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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94권, 성종 9년 7월 6일 을축 3번째기사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대사헌 김유가 정석년·한치형·이회 등의 부당한 인사 철회와 이조 탄핵을 청하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김유(金紐)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이제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 정석년(鄭錫年)을 정평 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로, 김제 군수(金堤郡守) 한치량(韓致良)을 전설사 수(典設司守)로,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 김신행(金信行)을 본부 감찰(本府監察)로, 감찰(監察) 이회(李薈)를 충익부 도사(忠翊府都事)로 삼으셨는데, 관작(官爵)은 국가의 중기(重器)이므로, 진실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가 아니면 서차(序次)를 뛰어넘어서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석년은 근년 봄에 도사(都事)를 제수하고 얼마 안되어 도호부사(都護府使)로 뛰어넘어 제수하였으니, 조정 안에 어찌 직질(職秩)에 걸맞는 사람이 없어서 반드시 정석년으로써 주의(注擬)586) 하겠습니까? 또 수령(守令)은 반드시 모름지기 육기(六期)를 기다려서 십고 십상(十考十上)587) 이 다섯 사람 안에 든 뒤에라야 비로소 승천(陞遷)할 수 있는 것인데, 한치량은 군수로서 겨우 일기(一期)를 넘기고서 곧바로 정4품에 올랐습니다. 일비(一批)588) 의 안에서 덕천 군수(德川郡守) 민회건(閔懷騫)과 선천 군수(宣川郡守) 박종원(朴宗元)은 다 고(考)가 차서 갈아주어야 마땅한데도, 민회건은 빈자리가 없다고 하여 산관(散官)589) 으로 만들고, 박종원은 상의원 판관(尙衣院判官)으로 낮추어 제수하시니, 한치량은 무슨 공로가 이 두 사람보다 지나친 것이 있어서 벼슬 주시기를 이렇듯 서로 동떨어지게 하십니까? 오고(五考)·삼고(三考)·이고(二考)한 자 중에 하나만 중(中)이어서는 우직(右職)590) 을 제수하지 못하는 것은 명백히 전장(典章)에 있는데, 김신행(金信行)은 먼젓번에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 벼슬에 있었고, 지난 추등(秋等)·동등(冬等)의 고(考)에서 중(中)이었는데, 이제 감찰(監察) 벼슬로 올려주시니, 나라의 법에 매우 어긋납니다. 천직(遷職)하고 서용(敍用)할 때 세월에 구애하지 아니함은 현능(賢能)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함인데, 이회(李薈)는 지난해 12월에 선공감 직장(繕工監直長)으로 있다가 사옹원 주부(司饔院主簿)로 올라갔고, 얼마 안되어서 감찰(監察)로 올랐으며, 또 얼마 안되어서 도사(都事)로 승직되었으니, 이회와 같은 사람은 무슨 현능함이 있어 참외(參外)591) 로서 반년 사이에 별안간에 5품직에 이르렀습니까? 이것은 다 영전(令典)을 위월(違越)하여 임용(任用)에 마땅함을 잃은 것으로, 전조(銓曹)592) 에는 반드시 그 나름의 정상(情狀)이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청컨대 정석년(鄭錫年) 등의 직(職)을 곧 파하시고, 아울러 이조(吏曹)의 관리들을 탄핵하시어 그로써 외람(猥濫)되게 하는 폐단을 막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한치량의 형 한치형(韓致亨)은 중국 서울로 가게 되는데, 노모(老母)를 봉양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바꾸어 옮기도록 명한 것이지 전조(銓曹)에서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고, 정석년은 일찍이 첨정(僉正)을 지냈으며, 이회가 방주 감찰(房主監察)로서 승직한 것은 예사(例事)인데,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다만 김신행만은 바꾸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9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62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註 586]
    주의(注擬) : 관원을 임명할 때 먼저 문관(文官)은 이조(吏曹), 무관(武官)은 병조(兵曹)에서 후보자 세 사람을 정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일.
  • [註 587]
    십고 십상(十考十上) : 벼슬아치의 성적을 매기는 등급의 하나. 경관(京官)은 각 청(廳)의 장관, 지방관(地方官)은 감사(監司)가 해마다 두 번씩 그 근무 성적을 고사(考査)하여 상·중·하의 세 급으로 나눌 때, 동일한 직(職)에 있는 사람이 다섯 해 동안 늘 상급의 성적을 얻었을 때의 일컬음.
  • [註 588]
    일비(一批) : 동일한 비준.
  • [註 589]
    산관(散官) : 실지로 맡아 보는 직무가 없는 벼슬.
  • [註 590]
    우직(右職) : 현직보다 높은 벼슬.
  • [註 591]
    참외(參外) : 7품 이하의 품계.
  • [註 592]
    전조(銓曹) : 이조와 병조.

○司憲府大司憲金紐等上箚子曰:

今以都摠府都事鄭錫年定平都護府使, 金堤郡守韓致良爲典設司守, 掌樂院主簿金信行爲本府監察, 監察李薈爲忠翊府都事。 官爵, 國家重器, 苟非賢智, 不可越序而授。 錫年今春授都事, 未幾超授都護府使, 朝中豈無職秩相稱者, 而必以錫年注擬(擬)乎? 且守令, 必須六期十考十上居五人之內, 然後始可陞遷, 致良以郡守纔踰一期, 徑陞正四品。 一批之內, 德川郡守閔懷騫宣川郡守朴宗元皆考滿當遞, 而懷騫以無闕作散, 宗元降授尙衣院判官, 致良有何功勞, 過於此兩人, 而授職若是其相懸乎? 五考三考二考者一中, 則勿授右職, 明有典章, 行前爲掌樂院主簿, 去秋冬等考中, 今陞監察, 甚乖邦憲。 遷敍不拘歲月, 所以區別賢能, 李薈去年十二月以繕工監直長, 陞司饔院主簿, 未幾陞監察, 又未幾陞都事, 如者何有賢能, 而以參外半年之間, 驟至五品職乎? 斯皆違越令典, 任用失當, 銓曹必有其情。 伏請亟罷錫年等職, 幷劾吏曹官吏, 以杜猥濫之弊。

傳曰: "致良之兄致亨將赴京, 以老母無奉養之人, 故予命換差, 非銓曹自爲之也。 鄭錫年曾經僉正, 李薈以房主監察, 陞遷例也, 何不可之有? 但金信行改差可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9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62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