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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03권, 성종 10년 4월 1일 정해 4번째기사 1479년 명 성화(成化) 15년

예조에서 대마 도주에게 보내는 하사품과 서계에 대해 아뢰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대마 도주(對馬島主)에게 사물(賜物)과 서계(書契)를 전하는 의식(儀式)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일(期日) 전에 통사(通事)로 하여금 그 날 사물(賜物)을 받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 날 도주(島主)의 집에서는 청사(廳事)에 안(案)을 설치하되, 북쪽 가까이 남향(南向)한다. 때가 되면 압물관(押物官)으로 하여금 사물(賜物)을 가지게 하고 통사(通事)는 서계(書契)를 받들고서 도주(島主)의 집으로 나아가 중문(中門)을 거쳐서 들어가며, 부사(副使)로 하여금 따르게 한다. 도주(島主)는 뜰 아래에서 국궁(鞠躬)하여 공손히 맞이한다. 부사(副使)로 하여금 중계(中階)를 거쳐서 올라가 동쪽 가까이 서향(西向)하여 서도록 하고, 사물(賜物)과 서계(書契)를 안(案) 위에 놓는다. 【서계안(書契案)은 남쪽에 있고, 사물안(賜物案)은 북쪽에 있다.】 도주(島主)가 배위(拜位)에 나아가 사배(四拜)를 마치고, 서편계(西偏階)를 거쳐서 올라가 서계안(書契案) 앞으로 나아가서 남쪽 가까이 북향(北向)하여 꿇어앉는다. 정사(正使)가 서계를 가지고 서서 도주(島主)에게 주면 도주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받고, 시인(侍人)에게 주며, 부복(俯伏)하였다가 일어나서 배위(拜位)로 돌아와 사배례(四拜禮)를 행하기를 마친다. 도주(島主)와 서로 만날 때에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는 동쪽에 있으면서 서향하고, 도주(島主)는 서쪽에 있으면서 동향(東向)한다. 서로 마주 대하여 재배(再拜)하기를 마치면, 자리에 앉는다. 서장관(書狀官)과 정관(正官)이 도주(島主) 앞에 나아가 겹줄로 서서 【서장관(書狀官)은 앞에 있고, 정관(正官)은 뒤에 있다.】 재배(再拜)하면, 도주가 답배(答拜)한다. 서장관은 남쪽 줄에서 동쪽 가까이 북향하여 앉고, 정관은 예(禮)를 행하기를 마친 후 종인(從人)을 동반하고 나가 영(楹) 밖에서 재배한다. 만약 도주(島主)의 아들과 대관(代官)이 정사(正使)·부사(副使) 앞에 나아가 재배례(再拜禮)를 행하면, 정사와 부사가 동시 답배(答拜)한다. 도주가 사신(使臣)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에는 본토(本土)의 풍속에 따르고, 사신이 도주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에는 우리 나라의 예(禮)에 따른다. 대내전(大內殿)과 여러 거추(巨酋), 경도(京都)의 대신(大臣)이나 관령(管領) 등에게 사물(賜物)과 서계(書契)를 전하는 의식도 대마도(對馬島)의 의식과 같다.’

정통(正統) 8년157) 에 통신사(通信使) 변효문(卞孝文)이 대마도(對馬島)에 사물(賜物)을 전하였을 때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종정성(宗貞盛)이 사물(賜物)을 받고 분향(焚香)하며 사배(四拜)하기를 마치고서, 각기 읍례(揖禮)를 행하며, 동·서(東西)로 마주 대하고 앉아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정통(正統) 12년158) 에 대마도 경차관(對馬島敬差官) 조휘(曹彙)가 사물(賜物)을 전하였을 때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사물(賜物)을 청(廳) 위와 뜰에 놓았다. 통사(通事)로 하여금 서계(書契)를 받들고 먼저 도착하여 바로 청(廳) 위에 들어가서 탁자 위에 놓게 하였다. 경차관(敬差官)은 서향(西向)하여 서고, 종정성(宗貞盛)은 탁자 앞에 나아가 북향(北向)하여 꿇어앉았다. 경차관이 서계를 가지고 서서 종정성에게 주면, 서계를 받아 안(案) 위에 놓고, 상향(上香)하고서 물러나 삼배(三拜)하고 머리를 조아리기를 마치며, 동서로 마주 향하여 읍례(揖禮)를 행하였다.’

