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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03권, 성종 10년 4월 26일 임자 4번째기사 1479년 명 성화(成化) 15년

종친과 문신들을 모아 종전의 활쏘기 대신 책을 강의하기로 하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시독관(侍讀官) 이세광(李世匡)이 아뢰기를,

"임금이 거둥하면 좌사(左史)가 쓰고 말하면 우사(右史)가 씁니다. 그런데 근자에 관사(觀射)하면서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이 모두 입시(入侍)하지 못하고, 관사하는데에 빈번하게 기녀(妓女)와 악공(樂工)을 섞어서 바치므로, 외부의 물의가 또한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말하기를,

"종친(宗親)을 접견(接見)하는 것은 진실로 해로운 일이 아니다. 사관(史官)이 입시하지 않는 것을 성현(成俔)도 일찍이 말하였으나, 조종조(祖宗朝)에도 사관이 입시하지 않은 예가 있었다. 나는 종친을 여러 차례 접견하고자 하나, 돌아보건대 매일 세 번 경연(經筵)에 나아가 만기(萬機)를 재결하느라고 친족을 친애하는 정을 펴지 못하였다. 근래에 3,4일 동안 종친을 접견하였으나, 선왕(先王)의 우애(友愛)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외부에서 의논하는 자란 어떤 사람인가?"

하자, 이세광이 대답하기를,

"전하께서 종친을 자주 접견하는 것은 이 또한 친족을 친애하는 어지심입니다. 신이 감히 물의가 있다고 한 것은, 다만 관사(觀射)를 빈번하게 함이 그르다는 것뿐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종친을 접견하면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후(射侯)하는 것이고, 예의상 반드시 짝을 짓게 되는 것이지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다. 옛날의 성인(聖人)도 사후에는 예(禮)를 폐하지 않았으니, 사후는 실로 중요한 일이며, 여러 아랫사람들로 하여금 사후를 진작(振作)시키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위에 있는 자가 몸소 행하여 솔선해야 한다. 근래에 보면 문신(文臣)들도 거의 다 잘 쏘니, 문무(文武)의 재주를 겸한 자를 쓸 수 있다면, 어찌 도움되는 바가 없겠는가? 외부 사람 가운데 의논하는 자는 뜻이 없는 자이다."

하니, 좌부승지(左副承旨) 채수(蔡壽)가 아뢰기를,

"근자에 성상께서 자못 관사하기를 좋아하시어, 여러 아랫사람들이 보고서 본받아 문신 가운데 낮은 자라도 잘 쏘는 자가 많으니, 또한 즐겁지 않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종친과 문신이 관사하면 간혹 활[弓]을 내려 주어서 상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투어 권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간혹 종친과 문신을 모아 책을 강(講)하여 논상(論賞)하여서 권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 일이 과연 좋으니, 장차 거행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하기를, "임금은 호시(弧矢)209) 에 정통하여 쏘면 반드시 적중하였으므로, 종친으로서 모시고 쏘는 자도 모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관사하는 데에 여악(女樂)을 쓰고 간혹 3일 동안 행하였으니, 이세광이 간(諫)한 것은 마땅하였다. 그런데 임금이 다시 묻자 갑자기 순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채수는 또한 임금의 뜻에 따르고, 도리어 문신들이 사후하는 것을 즐겁다고 하였으므로, 듣는 자들이 병통으로 여겼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 / 예술-음악(音樂)

  • [註 209]
    호시(弧矢) : 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

○御夕講。 侍讀官李世匡啓曰: "人君動則左史書之, 言則右史書之。 近者內觀射, 承旨、史官, 皆不入侍, 而觀射頻數, 雜進妓工, 外議亦有之。" 上, 默然良久曰: "接見宗親, 固非害事。 史官不入, 成俔亦嘗言之, 然祖宗朝, 無史官入侍之例。予欲累累接見宗親, 顧每日三御經筵, 裁決萬機, 未得伸親親之情。 近者三四日, 見宗親, 殆不及先王之友愛。 所謂外議者, 何人歟?" 世匡對曰: "殿下, 累見宗親, 是亦親親之仁。 臣敢有議, 但以觀射頻數, 爲非耳。" 上曰: "予見宗親, 不可無事終日, 故爲之射侯, 禮必有耦, 非以相爭。 古之聖人, 亦不廢射禮, 射實重事, 欲使群下, 興於射, 則須在上者, 躬行以率焉。 比見文臣, 類皆善射, 得才兼文武者用之, 豈無所補哉? 外人之議者, 其無意矣。" 左副承旨蔡壽啓曰: "近者, 上, 頗好觀射, 群下見而則之, 文臣雖微者, 亦多善射, 不亦樂乎? 臣意謂 ‘宗親文臣, 觀射, 或賜弓以賞之, 故人起競勸焉。’ 間聚宗親文臣, 講書論賞以勸之何如?" 上曰: "此事果善, 將擧行之。"

【史臣曰: "上, 精於弧矢, 發必中的, 宗親侍射者, 皆莫能及。 然觀射用女樂, 間三日行之, 世匡之諫宜矣。 及上有問, 遽出遜言何哉? 蔡壽, 又順上旨, 反以文臣趨射爲樂, 聞者, 病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10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 / 예술-음악(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