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조의 훈신을 쓰지 말라고 한 심원의 상소에 대해 논의하다
주계 부정(朱溪副正) 심원(深源)을 명소(命召)하여 묻기를,
"상소 중의 말은 모두 현재 이미 행하고 있는 일인데 그 가운데 ‘세조조(世祖朝)의 훈신(勳臣)을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네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이를 말하였는가?"
하자, 심원이 대답하기를,
"전하께서 신의 말을 듣고자 하시면, 빌건대 친대(親對)를 허락하소서."
하니,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인견(引見)하였다. 심원이 아뢰기를,
"대저 창업(創業)하는 임금은 뜻이 성공하는 데에 있으므로 비록 한 가지의 재예(才藝)를 가진 자라도 모두 거두어 쓰나, 수성(守成)하는 임금은 이와 달라서 모름지기 재주와 덕(德)이 겸비(兼備)된 뒤에야 쓰는 것입니다. 세조조에는 한 가지 재주와 한 가지에 능하다고 이름하는 자는 단점(短點)이 나타나도 장점(長點)을 헤아려서 임용(任用)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며, 인연으로 공(功)을 얻어서 드디어 훈신(勳臣)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하께서 옛 훈신이라고 하여 모두 녹용(錄用)하였으니, 그 녹용된 자들이 필시 다 어질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만약 어질지 못한 자가 있어서 죄를 범한다면, 벌을 주면 은혜가 상할 것이고 벌을 주지 아니하면 법을 폐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가 공신에게 일을 맡기지 아니한 까닭이며 송(宋)나라 태조(太祖)가 병권(兵權)을 거둔 까닭입니다. 또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신하가 총애와 이익으로 이루어 놓은 공(功)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영구히 나라가 아름다움을 보전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뜻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 전대(前代)의 일을 거울삼아서 훈구(勳舊)를 임용하지 않으면, 공신을 보호할 수 있고 은혜를 상하게 함이 없을 것이며, 법을 폐하게 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의 대신들은 모두 세조조의 훈구인데, 이들을 버리고 장차 누구를 쓸 것인가?"
하자, 심원이 말하기를,
"신은 옛 신하들을 모두 쓸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재주와 덕이 겸전(兼全)한 자는 쓰고 어질지 못한 자는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또한 영웅 호걸(英雄豪傑)로 숨어 있는 자가 무궁 무진(無窮無盡)하니, 비록 옛 신하는 아닐지라도 어찌 쓸 만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작은 일이 아니므로 내가 마땅히 참작해서 헤아리겠다."
하였다. 심원이 나가자 도승지(都承旨) 임사홍(任士洪)이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조정에서 사람을 쓰는 데에는 모름지기 기구(耆舊)260) 를 써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만약 조종조(祖宗朝)의 신하를 쓰는 것이 부당(不當)하다고 한다면, 주공(周公)은 무왕(武王)을 도왔으니, 성왕(成王)·강왕(康王)에 이르러서 버려야 하는 것입니까? 비록 작은 허물이 있을지라도 마땅히 너그러이 용납하여 한가로운 자리에 두고 국정(國政)에 참여하게 함이 가하며, 만약 큰 허물이 있으면 비록 법으로 다스릴지라도 또한 가합니다. 심원은 다만 옛 글을 읽었을 뿐이고 시의(時宜)에 맞추어 조처(措處)함을 알지 못하니, 이는 진실로 어리석고 망령된 사람입니다. 또 말하기를, ‘정극인(丁克仁)·정여창(鄭汝昌)·강응정(姜應貞)은 성현(聖賢)의 무리이다.’라고 하였는데, 정여창과 강응정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나, 정극인은 문종조(文宗朝)에 일민(逸民)으로 천거되어 정언(正言)에 임명되었으며 다만 뜻이 강개(慷慨)한 것이 남과 조금 다를 뿐인데, 어찌 성현의 무리라고 하겠습니까? 또 말하기를, ‘경연(慶延)은 사직(社稷)의 기국(器局)이며 백리지재(百里之才)가 아닌데 이제 수령으로 제수하였으므로 듣는 자가 모두 슬퍼하고 한탄한다.’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신이 듣건대, 경연은 문재(文才)가 있어서 이백(李白)261) 이 될 만하다고 하여 백의(白衣)로서 들어와 한림(翰林)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제 경연이 재행(才行)이 있어서 성균관(成均館)의 벼슬을 주어 자제(子弟)들을 가르칠 만하다고 하여 특별히 불러서 사재 주부(司宰主簿)를 삼았으나, 두고 보니 그 재주와 능함이 남보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는 모두 심원의 과장된 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상소한 말을 보고 뜻을 둔 바가 있다고 생각되어 불러서 물었는데, 그 말은 모두 유자(儒者)의 범론(泛論)이었으며 다른 뜻은 없었다."