성화(成化) 4년159) 에 대마도 치위관(對馬島致慰官) 김호인(金好仁)이 사물(賜物)을 전하였을 때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도주(島主)가 청사(廳事)의 섬돌 아래에서 공손히 맞이하였다. 사인(使人)이 서계(書契)를 받들어 도주의 집 청사 북쪽에 놓으면, 도주가 사배(四拜)를 행하였다.’

성화(成化) 12년160) 에 대마도 선위사(對馬島宣慰使) 김자정(金自貞)이 사물(賜物)을 전하였을 때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도주(島主)의 집 청사(廳事)에 배설(排設)161) 하고, 뒤따라서 서계(書契)를 가지고 갔다. 도주가 뜰 아래에서 국궁(鞠躬)하여 공손히 맞이하였다. 정사(正使)가 중문(中門)을 거쳐 청사(廳事)로 올라가서 동쪽 가까이 서향(西向)하여 섰다. 도주가 처마[簷] 아래로 올라가 섬돌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누(樓) 위를 닦고, 사배(四拜)를 행하고서 서계탁(書契卓) 앞에 나아가 북향하여 꿇어앉았다. 정사(正使)가 서계(書契)를 가지고 도주에게 주면, 도주가 받아서 집사인(執事人)에게 주고, 부복(俯伏)하였다 일어나서 배위(拜位)에 돌아와 사배를 행하기를 마쳤다. 도주와 동·서(東西)로 마주 대하고서 재배(再拜)하였다.’

변효문(卞孝文)대내전(大內殿)에 사물(賜物)을 전하였을 때에 말하기를, ‘지난번에 서서 사물(賜物)을 받았던 것은 옳지 않으니, 이번에는 문(門) 밖에 나와서 맞이하고, 당(堂)에 올라가 꿇어앉아서 받기를 마친 후 사배(四拜)하는 것이 예(禮)에 합당하겠습니다.’ 하니, 대내전(大內殿)의 시인(侍人)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의 풍속에는 본래 배례(拜禮)하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므로,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꿇어앉아서 받은 후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자, 시인(侍人)이 말하기를, ‘좋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 사물(賜物)을 받들고 장덕사(長德寺)에 도착하였더니, 대내전(大內殿)이 뜰 아래에서 국궁(鞠躬)하여 맞이하고, 당(堂) 위에 올라가 꿇어앉아서 받기를 마쳤습니다. 머리를 조아린 뒤 동·서(東西)로 마주 대(對)하고 읍례(揖禮)를 행하였습니다. 관령(管領)이 사물(賜物)과 서계(書契)를 받기를 마친 후 동·서로 마주 대하고서 읍(揖)하였습니다. 좌무위전(左武衛殿)은 병(病)이라 하여 오지 않았으므로, 통사(通事)로 하여금 사물(賜物)과 서계를 가지고 그 집에 가서 주게 하였습니다. 일기주 태수(一岐州太守)는 마침 다른 곳에 갔으므로 사물(賜物)을 전하여 보내었습니다.

위의 항목들은 해마다 예(禮)를 행한 것이 각기 다릅니다. 다만 저 나라가 본래 예(禮)를 익히지 않은데다가 우리 나라의 사신(使臣)도 예(禮)에 의거하여 밝게 깨우쳐 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한결같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가는 곳마다 한결같이 정해진 의주(儀註)에 따르려고 한다면, 반드시 예를 행하려 들지 않을 것이니, 위엄을 손상하게 될 우려마저 있습니다. 대마 도주(對馬島主)는 모름지기 의주(儀註)에 따라서 예를 행하게 하고, 대내전(大內殿)과 여러 거추(巨酋)는 일의 형편을 참작하여 때에 따라서 예를 행하게 하되, 다만 예법을 너무 간략하게 하여 명(命)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왜(倭)

  • [註 157]
    정통(正統) 8년 : 1443 세종 25년.
  • [註 158]
    정통(正統) 12년 : 1447 세종 29년.
  • [註 159]
    성화(成化) 4년 : 1468 세조 14년.
  • [註 160]
    성화(成化) 12년 : 1476 세조 7년.
  • [註 161]
    배설(排設) : 의식에 쓰는 여러 도구를 벌여 놓음.

