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 국왕이 내원리주 등을 보내어 글과 토산물을 보내다
유구 국왕(琉球國王) 상덕(尙德)이 내원리주(內原里主) 등을 보내어 내빙(來聘)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순토(舜土)598) 는 부처님의 자손이시니, 백성은 해를 사모하듯이 따르고, 외방에서는 비를 내리는 구름처럼 바라며, 지극히 간절하게 빕니다. 대저 유구(琉球)라는 나라는 만리 밖의 더운 남방의 미개한 지방에 있어 붕세(鵬蛻)와 경환(鯨桓)의 소굴이므로, 대국(大國)과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수개월에 글과 폐백이 미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화(成化) 6년599) 에 마침 일본에서 사신이 가는 편에 냉천진(冷泉津)의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신중(信重)에게 청하여 전하에게 글을 올렸더니, 멀리서 온 사람을 위로하여 주시고 총명(寵命)이 분수에 넘치니, 지금까지 덕음(德音)의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누방(陋邦)의 가신(家臣) 내원리주(內原里主) 한 사람을 신사(信使)로 삼고 부비(副稗)는 신우위문위(新右衛門尉)로 하여 우선 모양만 갖추어 보냅니다. 관원 여럿을 보내야 하겠으나, 근자에 살주(薩州)의 소란이 봉기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거니와, 살주(薩州)는 유구에서 가는 중도에 당하여 장사하는 선박의 왕래가 끊임없이 서로 잇는 요긴한 나루이기는 하나, 남은 재앙이 종횡(縱橫)하여 바닷가가 편안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사자만을 외롭게 보내고 수행하는 자를 많이 딸려 보내지 않습니다. 또한 이 먼저 우리에게 갈라 준 인전(印篆)의 반쪽을 전하에게 두시고 앞으로 올 사자(使者)에게 주어 왕래하는 신표로 삼게 하셨거니와, 이제 두 사자가 그 반쪽 인전을 가져가서 전하를 뵙기를 청할 것인데, 그것이 들어맞는 부절(符節)입니다. 또 지난날에 내려주신 진귀한 산물은 낱낱이 가져온 품목을 기록하여 이번에는 가는 사자편에 부치니, 멀리 베푸신 은혜가 누방(陋邦)에 미친 것을 살피소서. 또 누방이 대비로사나(大毘盧舍那)에 있는 보전(寶殿)한 집을 창건하여 선황(先皇)의 명복을 돕고 겸하여 성궁(聖躬)의 만안(萬安)을 보우(保祐)하는 일을 아뢰고, 따라서 사호(寺號)를 전하에게 봉청(奉請)하였더니, 특별히 명신(明信)한 전하의 어필(御筆)을 내려 주시어 인방[楣]에 걸었는데, 자의(字義)가 병연(炳然)하여 미천한 곳의 광화(光華)가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운당(雲堂)600) 의 고사(庫司)601) 와 아울러 법당(法堂)의 방장(方丈)602) 이 온전히 다 갖추지 못하였음은 대개 비용이 대단히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에 매우 염치 없기는 하나, 대국(大國)에서 재물을 얻어 우리 원력(願力)을 성취하려 하니, 동전(銅錢)·면주(綿紬)·목면(木棉) 등 1만 민(緡)603) 정도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공역을 완전히 마치는 것은 기일을 정하여 볼 수 있습니다. 대저 설교(說敎)하는 것은 갈래가 많으나, 착한 데로 나아가는 것은 궤도가 하나이므로, 부처의 도(道)에 의지하면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우치는 각행(覺行)이 원만할 것이니, 전하께서 상제(常制)에 얽매이지 말고 그 베푸심에 인색하지 않으신다면, 이 나라와 다른 나라가 한 발자국의 막힘도 없이 다 대왕의 대원 각해(大圓覺海)가 되어 짠맛을 함께 볼 것입니다. 만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찮은 토산물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추어 보냅니다."
