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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98권, 성종 9년 11월 14일 신미 2번째기사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신정·박숙진·이유인·홍귀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신정(申瀞)을 가선 대부(嘉善大夫)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박숙진(朴叔蓁)을 가정 대부(嘉靖大夫)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이유인(李有仁)을 통정 대부(通政大夫) 호조 참의(戶曹參議)로, 홍귀달(洪貴達)을 통정 대부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로, 김승경(金升卿)을 통정 대부 좌승지(左承旨)로, 이경동(李瓊仝)을 통정 대부 우승지(右承旨)로, 김계창(金季昌)을 통정 대부 좌부승지(左副承旨)로, 유순(柳洵)을 통정 대부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채수(蔡壽)를 통정 대부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유계번(柳季潘)을 통정 대부 장례원 판결사(掌隸院判決事)로, 남계당(南季堂)을 통덕랑(通德郞)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으로, 윤호(尹壕)를 가선 대부(嘉善大夫)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정은(鄭垠)을 통정 대부(通政大夫)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임수창(林壽昌)을 통정 대부 해주 목사(海州牧使)로 삼았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신정(申瀞)의 사람됨은 성품이 약삭빨라서 아는 사람과는 본의 아니게 응접(應接)한다. 그러나 다른 기능(技能)은 없고 치사할 정도로 재물을 탐하여 가산(家産)이 거만(巨萬)이어서 조정(朝廷) 가운데에서는 비교할 만한 자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갖고 있음을 들으면 반드시 끝까지 차지하고야 만다. 도승지(都承旨)가 되었을 적에 어느 조관(朝官)이 새로 만든 삽대(鈒帶)를 띠고 있었는데, 품질이 매우 좋았다. 공사(公事)로 인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들렀더니, 신정이 그것을 보고 몹시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말하기를, ‘나의 띠는 좋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바꾸어 가져서 서로 잊지 않는 의(義)를 맺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으나, 그 조관이 응하지 않자, 신정이 즉시 자기 것을 풀어서 억지로 바꾸었다. 며칠 뒤에 패문(牌文)954) 으로 그 조관을 불러 거짓으로 말하기를, ‘그대의 띠가 너무 좋아서 내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그래서 곧 돌려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은근히 기뻐하는 표정이었는데, 밖에 나와서 보니 그것은 연대(鉛帶)였다. 그의 간교하고 가면적인 태도에 대하여 조정 가운데에서 입을 모아 야비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헌부(司憲府)에서 비록 이 일을 거론(擧論)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체적으로 탐욕스러운 일을 가지고 두세 번 거론하였으므로, 이 명(命)이 있게 된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9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66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

  • [註 954]
    패문(牌文) :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내리는 통문.

○以申瀞爲嘉善工曹參判, 朴叔蓁嘉靖吏曹參判, 李有仁通政戶曹參議, 洪貴達通政承政院都承旨, 金升卿通政左承旨, 李瓊仝通政右承旨, 金季昌通政左副承旨, 柳洵通政右副承旨, 蔡壽通政同副承旨, 柳季潘通政掌隷院判決事, 南季堂通德司諫院獻納, 尹壕嘉善京畿觀察使, 鄭垠通政黃海道觀察使, 林壽昌通政海州牧使。

【史臣曰: "申瀞爲人性便利, 與所識者曲爲應接。 然無他技能, 貪鄙貨賄, 家貯巨萬, 朝中無比。 聞人有玩好, 則必苦索乃已。 嘗爲都承旨時, 一朝官帶新鈒帶, 品甚好。 以公事至院, 頗心之, 不覺發言曰: ‘我帶雖劣, 然換者以伸毋忘之義何如?’ 朝官不肯, 卽自解抑換之。 數日又以牌招朝官給之曰: ‘君帶好, 於吾心不安, 故卽還之。’ 然心私喜之, 出視之, 乃鉛帶也。 其巧詐奸僞之狀, 朝中莫不掩口鄙之。 憲府雖不論是事, 然泛以貪鄙論之再三, 故有是命。"】


  • 【태백산사고본】 15책 9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66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