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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18권, 성종 11년 6월 16일 을축 3번째기사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성균관 생원 김굉필이 원각사 중의 심문·처형에 관해 상소하다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 김굉필(金宏弼)이 상소하기를,

"신은 들으니, 일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이 있고 마땅히 버릴 것이 있으니, 정(正)이니 직(直)이니 하는 것은 일의 마땅히 할 것이고, 사(邪)니 곡(曲)이니 하는 것은 일의 마땅히 버릴 것입니다. 지금 대저 유(儒)와 석(釋)은 그 도가 같지 않고 그 글이 같지 않고 그 법이 같지 않고 그 행실이 같지 않으니, 무엇인가 하면 유(儒)의 도는 부자 유친(父子有親)·군신 유의(君臣有義)·부부 유별(夫婦有別)·장유 유서(長幼有序)·붕우 유신(朋友有信)에 불과하며, 그 글은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춘추(春秋)》이며, 그 법은 예(禮)·악(樂)·형(刑)·정(政)이어서, 그것으로 자기를 위하면 순하고 상서롭고, 그것으로 남을 위하면 사랑하고 공정하고, 그것으로 천하 국가를 위하면 처하는 곳마다 적당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석(釋)의 도는 군신(君臣)을 버리고 부자를 버리고 상생(相生)·상양(相養)하는 도를 금하고 소위 청정(淸淨)·적멸(寂滅)이라는 것을 구하는 데에 불과하며, 그 글은 《금강경(金剛經)》·《반야경(般若經)》이며, 그 법은 관공(觀空)·견성(見性)이며, 그것으로 자기를 위하면 거슬려서 상서롭지 못하고, 그것으로 남을 위하면 편벽되어 공정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천하를 위하면 처하는 곳마다 마땅함을 얻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본다면 그 사정(邪正)·곡직(曲直)의 있는 곳을 대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유술(儒術)을 애호하고 문덕(文德)을 숭상하고 사사(寺社)를 파하여 버리고 중을 뽑아서 군인으로 정하였으니, 참으로 근고(近古) 이래로 큰 일을 하실 수 있는 임금이십니다. 이때를 당하여 신이 말을 듣고 펄쩍 뛰며 스스로 치하하기를, ‘해동(海東)에 요(堯)임금순(舜)임금이 다시 오늘에 나시었으니, 이단(異端)이 어떻게 일어나겠는가? 장차 그 사람은 사람대로 두고 그 글은 불태우고 그 거소(居所)는 민가를 만들고 선왕(先王)의 도를 밝히어 인도하여 환(鰥)·과(寡)·고(孤)·독(獨)·폐질자(廢疾者)로 하여금 양육하는 것이 있으리라.’ 하였는데, 한 가지 호령(號令)도 여기에 미치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스스로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서서히 또 풀어 생각하기를, ‘모든 일은 급히 하면 변이 생기므로, 반드시 장차 금년에 절 약간을 헐고 명년에 절 약간을 헐어 점차로 제거하여, 수년으로 기한하여 그런 뒤에 다 혁파하여 없애리라.’ 하였는데, 눈을 부비며 우두커니 기다린 지 지금 10여 년이 되었으나 다만 중수하는 일만 듣고 혁제하는 명령은 듣지 못하였으니, 신이 오히려 한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음 원각사(圓覺寺) 중[僧]들이 도성(都城) 가운데에서 무리를 모아 임의로 허무한 교(敎)를 베풀 것을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또 도리어 부족하여 가만히 불상(佛像)을 돌려 세워 사람들의 청문(聽聞)을 현혹 혼란시켜, 사방의 사녀(士女)로 하여금 다투어 쏠리어 돌아와 옷을 벗고 돈을 흩으며 시주하는 자가 문을 메우고 뜰에 가득하여 그 수가 얼마인지 모르니, 성명(聖明)한 조정에 어찌 괴망(怪妄)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통곡하며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가령 불상(佛像)이 돌아서고 걸어가기를 사람과 다름이 없이 하였다 하더라도, 국가에 무슨 보탬이 있으며 신민(臣民)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한갓 상서롭지 못한 한 괴물이 될 뿐입니다. 