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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77권, 성종 8년 윤2월 27일 을축 4번째기사 1477년 명 성화(成化) 13년

우승지 임사홍·예조 참판 이극돈이 친잠의를 참정하여 아뢰다

우승지(右承旨) 임사홍(任士洪)이 예조 참판(禮曹參判) 이극돈(李克墩)과 더불어 친잠의(親蠶儀)를 참정(參定)하여 아뢰었는데, 그 의식은 이러하였다.

"예조(禮曹)에서 계춘(季春)의 길사일(吉巳日)을 택하여 내외(內外)에 선포(宣布)하고 통섭(統攝)391) 하여 각기 그 직(職)에 이바지하게 한다. 〈친잠일〉 하루 전에 액정서(掖庭署)에서 유악(帷幄)을 채상단(採桑壇) 밖에 적당히 설치하되, 사면(四面)에 모두 문(門)이 있게 하고, 왕비(王妃)의 악차(幄次)를 단유(壇壝)의 동문(東門) 안의 길 북쪽에 남향(南向)하여 설치하고, 내명부(內命婦)의 막차(幕次)를 〈왕비의〉 악차 뒤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외명부(外命婦)의 막차를 〈왕비의〉 악차 남쪽 단유 바깥 서쪽에 동향(東向)하여 설치한다. 【지형의 형편에 따른다.】 〈친잠일(親蠶日)〉 그날에, 상침(尙寢)이 왕비의 채상 욕위(採桑褥位)를 단상(壇上)에 설치하되, 조금 동쪽으로 동향하여 설치하고, 내명부(內命婦)의 채상위(採桑位)를 단하(壇下)에 설치하되, 동북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외명부(外命婦)의 채상위를 단하의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하되, 모두 자리[位]를 달리 하여 겹줄[重行]로 하고, 서쪽을 위[上]로 한다. 【내·외명부(內外命婦) 1품이 각각 2인, 2,3품이 각각 2인이다.】 또 수종(隨從)하여 채상(採桑)할 내명부의 자리[位]를 내명부의 동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수종하여 채상할〉 외명부의 자리를 외명부의 동쪽에 북향하여 설치하되, 모두 자리를 달리 하여 겹줄로 하고, 서쪽을 위로 하며, 왕비의 갈고리[鉤]와 광주리[筐]를 잡을 자의 자리를 내명부의 서쪽에 설치하되, 조금 남쪽으로 하여 서쪽을 위로 하고, 【상공(尙功)은 구(鉤)를 잡고, 전제(典製)는 광(筐)을 잡는다.】 내·외명부의 갈고리와 광주리를 잡을 자는 각각 그 뒤에 자리하게 한다. 【여사(女史) 1인은 구(鉤)를 잡고, 1인은 광(筐)을 잡는다.】 그리고 또 단상(壇上)에 왕비의 갈고리와 광주리를 잡을 자의 자리를 왕비의 채상위(採桑位) 북쪽에 조금 동쪽으로 하여 설치하되, 남향하게 하여 서쪽을 위로하고, 여령(女伶)의 자리를 단(壇) 남쪽에 동쪽으로 가까이 하여 북향하게 한다. 병조(兵曹)에서 의장(儀仗)을 공신문(拱辰門) 밖에 진열하고,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이 연(輦)을 문밖에 베풀어 놓고, 여(輿)를 내전(內殿)의 문밖에 올린다. 〈그날〉 미명(未明)에 외명부로서 마땅히 채상(採桑)할 자는 각각 여시(女侍)로 하여금 갈고리와 광주리를 올리게 하여 가마에 싣고 먼저 친잠소(親蠶所)에 나아가 상전(尙傳)에게 주어 〈상전이 이를〉 집구자(執鉤者)·집광자(執筐者)에게 주도록 하고, 수종하여 채상할 외명부도 또한 먼저 1각(刻) 전에 나아간다. 내명부는 각각 그 복색(服色)을 입고, 전빈(典賓)이 내명부를 인도하여 모두 전정(殿庭)에 나아가 겹줄로 서향하되, 북쪽을 위로 하고, 상의(尙儀)가 부복(俯伏)하고 꿇어앉아 ‘중엄(中嚴)392) ’을 계청(啓請)한다. 상궁(尙宮) 이하가 각각 예복(禮服)을 갖추며, 상기(尙記)가 보(寶)를 받들고 모두 내합(內閤)에 나아가 대기[伺候]하고, 상의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외판(外辦)393) ’을 아뢴다. 왕비가 국의(鞠衣)를 입고 수식(首飾)을 가(加)하고 여(輿)를 타고 나오면, 산·선(繖扇)의 시위(侍衛)를 보통 때와 같이 하고 내명부가 수행(隨行)하는데, 상궁이 앞에서 인도하여 공신문 밖에 이르면 부복하고 꿇어앉아 ‘여(輿)에서 내려 연(輦)을 타라.’고 계청한다. 왕비가 여에서 내려 연을 타면, 집사자(執事者)가 갈고리와 광주리를 올려 연에 싣고, 행유(行帷)로써 가린다. 