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원에서 올린 양성지와 신정에 대한 탄핵안을 정승들과 의논키로 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임금이 영사(領事) 윤필상(尹弼商)에게 이르기를,
"어제 간원(諫院)의 상소(上疏)를 여러 정승에게 보였는데, 정승은 보았는가?"
하니, 윤필상이 대답하기를,
"신(臣)은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간원에서 양성지(梁誠之)와 신정(申瀞)을 탐욕스럽고 혼탁하며, 청렴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비록 공론(公論)에서 나온 것이지마는, 대신(大臣)에게 아직 나타난 허물이 없는데, 한갓 외간(外間)의 물의(物議)를 가지고 이를 탄핵한다면 뒷날 폐단이 있을까 두렵다."
하니, 윤필상이 아뢰기를,
"신은 저들과 제배(儕輩)215) 가 아니므로 무슨 일이 청렴하지 못한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외간의 물의는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사경(司經) 조위(曺偉)가 아뢰기를,
"송(宋)나라 때에 어떤 한 간신(諫臣)이 말로써 대신을 배척(排斥)하였기 때문에, 대신이 간관(諫官)을 주의(注擬)216) 할 때에 반드시 사사로이 좋아하는 자를 간관이 되게 하여 자기의 우익(羽翼)을 삼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자는 배척함에 따라 마침내 위태로운 풍속이 이루어졌으니, 진실로 편벽되게 외부의 논란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만은 말하는 자가 한 사람이 아니고, 간(諫)하는 자도 한 사람이 아니니, 청컨대 대간(臺諫)의 말을 따르도록 하소서."
하였고, 윤필상은 말하기를,
"양성지는 성품이 본래부터 유약(懦弱)하여 능히 아랫사람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반드시 업신여길 것입니다. 하물며 공조(工曹)의 장인(匠人)은 무려 수백 명이나 되는데, 모두가 간악하고 교활한 무리들이니, 위엄이 있는 자가 아니면 능히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위엄이 있는 자를 가려서 그 직책을 맡게 하소서."
하였고, 우승지(右承旨) 이경동(李瓊仝)은 말하기를,
"신정은 재물이 누거만(累鉅萬)으로 부(富)가 일시(一時)에 극(極)했으니, 이(利)를 탐내어 속여서 얻은 자가 아니면, 능히 그렇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하고, 장령(掌令) 안처량(安處良)은 말하기를,
"양성지는 전교서(典校署)의 제조(提調)로 있은 것이 거의 30년이었는데, 서책(書冊)을 잘 팔아서 마음대로 썼습니다. 통진(通津)에는 일찍이 한 이랑의 전토(田土)도 없었는데, 지금은 크게 농장(農場)을 개설하였으니, 이 또한 이(利)를 꾀하여 경영한 소치(所致)입니다. 또 신정은 무릇 맡은 바 용무가 극히 정교(精巧)하나, 그가 더불어 사귀는 자는 모두가 장사하는 사람들이니, 또한 청렴하고 고요하게 근신(謹身)하는 자의 행위는 아닙니다."
하였고, 대사간(大司諫) 성현(成俔)은 말하기를,
"양성지는 그 자식을 위하여 관직을 구할 때에 반드시 수령(守令)으로 제수시켰으며, 일찍이 전교서(典校署)의 제조(提調)가 되었을 때에 그 관서(官署)의 종 박만(朴萬)을 여러 해 동안 부려먹기를 마치 그의 집 종[家隸]과 같이 한 바가 있었으니, 이러한 두어 가지 일로써도 징험할 수 있습니다. 신정은 승지(承旨)가 되었을 때에 정원(政院)에 앉아서 종일(終日)토록 하는 바가 오직 구청(求請)하는 서간(書簡)만을 쓸 뿐이었습니다. 신정과 양성지는 모두 공신(功臣)의 반열(班列)에 있으니, 만약 그 욕심을 이기지 못하여 법에 저촉이 되면 반드시 그 종말(終末)을 보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殿下)께서는 이들을 한가한 직책에 두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를 보전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마땅히 여러 정승들과 의논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4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 정론-간쟁(諫諍) / 공업-장인(匠人) / 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
○朔丙辰/御經筵。 上, 謂領事尹弼商曰: "昨日諫院上疏, 示諸政丞, 政丞其見之歟?" 弼商對曰: "臣未及見." 上曰: "諫院, 以梁誠之、申瀞, 爲貪濁不廉。 是雖出於公論, 然大臣, 未有顯過, 而徒以外議劾之, 恐有後弊。 "弼商啓曰: "臣與彼, 非儕輩也, 未知某事爲不廉也, 然外間物議, 則有之。" 司經曺偉啓曰: "宋朝, 或以一諫臣言, 而排斥大臣, 故大臣注擬諫官, 必以私好者爲之, 以爲羽翼, 異己者排之, 遂成傾危之俗, 是固不可偏聽外論也。 然此則言之者非一, 諫之者非一, 請從臺諫之言。"弼商曰: "誠之, 性本懦弱, 不能制下, 下必慢之。 況工曹匠人, 無慮數百, 皆姦黠之徒, 非威重者, 不能治之。 請擇威重者, 使居其職。" 右承旨李瓊仝曰: "瀞, 財累鉅萬, 富極一時, 非貪利冒得者, 能然乎?" 掌令安處良曰: "誠之爲典校署提調, 幾三十年, 和賣書冊, 惟意所用。 通津曾無一頃田, 而今則大開農場, 是亦規利經營之所致也。" 且瀞, 凡所服用, 務極精巧, 其所與交者, 皆商賈之人, 亦非廉靜謹守者之所爲也。" 大司諫成俔曰: "誠之爲其子求官, 必授守令, 嘗爲典校署提調, 署奴朴萬累年役使, 有同家隷, 此數事爲可驗也。 瀞爲承旨時, 坐政院, 終日所爲, 惟求請書簡而已。 瀞與誠之, 皆在功臣之列, 若不勝其欲, 而觸法, 則必不得保終。 願殿下置之閑地, 以全終始之恩。" 上曰: "當議諸政丞。"
- 【태백산사고본】 16책 104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 정론-간쟁(諫諍) / 공업-장인(匠人) / 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