 鄭同來問進獻之多少, 政丞對之以實, 同大怒, 故政丞不得已以所有獻之耳, 非政丞求貸於同也。" 碩輔又啓曰: "明澮私受求請弓角而來, 甚不可。 明澮若語之曰: ‘我國所不知, 不敢受去。’ 則同豈敢强之哉?" 上曰: "同非識理人也, 政丞受來, 亦出於不得已也。" 承召曰: "臣昔與(朴元享)〔朴元亨〕 , 朝京來還, 倪謙送段子于世祖, 臣不得已受來。" 李枰曰: "若送于上, 則受之可也, 宦官私請, 其可受來乎?" 固請不已, 不聽。
- 【태백산사고본】 19책 12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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