상의(尙儀)가 연앞에 나아가 부복하고 계청하기를, ‘어가(御駕)가 진발(進發)하라.’고 하여, 어가가 움직이면, 고취(鼓吹)가 진작(振作)하고 내명부가 가마[轎]를 타고 따르는데, 마땅히 채상(採桑)할 여시(女侍)가 갈고리와 광주리를 올려 가마에 싣고, 친잠소(親蠶所)의 단(壇) 동문(東門) 밖에 이르면, 상의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연에서 내려 악차(幄次)로 들어가라.’고 계청한다. 왕비가 연에서 내리면, 상궁(尙宮)이 앞에서 인도하여 악차로 들어가고, 의장(儀仗)은 문밖에서 멈추며, 근시자(近侍者)는 따라 들어가는데, 근시가 왕비의 갈고리와 광주리를 집구자(執鉤者)와 집광자(執筐者)에게 준다. 내명부는 막차(幕次)로 들어가고, 여시(女侍)가 갈고리와 광주리를 상전(尙傳)에게 주어서, 집구자와 집광자에게 준다. 〈친잠할〉 시각이 되면, 전빈(典賓)이 내·외 명부로서 마땅히 채상할 자와 수종하여 채상할 자를 인도하여 모두 단하(壇下)의 자리[位]로 나아가고, 여러 집구자·집광자가 각각 자리로 나아간다. 상의(尙儀)가 부복하고 ‘행례(行禮)하라.’고 계청하면, 왕비가 악차에서 나오고, 음악이 연주된다. 상궁(尙宮)이 〈왕비를〉 앞에서 인도하여 단(壇)에 나아가 남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채상위(採桑位)에 나아가 동향하여 서면, 음악이 그친다. 집구자·집광자가 북쪽 계단으로 올라서 자리[位]로 나아가고, 다음에 전빈(典賓)이 상공(尙功)·전제(典製)를 인도하여 채상위 앞에 나아가 서향하여, 갈고리를 받들어 올린다. 〈그러면〉 왕비가 갈고리를 받아 뽕을 채취하고, 전제가 광주리를 받들어 올려서 뽕을 받는데, 왕비는 뽕을 채취하기를 다섯 가지[條]에서 그치고, 갈고리를 상공에게 주면, 상공이 갈고리를 받고, 전제가 광주리를 받들고 함께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단하(壇下)의 자리[位]이다.】 처음에 왕비가 뽕을 채취하면, 여사(女史)가 각각 갈고리를 마땅히 채상할 내명부·외명부에게 주고, 왕비가 뽕을 채취하기를 마치면, 전빈(典賓)이 내명부·외명부를 인도하여 차례로 뽕을 채취하고, 집광자가 이를 받는데, 내·외명부 1품은 각각 일곱 가지를 채취하고, 2,3품은 각각 아홉 가지를 채취한다. 〈이를 마치면〉 여사(女史)가 갈고리를 받아 집광자와 더불어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오고, 전빈이 각각 내명부·외명부를 인도하여 제자리로 돌아온다. 상의(尙儀)가 왕비 앞에 나아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예(禮)가 끝났다.’고 아뢰면, 음악이 연주된다. 상궁이 왕비를 인도하여 남쪽 계단으로 내려와 악차로 돌아온다. 처음에 왕비가 단(壇)을 내려오면, 전빈이 내명부를 인도하여 잠실(蠶室)로 나아가고, 【처음에 마땅히 채상한 내명부 1원(員)이 먼저 잠실로 나아간다.】 상공이 집구자·집광자를 거느리고 차례로 따라 잠실에 이른다. 상공이 뽕을 잠모(蠶母)에게 주고, 잠모가 뽕을 받아 실처럼 썰어서 내명부에게 주어 누에에게 뿌려 한 박(薄)394) 을 먹이고 나면 전빈이 내명부·외명부를 인도하여 각각 막차(幕次)로 돌아간다. 왕비의 환궁(還宮)은 올 때의 의식과 같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77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35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농업-양잠(養蠶)

  • [註 391]
    통섭(統攝) : 도맡아 다스림.
  • [註 392]
    중엄(中嚴) : 임금이나 왕비의 거둥 및 행군(行軍)이 있을 때 준비 태세를 갖추게 하기 위하여 북을 쳐서 알리는 신호. 초엄(初嚴)에는 대오(隊伍)를 정돈하고, 중엄(中嚴)에는 병기를 갖추고, 삼엄(三嚴)에 행진(行陣)함.
  • [註 393]
    외판(外辦) : 밖의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말함.
  • [註 394]
    박(薄) : 누에를 치는데 쓰는 채반. 곧 잠박(蠶箔).

