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 93권, 성종 9년 6월 10일 경자 6번째기사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영조문의 설계도를 보고 사치성을 간파하여 예전 그대로 수리하기를 명하다

선공감(繕工監)에서 영조문(迎詔門)의 설계도를 바치었다. 전교(傳敎)하기를,

"나는 이렇게 사치스러울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감정(監正) 임수창(林壽昌)이 아뢰기를,

"중국의 예에 의하여 만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어찌 중국의 제도가 이러할 줄 알았는가? 지금 바야흐로 공역(工役)이 한창인데, 이 모양대로 만든다면 백성의 괴로움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옛말에 ‘서직(黍稷)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명덕(明德)이 향기로운 것이다.’ 하였으니, 사대(事大)하는 성의가 어찌 이 문에 관계된 것이겠는가? 옛날 그대로 수리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9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611면
  • 【분류】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 외교-명(明)

○繕工監進迎詔門小樣。 傳曰: "予不意如是其侈也。" 監正林壽昌啓曰: "依中朝例造之耳。" 傳曰: "予豈知中朝之制至此耶? 今方工役繁興, 依此樣構之, 則勞民實多。 古云: ‘黍稷非馨, 明德惟馨’, 事大之誠, 豈關此門? 仍舊修之可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9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611면
  • 【분류】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