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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82권, 성종 8년 7월 17일 임오 4번째기사 1477년 명 성화(成化) 13년

대사간 손비장이 현석규가 홍귀달을 욕한 것에 대해 그 논죄를 건의하는 차자를 올리다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손비장(孫比長)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신 등이 엎드려 듣건대, 손순효(孫舜孝)·홍귀달(洪貴達)의 죄(罪)는 의금부(義禁府)에서 일률(一律)로 조율(照律)하였다 하옵는데, 명하여 손순효는 환사(還仕)하고, 홍귀달은 고신(告身)만 거두게 하시니, 죄는 같되 벌은 다르니,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내용입니까? 또 신 등이 다시 듣건대, 홍귀달(洪貴達)조식(趙軾)의 일을 가지고 계달(啓達)한 뒤에, 전하께서 승전색(承傳色)에게 명하여 그 가부(可否)를 물으시자, 도승지(都承旨) 현석규(玄碩圭)가 갑자기 노(怒)하여 소매를 걷어 올리고 홍귀달의 이름을 불러, 너[爾]라고 일컬어 욕하였다고 하니, 신 등은 생각하건대 홍귀달은 진실로 죄가 있습니다. 현석규가 나무란 것은 진실로 옳습니다. 그러나 홍귀달의 죄는 스스로 국헌[邦憲]이 있거늘, 현석규는 예(禮)로써 나무라지 아니하고, 이름을 부르고 너라고 일컬어, 서리(胥吏)와 같이 보기에 이르렀으니, 비록 당상(堂上)이 낭청(郞廳)을 대(待)하더라도 이와 같이 응하지 않거늘, 더구나 같은 서열이겠습니까? 옛사람이 이르기를, ‘능히 예양(禮讓)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고 하였습니다. 정원(政院)은 후설(喉舌)과 같은 성격으로 조정(朝廷)의 의표(儀表)이며, 예법(禮法)이 유래한 곳이어늘, 이제 현석규는 후설(喉舌)의 어른[長]으로서 동렬을 대우하기를 이와 같이 함이 옳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손순효는 율(律)과 같이 하고, 아울러 현석규도 논죄(論罪)하소서."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현석규(玄碩圭)가 아뢰기를,

"신이 차자(箚子)를 보오니, 통심(痛心)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조식(趙軾)의 형추(刑推)는 신이 아뢴 것이 아니옵고 신충(宸衷)714) 에서 나온 것입니다. 홍귀달(洪貴達)이 신으로 더불어 의논하지 않고, 홀로 아뢴 까닭으로 신이 홍귀달더러 이르기를, ‘가령 강맹경(姜孟卿)이 도승지(都承旨)가 되고, 신숙주(申叔舟)가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어도 또한 이와 같이는 못하였을 것이다. 홍귀달(洪貴達)은 어찌 정원(政院)의 고풍(古風)을 변하게 하는가?’하고, 일찍이 너라고 일컬어서 욕하지는 않았습니다. 신은 본시 관홍(寬弘)715) 하므로, 이번엔 승지(承旨) 등이 차례를 뛰어 나라 일을 말한 것도 또한 신이 너그러운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신인손(辛引孫)이 도승지가 되어, 동료(同僚)를 거만하게 꾸짖고, 주서(注書)716) 를 구타하였습니다마는, 신은 이와 같이는 못합니다. 신은 본래 재주가 없어 조정의 의논이 이와 같으니, 청컨대 피혐하게 하소서."하고, 손순효(孫舜孝)는 아뢰기를,

"신은 그날에 이병(移病)717) 하여,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간(臺諫)의 의논하는 바가 되었으니, 청컨대 피혐하게 하소서."

하니, 모두 윤허하지 않고, 명하여 정언(正言) 김맹성(金孟性)에게 묻기를,

"이 일은 어느 사람한테 들었는가?"

하였다. 김맹성이 대답하기를,

"조정의 의논이 시끄럽게 떠듬을 누가 듣지 못하였겠습니까? 예로부터 대간(臺諫)이 논란하는 것은 일찍이 그 출처(出處)를 묻지 않았습니다. 이제 만약 물으시면 신은 대간의 문견(聞見)이 넓지 못하여서 언로(言路)가 막힐까 두렵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김맹성으로 하여금 정원(政院)에서 여러 승지(承旨)에게 질문하게 하라."

하였다. 김맹성이 이르리니, 임사홍(任士洪)이 말하기를,

"그날에 다만 도승지(都承旨)가 홍귀달더러 이르기를, ‘강맹경(姜孟卿)이 도승지가 되고, 신숙주(申叔舟)가 동부승지가 되었더라도 또한 이와 같이는 못하였을 것이다. 홍귀달 때에 어찌 정원(政院)의 고풍이 변하였던가?’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니, 현석규(玄碩圭)가 말하기를,

"홍귀달이 아래에 있으면서 차례를 뛰어넘어 말한 까닭으로 신이 노(怒)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매를 걷어 올린 것은 단지 더위로 인하여 팔뚝을 드러내었을 뿐입니다."

