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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00권, 성종 10년 1월 10일 정묘 4번째기사 1479년 명 성화(成化) 15년

임금이 죽기 전에 미리 무덤을 정하여 만드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하다

처음에 장악원 정(掌樂院正) 최호원(崔灝元)이 윤대(輪對)에서 수릉(壽陵)020) 을 미리 정하기를 계청(啓請)하였었는데, 이에 이르러 대신(大臣)·대간(臺諫)에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더니, 정창손(鄭昌孫)·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윤사흔(尹士昕)·김국광(金國光)·윤필상(尹弼商)·노사신(盧思愼)·홍응(洪應)·한계희(韓繼禧)·이극배(李克培)·강희맹(姜希孟)·어유소(魚有沼)·권감(權瑊)·이극증(李克增)·윤흠(尹欽)·신정(申瀞)은 의논하기를,

"최호원이 아뢴 것을 따라 미리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이승소(李承召)·신준(申浚)·여의보(呂義輔)·윤계겸(尹繼謙)은 의논하기를,

"만약 수릉(壽陵)이라 일컫는다면 반드시 사람이 경작하는 것을 금(禁)하고, 인가(人家)를 철거하여서 수목을 심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뒤에 이의(異議)가 있어서 쓰지 않거나 혹 쓸 수 없는 연고가 있다면 한갓 백성의 폐단만 되니, 미리 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고, 이극기(李克基)·이숙문(李淑文)·김여석(金礪石)·서근(徐赾)·안선(安璿)·윤희손(尹喜孫)·유인호(柳仁濠)는 의논하기를,

"예전에 이르기를, ‘흉사(凶事)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예(禮)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수릉의 제도가 비록 후대(後代)에 일어났다 하지만 《예경(禮經)》에 기재된 바가 아니며, 조종(祖宗)께서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최호원(崔灝元)의 의논을 보건대, 자못 음양(陰陽)의 꺼리는 바에 구애됨이 있으니, 믿고서 거행(擧行)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하니, 정창손 등의 의논을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68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020]
    수릉(壽陵) : 임금이 죽기 전에 미리 만들어 두던 무덤.

○初掌樂院正崔灝元, 於輪(臺)〔對〕 啓請預定壽陵, 至是命大臣、臺諫議之。 鄭昌孫韓明澮沈澮尹士昕金國光尹弼商盧思愼洪應韓繼禧李克培姜希孟魚有沼權瑊李克增尹欽申瀞議: "依灝元所啓, 預定爲便。" 李承召申浚呂義輔尹繼謙議: "若稱壽陵, 則必禁人耕、撤人家而種樹木矣。 萬一後有異議而不用, 或有不可用之故, 則徒爲民弊, 不必預定也。" 李克基李淑文金礪石徐赾安璿尹喜孫柳仁濠議: "古云: ‘預凶事, 非禮也。’ 壽陵之制雖起於後代, 非禮經所載, 祖宗所未行。 今觀灝元之論, 頗涉陰陽拘忌, 不可取信而擧行。" 從昌孫等議。


  • 【태백산사고본】 16책 10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68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