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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20권, 성종 11년 8월 18일 을축 2번째기사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평안도 관찰사 김교 등에게 사은사 한치형의 방어를 엄하게 조치하라고 하서하다

평안도(平安道)의 관찰사(觀察使) 김교(金嶠)·절도사(節度使) 심한(沈瀚)에게 하서(下書)하기를,

"사은사(謝恩使) 한치형(韓致亨)이 중국 서울[京師]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태사 달자(太師達子) 10만여 군사가 광녕(廣寧)·개원(開元) 지방에 주둔하고서 삼위 달자(三衛達子)를 침노하니, 삼위 달자가 처자(妻子)와 가축을 거느리고 개원위(開元衛)에 와서 의탁하여 장성(長城) 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하여서, 드디어 건주 야인(建州野人)과 결탁하여 지금 이미 세 번 싸웠는데 승부가 결판나지 않았습니다. 또 건주 야인 6백 기(騎)가 해서 달자(海西達子) 1천 5백여 군사를 청하여 무순소(撫順所)에서 60리 되는 곳에 주둔하고서 8월 안으로 요동(遼東)에 입구(入寇)하기를 의논하므로, 참장(參將) 최승(崔昇)이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무순소에 가서 방비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적의 계책은 헤아리기 어렵다. 저들이 만일 중원(中原)에서 실패하면 우리 지경으로 침입할까 두려우니, 경(卿)은 이 뜻을 잘 알고서 방어하는 여러 가지 일을 더욱 엄하게 조치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20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57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

○下書平安道觀察使金嶠、節度使沈瀚曰: "謝恩使韓致亨, 回自京師云: ‘太師達子十萬餘兵, 屯於廣寧開元地面, 侵三衛達子, 三衛達子, 將妻子頭畜, 來附開元衛, 請入長城內, 遂結建州 野人, 今已三戰, 而勝否未決。 又建州 野人六百騎, 請海西達子一千五百餘兵, 距撫順所, 六十里許屯兵, 議於八月間, 入寇于遼東, 參將崔昇, 領兵三千, 往撫順所備之。’ 予惟賊謀難測。 彼若失利於中原, 慮恐侵軼我疆, 卿悉此意, 防禦諸事, 益嚴措置。"


  • 【태백산사고본】 18책 120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57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