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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90권, 성종 9년 3월 16일 무인 2번째기사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김자정·이칙 등이 창원군 이성의 외방 부처 철회의 부당성에 관해서 상소하다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김자정(金自貞) 등과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이칙(李則)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은 들으니,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법을 잘 지키는 일에 불과할 뿐이라고 합니다. 귀(貴)하고 친근(親近)하다 하여 흔들리지 않고 낮고 천하다고 하여 강행하지 않으며, 오직 의(義)로써 결단하여 한결같이 시행하고 두 가지로 처리하는 일이 없는 뒤에라야, 악(惡)을 행한 자가 징계되는 바가 있고, 군신(君臣)의 분수가 엄하며, 상하의 뜻이 정하여질 것입니다. 창원군 이성의 죄악은, 법을 가지고 말하면 나라에 떳떳한 형법이 있는데도 특별히 지친(至親)인 까닭으로 하여 다만 외방(外方)에 내칠 것을 명하였을 뿐이니, 이것 또한 법을 굽힌 것이어서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쾌하게 하기에 부족한데, 지금 다시 성명(成命)을 회수(回收)하시니, 신 등은 분격(憤激)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전하의 돈목(敦睦)한 어지신 마음이 천성(天性)에서 나왔으니, 창원군 을 사랑하심이 자성 대비(慈聖大妃)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를 사사로운 은애(恩愛)로써 폐(廢)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대비의 하교를 받들어 조정 만세의 법을 무너뜨리시니, 신 등은 그윽이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정령(政令)이 나오면 오직 시행할 뿐이고 번복(翻覆)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하나의 호령(號令)을 내고 하나의 명령을 시행할 때에는, 그것을 반드시 실행하여 백성에게 믿음을 보이려고 해야 합니다. 지금 성명(成命)이 겨우 내렸는데, 곧 이를 고치시니, 백성에게 믿음을 보이는 도리가 매우 아닙니다. 신 등은 호령(號令)이 한결같지 않아서 백성들이 취신(取信)할 바가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또 죄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고, 은정(恩情)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습니다. 범상(凡常)한 사람의 심정은, 작은 것을 징계하지 않으면 큰 것을 경계함이 없게 됩니다. 창원군 이 이에 이르게 된 것도 역시 점차로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은 나이 어릴 때부터 기(氣)가 광패(狂悖)하였고, 전번에 충청도를 차례로 유람할 때에 불의(不義)를 함부로 자행하여 가는 곳마다 괴롭게 여겼습니다. 그때에 이미 공의(公議)가 있었으나 죄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탄(忌憚)하는 바가 없게 되어 마침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데에서 징계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또 그 벼슬만 빼앗고 경성(京城)에 있는 것을 허락한다면, 궁실(宮室)과 처첩(妻妾)의 받듦이 예전과 같을 터인데, 무엇이 마음에 곤고(困苦)하여 징계되겠습니까? 그의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사람은 죽일 수 없는 것이나, 나만은 죽여도 죄가 없고, 왕명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나, 나만은 거역하여도 죄가 없다.’고 여기고, 악을 키우며 개전(改悛)하지 않아서 마침내 큰 죄에 빠진다면, 신 등은 알 수 없거니와, 전하께서 장차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정백(鄭伯)공숙(共叔)을 의(義)로써 처리하지 못하여163) 후세(後世)의 나무람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사사로운 은정이 그를 해치기에 적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 등이 구구(區區)하게 감히 천위(天威)를 간범(干犯)하면서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여 반드시 청(請)하고야 말 것을 기필(期必)하는 것이, 어찌 전하의 친친(親親)하는 은정이 돈독함을 알지 못해서이겠습니까? 진실로 법이란 것은 조종 만세(祖宗萬世)의 법으로서, 전하께서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대비(大妃)께서 흔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창원군 은 바야흐로 강성(强盛)하니, 지금 외방으로 내쳐서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게 하여 허물을 뉘우치고 개과 천선하게 된다면, 오히려 선인(善人)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대의(大義)를 개진(開陳)하여 자성(慈聖)의 마음을 감오(感悟)시키셔서, 사사로운 은정으로 법을 폐하지 않으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90권 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56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 [註 163]
    정백(鄭伯)이 공숙(共叔)을 의(義)로써 처리하지 못하여 : 정백(鄭伯:정나라 임금)은 춘추 시대(春秋時代) 때 정(鄭)나라 무공(武公)의 맏아들인 장공(莊公)이며, 공숙(共叔)은 장공의 동모제(同母弟)인 공숙단(共叔叚)인데, 어머니인 무강(武姜)이 공숙단을 편애(偏愛)하여 무리한 요청을 하였으나 정백이 대의(大義)로써 처리하지 아니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방자한 행동을 하게 하여 불의(不義)를 저지르게 한 것을 말함.

○司諫院大司諫金自貞等、司憲府執義李則等上疏曰:

臣等聞善爲國者, 不過善守法而已。 不以貴近而撓, 不以卑賤而行, 惟當斷之以義, 一施無二, 然後爲惡者有所懲艾, 而君臣之分嚴, 上下之志定矣。 之罪惡以法而言, 則邦有常刑, 特以至親之故, 只命放之于外, 是亦屈法, 猶未足以快人心, 而今乃復收成命, 臣等不勝憤激。 殿下敦睦之仁, 出於天性, 其愛, 與慈聖大妃何以異哉? 然君臣大義, 不可以私恩廢。 殿下承大妃之敎, 毁朝廷萬世之法, 臣等竊爲殿下惜也。 《書》曰: "令出惟行, 不惟反。" 人君發一號施一令, 欲其必行而示信於民也。 今成命纔下, 而旋卽改之, 甚非所以示民以信之義也。 臣等恐號令從此不一, 而民無所取信也。 且罪有大小, 恩有輕重。 常人之情, 不懲之於小, 則無所戒於大。 之所以至此, 亦有漸矣。 年少氣狂, 前此遊歷忠淸道也, 恣行不義, 所至病之。 當時已有公議, 而不加罪焉, 故無所忌憚, 遂至今日。 是不能懲之於小故也。 今又只奪其爵而許在京城, 宮室妻妾之奉猶舊也, 則何所困於心而懲艾乎? 其心自以爲: "人不可殺也, 而我獨殺之無罪, 王命不可逆也, 而我獨逆之無罪", 長惡不悛, 終陷大罪, 則臣等未審殿下將何以處之? 此鄭伯所以不能處共叔以義, 而取譏於後世者也。 是則今日之私恩, 適足以害之耳。 臣等所以區區敢干天威, 至再至三期於必請而不已者, 豈不知殿下篤親親之恩也? 誠以法者乃祖宗萬世之法, 非殿下所得而私之, 亦非大妃所得以撓之者也。 況方强盛, 及今放之于外, 使之改心易慮, 悔過自新, 則猶或可以爲善人。 伏望殿下開陳大義, 感悟慈聖之心, 不以私恩廢法, 不勝幸甚。

不聽。


  • 【태백산사고본】 14책 90권 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56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