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을 강하다 풍속을 바로 하는 일을 논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주역(周易)》을 강하다가 고괘(蠱卦)의 상구(上九) 상(象)에 이르기를, ‘왕후(王侯)를 섬기지 않는 것은 그 뜻을 본받을 만하다.’한 데에 이르러, 검토관(檢討官) 성담년(成聃年)이 아뢰기를,
"상구(上九)의 뜻이 그러할 뿐이 아니라, 구이(九二)는 신하의 자리로서 모(母)의 일을 주관하는 것이 이것을 뜻하고, 육오(六五)는 임금의 자리로서 부(父)의 일을 주관하는 것이 이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뜻이 있는 자는 일을 마침내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요(堯)·순(舜)이 요·순이 된 까닭은, 요·순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이 이윤과 태공이 된 까닭은 태공과 이윤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니, 임금과 신하 사이에 각각 마땅히 뜻을 숭상할 따름입니다. 근자에 선비는 탐모(貪冒)한 뜻을 품고 사람들은 화복(禍福)의 설에 현혹되므로, 사대부(士大夫)의 뜻이 낮아져서 이욕(利欲)에 골몰하여, 염치(廉恥)를 차리는 것을 졸렬하다 하고 이익을 좇는 것을 능하다 하니, 뜻을 도탑게 하여 현혹되지 않고 염정(廉靜)을 스스로 지키는 자가 드뭅니다. 대저 인심은 욕심이 없으면 뜻이 바르고 일이 적은데, 뜻이 바르면 사물에 이끌릴 것이 없고 일이 적으면 법령도 또한 번거롭지 않습니다. 성상(聖上)께서 정일(精一)한 학문을 날로 더욱 강명(講明)하고, 위태하고 은미한 사이를 때로 더욱 살피시어, 더욱 그 뜻을 견고히 하고 조정(朝廷)에 모범을 보여 바로잡으시면, 상하의 뜻이 스스로 서로 본받아서 절의(節義)와 염치의 풍습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바야흐로 풍속(風俗)이 비루한 것이 바로 성담년(成聃年)이 말한 것과 같다. 이를테면 박인창(朴仁昌)·임보형(任甫衡)이 오명(汚名)을 정처(正妻)에게 가하여 버리었고, 또 혼인(婚姻)할 즈음에 모두 그 재물을 논하고 다시 염치의 마음이 없으니, 그 풍속을 바꾸는 길은 무엇에서 말미암을 것인가? 또 박인창(朴仁昌) 등의 일은 내가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 소치인데, 전일의 일은 어쩔 수 없거니와, 내 매우 부끄럽게 여긴다."
하였다. 영사(領事) 김질(金礩)이 말하기를,
"신 등이 어렸을 때에는 조사(朝士)가 조금만 죄를 범하여도 모두 수오(羞惡)하는 마음을 가졌고, 혼인에는 그 문지(門地)의 높고 낮음을 논하고 재물의 많고 적음을 논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재물만을 헤아릴 뿐이니, 풍속이 날로 비루하여져 구제하여서 그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풍속을 바로잡으려면, 오직 법을 쓰는 데에 있어 사사로움이 없게 하여, 비록 친하고 귀한이라도 범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는다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영사(領事) 윤자운(尹子雲)이 말하기를,
"옛사람이 이르기를, ‘천백 년을 쌓아도 넉넉하지 못하나, 하루에 무너뜨려도 남음이 있다’고 하였으니, 풍속(風俗)이 비루한 것은 하루아침에 형벌하여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위에 있는 사람이 몸소 모범을 보여서 이끌기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이제 성상(聖上)은 몸에 검소하게 입으시고 백성을 위하는 것을 먼저 하시나, 민간의 사치하는 습성이 그치지 않고, 가멸한 상인(商人)은 다투어 서로 사치하여 참람함이 한도가 없으니, 이런 풍속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지사(知事) 임원준(任元濬)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사관(四館)617) 의 관원이 요장(僚長)을 공경하고 한 위계(位階)마다 엄하여, 성균 박사(成均博士)는 전적(典籍)보다 한 위계의 차가 있을 뿐인데도 길에서 만나면 반드시 공경을 다하여 말에서 내리는 형상까지 하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아니하여, 아랫사람이 모두 윗사람을 능멸하여 업신여기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신이 남행(南行)618) 이었을 때에, 만약 정원(政院)의 패초(牌招)619) 가 있을 것 같으면 반드시 음식을 먹다 중지하고 곤두박질하여 이르렀는데, 이제는 한 번 불러서 오지 않고, 두 번 불러도 오지 않으며, 서너 번에 이르러 혹 아침에 부르면 저녁에 오거나 하루가 지나서 오는데, 제사(諸司)가 서로 본받습니다. 정원(政院)의 패초(牌招)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더구나 육조(六曹)의 패(牌)이겠습니까? 이 또한 풍속이 경박(輕薄)한 것입니다."
하였다. 김질(金礩)이 또 아뢰기를,
"신안선(申安善)의 일은 신이 다시 생각하여 보니, 적당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전일에 정승(政丞) 등의 의논을 따라서 처리하였는데, 이제 어찌하여 그렇게 말하는가?"
