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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12권, 성종 10년 12월 13일 갑자 3번째기사 1479년 명 성화(成化) 15년

조지서가 비망기를 승정원에 알리지 않은 경위와 자신의 죄를 청하는 상소를 하다

이조 좌랑(吏曹佐郞) 조지서(趙之瑞)가 상소(上疏)하기를,

"신(臣)이 계본(啓本)을 가지고 온 후에 비망기(備忘記)961) 로써 승정원(承政院)에 알리지 않았으니, 신(臣)에게 진실로 죄가 있으므로, 비록 온 집안을 갈가리 베어 죽이더라도 이미 실수한 죄를 속(贖)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신(臣)이 알리지 않은 것은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11월 초8일에 대장(大將) 어유소(魚有沼)가 돌아와 강계(江界)입석참(立石站)에 도착했을 때에는 밤이 이미 깊었는데, 역리(驛吏)가 도망해 흩어졌다는 등의 일을 가지고 계본(啓本)에 갖추어 기록하여서 군관(軍官) 김종석(金從石)으로 하여금 빨리 아뢰도록 했다가, 곧 이를 중지시키고는 신(臣)을 불러 이를 주었습니다. 신(臣)은 너무 급하기 때문에 겨우 행장을 차려 대장(大將)에게 떠나는 것을 알리니, 대장(大將)은 비망기(備忘記)를 갖추어 신(臣)에게 주면서 지시(指示)가 있었습니다. 제1조(條)는 마지못해서 군대를 파(罷)한 일이고, 제2조(條)는 역리(驛吏)가 도망해 흩어진 일이고, 제4조(條)는 군사를 거느린 인원(人員)에게 죄를 과(科)하는 등의 일이고, 제9조(條)는 군사의 수지(手枝)962) 가 추위에 얼어 피부가 상한 일입니다. 이 4조목(條目)은 곧 묻는 데에 따라 대답한 것이므로 신(臣)이 실제로 상세히 들은 것이지마는, 그 나머지 조목(條目)은 신(臣)이 탄핵을 입은 것입니다. 신이 잘못 듣고서 잘못 아뢰기를, ‘대장(大將)의 말이, 「조정에서 다시 나를 보내어 들어가 정벌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승정원에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했던 것입니다. 군대를 파한다는 장계(狀啓)가 있은 후 겨우 2일을 걸러 이 비망기(備忘記)가 있었으므로, 신은 미혹(迷惑)에 고집하여 깨닫지 못하고서, 망령되이 생각하기를, 대장(大將) 어유소(魚有沼)가 다시 들어가 정벌하지 않는다면 승정원(承政院)에 알릴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또 신(臣)이 승정원에 알리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신(臣)이 북경(北京)에 들어간 날에 회답(回答)하는 자문(咨文)을 의논해 정했는데, 11월 13일로부터 18일에 이르기까지 잠잠하게 군사를 내보낸다는 의논이 없었으니, 그런 까닭으로 신(臣)이 이미 잘못 듣고서 잘못 생각하여 마땅히 승정원에 알리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만약 성상(聖上)께서 명령하여 신(臣)이 가지고 온 비망 본기(備忘本記)를 가져다가 성상의 밝은 감식(鑑識)에 한 번이라도 거쳤더라면 반드시 신(臣)이 잘못 들은 이유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신(臣)이 서사(筮仕)963) 한 날은 비록 많지마는 조정에 있으면서 사무를 익힌 날은 적었으니, 그런 까닭으로 무릇 신의 기거 동작과 하는 짓이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이러한 잘못과 망령된 일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신(臣)은 마땅히 큰 죄에 복종하여 성상의 은혜를 저버린 책임을 다해야 될 것이니, 신(臣)은 비록 만 번이나 죽더라도 마음에 뉘우침이 없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9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정(軍政)

  • [註 961]
    비망기(備忘記) : 임금이 명령을 적어서 승지(承旨)에게 전하던 문서를 말함.
  • [註 962]
    수지(手枝) : 손가락 마디.
  • [註 963]
    서사(筮仕) : 벼슬을 함.

○吏曹佐郞趙之瑞上疏曰:

臣於啓本陪來後, 以備忘記, 不告于政院, 臣誠有罪, 雖闔門寸誅, 無以贖已失之罪。 然臣之不告, 非有心而然也。 去十一月初八日, 大將魚有沼, 還到江界 立石站時, 夜已深, 將驛吏逃散等事, 具啓本, 令軍官金從石馳啓, 旋止之, 招臣而授之。 臣緣急遽, 僅得治任, 告行於大將, 大將以備忘記, 具授臣而有指焉。 第一條, 不得已罷兵事, 第二條, 驛吏逃散等事, 第四條, 領軍人員科罪等事, 第九條, 軍士(子)〔手〕 枝凍傷事。 此四條, 則乃隨問隨答之指, 臣實詳聞之, 其餘條, 則臣所被劾也。 臣誤聞之誤啓: "以大將言: ‘朝廷更不遣我入征, 則不告’ 云爾。" 目罷兵之啓, 纔隔二日, 而有此備忘, 則臣執迷不悟, 妄以謂: "大將魚有沼, 更不入征, 則不必告也。" 且臣所不告者, 有一焉。 臣入京師之日, 議定回咨, 自十一月十三日至十八日, 寂無出師之議, 故臣旣誤聞, 而誤以爲不當告于政院也。 若聖上, 命取臣所齎來備忘本記, 一經睿鑑, 則必知臣誤聞之由。 臣筮仕之日雖多, 而在朝行習事之日少, 故凡臣動靜所爲, 莫知其方, 致此誤妄。 臣當服大罪, 以塞負聖恩之責, 臣雖萬死, 無悔於心。


  • 【태백산사고본】 17책 1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9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