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군 이성의 사건을 의논하다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이 고읍지(古邑之)를 죽인 것은 사적(事跡)이 현저하고 여러 사람의 증거가 명백하니, 사세가 덮어 가리울 수 없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신은 본래 고읍지(古邑之)라고 일컫는 여인을 알지 못하며, 전후(前後)에도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다만 삼인검(三寅劍)과 삼진검(三辰劍)이 각각 한 자루씩 있을 뿐이고, 또 환도(環刀)는 없습니다.’ 합니다. 비록 되풀이하여 추궁해 따지었으나 조금도 승복(承服)하지 않습니다. 청컨대 성상께서 재단(裁斷)하소서."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증거에 의거하여 조율(照律)하라."
하였다가, 다시 전지하기를,
"왕자(王子)를 유사(攸司)156) 로 하여금 조율(照律)하게 하는 일은, 옛날에는 그 사례(事例)가 없다. 내가 친단(親斷)하고자 하는데, 어떤가? 이것을 정승에게 문의하라."
하였다. 정인지(鄭麟趾)와 윤사흔(尹士昕)이 의논하기를,
"율문(律文)에 ‘교형(絞刑)·참형(斬刑)에 해당된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은 조문이 있으니, 조율(照律)은 면제하고 정부(政府)와 육조(六曹)에서 함께 의논하여 죄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복초(服招)157) 한 노비(奴婢)를 바꾸는 일은 타당하지 못할 것 같으니, 속공(屬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정창손(鄭昌孫)·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윤자운(尹子雲)·김국광(金國光)은 의논하기를,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의 큰 죄에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 여인의 시체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에 삼사(三司)의 낭청(郞廳)이 왕명을 받들고 그 집에 이르니, 창원군 성이 왕명을 거역하고 그들을 집에 들이지 않았으니, 그 죄의 첫째이고, 살인한 형적(形迹)이 이미 드러나 성상께서 인견(引見)하고 친문(親問)할 때에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았으니, 그 죄의 둘째이며, 칼로써 함부로 사람을 죽여 포학한 행위를 멋대로 하여 거리낌이 없었으니, 그 죄의 셋째이고, 그 흉학한 행위를 감행한 환도(環刀)를 종[奴子]들이 그 형체와 모양을 분명히 말하였는데도, 내관(內官)이 전교(傳敎)를 받들고 물을 때에 굳이 숨기고 승복(承服)하지 않았으니, 그 죄의 넷째입니다. 〈창원군〉 성이 비록 왕자이나, 이같은 큰 죄를 범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종묘·사직에 관계된 것이 아니니 성상께서 재단(裁斷)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복초한 노비는 속공(屬公)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보고, 의정부·대간·육조 등의 관원을 불러서 의논해 아뢰게 하고, 명하여 부처(付處)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9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6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윤리(倫理) / 신분-천인(賤人) / 인물(人物)
○宗簿寺啓: "昌原君 晟殺古邑之事跡顯然, 衆證明白, 勢難掩覆, 自云: ‘臣本不知古邑之稱名女, 前後又無殺女事。 家中只有三寅、三辰劍各一, 又無環刀。’ 雖反覆窮詰, 略不承服。 請上裁。" 御書曰: "其據證照律。" 更傳曰: "王子令攸司照律, 古無其例。 予欲親斷, 何如? 其以此問諸政丞。" 鄭麟趾、尹士昕議: "律文有不(名)〔明〕 言絞斬之文, 除照律, 政府、六曹同議定罪何如? 服招奴婢易換事, 恐未安, 屬公何如?" 鄭昌孫、韓明澮、沈澮、尹子雲、金國光議: "晟之大罪有四。 初女屍事發, 三司郞廳承命到家, 晟逆命不納, 其罪一也, 殺人形迹已露, 引見親問時, 不以實對, 其罪二也, 以金刃擅殺人, 肆虐無忌, 三也, 其行凶環刀, 奴子等明言體樣, 內官承傳問之, 固諱不承, 四也。 晟雖王子, 犯此大罪, 不可容赦。 然非關宗社, 上裁何如? 服招奴婢, 則屬公爲便。" 上覽之, 召議政府、臺諫、六曹等, 令議啓, 命付處。
- 【태백산사고본】 14책 9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6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윤리(倫理) / 신분-천인(賤人)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