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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14권, 성종 11년 2월 11일 신유 4번째기사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이우보·채수 등이 이단을 혁폐하고 복세암을 철거할 것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저녁에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승지(承旨)와 경연관(經筵官)을 인견(引見)하고 하교하기를,

"위열왕(威烈王)으로부터 〈주(周)나라 말기〉 5대(代)에 이르기까지 치란(治亂)·흥망(興亡)·성패(成敗)의 자취에 대하여 그것을 서로 강론(講論)하게 하라."

하였다. 강론이 한(漢)나라 무제(武帝)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무제는 신선(神仙)을 좋아한 인주(人主)이다."

하니, 우승지(右承旨) 채수(蔡壽)무제(武帝)의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상황을 극진히 진술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인주가 욕심이 많으면 반드시 그 나라는 망하고, 인신(人臣)이 욕심이 많으면 반드시 그 몸을 잃는다."

하였다. 강론이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가 공신(功臣)은 임용(任用)하지 않았다는 데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이 또한 편벽(偏僻)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공신을 보전하는 데는 득(得)이 있었다."

하였다. 강론이 동한(東漢)당고(黨錮)의 화(禍)063) 에 이르러 시독관(侍讀官) 김흔(金訢)이 말하기를,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각각 그 무리로써 당(黨)을 삼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분별하는 것이 밝지 못하면 군자가 그릇 그 화(禍)를 입는다."

하였는데, 참찬관(參贊官) 성현(成俔)이 말하기를,

"군자와 소인은 알기가 심히 어려우니, 구준(寇準)064) 같이 어진 이도 능히 정위(丁謂)065) 의 간사함을 알 수가 없었으니, 임금이 분별하는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시독관(侍讀官) 이창신(李昌臣)은 말하기를,

"만일 공평 무사[鑑空衡平]하여 사정(私情)에 가리워지지 않는다면 가히 분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 무제(漢武帝)는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급암(汲黯)066) 의 어짊을 알고서도 능히 쓰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급암같이 곧은 사람은 얻기가 쉽지 않다. 무릇 신진자(新進者)는 모두 직언(直言)과 항론(抗論)을 하지마는, 지위가 높아지고 편하게 되면 처음과 같지 못하니, 이러한 자는 곧음을 내세워 승진을 탐내는 사람이므로 족히 취(取)할 것이 못된다."

하였다. 사경(司經) 민사건(閔師謇)이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면 마땅히 멀리 내쳐야 할 것입니다."

하니, 성현(成俔)이 말하기를,

"곽공(郭公)067) 은 선(善)을 좋아하면서도 능히 쓰지 못하였고 악(惡)을 미워하면서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여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우문사급(宇文士及)068) 의 아첨함을 알고서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였는가 하면, 현종(玄宗)이임보(李林甫)069) 의 간사함을 알고서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여 모두가 후회함이 있었습니다."

하였다. 강론이 당(唐)나라 태종(太宗)에 이르러 성현(成俔)이 말하기를,

"무릇 인재(人材)의 성취(成就)는 학업(學業)을 오로지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 국가에 홍문관(弘文館)을 설치하고 나이 젊은 문신(文臣)을 선발하여 이를 맡기는 것은 그 인재로서의 학업을 성취시키고자 함이었지만, 그러나 학업에 전심(專心)할 수가 없으니, 청컨대 조종조(祖宗朝)의 고사(故事)에 의하여 말미[暇]를 주어 독서(讀書)하도록 하여 그 업(業)을 오로지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였다. 이창신(李昌臣)이 또 힘써서 행해야 할 도리를 극진히 진달(進達)하기를,

"알고서도 행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니, 김흔(金訢)이 말하기를,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더 심함이 있는 것입니다. 개성부(開城府)기은(祈恩)070) 등의 일과 같은 것은 엄하게 혁폐(革廢)해야 할 것들입니다."

하였다. 시독관(侍讀官) 이세광(李世匡)도 역시 성수청(星宿廳)을 폐하기를 청하고, 또 이단(異端)의 해(害)를 힘껏 진달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단(異端)은 도외시하여 내버려두고 숭신(崇信)하지 않으면 될 것인데, 하필 위(魏)나라 대무(大武)가 사문(沙門)071) 을 다 벤 것처럼 하여야겠는가?"

하므로, 시강관(侍講官) 이우보(李祐甫)가 말하기를,

"사문을 다 벤다면 사필(史筆)이 아름다와질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중[僧]도 역시 백성들이다. 어찌 다 벤단 말인가?"

하므로, 이우보가 말하기를,

"어버이[父]도 없고 인군(仁君)도 없으니, 죄가 막대(莫大)합니다."

하였다. 채수(蔡壽)가 말하기를,

"복세암(福世菴)은 궁궐(宮闕)을 누르고 있으니 철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왕(先王)께서 창건하신 것이니 갑자기 철거할 수 없다."

