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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22권, 성종 11년 10월 28일 갑술 2번째기사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동래부에 부처된 유자광이 병든 어미가 있는 고향으로 양이해 달라고 상소하다

경상도(慶尙道) 동래(東萊)에 부처(付處)한 사람인 유자광(柳子光)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신은 금년의 나이가 42세이고, 어미의 나이는 71세입니다. 〈신의〉 어미가 세 아들을 낳았으나, 지난 계사년494)유자형(柳子炯)이 병들어 죽었고, 신이 동래(東萊)에 유배된 뒤에는 오직 유자정(柳子晶) 만이 어미의 곁에 있었는데, 집안의 화변(禍變)이 가시지 못하여 지난해에 유자정도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미가 지나치게 애통(哀痛)하여 병(病)이 되어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또다시 천기(天氣)가 차고 바람이 냉(冷)하여 해소(咳嗽)가 심해져서, 신음(呻吟)하며 홀로 고생하여 돌아가실 날이 임박(臨迫)하였으니, 제 심정을 무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효(孝)로써 다스림을 삼으시니, 신의 죄가 비록 중(重)하더라도 신의 어미의 병이 애처로와서 그 자식의 죄악을 생각지 않으시고 반드시 자애(慈愛)의 정(情)을 절실히 느끼실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넓고 큰 은혜를 내리시어, 신을 어미가 있는 고향으로 양이(量移)495) 하셔서 남은 봉양(奉養)을 받들게 하여 여생(餘生)을 마치게 하신다면, 모자(母子)의 정(情)이 생사(生死)에 유감(遺憾)이 없을 것입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부복(俯伏)하여 대궐[宸極]을 바라보니, 혼신(魂神)이 날아가고픈 간절한 마음이 지극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명하여 대신(大臣)에게 보이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이 의논하기를,

"유자광의 죄가 진실로 중하나, 지금 유배된 지 이미 3년이 경과하였으니, 어찌 개과 천선함이 없겠습니까? 하물며 유자광의 공(功)이 크고, 범(犯)한 것이 종사(宗社)에 관계되지 않으며, 자기(自己)의 광망(狂妄)뿐이었습니다. 지금 어미를 위하여 상언(上言)한 것은 마음이 간절하고 독실(篤實)하니, 청컨대 어미가 있는 고향으로 양이(量移)하고, 어미가 완전히 낫기를 기다려 다시 배소(配所)로 돌려보내소서."

하고, 심회(沈澮)·윤사흔(尹士昕)·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유자광은 중죄를 짓고 멀리 유배(流配)되었으니, 진실로 마땅히 문(門)을 닫고 가만히 들어앉아 죄를 뉘우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언(上言)까지 하여 천총(天聰)을 번거롭게 하고, 지금 또 상서(上書)하여 양이(量移)하여 주기를 자원(自願)하였으니, 광패(狂悖)한 마음이 지금도 아직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공(功)이 비록 중(重)하지만, 가볍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고, 김국광(金國光)이 의논하기를,

"유자광의 죄가 중(重)하여서 가볍게 의논할 수 없으나, 70세의 노모(老母)가 병을 얻었고 두 아우까지 모두 죽었으니, 유자광은 곧 독자(獨子)입니다. 비록 마땅히 사형(死刑)에 처할 자라도 독자라면 오히려 살아 남아서 어버이를 봉양하도록 허락하는데, 하물며 사형에 이르지 않은 자이겠습니까? 병든 어미의 근처로 양이(量移)하는 것이 거의 정리(情理)에 합당합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남이(南怡) 등의 역모(逆謀)가 이루어졌으나 종묘(宗廟)·사직(社稷)의 신령(神靈)에게 힘입어서 그 역모가 유자광에게 누설되었고, 유자광이 변(變)을 고(告)해서496) 즉시 체포하여 주살(誅殺)하였으니, 유자광의 공(功)이 사직(社稷)에 있습니다. 비록 큰 죄가 있더라도 마땅히 용서해야 할 터인데, 하물며 그가 죄를 받은 것이 종사(宗社)에 관계되지 않은 바이겠습니까? 노모가 병들어 누워 있고 아들이 없으니 봉양의 박절(迫切)한 정(情)을 또한 불쌍히 여길 만하고, 또 멀리 유배한 지 지금 3년이 지나서 세월이 이미 오래 되었으니, 비록 양이(量移)하게 하더라도 법(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가 의논하기를,