더구나 이런 이치가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인데이겠습니까? 신이 가만히 그 단서(端緖)를 만들어 낸 까닭하여 보니, 반드시 전하의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어짊을 믿은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일은 크고 작은 것이 있고 죄는 경하고 중한 것이 있는데, 지금 이 요승(妖僧)은 위로는 전하를 속이고 아래로는 공경(公卿)·사서인(士庶人)을 속였는데, 이것은 온 나라 사람을 모두 술책 가운데에 빠뜨리려 한 것이니,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을 징치(懲治)하지 않으면 대중의 미혹이 어떻게 풀리며 간교하고 거짓이 많은 무리가 어떻게 징계되겠습니까? 엎드려 헤아리건대, 도성 사람 사녀가 반드시 장차 서로 모이어 말하기를, ‘불상이 돌아섰다는 말이 만일 과연 허망한 말이라면 전하의 강건(康健)한 결단으로 어찌 극형(極刑)에 처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반드시 대간(臺諫)·유생(儒生)의 배척이 망령된 것이다.’ 하여, 더욱 석씨(釋氏)의 교(敎)를 믿어서 이마를 불사르고 손가락을 불태우고 팔뚝을 끊고 몸에 살점을 오리어서 서로 같이 이끌어 오랑캐가 된 뒤에 말 것이니, 이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또 저 원각사의 중들이 스스로 정상이 이미 드러난 것을 헤아리고 사사로이 주모자인 두 중을 절 안에 가두어 놓고 장차 끝까지 캐어 물으려 하다가, 전하께서 참으로 요망한 것을 아시면서 차마 형벌을 가하지 못하시는 것을 들은 뒤에 무리로 모여 서로 경사로 여겨 말하기를, ‘우리 도가 흥할 수 있다. 비록 대간과 유생이 백 번 나와 백 번 간하더라도 우리가 어찌 저들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느냐?’ 하여, 더욱 괴탄(怪誕)한 일을 행하여 못하는 짓이 없으니, 이것 또한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서울[京師]은 사방의 근본이고 인주(人主)는 만민(萬民)의 표준이어서 서울에서 하는 일을 사방에서 본받고 인주가 하는 일을 만민이 하고자 하니, 신은 두렵건대, 사방 사람들이 만일 이 일을 들으면 부처를 높이고 믿는 자가 성 안의 사람보다 더욱 심할 것이고,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이는 자가 원각사의 중보다 더하기를 힘써서, 백성들이 반드시 장차 말하기를, ‘불도가 그르다면 어찌 이 같은 영이(靈異)한 일이 있으랴? 이 일이 허망하다면 도성 안에 위에는 밝은 임금이 있고 아래에는 어진 신하가 있는데, 오히려 죄주는 일이 없다.’ 할 것이니, 먼 지방 시골에서 비록 천백 가지 방편에 이르더라도 누가 다시 금하겠습니까? 전하께서 어찌 한두 중의 생명을 아끼어 더욱 만민의 미혹을 가져오게 하십니까? 만일 핑계하시기를 대왕 대비의 명령을 어기기가 두려워서라고 하신다면, 신의 의혹이 더욱 심합니다. 신은 들으니,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부인은 남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제(專制)의 의(義)는 없고 삼종(三從)의 도(道)가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정히 대왕 대비께서 거조(擧措)와 시위(施爲)를 한결같이 전하를 따르시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일 능히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간하고 울면서 따르는 데에 이른다면 대비께서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대비는 여중 요순(女中堯舜)의 성스러우심으로써 단지 부처가 돌아섰다는 것의 참과 거짓을 알지 못하신 것입니다. 만일 혹시 참으로 허망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 덮어줄 리가 있겠습니까?