○右承旨任士洪與禮曹參判李克墩參定親蠶儀以啓: "禮曹擇季春吉巳, 宣攝內外, 各供其職。 前一日, 掖庭署量施帷幄於採桑壇外, 四面皆門, 設王妃幄次於壇壝東門之內道北南向, 內命婦次於幄次之後南向, 外命婦次於幄次之南壝外西東向。 【隨地。】 其日, 尙寢設王妃採桑褥位於壇上少東東向, 設內命婦採桑位於壇下東北南向, 外命婦採桑位於壇下東南北向, 俱異位重行, 西上。 【內外命婦一品各二人, 二三品各二人。】 又設從採桑內命婦位於內命婦之東南向, 外(前)〔命〕 婦位於外命婦之東北向, 俱異位重行西上。 設執王妃鉤筐者位於內命婦之西少南西上。 【尙功執鉤, 典製執筐。】 內外命婦鉤筐者, 各位於後。 【女史一人執鉤, 一人執筐。】 又於壇上設執王妃鉤筐位於王妃採桑位之北稍東南向西上, 女伶位於壇南近東北向。 兵曹陳儀仗於拱辰門外, 司僕寺副正陳輦於門外, 進輿於內殿門外。 未明, 外命婦應採桑者, 各令女侍進鉤筐, 載之轎, 先詣親蠶所, 授尙傳, 以授執鉤筐者, 從採桑外命婦亦先詣, 前一刻。 內命婦各服其服, 典賓引內命婦, 俱詣殿庭, 重行西向, 以北爲上, 尙儀俯伏跪, 啓請: ‘中嚴’, 尙宮以下各具禮服, 尙記捧寶, 俱詣內閤伺候, 尙儀俯伏跪, 啓: ‘外辦。’ 王妃服鞠衣, 加首飾, 乘輿以出, 繖扇侍衛如常, 內命婦隨行, 尙宮前導, 至拱辰門外, 俯伏跪, 啓請: ‘降輿乘輦。’ 王妃降輿乘輦, 執事者進鉤筐, 載之輦, 障以行帷。 尙儀進當輦前俯伏, 啓請: ‘駕進發’, 駕動皷吹振作, 內命婦乘轎以從, 應採桑女侍進鉤筐, 載之轎, 至親蠶所壇東門外, 尙儀俯伏跪, 啓請: ‘降輦入幄次。’ 王妃降輦, 尙宮導以入, 仗儀止於門外, 近侍者從之入, 近侍以王妃鉤筐, 授執鉤筐者。 內命婦入幕次, 女侍以鉤筐授尙傳, 以授執鉤筐者。 時至, 典賓引內外命婦、應採桑者及從採桑者, 俱就壇下位。 諸執鉤筐者, 各就位, 尙儀俯伏, 啓請: ‘行禮’, 王妃出次, 樂作。 尙宮前導詣壇, 升自南陛, 就採桑位, 東向立, 樂止。 執鉤筐者, 升自北陛, 就位次, 典賓引尙功: ‘典製’, 詣採桑位前西向, 奉鉤以進。 王妃受鉤採桑, 典製奉筐進以受桑, 王妃採桑五條止, 以鉤授尙功, 尙功受鉤, 典製奉筐, 俱退復位。 【壇下位】 初王妃採桑, 女史各以鉤授應採桑內外命婦, 王妃採桑訖, 典賓引內外命婦, 以次採桑, 執筐者受之, 內外命婦一品, 各採七條, 二品、三品, 各採九條。 女史受鉤與執筐者退復位, 典賓各引內、外命婦, 退復位。 尙儀詣王妃前, 俯伏跪, 啓: ‘禮畢’, 樂作。 尙宮導王妃, 降自南陛, 還幄次。 初王妃降壇, 典賓引內命婦詣蠶室。 【初,以應採桑內命婦一員, 先詣蠶室。】 尙功帥執鉤筐者, 以次從至蠶室。 尙功以桑授蠶母, 蠶母受桑縷切之, 授內命婦, 食蠶灑一簿訖, 典賓引內外命婦, 各還次。 王妃還宮如來儀。"


  • 【태백산사고본】 12책 77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35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농업-양잠(養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