하였고, 그 별폭에는, 단목(丹木) 1만 근(斤), 납자(臘子) 5천 근, 호초(胡椒) 1천 근, 정향(丁香) 3백 근, 향(香) 2백 근, 자단(紫檀) 1백 근, 단향(檀香) 1백 근, 목향(木香) 1백 근, 감초(甘草) 1백 근, 대복자(大腹子) 50근, 사탕[砂糖] 1백 근, 수우각(水牛角) 1백 본(本), 천축주옹(天竺酒甕) 2개(箇), 등(藤) 2천 본(本), 태피(鮐皮) 2백 매(枚), 종수기청자(種樹器靑磁) 1대(對), 청자 향로(靑磁香爐) 1개(箇), 공작우(孔雀羽) 2백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8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62면
- 【분류】외교-유구(琉球)
- [註 598]순토(舜土) : 조선(朝鮮)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조선 국왕을 가리킴.
- [註 599]
성화(成化) 6년 : 1470 성종 원년.- [註 600]
운당(雲堂) : 승당(僧堂).- [註 601]
고사(庫司) : 선사(禪寺)의 도사(都寺:절의 모든 일을 감독하는 사람)·감사(監寺:절의 사무를 맡아 보는 사람)·부사(副寺)의 삼역(三役)의 총칭.- [註 602]
방장(方丈) : 화상(和尙)·국사(國師)·주실(籌室) 등의 높은 중들이 거처하는 처소. 유마 거사(維摩居士)가 일장 사방(一丈四方)의 작은 방에서 수행(修行)한 데에서 유래되어 선실(禪室)을 방장이라고 이르게 되었음.- [註 603]
민(緡) : 1천 전(錢).○辛丑/琉球國王尙德遣內原里主等來騁。 其書曰:
宓惟舜土躬佛天子裔, 下民卽之如日, 外方望之如雲, 至懇至禱。 夫球陽之爲國, 居萬里之炎荒, 爲鵬蛻鯨桓之淵, 是以與大國南北阻絶, 非時箋ㆍ月襞之所曁也。 由是成化六年, 適假道於日域, 專倩泠泉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信重以奉書, 殿下忝慰遠來, 寵命逾分, 于今不忘德音之惠。 申差遣陋邦家臣內原里主一介以爲信使, 副裨新右衛門尉而爲先容。 雖可遣官員數輩, 頃者薩州騷亂蜂起, 干戈未弭, 薩之於球陽, 當其半途, 而商舶絡繹相接之要津, 然餘孽縱橫, 海澨罔寧, 是以馳單介而除煩冗而已。 抑亦先是, 割我印篆之半片投置于殿下, 以爲將來使者之見紹, 爲往來之信。 今也二件者, 齎其半篆以干謁于殿下, 其契合符節也。 加之往日所賜之珍産, 件件齎品記錄以付于今之伻者, 覈遠惠之達於陋邦焉。 且告菆爾陋邦, 創建大(昆)〔毘〕 盧舍那居在之寶殿一宇, 以資助先皇冥福, 兼保祐聖躬萬安, 仍而奉請寺號於殿下。 特賜明信之宸奎, 揭之楣間, 字義炳然, 側陋之光華, 蔑以加焉。 雖然雲堂庫司幷法堂方丈未全備盡, 蓋以費用浩繁也。 於是雖慙汗不少, 募于大國, 以欲成就我願力, 切望頒銅錢ㆍ緜紬ㆍ木綿等一萬緍之分。 然則訖工之全, 刻日可觀矣。 凡設敎多岐, 趨善一軌, 繇之金仙氏之道, 自覺覺他覺行圓滿也。 殿下不拘常制, 不嗇其施, 則此土他土, 不隔跬步, 咸是大王之大圓覺海, 同一醎味者也。 萬福萬福。 菲瑣土宜, 具如別幅, 采甄別幅: 丹木一萬斤, 臘子五千斤, 胡椒千斤, 丁香三百斤, 香二百斤, 紫檀百斤, 檀香百斤, 木香百斤, 甘草百斤, 大腹子五十斤, 砂糖百斤, 水牛角百本, 天竺酒甕二箇, 藤二千本, 鮐皮二百枚, 種樹器靑磁一對, 靑磁香爐一箇, 孔雀羽二百。
- 【태백산사고본】 12책 8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62면
- 【분류】외교-유구(琉球)
- [註 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