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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89권, 성종 9년 2월 24일 정사 1번째기사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상락 부원군 김질의 졸기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 김질(金礩)이 졸(卒)하였다. 철조(輟朝)하고 부의하였으며 조제(弔祭)와 예장(禮葬)을 규례대로 하였다. 김질의 자(字)는 가안(可安)이고, 안동(安東) 사람이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종숙(金宗淑)의 아들이고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 김사형(金士衡)의 증손이다. 처음에 충의위(忠義衛)에 속하였다. 부사직(副司直)이 되었을 때에 참관(參官)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김질이 청하여 해직(解職)하고 학교에 갔는데, 참관이 학교에 가는 것은 김질로부터 시작되었다. 경태(景泰)경오년112) 에 과거에 급제해서 성균관 주부(成均館主簿)에 제배(除拜)되고 병조 좌랑(兵曹佐郞)으로 옮겼다가 여러번 옮겨서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에 이르렀다 병자년113)이개(李塏) 등이 난을 꾀하고 날을 약속하여 일을 거행하기로 하였으나 수행하지 못하였는데, 수일 뒤에 김질이 장인[妻父] 정창손(鄭昌孫)에게 말하여 변고(變告)를 상주하니, 이개 등이 주살(誅殺)되었다. 여러 신하가, 김질이 함께 모반하였는데 성패를 관망하다가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어서야 고한 것이라 하여 주살하기를 청하였으나, 세조가 듣지 않고,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로 올리어 제수(除授)하고 곧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는 호(號)를 내려 주었다. 얼마 안 되어서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오르고 옮기어 좌승지(左承旨)에 이르렀다. 천순(天順)기묘년114) 에 가선 대부(嘉善大夫) 병조 참판(兵曹參判)이 되고 상락군으로 봉해졌다. 신사년115) 에 자헌 대부(資憲大夫)가 되어 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都觀察使)로 나갔다가, 곧 정헌 대부(正憲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계미년116) 에 들어와 공조 판서(工曹判書)가 되고, 병조 판서(兵曹判書)·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성화(成化)병술년117) 에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이 되고, 숭정 대부(崇政大夫)로 가자되었다. 정해년118) 에 경상도 관찰사가 되고, 무자년119) 에 도로 상락군에 봉해졌고, 우의정(右議政)으로 발탁되었다가 이윽고 좌의정으로 승진하였다. 기축년120)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졌고, 예종(睿宗)이 즉위하여 순성 명량 경제 좌리 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이라는 호를 내렸다. 갑오년121) 에 다시 우의정에 제배되었고, 주문사(奏聞使)에 충차(充差)되어 중국(中國)에 가서 의경왕(懿敬王)122) 의 시호(諡號)를 청하여서 허락을 받아가지고 돌아오니, 토지와 노비를 내렸다. 정유년123) 에 도로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졌다. 병에 걸리게 되자 임금이 의원을 보내어 문병하고 어주(御廚)의 찬선(饌膳)을 내렸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57세이다. 시호를 문정(文靖)이라고 하였는데, 충신 애인(忠信愛人)한 것이 문(文)이고, 관락 영종(寬樂令終)한 것이 정(靖)이다. 김질은 풍의(風儀)가 아름답고 언론(言論)을 잘하였으며,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를 우애(友愛)로 대하였다.

사신이 논평하기를, "김질의 사람됨은 기국(器局)이 관후하고, 어진이를 좋아하고 선비를 좋아해서 재상의 풍도가 있었으나, 나라를 경륜하는 것은 능한 바가 아니었다. 일찍이 하이도(下二道)124) 의 군적 순찰사(軍籍巡察使)가 되었는데, 세조(世祖)의 뜻이 사려(師旅)125) 를 확장하는 데 있는 것을 알고 오직 받들어 순종하여 군액(軍額)을 늘리기에만 힘써서, 한산(閑散)한 문무과(文武科) 출신과 생원(生員)·진사(進士)를 다 군열(軍列)에 편입하여 비록 심한 폐질이 있는 자라도 혹 면제되지 못하는 수가 있었으며, 종사관(從事官) 양진손(梁震孫)은 더욱 각박하였으므로, 원망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89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9책 561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丁巳/上洛府院君 金礩卒。 輟朝賻弔祭禮葬如例。 , 字可安, 安東人, 同知中樞府事宗淑之子, 上洛府院君 士衡之曾孫, 初屬忠義衛。 至副司直時, 參官不得赴學, 請解職赴學, 參官赴學自始。 景泰庚午登第, 拜成均館主簿, 轉兵曹佐郞, 累遷至成均司藝。 丙子, 李塏等謀亂, 約日擧事不果, 後數日言於妻父鄭昌孫上變告, 塏等誅。 群臣以與反謀, 觀望成敗, 及事不成乃告, 請誅之, 世祖不聽, 陞授判軍器監事, 尋賜推忠佐翼功臣號。 未幾陞同副承旨, 轉至左承旨。 天順己卯, 嘉善兵曹參判, 封上洛君。 辛巳資憲出爲平安道都觀察使, 尋加正憲。 癸未入爲工曹判書, 歷兵、刑曹判書。 成化丙戌, 議政府右參贊, 加崇政。 丁亥慶尙道觀察使, 戊子還封上洛君, 擢右議政, 俄陞左議政。 己丑封上洛府院君, 上卽位, 賜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號。 甲午復拜右議政, 充奏聞使如京, 請懿敬王諡, 蒙準而還, 賜土田臧獲。 丁酉還封上洛府院君。 及感疾, 上遣醫問疾, 賜以廚膳。 至是卒, 年五十七。 諡文靖, 忠信愛人文, 寬樂令終靖。 美風儀, 善言論, 事父母孝, 待兄弟友。

【史臣曰: "爲人器局寬厚, 好賢樂士, 有宰相風度, 然經邦非所長也。 嘗爲下二道軍籍巡察使, 知世祖志在張皇師旅, 惟務承順增多軍額, 閑散、文武科、生員進士盡編行伍, 雖篤(廢)〔癈〕 疾者, 或不得免, 從事官梁震孫尤刻剝, 怨讟朋興。"】


  • 【태백산사고본】 14책 89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9책 561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