하였는데, 시독관(侍讀官) 조숙기(曺淑沂)가 말하기를,

"선왕의 성헌(成憲)은 진실로 준수(遵守)하여야 마땅하지만, 이와 같은 일은 본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고, 검토관(檢討官) 정성근(鄭誠謹)이 말하기를,

"신 등이 근자에 낙산사(洛山寺)·복세암(福世菴) 등의 일로 여러 번 천청(天聽)을 번거롭게 하였으나 윤허(允許)를 얻지 못하여 매우 결망(缺望)하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의 말한 바가 진실로 옳다. 그러나 뿌리[根株]를 끊어 없애고자 하면 반드시 중의 무리들을 다 벤 뒤에야 가(可)할 것이다. 이제 도첩(度牒)이 없는 승인(僧人)은 모조리 환속(還俗)시키고 있으니, 이렇게 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성현(成俔)이 말하기를,

"세종(世宗)께서 불법(佛法)을 숭신(崇信)하지 않으셨는데 말년(末年)에 가서는 자못 숭신하였으니, 돌아보건대, 전하(殿下)께서는 끝까지 처음과 같이 삼가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

하였다. 강론(講論)이 파(罷)하니, 밤은 이미 2고(鼓)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14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11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인사-관리(管理)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註 063]
    당고(黨錮)의 화(禍) : 후한(後漢) 말 환관(宦官)이 정권(政權)을 전담함을 분개하여 이를 공박한 지사(志士)들이 환관의 미움을 받아 종신 금고(終身禁錮)의 형(刑)을 받았던 일에서 나온 말임.
  • [註 064]
    구준(寇準) : 송(宋)나라 태종(太宗) 때 간관(諫官).
  • [註 065]
    정위(丁謂) : 송(宋)나라 태종 때의 난신(亂臣).
  • [註 066]
    급암(汲黯)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명신(名臣).
  • [註 067]
    곽공(郭公) : 춘추(春秋) 시대 때 자기 나라를 잃고 조(曹)에 귀순한 임금.
  • [註 068]
    우문사급(宇文士及) :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의 신하.
  • [註 069]
    이임보(李林甫) :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간신.
  • [註 070]
    기은(祈恩) : 조선조 때 의장(儀仗)을 엄하게 하고 무당·광대를 불러 악기(樂器)를 갖추어 울리며 왕가(王家)의 무궁한 복을 빌던 행사.
  • [註 071]
    사문(沙門) : 출가(出家)한 중[僧]을 달리 이르는 말.

○夕, 上御宣政殿, 引見承旨、經筵官, 敎曰: "自威烈王至五代, 治亂興亡成敗之迹, 其相講論焉。" 論至 武帝, 上曰: "武帝, 好神仙之主也。" 右承旨蔡壽, 極陳武帝多欲之狀, 上曰: "人主多欲, 則必亡其國, 人臣多欲, 則必喪其身。" 論至 光武不任功臣, 上曰: "此不亦偏乎? 然於保全功臣得矣。" 論至東漢黨錮之禍, 侍讀官金訢曰: "君子、小人, 各以其類爲黨。" 上曰: "辨之不明, 則君子謬蒙其禍。" 參贊官成俔曰: "君子、小人, 知之甚難, 以寇準之賢, 不能知丁謂之奸, 在人主能辨之耳。" 侍讀官李昌臣曰: "如鑑空衡平, 不蔽於私, 則可辨矣。 武帝多欲, 故知汲黯之賢, 而不能用。" 上曰: "如之直, 未易得也。 凡新進者, 皆能直言抗論, 及至位高, 便不如初, 是沽直媒進之人, 無足取也。" 司經閔師謇曰: "若知如此之人, 則當黜而遠之。" 曰: "郭公善善而不能用, 惡惡而不能去, 至於亡國。 太宗宇文士及之侫, 而不能去, 玄宗林甫之奸, 而不能退, 皆有後悔。" 論至 太宗, 曰: "凡人才成就, 在於業專。 今國家置弘文館, 選年少文臣任之, 欲其才學之成就也, 然不能專心於學, 請依祖宗朝故事, 賜暇讀書, 俾專其業。" 上曰: "可。" 昌臣又極陳力行之道曰: "知而不行, 不如不知之爲愈也。" 曰: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 如開城府祈恩等事, 痛革可也。 侍讀官李世匡亦請廢星宿廳, 又力陳異端之害, 上曰: "異端置之度外, 而不崇信可也。 何必如大武之盡誅沙門乎?" 侍講官李祐甫曰: "盡誅沙門, 史筆美之。" 上曰: "僧亦民也。 何以盡誅乎?" 祐甫曰: "無父無君, 罪莫大焉。" 曰: "福世菴臨壓宮闕, 撤去爲便。" 上曰: "先王所創, 不可遽撤。" 侍讀官曹淑沂曰: "先王成憲, 固當遵守, 如此事, 不可法也。" 檢討官鄭誠謹曰: "臣等近以洛山寺福世菴等事, 屢煩天聽, 而未蒙允許, 甚缺望。" 上曰: "爾等所言, 誠是矣。 然欲絶根株, 則必盡誅僧徒而後可。 今無度牒僧人, 悉令還俗, 如此不已, 可以絶之矣。" 曰: "世宗不崇佛法, 末年頗崇信, (顧)〔願〕 殿下, 愼終如始。" 上曰: "爾言是也。" 講罷, 夜已二鼓矣。


  • 【태백산사고본】 18책 114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11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인사-관리(管理)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