"유자광의 죄가 종사(宗社)에 관계되지 아니하는데, 공신(功臣)을 적(籍)에서 삭제하여 먼 지방으로 내쫓았고, 지금 두 아우까지 모두 죽고 71세의 어미가 병이 또한 깊고 중(重)하니, 정리(情理)가 불쌍합니다. 청컨대 어미가 있는 고향 근처의 고을로 양이(量移)하소서."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공(功)이 사직(社稷)에 있고 정(情)이 지친(至親)에 박절(迫切)하니, 죄가 비록 붕당(朋黨)에 관계되나, 마음이 효양(孝養)497) 하는 데에 있어 가상(嘉尙)하니, 특별히 원(願)하는 바에 따라서 너그러운 은혜를 보이어, 어미의 곁으로 양이(量移)하여 천수(天壽)를 마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2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71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윤리-강상(綱常)

  • [註 494]
    계사년 : 1473 성종 4년.
  • [註 495]
    양이(量移) : 섬이나 변방으로 멀리 귀양보냈던 사람의 죄를 참량(參量)하여 내지나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일.
  • [註 496]
    유자광이 변(變)을 고(告)해서 : 세조(世祖)가 돌아가고 예종(睿宗)이 즉위(1468)한지 얼마 안되어 혜성(彗星)이 나타났는데, 어느날 밤 금중(禁中)에서 숙직하고 있던 남이(南怡)가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고 말하는 것을 유자광(柳子光)이 듣고, 이것을 돌려쳐서 남이가 역모(逆謀)한다고 예종에게 모함하여 옥사(獄事)를 일으켜서, 이들을 숙청한 공으로 익대 공신(翊戴功臣) 1등에 무령군(武靈君)으로 봉해졌음.
  • [註 497]
    효양(孝養) : 어버이를 효행으로써 봉양함.

慶尙道 東萊付處人柳子光上疏略曰:

臣今年四十二, 母年七十一。 母生三子, 而去癸巳年, 子烱病死, 自臣配罪東萊, 獨子晶在母側, 家禍未殄, 去年子晶, 又病死。 母過哀成病, 幾至死域。 今又天寒風冷, 咳嗽轉劇, 呻吟孤苦, 日迫西山, 無以爲懷。 伏惟殿下, 以孝爲治, 臣罪雖重, 臣母之病可哀, 不知其子之惡, 而必切慈愛之情。 伏望殿下, 特下鴻恩, 量移臣母鄕, 得奉餘日之養, 以終其年, 母子之情, 生死無憾矣。 俯伏天涯, 瞻望宸極, 魂神飛去, 不勝懇迫之至。

命示大臣。 鄭昌孫議: "柳子光之罪, 固重, 然今流配已經三年, 豈無悔過自新哉? 況子光之功, 重矣, 所犯非係關宗社, 自己狂妄而已。 今爲母上言, 情志懇篤, 請量移母鄕, 俟母永愈, 發還配所。" 沈澮尹士昕尹弼商洪應尹壕議: "柳子光作重罪遠配, 固當杜門暇迹, 悔罪不暇。 乃至上言, 煩瀆天聰, 今又上書, 自願量移, 狂悖之心, 今猶未悛。 功雖重矣, 不可輕貰。" 金國光議: "柳子光罪犯甚重, 不宜輕論, 然其七十老母得病, 且二弟俱亡, 子光, 乃獨子也。 雖應死者, 獨子則尙許存留養親, 況不至死者乎? 病母近處量移, 庶合情理。" 盧思愼議: "南怡等, 逆謀已成, 賴宗社之靈, 洩謀於子光, 子光上變, 旋卽捕誅, 子光功在社稷。 雖有大罪, 猶當宥之, 況此坐罪, 非關宗社乎? 老母病臥, 無子存養, 迫切之情, 亦爲可哀, 且其遠配, 今經三年, 歲月已久, 雖令量移, 未爲失法。" 李克培議: "子光之罪, 非干係宗社, 而功臣削籍, 遠逐遐方, 今二弟俱亡, 七十一歲之母, 病且深重, 情理可矜。 請量移母鄕近邑。" 御書曰: "功在於社稷, 情迫於至親, 罪雖關乎朋黨, 心則嘉于孝養, 特從情願, 以示寬恩, 量移母側, 使終天年。


  • 【태백산사고본】 18책 12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71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