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판서 양성지가 《오례의》의 병기 도설 부분을 삭제하고 다시 반포하기를 청하다
공조 판서(工曹判書) 양성지(梁誠之)가 상서(上書)하였는데, 이르기를,
"그윽이 생각하건대 제주(濟州)는 옛 탐라국(耽羅國)입니다. 지방이 1백리 이며 바다 밖에 멀리 있는데, 신라(新羅) 때에 비로소 내조(來朝)하였고, 고려(高麗)에 이르러서 나라를 없애고 현(縣)으로 만들었으며, 그 인구의 번성함과 산물의 풍부함은 내지(內地)에 있는 고을의 갑절입니다. 그러나 신이 보건대 역대(歷代)에 변고(變故)가 잇따라서 떨어졌다 합쳤다 한 것이 한 번이 아니었으며, 원(元)나라에서 목장(牧場)을 설치하자 이로부터 말[馬]이 크게 번식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세 고을을 설치함에 미쳐서 그 권세를 나누고 그 자제(子弟)를 등용하여 그들의 마음을 진압시켰으니, 열성(列聖)께서 먼 지방의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 적당하였다고 이를 만합니다. 엎드려 듣건대 지난 가을에 왜선(倭船)이 고을의 경내에 와서 머무르자, 이에 왜국(倭國) 말을 아는 자를 보내어 후일에 대비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제주는 대마도(對馬島)의 여러 섬과 더불어 바다 위에 같이 있어 동서(東西)로 서로 바라보면서도 언어가 각각 다르니, 오히려 가하다고 이를 것입니다. 만약 말이 서로 통하면 이는 마치 원숭이에게 나무에 오르기를 가르치는 것과 같으므로, 후일의 변(變)을 글로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요즘 또 의심스러운 자취가 많이 있는데, 대우하기를 적당하게 하면 통역이 없을지라도 불가함이 없을 것이며, 만약 적당하게 하지 못하면 통역이 있는 것이 도리어 해가 될 것입니다. 헤아리건대 이제 통사(通事)의 행차가 아직 저쪽에 도달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니, 모름지기 역마(驛馬)를 급히 달려서 그 사람을 강제로 돌려보내고 왜(倭)와 가깝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왜말을 익혀서 알도록 한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신이 또 생각하건대 화포(火砲)는 군국(軍國)의 비밀한 무기인데, 고려(高麗) 말에 최무선(崔茂宣)이 비로소 원(元)나라에 들어가 배웠고, 명(明)나라 초(初)에 고황제(高皇帝)883) 가 왜(倭)를 방어하라고 하사하였습니다. 우리 세종조(世宗朝)에 이르러서는 《총통등록(銃筒謄錄)》이 사가(私家)에 퍼져 있는 것을 모두 내부(內府)에 거두어들였는데, 그 뒤에 군기감(軍器監) 바깥 동쪽 문루(門樓)에 21건(件)을 간직하고 춘추관(春秋館)에 1건을 간직하였으니, 생각이 또한 주밀(周密)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삼가 《오례의(五禮儀)》를 보건대 화포(火砲)를 만드는 법의 척·촌·푼·리(尺寸分釐)를 숨김없이 자세히 써서 중외(中外)에 인쇄 반포하여 온 나라에 두루 퍼졌는데, 만일 간사한 자가 기화(奇貨)로 삼아서 왜적(倭賊)에게 팔면, 그것이 동남쪽 지방의 화(禍)가 됨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빌건대 예조(禮曹)에 명하여 내외(內外)의 관청과 사가(私家)에 있는 《오례의》를 모두 거두어들이게 하여, 병기 도설(兵器圖說)이라고 이르는 것은 모두 삭제하고 다시 반포하며, 또 총통(銃筒)의 제도는 1건만 남겨서 어소(御所)에 간직하고 그 나머지는 세 사고(史庫), 동문루(東門樓), 실록각(實錄閣)에 모두 언자(諺字)884) 로 써서 각각 한 건씩 간직하며, ‘신견봉(臣堅封)’이라고 써서 전교를 받아 열고 닫게 할 것입니다. 군기시(軍器寺)에 있는 한 건 역시 언자(諺字)로 써서 제조(提調)가 친히 봉(封)하고, 전일에 한자(漢字)로 쓴 것은 죄다 불태워서 없애게 하여, 만세(萬世)의 계책을 삼는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97권 4장 B면【국편영인본】 9책 655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왜(倭) / 군사-군기(軍器)
○工曹判書梁誠之上書曰:
竊惟濟州古耽羅國也。 地方百里, 邈在海外, 新羅時始來朝, 至于高麗國除爲縣, 其生聚之繁、物産之饒, 倍於內郡。 然臣觀歷代變故相仍, 離合不一, 元置牧場, 自是馬大蕃息。 及我國家置三邑, 以分其權, 用子弟以鎭其心, 列聖之待遠人, 可謂得其宜矣。 臣伏聞去秋倭船來泊州境, 於是遣知倭語者, 以備後日。 然濟州與對馬諸島同處海上, 東西相望, 言語各異, 猶云可也。 若相通言語, 則是猶敎猱升木, 他日之變, 不可以筆之於文字間也。 況近日亦多有可疑之跡, 待之得其宜, 則雖無譯語, 固無不可, 苟不得其宜, 則有譯反有害矣。 計今通事之行尙未達彼, 須急馳馹, 勒還其人, 使無近倭之人習知倭語幸甚。 臣又念火砲軍國秘寶也, 高麗末崔茂宣始入元朝學之, 大明初高皇帝以防倭而賜之。 及我世宗朝, 《銃筒謄錄》散在私家者, 盡收入內府。 其後軍器監外東門樓藏二十一件, 春秋館藏一件, 慮亦周矣。 然近日伏見《五禮儀》, 火砲造作之式, 尺寸分釐悉書無隱, 印頒中外, 遍于一國, 萬一奸細以爲奇貨, 賣與賊倭, 則其爲東南之禍, 可勝言哉? 乞命禮曹, 內外官私所有五禮儀, 幷令收取, 所謂《兵器圖說》盡削而復頒之, 又其銃筒制度, 只留一件藏于御所, 其餘外三史庫、東(文)〔門〕 樓ㆍ實錄閣, 皆以諺字書寫, 各藏一件, 稱 ‘臣堅封’, 承傳開閉。 軍器寺一件, 亦書諺字, 提調親封。 其前日漢字書寫者, 悉令焚毁, 以爲萬世之計幸甚。
- 【태백산사고본】 15책 97권 4장 B면【국편영인본】 9책 655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왜(倭) / 군사-군기(軍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