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 106권, 성종 10년 7월 8일 임술 1번째기사 1479년 명 성화(成化) 15년

박숙진이 역학에 밝은 신계 현령 방귀화를 내직에 쓰기를 청하니 허가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講)하다가, ‘옛부터 위란(危亂)한 세상에서도 일찍이 충성스러운 말이 없지 않았다.’는 데에 이르러, 시강관(侍講官) 이우보(李祐甫)가 아뢰기를,

"이 글[章]의 뜻은 인군(人君)에게 직간(直諫)을 즐겨 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쇠란(衰亂)한 세상에도 일찍이 충신(忠臣)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만 말을 해도 쓰지 아니하였으므로, 망(亡)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서백(西伯)412) 이 여(黎)나라를 정벌하니, 조이(祖伊)413) 가 달려가 고(告)하였으나 주(紂)는 그 말을 생각하지 않다가 종말에는 망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주(周)나라〉 여왕(厲王)이 비방하는 사람을 감찰(監察)하게 하므로, 소공(召公)이 백성의 입을 막기는 하천(河川)을 막는 것보다 심하다고 하였으나, 여왕이 듣지 않다가 체(彘)로 쫓겨났습니다. 전천추(田千秋)가 무고(巫蠱)의 화(禍)와 선신(仙神)의 일을 말하니, 무제(武帝)가 감오(感悟)한 까닭으로 한(漢)나라가 혼란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육지(陸贄)는 말을 다하고 극진히 간(諫)하니, 덕종(德宗)이 비록 다 쓰지는 않았으나 혹 때로는 그 말을 억지로 따랐으므로 당(唐)나라가 망(亡)하는 데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천자(天子)가 쟁신(爭臣) 7인이 있으면 비록 무도(無道)하더라도 그 천하(天下)를 잃지 않으며, 제후(諸侯)가 쟁신(爭臣) 5인이 있으면 비록 무도(無道)하더라도 그 나라를 잃지 않았습니다. 진실로 퍅간(愎諫)414) 하고 자기 멋대로 하면, 혹 그 나라를 어지럽히고 멸망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치평(治平)한 세상에 있어서는 위망(危亡)한 말을 은휘하지 않으니, 가의(賈誼)415) 같은 이가 통곡(痛哭)하여 눈물을 흘리고 길게 탄식하였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충신(忠臣)이 그 인군을 걸(桀)·주(紂)에 비유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바로 인군을 사랑하는 지극한 말이니, 비록 광패(狂悖)하더라도 마땅히 너그럽게 용납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영사(領事) 노사신(盧思愼)이 아뢰기를,

"예로부터 인신(人臣)으로 주의(奏議)의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육지(陸贄)만한 이가 없었습니다. 덕종(德宗)이 봉천(奉天)에서 포위되었을 때 그의 말을 능히 써서 그 나라를 회복하고 돌아와서는 즉시 소원(疏遠)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책이 있어 이름하기를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라고 하며, 옛날에 소식(蘇軾)이 경연(經筵)에 진강(進講)하기를 청하였으니, 만약 연한(燕閑)할 때에 혹 관람(觀覽)하시면 반드시 비익(裨益)됨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대사헌(大司憲) 박숙진(朴叔蓁)이 아뢰기를,

"이제 방귀화(房貴和)를 제수(除授)하여 신계 현령(新溪縣令)으로 삼으셨는데, 신(臣)의 생각으로는 우리 나라는 사대(事大)함이 지중(至重)하니, 역학(譯學)에 정통(精通)한 이수손(李壽孫)·이춘경(李春景)·방귀화(房貴和)와 같은 자는 모두 현질(顯秩)416) 을 제수하여서 역학(譯學)을 권장(勸奬)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혹 하다 말다 하면 반드시 정숙(精熟)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종조(世宗朝)에 있어서는 모두 그 직임에 전일(專一)하게 하고 외직(外職)의 서용(敍用)을 허락하지 않은 까닭으로, 김하(金何)·이변(李邊)의 무리가 역학을 잘 하는 자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니, 이제 방귀화도 외직에 서용함은 마땅하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겠다. 그를 개차(改差)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2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인사-임면(任免) / 신분-중인(中人) / 역사-고사(故事) / 어문학-어학(語學) / 출판-서책(書冊)

  • [註 412]
    서백(西伯) :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작호(爵號).
  • [註 413]
    조이(祖伊) :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신하.
  • [註 414]
    퍅간(愎諫) : 간(諫)함을 받아들이지 아니함.
  • [註 415]
    가의(賈誼) :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문신.
  • [註 416]
    현질(顯秩) : 고귀한 높은 벼슬.

○壬戌/御經筵。 (諫)〔講〕 《大學衍義》, 至自昔危亂之世, 未嘗無忠言, 侍講官李祐甫啓曰: "此章之意, 欲人君樂聞直諫也。 衰亂之世, 未嘗無忠臣, 但言之而不用, 以至於亡。 故西伯戡黎, 祖伊奔告, 不念其言, 終至於亡。 厲王監謗, 召公以爲防民之口, 甚於防川, 厲王不聽, 出居于彘。 田千秋言: ‘巫蠱之禍及仙神之事,’ 武帝感悟, 故不至於亂。 陸贄盡言極諫, 德宗雖不盡用, 或時勉從其言, 故不至於亡。 是故天子, 有爭臣七人, 雖無道, 不失其天下, 諸侯有爭臣五人, 雖無道, 不失其國。 苟愎諫自用, 未或不亂亡其國。 且在治平之世, 不諱危亡之言, 若賈誼, 痛哭、流涕、長太息者是也。 忠臣至比其君於者, 乃愛君之至言, 雖狂悖, 所當優容也。" 領事盧思愼啓曰: "自古人臣奏議之精切, 無如陸贄德宗見圍於奉天, 能用其言, 以復其國, 旋卽疏遠。 今其書猶在, 名曰《陸宣公奏議》。 昔蘇軾, 乞於經筵進講, 若燕閑之時, 或賜觀覽, 必有所裨益。" 講訖, 大司憲朴叔蓁啓曰: "今除房貴和, 爲新溪縣令, 臣謂我國事大至重, 譯學精通者, 如李壽孫李春景房貴和, 皆授顯秩, 以示奬勸譯學之習。 苟或作輟, 必不精熟。 在世宗朝, 皆專其任, 不許外敍故, 金何李邊輩, 以善譯名於世, 今貴和, 亦不宜外敍。" 上曰: "然。 其改差。"


  • 【태백산사고본】 16책 10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2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인사-임면(任免) / 신분-중인(中人) / 역사-고사(故事) / 어문학-어학(語學)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