하였다. 김맹성이 이미 나가니, 현석규가 아뢰기를,

"신은 재주가 없으면서 정원(政院)에 대죄(待罪)하며,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음이 없고, 말은 다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마는, 이제 대간이 논란함은 바로 공론(公論)입니다. 전일에 간원(諫院)이 구속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 신은 눈물을 흘리며 간(諫)하기를, ‘간원의 말은 공론(公論)이니, 죄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승지(承旨)는 비록 실수하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능하지 못함이 있을까 두려워하거늘, 하물며 조정의 의논이 이와 같은 것이겠습니까? 진실로 그 직임을 사직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사직할만 한 일이 없거늘, 어찌 사직한단 말인가?"

하고, 이어서 김맹성에게 묻기를,

"대간(臺諫)이 논란한 바가 어찌 그릇됨이 있겠는가? 음주(陰嗾)718) 한 자가 그르니, 어느 사람에게서 들었는가?"

하니, 김맹성이 대답하기를,

"사간(司諫) 박효원(朴孝元)의 집은 노공필(盧公弼)의 집과 이웃하였으므로, 박효원(朴孝元)이 우연히 노공필의 집에 가서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노공필홍귀달은 한 때의 경연관(經筵官)이었던 까닭으로 말한 것이니, 그를 불러서 물어보라. 노공필이 이르거든, 임사홍(任士洪)에게 들은 것으로써 대질하라."

하였다. 임사홍이 말하기를,

"노공필은 바로 신(臣)의 고우(故友)입니다. 이야기하던 끝에 우연히 말하였을뿐,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니, 김맹성이 말하기를,

"현석규가 말한 것은 정히 차자(箚子)와 합합니다. 현석규가 노하여 소매를 걷어 올렸다면, 너라고 일컬으며 욕하였음을 알만 합니다. 신 등이 어찌 음주(陰嗾)한 것을 듣고서 감히 아뢰겠습니까? 대간(臺諫)이 논란한 바를 가지고 만약 말을 근원을 듣는다면, 신은 언로(言路)가 이로부터 막힐까 두렵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간(臺諫)이 조정의 의논이 시끄럽게 떠들석하다고 말하기에, 오늘은 대신(大臣)이 다 모였기로 그것을 물었더니, 물으면 혹은 ‘안다.’ 하고 혹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하니, 현석규가 아뢰기를,

"노공유(盧公裕)는 바로 송익손(宋益孫)의 사위[壻]이고, 노공필의 아우입니다. 뜻하건대 반드시 이를 위하여서 말하였을 것입니다."

하니, 명하여 모든 것을 박효원(朴孝元)에게 묻게 하니, 박효원이 대답하기를,

"소매를 걷어 올린 일은 풍문(風聞)으로 여겼는데, 오늘 현석규가 대답하는 것을 보니, 소매를 걷어 올린 것이 명확하며, 이름을 부른 것도 또한 너라고 일컬었을 것입니다. 정원(政院)은 근밀(近密)한 곳이니, 홍귀달이 허물이 있어 현석규가 아뢰면, 스스로 상재(上裁)가 있을 것이어늘, 현석규는 후설(喉舌)의 어른[長]으로 스스로 위의(威儀)를 어지럽혔으니, 예양(禮讓)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모두 버려두고 금후로는 헛된 일로써 나직(羅織)719) 하지 말라."

하였다. 임사홍(任士洪)이 아뢰기를,

"그날에 도승지(都承旨)가 성난 목소리로 홍귀달에게 이르기를, ‘네가 어찌 정원(政院)의 일을 다 하느냐?’고 하여, 좌우가 모두 편하지 못하였던 까닭으로, 이야기하던 나머지 우연히 노공필에게 말한 것입니다. 신이 어찌 음주(陰嗾)하였습니까?"

하니, 현석규임사홍더러 이르기를,

"가령 공(公)의 말이 정히 차자(箚子)와 합할 것 같으면 하문(下問)할 때에 아뢰지 않고서 이제야 아뢰는가?"

하고, 현석규임사홍이 그 말을 왕복함이 오래이었으되 그치지 않거늘, 좌승지(左承旨) 이극기(李克基)가 중지시켰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82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77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註 714]
    신충(宸衷) : 임금의 뜻. 성지(聖旨).
  • [註 715]
    관홍(寬弘) : 마음이 너그럽고 큼.
  • [註 716]
    주서(注書) : 승정원(承政院)의 정7품 벼슬.
  • [註 717]
    이병(移病) : 병으로 관직을 그만 둠.
  • [註 718]
    음주(陰嗾) : 몰래 사주함.
  • [註 719]
    나직(羅織) : 없는 죄를 무고(誣告)하여 죄를 얽음.

