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궁의 친잠례에 백관들이 전을 올리고 하례하자, 농상에 힘쓸 것을 하교하다
중궁(中宮)이 내외(內外)의 명부(命婦)를 거느리고 채상단(採桑壇)에 나아가 친잠(親蠶)433) 하는 의식(儀式)을 행했다.
백관(百官)들이 전(箋)을 올리고 하례하였는데, 그 전(箋)에 이르기를,
"건원(乾元)434) 이 일을 비롯하니 이미 농사를 권장하는 큰 규모를 열었고, 곤덕(坤德)435) 이 이를 순응하여 또한 누에치고 길쌈하는 성대한 의식을 행하였네. 기쁨이 조정과 민간에 퍼지고 경사가 신린(臣隣)에 가득하네. 간절히 생각건대, 농사일과 누에 기르는 것은 사실 왕정(王政)에 관계됩니다. 《대경(戴經)》436) 에는 병뢰(秉耒)437) 의 법을 실었고, 주아(周雅)438) 에는 채번(采繁)의 시(詩)를 읊었습니다. 이에 검소한 것을 숭상하고 힘써 일에 부지런하여 근본을 힘쓰고 말리(末利)439) 를 억제함을 보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지극히 인(仁)함은 만물을 기르고, 두터운 덕은 살리기를 좋아하네. 한번 밭을 갈아 백성을 인도하니 이미 자성(粢盛)440) 의 이바지가 깨끗하고 삼분(三盆)441) 하여 아랫사람을 거느리니 어찌 의상(衣裳)의 근원을 돈독히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욕례(縟禮)442) 를 행하는 것은 진실로 나라가 문명한 날에 속합니다. 신 등이 외람되이 태부(台府)443) 에 있게 되어 아름다운 의식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현(玄)과 황(黃)으로, 원컨대, 졸세(卒歲)의 시444) 를 노래하소서. 치(絺)와 격(綌)으로 감히 무역(無斁)의 장445) 을 반복하겠습니다."
하였다. 하례를 마치자 하교하기를,
"옛일을 상고해 보니, 왕자(王者)가 친경(親耕)446) 해서 먼저 농사를 힘쓰게 하고 후비(后妃)가 친잠(親蠶)해서 여공(女工)447) 을 권하였다. 그 적전(籍田)448) 과 공상(公桑)449) 의 제도는 경사(經史)에 실려 있어 밝게 상고할 수 있다. 대개 백성의 근본은 의식(衣食)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식의 근원은 농상(農桑)에 있다. 그러나 추울 때 갈고 더울 때는 김매는 것은 농사일의 심한 괴로움이고 가시를 뚫고 들어가서 뽕을 따는 것은 누에치는 수고로움이 더욱 심하다. 이러므로 근본에 힘쓰는 자는 적고 손을 놀리는 자가 많다. 이래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리며 나라에서는 손실이 있었다. 역대(歷代)의 임금들이 농상(農桑)이 급함을 알고 백성의 일에 힘써서 효험이 나타나도록 기대하지 아니함이 아니지만, 그러나 백성에게 농사일을 권장하는 것은 겨우 문서만 갖추었을 뿐 실상은 행하지 않았다. 내가 하찮은 덕(德)으로 왕위를 이어받아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다스리기를 힘써서 백성이 잘 살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멀리 철왕(哲王)의 훌륭한 자취를 탐구하여 내 몸소 행하는 데에 기초를 두지 아니함이 없었다. 이에 성화(成化) 10년450) 맹춘(孟春)451) 어느 날에 동교(東郊)에 나아가 몸소 뇌사(耒耜)452) 를 잡아 옛 방법을 강구(講求)하였다. 농(農)은 식량을 넉넉히 하는 길이고 상(桑)은 옷을 넉넉히 하는 근본이다. 그래서 예관(禮官)에게 명하여 옛 법도를 상고하고 당시의 형편에 맞도록 참작하여 그 의식을 만들게 하고, 왕비(王妃)는 또 금년 3월 14일(신사)에 내외 명부(命婦)를 거느리고 다시 친잠(親蠶)의 예(禮)를 행했다. 아! 옛날 희실(姬室)453) 이 성할 때에 주공(周公)이 빈풍(豳風)454) 의 시(詩)를 올렸다. 거기에는 무릇 천도(天道)의 변화에 따라 인사(人事)는 조만(早晩)이 있는데 심고 수확(收穫)하는 어려움과 누에를 치고 현(玄)·황(黃)을 만드는 곡절(曲折)이 섬세(纖細)하게 모두 갖추어졌는데, 이는 인군(人君) 된 자로 하여금 백성이 의지할 바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즐겨 듣고 또 몸소 행하였으니, 백성이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 공역(功役)에 나아가기를 즐겨하여 농상(農桑)에 그 힘을 다할 수 있고, 따라서 나라에는 그 재물이 넉넉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어느 집에나 의식이 풍족하여 태평의 교화(敎化)를 이룰 것이다. 그 일을 감사(監司)로 하여금 수령(守令)에게 반포하고 수령은 촌항(村巷)에 전하게 하여, 필부(匹夫)와 필부(匹婦)로 하여금 모두 스스로 깊이 갈고 자주 김매는 일에 힘을 다하여 봄에 경작하는 절후를 어기지 않게 하라. 누에를 번성하게 길러서 점차 옷과 솜이 넉넉하게 되고 항산(恒産)이 풍족하게 되면, 예악(禮樂)을 일으킬 수 있어 백성(百姓)이 인(仁)하고 수(壽)하는 지경에 오를 것이고 국가(國家)는 지치(至治)의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조정이나 민간에 효유(曉諭)하여 모두 들어서 알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7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39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농업-양잠(養蠶) / 농업-권농(勸農) / 어문학-문학(文學)
- [註 433]친잠(親蠶) : 잠업(蠶業)을 장려하기 위하여 왕비가 몸소 누에를 기르는 일.
