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절사로 임명된 한치례의 사직을 불허하다
서릉군(西陵君) 한치례(韓致禮)가 와서 아뢰기를,
"신(臣)은 평소에 병든 나머지 천식(喘息)을 앓고 있는데, 이제 성절사(聖節使)로 충원하시니, 가을이 깊어져 날씨가 추워지면 중도(中道)에서 병이 나 가기 어렵게 될까 두렵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록 병이 있더라도 그 몸을 삼가고 보호하면 염려할 것이 없고, 또 이제 진헌(進獻)하는 물건이 많으니, 경(卿)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하기를, "한치례(韓致禮)는 한확(韓確)의 아들이며, 한확의 누이[妹]는 중국 조정에 뽑혀 들어가 선종 황제(宣宗皇帝)의 후궁(後宮)이 되고, 아보(阿保)402) 의 공(功)으로 성화 황제(成化皇帝)403) 에게 총애를 받았다. 환관(宦官) 정동(鄭同)과 더불어 서로 결탁하여, 황제를 권하여 자주 정동을 본국(本國)에 심부름시켜, 칙지(勅旨)로 옷·노리개·음식 등의 물건을 올리게 하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갖추어 혹독하게 거둬들이기를 싫어함이 없어, 생민(生民)의 큰 병폐가 되었다. 또 칙령(勅令)으로 한씨(韓氏)의 족친을 해마다 성절사(聖節使)로 충원하여 입조(入朝)하게 하므로, 한치례 및 그의 형(兄) 한치인(韓致仁)·한치의(韓致義), 사촌들[群從]인 한치형(韓致亨)·한충인(韓忠仁), 조카[姪子]인 한한(韓僴)·한찬(韓儹)·한건(韓健)이 서로 갈마들면서 부경(赴京)하였다. 그리하여 금대(金帶)와 서대(犀帶)를 띠는 것이 모두 황제(皇帝)의 칙지에서 나왔으며, 금은(金銀)·채단(彩段)의 상사(賞賜)가 다함이 없어, 한씨의 일족(一族)은 정동으로 인하여 앉아서 부귀(富貴)를 취하고 해(害)를 나라에 끼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1면
- 【분류】외교-명(明) / 가족-친족(親族)
○西陵君 韓致禮來啓曰: "臣素羸病患喘, 今充聖節使, 恐秋高氣寒, 中道病難行也。" 傳曰: "雖有病, 愼護其身, 則可無慮。 且今多有進獻物, 卿不得不行。"
【史臣曰: "致禮, 確之子, 確妹, 選入朝, 爲宣宗皇帝後宮, 以阿保功, 有寵於成化皇帝。 與宦官鄭同相結, 勸帝屢使鄭同于本國, 勅進服玩飮食之物, 備盡細碎, 誅求無厭, 爲生民巨病。 又勅令韓氏之族, 每歲充聖節使入朝, 致禮及其兄致仁ㆍ致義、群從致亨ㆍ忠仁、姪子僴ㆍ儧ㆍ健, 迭相赴京。 帶金帶犀, 皆出帝勅, 金銀彩段, 賞賜無極, 韓氏一族, 因鄭同, 坐取富貴, 而貽害於國, 不可勝言矣。"】
- 【태백산사고본】 16책 10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1면
- 【분류】외교-명(明) / 가족-친족(親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