하였다. 김질(金礩)이 말하기를,
"신 등은 다만 봉사(奉祀)와 묘지기[墓直]는 6명[口]을 넘지 못하게 정하고, 손자에 미쳐서는 중지할 것을 아뢰었는데, 이제 영구히 봉사하게 하였으니, 이는 옳지 못합니다."
하고, 장령(掌令) 박효원(朴孝元)이 말하기를,
"이제 만약 법을 세우면, 무식한 무리가 노비(奴婢)에게 유혹되어 허물을 본받는 자가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하고, 윤자운(尹子雲)이 말하기를,
"만약 전지(傳旨)와 같이 무궁토록 봉사(奉祀)하면 사손(嗣孫)이 없는 자가 사손이 있는 자보다 나을 것입니다. 다만 묘지기[墓直]를 정하되 연수를 한정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중의(衆議)가 이와 같으니, 내가 어찌 고집하겠는가?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뢴 대로 하는 것이 옳겠다."
하고, 드디어 명하여서 먼저 내린 전지(傳旨)를 거두어 들이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81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6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신분-양반(兩班) / 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가족-친족(親族) / 가족-가산(家産)
- [註 617]사관(四館) : 조선조 때 성균관(成均館)·예문관(藝文館)·승문원(承文院)·교서관(校書館)의 통틀어 일컬음.
- [註 618]
남행(南行) : 음직(蔭職). 음직이란 과거를 치르지 않고 다만 조상의 혜택으로 벼슬하는 사람. 이를 또 백골 남행(白骨南行)이라고도 함.- [註 619]
패초(牌招) : 승지(承旨)가 왕명을 받고 신하를 부름. ‘명(命)’자를 쓴 주색(朱色) 패의 한 면에 부름을 받은 신하의 성명을 기입하여, 승정원의 하례(下隷)를 시켜 송달함.○御經筵。 講《易》, 至《蠱》之上九象曰: "不事王侯, 志可則也。" 檢討官成聃年啓曰: "獨非上九之志爲然, 九二之臣幹母之蠱, 以此志也, 六五之君幹父之蠱, 亦此志也。 故先儒曰: ‘有志者, 事竟成。’ 堯、舜之所以爲堯、舜者, 以其有堯、舜之志也, 伊尹、太公之所以爲伊尹、太公者, 以其有太公、伊尹之志也。 君臣之間, 各當尙志而已。 近者士懷貪冒之志, 人惑禍福之說, 士大夫之志卑下而汩於利欲, 以廉恥爲拙, 以趨利爲能, 篤志不惑ㆍ廉靜自守者鮮少。 大抵人心無慾則志正ㆍ事少, 志正則於事物無所牽, 事少則法令亦不煩矣。 聖上精一之學, 日益講明, 危微之間, 時益省察, 益堅其志, 表正朝廷, 則上下之志自相效則, 節義廉恥之風復興矣。" 上曰: "方今風俗之卑, 正如聃年所言。 如朴仁昌、任甫衡以汚名加於正妻而疎棄焉, 又如婚姻之際, 皆論其財, 無復廉恥之心, 其移風易俗之道何由? 且仁昌等事, 此予不能齋家之所致, 前日之事是已, 予甚慙焉!" 領事金礩曰: "臣等少時, 朝士少犯罪, 皆有羞惡之心, 婚姻論其門地之高卑, 不論財之多寡, 今則但計財耳, 風俗日卑, 不可救止也。 今欲正風俗, 惟在用法無私, 雖親貴有犯無宥, 則庶幾可矣。" 領事尹子雲曰: "古人云: ‘積之千百年而不足, 壞之一日而有餘。’ 風俗之卑, 非一朝刑罰所可治也, 惟在上之人躬行表率而已。 今聖上身服儉素爲百姓先, 然民間奢侈之習未殄, 至於富商大買爭相侈靡, 僭擬無度, 此等風俗, 不可不正也。" 知事任元濬曰: "往時四館之員敬僚長, 一位嚴於一位, 成均博士於典籍差一位, 而遇諸途, 必致敬作下馬狀, 今則不然, 下皆蔑上, 至爲無等。 且臣爲南行時, 若有政院之牌, 必輟食顚倒而至, 今則一召不來, 再召不來, 至于三四, 或朝召暮來, 或隔日而來, 諸司轉相則效。 政院之牌尙如此, 況六曹之牌乎? 此亦風俗之不古也。" 礩又啓曰: "申安善之事, 臣更思之, 似有未便。" 上曰: "前日從政丞等議而處之, 今何言如是?" 礩曰: "臣等但啓 ‘定奉祀墓直不過六口, 延及於孫而止。’ 今乃令永永奉祀, 是不可也。" 掌令朴孝元曰: "今若立法, 則無識之徒, 爲奴婢所誘, 効尤者必多矣。" 子雲曰: "若如傳旨無窮奉祀, 則無嗣者勝於有嗣者矣。 但當定墓直, 限年數而已。" 上曰: "衆議如此, 予何固執? 其依司憲府之啓可也。" 遂命收前下傳旨。
- 【태백산사고본】 12책 81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6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신분-양반(兩班) / 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가족-친족(親族) / 가족-가산(家産)
- [註 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