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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88권, 성종 9년 1월 27일 경인 5번째기사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최첨지의 편지로 여자 시체 사건의 단서를 입수하다

임금이 장차 상참(常參)을 받으려 하는데, 도승지(都承旨) 신준(申浚)이 무명장(無名狀)을 가지고 와서 아뢰기를,

"신이 어제 저녁에 사(仕)050) 를 파하고 집에 돌아가니 집사람이 작은 간독(簡牘)을 내보이며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와서 전하며 최첨지(崔僉知)의 편지라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처음에 까닭을 몰라서 봉한 것을 열어 보니, 가운데에 두 통의 편지가 있는데, 한 통은 역시 봉하고 위에 쓰기를, ‘상전개탁(上前開坼)’이라 하였고, 한 통은 봉하지 않고 쓰기를, ‘이 편지는 빨리 상달(上達)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비로소 익명서(匿名書)인 것을 깨닫고 다시 보니, 겉에 다만 무명(無名)이란 두 글자만 썼습니다. 대저 익명서는 법에 사실로 믿을 것이 아니지마는, 지금 밀봉(密封)하는 법이 있어 버릴 수 없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조금 뒤에 대내(大內)에서 그 편지를 내어 승지(承旨) 김승경(金升卿)에게 보였는데, 그 편지에 이르기를, ‘여자의 시체는 거평군(居平君) 부인이 질투하여 한 짓이니 가외(加外)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 하였다. 김승경이 곧 삼사(三司)의 당상(堂上) 어세공(漁世恭)·윤계겸(尹繼謙)으로 더불어 함께 의논하고 낭청(郞廳)을 보내어 가외를 잡아다가 여자 시체의 신원을 물으니, 가외(加外)가 공초(供招)하였는데, 대강에 이르기를,

"비(婢)의 팔촌 동생인, 이름이 고읍지(古邑之)란 자가 조금 음률(音律)을 아는데, 창원군(昌原君)구사(丘史)051) 로 그 집에서 심부름하였습니다. 내가 창원군고읍지를 간통하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여자의 시체가 곧 이 사람일 듯합니다."

하고, 이어서 고읍지의 용모와 복색을 말하는데, 여자의 시체와 서로 부합되므로 친히 보게 하니, 이것은 고읍지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삼사(三司)가 창원군에게 구사(丘史)의 입안(立案)을 들이라고 요구하였으나 창원군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삼사에서 이를 아뢰니, 임금이 중관(中官)052) 조진(曺疹)과 한림(翰林) 최진(崔璡)에게 명하여 창원군의 집에 보내어 구사 입안(丘史立案)을 가져오게 하였다. 조진창원군의 집에 이르니, 창원군이 말하기를, ‘이미 먼저 보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8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550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신분-천인(賤人)

  • [註 050]
    사(仕) : 집무.
  • [註 051]
    구사(丘史) : 조선조 때 임금이 종친(宗親) 및 공신에게 구종(驅從)으로 나누어 주던 관노비(官奴婢).
  • [註 052]
    중관(中官) : 환관(宦官).

○上將受常參, 都承旨申浚將無名狀來啓曰: "臣昨夕罷仕歸家, 家人出示小簡, 曰: ‘有人來投, 云崔僉知簡也。’ 臣初不知所以, 開緘見之, 中有二簡, 一簡亦緘之, 上面書 ‘上前開拆,’ 一簡不緘, 書云: ‘此簡斯速上達。’ 臣始覺匿名書, 更看則外面只書 ‘無名’ 二字。 大抵匿名書, 法不當取實, 今有密封之法, 不可棄之敢啓。" 俄而內出其簡, 示承旨金升卿, 其簡曰: ‘女屍, 居平君夫人嫉妬所爲, 問諸加外, 則可知矣。’ 升卿卽與三司堂上魚世恭尹繼謙共議, 遣郞廳捕加外, 問女屍根因, 加外供招, 其略曰: "婢之八寸弟名古邑之者, 稍解音律, 以昌原君丘史, 聽使於其家。 吾聞昌原君嘗欲私古邑之, 今女屍疑卽此人也。" 因言古邑之容貌、服色, 與女屍相符, 使親見之, 則云 ‘此乃古邑之也。’ 於是三司責納丘史立案于昌原君, 昌原以無答之。 三司以啓, 上命中官曺疹、翰林崔璡昌原第, 取丘史立案來。 曺疹旣至, 則昌原云, "已先送矣。"


  • 【태백산사고본】 14책 8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550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신분-천인(賤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