- [註 434]
건원(乾元) : 임금을 뜻함.- [註 435]
곤덕(坤德) : 왕비를 뜻함.- [註 436]
《대경(戴經)》 : 《예기(禮記)》.- [註 437]
병뢰(秉耒) : 쟁기를 잡음.- [註 438]
주아(周雅) : 《시경》의 주남(周南).- [註 439]
말리(末利) : 상공업.- [註 440]
자성(粢盛) : 제사에 쓰는 서직(黍稷).- [註 441]
삼분(三盆) : 삼분수(三盆手)를 줄인 말로, 고치[繭]를 동이[盆]에 담아 손으로 세 차례 적셔서 세 번 실을 뽑는 일.- [註 442]
욕례(縟禮) : 번잡한 예식.- [註 443]
태부(台府) : 의정부.- [註 444]
졸세(卒歲)의 시 : 여기서 말한 현(玄)은 검붉은 비단, 황(黃)은 누런 비단을 말함인데, 《시경(詩經)》 빈풍(豳風)에, ‘현황(玄黃)을 만들어 공자(公子)옷을 만들어서 겨울을 지내게 하겠네.’라고 한 데에서 인용이 된 말.- [註 445]
무역(無斁)의 장 : 치(絺)는 가는 갈포, 격(綌)은 굵은 갈포로, 《시경(詩經)》 갈담(葛覃)에서 후비(后妃)가 갈포로 옷을 지어 입은 것을 노래한 것을 인용한 것임.- [註 446]
친경(親耕) : 임금이 몸소 갈고 심음.- [註 447]
여공(女工) : 길쌈과 바느질.- [註 448]
적전(籍田) : 임금이 친히 가는 전지(田地).- [註 449]
공상(公桑) : 왕후가 누에 키우는 뽕밭.- [註 450]
성화(成化) 10년 : 1474 성종 5년.- [註 451]
맹춘(孟春) : 정월.- [註 452]
○辛巳/中宮率內外命婦, 詣採桑壇, 親蠶如儀。 百官進箋陳賀, 其箋曰:
乾元資始, 旣穿耕助之宏規, 坤德順承, 又稱蠶繅之盛典。 懽騰朝野, 慶洽臣隣。 切念農桑, 實關王政。 故《戴經》載秉耒之制, 而《周雅》賦采蘩之詩。 玆崇儉而服勤, 示務本而抑末。 恭惟至仁育物, 厚德好生。 一墢導民, 旣潔粢盛之供, 三盆率下, 盍敦衣裳之源? 故此縟禮之行, 允屬彌文之日。 臣等忝列台府, 獲覩徽儀。 載玄載黃, 願賡卒歲之什。 爲絺爲綌, 敢復無斁之章。
旣賀, 下敎曰: "若稽古昔, 王者親耕以爲農先, 后妃親蠶以勸女功。 其籍田、公桑之制, 載諸經史, 昭然可考。 蓋民生之本, 莫大於衣食, 而衣食之原, 在於農桑。 然而氷耕火耘, 農務之苦爲甚, 穿棘條桑, 蠶績之勞尤劇。 由是力本者少, 遊手者衆。 致斯民罹凍餒, 國有捐瘠。 歷代之君非不知農桑之爲急, 勵志民工, 期臻顯效, 然其所以勸課者, 苟具文簿, 罔底于實。 予以否德, 纉承丕緖, 夙夜圖理, 思致富庶。 緬惟哲王之令躅, 靡不基於躬行。 乃於成化十年孟春有日, 戾于東郊, 躬秉耒耜, 以講故典。 夫農爲足食之道, 桑乃豐衣之本。 爰命禮官, 參稽舊章, 酌以時宜, 撰就其儀。 王妃又於今年三月十四日辛巳, 率內外命婦, 復行親蠶之禮。 於戲! 昔(熙)〔姬〕 室盛時, 周公進《豳風》之詩。 凡天道變化, 人事早晩, 稼穡收穫之艱難, 蠶繰玄黃之曲折, 纖悉備至, 欲使爲君人者, 知小人之攸依。 今予旣樂聞之, 又親行之, 庶幾民有觀感, 樂於赴功, 農桑得以盡其力, 邦國得以裕其財, 家給人足, 以致時雍之化。 其令監司布於守令, 守令傳於村巷, 使匹夫匹婦, 皆獲自盡, 深耕易耨, 不違東作之候。 繁育蠶蛾, 漸至衣纊之贍, 恒産胥足, 禮樂可興, 躋兆姓於仁壽之域, 昇國家於至治之隆。 故諭中外, 咸使聞知。"
- 【태백산사고본】 12책 7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39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농업-양잠(養蠶) / 농업-권농(勸農) / 어문학-문학(文學)
- [註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