○禮曹啓: "對馬島主處, 傳賜物、書契儀: ‘前期, 使通事, 諭其日受賜物。 其日島主家, 設案於廳事, 近北南向。 時至, 令押物官, 齎賜物, 通事奉書契, 詣島主家, 由中門入, 使副使從之。 島主於庭下, 鞫躬祗迎。 使副使, 由中階陞, 近東西向立, 置賜物書契於案上。 【書契案在南, 賜物案在北。】 島主, 就拜位行四拜訖, 由西偏階, 陞詣書契案前, 近南北向跪。 正使, 取書契, 立授島主, 島主受之叩頭, 授侍人, 俯伏興還拜位, 行四拜禮畢。 與島主相會, 使副使在東西向, 島主在西東向。 相對再拜訖, 坐定。 書狀官及正官, 就島主前, 重行 【書狀官在前, 正官在後。】 再拜, 島主答拜。 書狀官於南行, 近東北向坐, 正官行禮訖, 出伴從人於楹外再拜。 若島主子及代官, 就使副使前, 行再拜禮, 則使副使一時答拜。 島主饋使臣, 則從本俗, 使臣若饋島主, 則從我國禮。 大內殿及諸巨酋, 京都大臣、管領等處, 傳賜物書契儀, 同對馬島儀。 正統八年通信使卞孝文, 對馬島傳賜物時, 宗貞盛受賜物, 焚香四拜訖, 各行揖禮, 東西相對坐, 行茶禮。 正統十二年, 對馬島敬差官曺彙, 傳賜物時, 先陳賜物於廳上及庭。 使通事, 奉書契先到, 直入廳上, 置於卓上。 敬差官, 西向立, 宗貞盛詣卓前, 北向跪。 敬差官, 取書契, 立授宗貞盛, 受書契置案上, 上香退三拜叩頭訖, 東西相向, 行揖禮。 成化四年, 對馬島致慰官金好仁, 傳賜物時, 島主於廳事階下祗迎。 使人奉書契, 置主家廳事北, 島主行四拜。 成化十二年, 對馬島宣慰使金自貞, 傳賜物時, 先於島主家廳事排設, 隨後齎書契而往, 島主於庭下, 鞠躬祗迎。 使由中門, 陞廳事, 近東西向立。 島主陞簷下, 差除抹樓上, 行四拜, 就書契卓前, 北向跪。 使取書契, 授島主, 島主受之, 授執事人, 俯伏興還就拜位, 行四拜訖。 與島主, 東西相對再拜。 卞孝文, 大內殿傳賜物時, 言曰: ‘在前立受賜物未便, 今則出迎門外, 陞堂跪受訖, 四拜, 於禮合宜也。’ 大內侍人對曰: ‘我國俗, 本無拜禮。’ 使云: ‘然則跪受後叩頭亦可。’ 侍人曰: ‘諾。’ 其日奉賜物, 歸到長德寺, 大內殿立庭下, 鞠躬以迎, 陞堂跪受訖。 叩頭後, 東西相對, 行揖禮。 管領受賜物及書契訖, 東西相對揖。 左武衛殿, 稱病不來, 令通事, 特賜物及書契, 到其家給之。 一岐州太守, 適往他所, 傳送賜物。 上項各年行禮各異。 只緣彼國, 本不習禮, 我國使臣, 亦不據禮曉諭, 故如此不一。 今若每於到處, 一從所定儀註, 則必不肯行禮, 不無損威之失。 如對馬島主, 則須令從儀註行禮, 如大內殿及諸巨酋, 則斟酌事宜, 因時行禮但不使苟簡辱命。" 從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10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