○司諫院大司諫孫比長等上箚子曰:

臣等伏聞孫舜孝洪貴達之罪, 義禁府照以一律, 命舜孝還仕, 貴達收告身, 罪同罰異, 未審何謂也。 且臣等更聞貴達趙軾事啓達之後, 命承傳色問其可否, 都承旨玄碩圭遽怒揚臂, 呼貴達之名, 稱爾而辱之, 臣等以爲貴達誠有罪矣。 碩圭之責之, 誠是矣。 然貴達之罪, 自有邦憲, 碩圭責之不以禮, 而至稱名稱爾, 視同胥吏, 雖堂上之待郞廳, 不應如是, 況同列乎? 古人云: ‘能以禮讓, 爲國乎何有?’ 政院喉舌之地, 朝廷之儀表, 禮法之所自出, 今碩圭以喉舌之長, 待同列如此可乎? 伏望舜孝如律, 幷論碩圭

不聽。 玄碩圭啓曰: "臣觀箚子, 不勝痛心。 趙軾刑推, 非臣所啓, 出自宸衷。 洪貴達不與臣議而獨啓, 故臣謂貴達曰: ‘假令姜孟卿爲都承旨, 申叔舟爲同副承旨, 亦不如是。 貴達豈變政院古風乎?’ 不曾稱爾而辱之。 臣本寬弘, 今承旨等越次言事, 亦惟臣寬弘之故。 昔辛引遜爲都承旨, 慢罵同僚, 敺辱注書, 臣則不如是。 臣本不材, 朝議若此, 請避嫌。" 孫舜孝啓曰: "臣於其日移病, 未知首尾。 然爲臺諫所論, 請避嫌。" 皆不許, 命問正言金孟性, "此事聞於何人?" 孟性對曰: "朝議喧騰, 誰不聞之? 自古臺諫所論, 未嘗問所出處。 今若問之, 則臣恐臺諫聞見不博而言路塞矣。" 傳曰: "其令孟性質問諸承旨于政院。" 孟性至, 任士洪曰: "其日但聞都承旨謂洪貴達曰: ‘姜孟卿爲都承旨, 申叔舟爲同副承旨, 亦不如是也。 洪貴達時豈變政院古風乎? (玄顧圭)〔玄碩圭〕 曰: "洪貴達居下而越次言之, 故臣怒之。 然其攘臂者, 只緣炎暑露臂耳。" 孟性旣出, 玄碩圭啓曰: "臣以不材, 待罪政院, 知無不言, 言無不盡, 今臺諫所論, 乃公論也。 前日諫院見囚時, 臣爲泣諫曰: ‘諫院公論, 不可罪也。’ 大凡承旨雖無所失, 猶懼不克, 況朝議若此乎? 固辭其職。" 傳曰: "無可辭之事, 何辭之有?" 仍問孟性曰: "臺諫所論, 豈有非哉? 陰嗾者非也, 聞於何人?" 孟性對曰: "司諫朴孝元家隣於盧公弼家, 孝元偶到公弼話之耳。" 傳曰: "公弼貴達一時經筵官, 故言之矣, 其召問之。 公弼至, 則對之以聞於任士洪。" 士洪曰: "公弼乃臣故友也。 (間)〔閒〕 話之餘偶言之耳, 非有他心。" 孟性曰: "碩圭所言, 正合箚子。 碩圭怒而攘臂, 則稱爾而辱之, 可知矣。 臣等豈聽陰嗾而敢啓哉? 臺諫所論, 若問言根, 則臣恐言路從此塞矣。" 傳曰: "臺諫言朝議喧騰, 今日大臣畢集, 其問之, (問之,) 則或曰知, 或曰不知。" 碩圭啓曰: "盧公裕宋益孫之壻, 而公弼之弟也。 意必爲此而語之也。" 命問諸朴孝元, 孝元對曰: "攘臂之事, 風聞也, 觀今日碩圭所對, 攘臂明矣, 呼名亦是稱爾也。 政院近密之地, 貴達有過, 碩圭啓焉, 則自有上裁, 碩圭以喉舌之長, 自亂威儀, 禮讓安在?" 傳曰: "皆棄之, 今後毋以虛事羅織。" 任士洪啓曰: "其日都承旨厲聲謂貴達曰: ‘爾豈盡爲政院事乎?’ 左右俱謂未便, 故(間)〔閒〕 語之餘, 偶語公弼, 臣豈陰嗾?" 碩圭士洪曰: "假如公言正合箚子, 下問時不啓, 而今乃啓之耶?" 碩圭士洪往復其言, 久而不已, 左承旨李克基止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82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77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