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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25권, 성종 12년 1월 7일 임오 2번째기사 1481년 명 성화(成化) 17년

특명으로 남원에 양이된 유자광이 전문을 올리다

유자광(柳子光)무술년029) 에 죄로 동래(東萊)에 유배(流配)되었다가 경자년030) 에 늙은 어미가 있다 하여 특명으로 남원(南原)에 양이(量移)031) 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전문(箋文)을 올려서 진사(陳謝)하기를,

"보잘것없는 신이 장기(瘴氣)가 있는 곳에 유배되자 사람들이 모두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명령이 높은 대궐에서 내리니, 그 은혜가 곧 다시 살리시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겨져, 눈물은 말끝마다 떨어지고 감격과 두려움은 가눌 수 없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본래 한낱 미천한 출신으로, 열성조(列聖朝)에서 잘못 아시고 써 주시는 은혜를 지나치게 입어, 자신의 진취를 남에게 따르지 않고 임금 섬기기를 오직 바른 도리로써 할 것을 기약하고, 노둔(駑鈍)한 자질로 조그마한 보좌(補佐)라도 하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을 당하면 감히 말하고 회피하는 것이 없었으니, 정성을 다하여 나라를 위해 죽으려고 하였고 자신의 명예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특명으로 형륙(刑戮)을 용서하셨고 아울러 장추(杖箠)032) 의 고초(苦楚)를 면하게 하시니, 이것은 천지(天地)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德)이며, 제왕(帝王)의 허물을 용서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아득히 먼 곳에 유배되어 외로운 모습은 스스로 달래지만, 처량하게 시골 구석에 계신 칠순(七旬)의 편모(偏母)는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두렵고 근심스러움을 호소한 것이 예감(睿鑑)033) 에 사무쳐 특별히 가련하게 여기시는 전교(傳敎)를 내리시고 권도로 옮겨서 안치(安置)하라는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조(烏鳥)가 반포(反哺)034) 를 할 수 있어 노경(老境)을 무사히 마치게 하셨으니, 구마(狗馬)035) 의 애쓰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비록 구학(丘壑)에 있으나 감히 잊겠습니까? 더구나 다시 은혜로운 조서(詔書)를 반포하시어 널리 봄 같은 은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뇌정(雷霆)이 변하여 우로(雨露)가 되니, 다 함께 생성(生成)하는 은혜를 받았으며, 마르고 썩은 데에는 싹과 뿌리가 돋으니, 골고루 화육(化育)036) 의 은혜에 젖게 하여, 마침내 옛날의 나쁜 것을 모두 새롭고 아름다운 데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대개 삼가 요천(堯天)037) 이 넓게 덮이고 순일(舜日)038) 이 밝게 빛남을 만나 한 번 상주고 한 번 벌함에 있어서 혹시라도 치우침이 있을까 염려하시고, 한 사람의 지아비와 지어미로 하여금 모두 자기의 생업에 힘을 다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도 일찍이 외람되게 훈맹(勳盟)의 끝자리를 차지하여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였으니, 누의의 힘[螻蟻之力]039) 은 지극히 미약하였으나 규곽의 마음[葵藿之心]040) 은 늘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명부(名簿)에서 이름이 삭제되어 촌맹(村氓)과 같이 되었습니다만, 돌아보건대 덕을 사모하고 은혜를 생각하는 것은 조정의 재상(宰相)으로 있을 때나 다름이 없으며, 털을 뽑아 〈세더라도〉 임금이 내려 주신 은혜는 갚을 수 없고, 피를 쏟더라도 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감히 험하고 어려운 것이 갖추어진 것으로 인해서, 신체발부(身體髮膚)가 새로 만들어진 은혜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처음 가졌던 뜻을 굳게 지켜 북극성(北極星)같이 높으신 임금을 우러러보며, 노친(老親)과 함께 남산(南山)과 같이 오래도록 사시기를 빕니다."

하였다. 전교(傳敎)하기를,

"유자광은 전대(前代)의 훈신(勳臣)이다. 그러나 고신(告身)을 받지 못하였으니, 대궐 안에 들어오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그러니 대궐문 밖에서 술을 대접하여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2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85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29]
    무술년 : 1478 성종 9년.
  • [註 030]
    경자년 : 1480 성종 11년.
  • [註 031]
    양이(量移) : 섬이나 변두리의 먼 곳으로 귀양보냈던 사람의 죄를 참작하여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일.
  • [註 032]
    장추(杖箠) : 곤장과 채찍.
  • [註 033]
    예감(睿鑑) : 임금이 밝은 감식(鑑識).
  • [註 034]
    반포(反哺) : 새새끼가 자란 뒤에는 늙은 어미새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은혜를 갚아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쓰임.
  • [註 035]
    구마(狗馬) : 임금에 대한 신하의 겸칭.
  • [註 036]
    화육(化育) : 천지 자연이 만물을 자라게 함.
  • [註 037]
    요천(堯天) : 요임금 때의 하늘. 즉 태평성대를 말함.
  • [註 038]
    순일(舜日) : 순임금 때의 태양. 태평 성대를 말함.
  • [註 039]
    누의의 힘[螻蟻之力] : 땅강아지와 개미같은 힘. 즉 작은 힘.
  • [註 040]
    규곽의 마음[葵藿之心] : 임금을 향한 충성심.

柳子光, 於戊戌年, 以罪配東萊。 庚子年, 以老母, 特命量移南原。 至是, 上箋陳謝:

曰微臣竄瘴鄕, 人皆謂之必死。 休命降魏闕, 恩寔出於更生, 涕隨言零, 感與懼至。 伏念臣本以一介賤跡, 濫蒙列聖謬知, 進身不由於他人, 事君惟期於直道, 誓將駑鈍, 思補絲毫。 遇事敢言, 無所回避, 竭誠徇國, 不計身名。 命寬鈇鉞之誅, 竝免杖箠之苦, 是天地好生之德, 乃帝王赦過之心。 流謫天涯, 千里隻影之自弔; 凄涼鄕曲, 七旬偏母之誰依? 控此危悰, 達于睿鑑, 特下憐憫之敎, 曲賜移置之優。 烏鳥反哺之私, 使終桑楡之昃景, 狗馬効勞之懇, 雖在丘壑, 而敢忘? 況復恩詔之天頒, 普被德澤之春布。 雷霆變爲雨露, 共荷生成, 枯朽盡發萌荄, 均涵化育, 遂令舊染, 咸與新休。 玆蓋伏遇天廣燾、日洞照, 慮一賞一罰, 間或有偏; 使匹夫匹婦, 皆獲自盡。 如臣曾叨勳盟之末, 乃有休戚之同。 螻蟻之力至微, 葵藿之心尙切。 在除名削籍, 有類村氓; 顧戀德懷恩, 無異朝宰, 擢髮未能以報君之賜, 瀝血不足以瀉臣之肝。 敢不因險阻艱難之備嘗, 念身體髮膚之再造益堅夙志, 仰(贍)〔瞻〕 北極之尊; 長與老親, 共祝南山之壽。

傳曰: "子光前代勳臣。 然未受告身, 不宜入闕門。 其於門外, 饋酒以送。"


  • 【태백산사고본】 19책 12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85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