신이 엎드려 읽으니, 성비(聖批)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치국(治國)하는 것을 유생에게 배운 뒤에 허물이 없겠는가? 본래 공경(公卿)과 대간(臺諫)이 있다.’ 하시었는데, 신이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공경과 대간에게 바람이 있었는데, 또 삼공(三公)이 청(請)하고 대간이 간(諫)하기를 두 번 세 번 하였어도 모두 윤허(允許)하지 않는 것을 들은 연후에 다시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통곡하며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알지 못한건대 전하께서 이미 유생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또 대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또 삼공의 청을 윤허하지 않으셨으니, 누구를 따라서 과실을 들으시며, 누구를 따라서 사정(邪正)을 통촉하시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여러 아랫사람이 일을 말할 때에 당하여, 비록 혹시 중도에 지나치더라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시어 언로(言路)를 넓게 열어서 그 정상을 불쌍히 여기고 그 죄는 기록하지 마소서. 태학생(太學生) 등은 뜻이 임금에게 충성하고자 하는데, 도리어 ‘참람하게 궁궐에 비겼다.[僭擬宮闕]’라는 한 말로 임금을 속였다는 이름을 얻었으니, 신하 된 사람의 죄가 무엇이 임금 속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가의(賈誼)가 한(漢)나라 문제(文帝)에게 말하기를, ‘서인(庶人)의 옥벽(屋壁)이 황제의 복색을 할 수 있고, 창우(倡優)·하천(下賤)이 황후의 복식을 할 수 있다.’ 하였으니, 한나라 문제 때를 당하여 예의(禮義)가 흥하였다고 말할 만하겠으나, 당시의 서인(庶人)과 창우(倡優)가 어찌 참으로 황제의 의복과 황후의 복식을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일찍이 그를 그르게 여긴 자가 없었습니다. 뜻이 나라를 근심하는 데에 간절하여 말이 과격한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죄이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일월(日月)의 밝음을 돌이키시고 뇌정(雷霆)의 위엄을 베풀어서 수악(首惡)287) 의 중을 끝까지 심문하여 시조(市朝)에 공개하여 죽여서 사방 후세로 하여금 모두 전하께서 간사한 것을 버리는 데에 의심함이 없는 것을 알게 하시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1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4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287]
    수악(首惡) : 악인의 우두머리.

○成均生員金宏弼上疏曰:

臣聞事有所當爲, 有所當去者: 曰正曰直, 事之當爲者也; 曰邪曰曲, 事之當去者也。 今夫儒也、釋也, 其道不同, 其文不同, 其法不同, 其行不同。 何者, 儒之爲道, 不過曰, 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 而其文, 《詩》《書》《易》《春秋》; 其法, 禮、樂、刑、政, 以之爲己, 則順而祥; 以之爲人, 則愛而公; 以之爲天下國家, 無所處而不當。 釋之爲道, 不過曰, 棄而君臣、 去而父子、 禁而相生養之道, 以求所謂淸淨、寂滅者, 而其文, 《金剛》《般若》; 其法觀空、見性, 以之爲己, 則逆而不祥; 以之爲人, 則偏而不公; 以之爲天下, 無所處而得其宜。 由是觀之, 其邪正、曲直之所在, 槪可知矣。 殿下卽位以來, 愛好儒術, 崇尙文德, 破去寺社, 抄僧定軍, 眞近古以來, 大有爲之君也。 當是時也, 臣得聞此言, 踴躍而自賀曰: "海東之君, 復生於今日, 異端何由而起乎? 將見人其人、火其書、廬其居, 明先王之道以道之, 使鰥、寡、孤、獨、廢疾者, 有養也。" 而未聞一號一令, 及於此。 私自痛哭流涕, 徐又自解以謂: "凡事急之, 則生變, 必將今年破寺若干, 明年破寺若干, 漸次除之, 期以數年, 然後盡革除之也。" 拭目竚待, 至于今十餘年, 但聞重修之事, 未聞破革之令, 臣猶憾焉。 豈意今者, 圓覺寺僧徒, 聚群都城之中, 恣設虛無之敎乎? 又反不足, 潛回佛像, 惑亂人聽, 使四方士女, 靡然爭歸, 解衣散錢而施者, 塡門盈庭, 其麗不億, 聖明之朝, 安有怪妄之事乎? 臣不勝痛哭流涕。 假使彼佛像回立, 步趨無異於人, 於國家何益, 於臣民何益? 徒爲不祥之一怪物而已。 況萬萬無此理乎? 臣竊料其所以造端者, 必恃殿下不嗜殺人之仁也。 雖然事有大小, 罪有輕重, 今此妖僧, 上以欺殿下, 下以欺公卿、士庶人, 是欲使擧國人人, 皆陷於術中, 事孰大於此者乎? 此而不懲, 衆庶之惑, 何以解也; 奸僞之徒, 何以戒也? 伏計都人士女, 必將相聚而言曰: "佛像回立之說, 若果妄言, 則以殿下剛健之斷, 豈不置之極刑乎? 是必臺諫、儒生之闢妄也。" 益信夫釋氏之敎, 而焚頂燒指, 斷臂臠身, 至於淪胥爲夷, 而後止也, 此豈細事哉? 且彼圓覺僧輩, 自度情狀已露, 私繫首謀二僧于寺內, 將欲窮鞫, 及聞殿下眞知妖妄, 而不忍加刑, 群聚相慶, 而言曰: "吾道可以興也。 雖臺諫、儒生, 百進百諫, 吾何畏彼哉?" 益行怪誕之事, 無不爲已, 此亦豈細事哉? 而況京師, 四方之本, 人主萬民之表, 京師所爲, 四方效之, 人主所爲, 萬民欲之。 臣恐四方之人, 倘聞此事, 則崇信浮屠者, 滋甚於城中之人; 惑世誣民者, 務勝於圓覺之僧, 民類必將曰: "佛道非也, 則安有如此靈異之事乎? 此事妄也, 則都城之內, 上有明君, 下有賢臣, 尙且無罪。" 遠方鄕曲, 雖至百千方便, 誰復禁之乎? 殿下何惜一二僧之命, 滋致萬民之惑歟? 若諉之曰: ‘重違大王大妃之命,’ 臣惑滋甚。 臣聞孔子曰: "婦人伏於人也。 是故無專制之義, 有三從之道。" 此政大王大妃, 擧措、施爲, 一從殿下也。 殿下若能柔聲以諫, 至於號泣而隨之, 則大妃曷敢不從? 而況大妃, 以女中之聖, 特不知回立之眞僞耳。 倘或眞知妄作, 則必欲罪之而無赦。 豈有明知其罪, 而覆庇之理乎? 臣伏讀聖批曰: "予之治國, 學於儒生, 而後無尤歟? 自有公卿、臺諫者。" 臣大失望焉, 然猶有望於公卿、臺諫者矣, 又聞三公請之, 臺諫諫之, 至再至三, 而亦皆不允, 然後知其無復望焉, 不勝痛哭流涕。 不審殿下, 旣不聽儒生之言, 又不納臺諫之言, 又不許三公之請, 孰從而聞過失, 孰從而燭邪正哉? 伏願殿下, 當群下言事之時, 雖或過中, 虛懷聽納, 廣開言路, 矜其情, 不錄其罪。 太學生等, 志欲忠君, 而反以僭擬宮闕之一語, 得欺君之名, 爲臣之罪, 孰有大於欺君者乎? 賈誼言於文帝曰: "庶人屋壁, 得爲帝服; 倡優、下賤, 得爲后飾。" 方當 時, 可謂興於禮義, 當時庶人、倡優, 豈誠爲帝服后飾乎? 然而未嘗有非之者。 志切憂國, 不覺言之激而過也。 是誠何罪哉? 伏望殿下, 回日月之明, 施雷霆之威, 窮訊首惡之僧, 肆諸市朝, 使四方後代, 咸知殿下無疑於去邪, 不勝幸甚。

不聽。


  • 【태백산사고본】 18책 11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4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