하였다. 임사홍이 또 아뢰기를,
"요즘 조신(朝臣)들이 자못 말을 쉽사리 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간(諫)하는 말에 따르고 어기지 아니하시니, 이때문에 대간(臺諫)이 부당한 말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찌 대간의 말이라고 하여 다 따르겠습니까? 만약 일을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옛날을 참작하고 지금을 헤아려 써서 시행할 만한 것으로 생각한 연후에 말해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한갓 구차한 말일 뿐입니다. 이제 대간에서 어유소(魚有沼)와 허종(許琮)의 죄를 굳이 청하는데, 허종과 어유소의 일은 진실로 잘못입니다. 허종은 곤외(閫外)262) 의 일을 맡아서 사졸(士卒)의 환심을 고취하고자 하여 이로써 계청(啓請)하였으니, 이는 다만 절목(節目)에 소홀하였던 것뿐이며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조정에서 사람을 골라 쓰는 것을 모두 유사(有司)에 부여(付與)하였는데, 한 마디 말의 실수 때문에 죄를 주면, 신은 후일에 비록 말할만한 형세가 있을지라도 장차 아뢰는 자가 없을까 염려됩니다. 오직 성상의 마음으로 짐작하시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작명(爵命)은 진실로 인신(人臣)이 사사로이 할 수 없는 바인데, 일이 진실로 잘못되었다. 그러나 훈구 대신(勳舊大臣)을 어찌 한 가지 실수 때문에 견책(譴責)하겠는가?"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인신(人臣)은 마땅히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도록 임금에게 경계하는 말을 올려야 하는데, 임사홍의 말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실언(失言)한 죄를 피할 바가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9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7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註 260]
○命召朱溪副正 深源, 問曰: "疏中之言, 皆當今已行之事, 其曰: ‘勿用世祖朝勳臣’ 者, 予不解。 爾將何心言之耶?" 深源對曰: " 殿下欲聞臣言, 乞賜親對。" 上御宣政殿引見。 深源啓曰: "大抵創業之主志在成功, 雖一才一藝者, 皆收用焉。 守成之君異於是, 須才德兼備然後用之。 在世祖朝, 名一藝一能者, 較短量長, 靡不任用, 因緣得功, 遂爲勛臣。 今殿下以爲勛舊竝錄用之, 其用之者, 未必皆賢。 儻有不賢者犯罪, 則罰之傷恩, 不罰廢法, 此光武所以不任事, 宋祖所以收兵權也。 且《書》曰: ‘臣罔以寵利居成功, 邦其永孚于休’, 亦豈無意歟? 願殿下鑑前代之事, 勿任勛舊, 則功臣可保全, 而恩可無傷, 法可無廢矣。" 上曰: "今之大臣, 皆世祖朝勛舊, 捨此將誰用哉?" 深源曰: "臣非以爲舊臣皆不可用也。 其才德兼全者用之, 其不賢者去之耳。 且英雄豪傑, 其伏也無盡, 雖非舊臣, 豈無可用之人?" 上曰: "此非細事, 予當酌量之。" 深源出, 都承旨任士洪啓曰: "臣意以爲朝廷用人, 須用耆舊。 若以祖宗朝臣爲不當用, 則周公相武王, 至成王、康王而棄之乎? 雖有小過, 當優容置之(間)〔閒〕 地, 使與聞國政可也, 若有大過, 雖繩之以法亦可。 深源但讀古書, 而未得時措之宜, 此誠愚妄人也。 且曰: ‘丁克仁、鄭汝昌、姜應貞聖賢之徒’ 也, 汝昌、應貞未知何等人, 克仁在文宗朝, 以逸民擧拜正言, 但心志慷慨, 稍異於人耳, 未豈聖賢之徒也? 且曰: ‘慶延是社稷之器, 非百里之才也, 今乃除爲守令, 聞之者莫不嗟恨。’ 初臣聞延有文才, 以爲李白以白衣入爲翰林, 今延有才行, 可授成均館職, 訓誨子弟。 旣而特召拜爲司宰主簿, 見之則其才能未有異於人者。 是皆深源大言也。" 上曰: "予見疏語, 以爲意有所在, 召問之, 其言皆儒者泛論, 非有他意。" 士洪又啓曰: "近日朝臣頗有易言之弊。 今殿下從諫弗咈, 以故臺諫多有不當言之事, 豈以爲臺諫之言而盡從耶? 若欲言事, 當酌古準今, 惟可以施諸用然後言之, 不然則徒爲苟焉耳。 今臺諫固請魚有沼、許琮之罪, 許琮、有沼事固非矣。 琮任閫外之事, 欲鼓士卒之歡心, 以是啓請, 此特節目踈闊耳, 非有他心也。 且朝廷選用人物, 皆付之有司, 而以一言之失罪之, 則臣恐後日雖有可言之勢, 將無啓之者。 惟在聖心斟酌耳。" 上曰: "爵命固非人臣之所得私, 事誠非矣。 然勛舊大臣, 豈可以一失譴責之乎?"
【史臣曰: "人臣當以納諫進戒於君, 而士洪所言如此, 失言之罪, 無所逃矣。"】
- 【태백산사고본】 14책 9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7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