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훈 질정관 김석원이 태일성 천궁에 관한 문견 사목을 올리다
한훈 질정관(漢訓質正官) 김석원(金錫元)이 문견 사목(聞見事目)을 올려 말하기를,
"태일성(太一星)이 천궁(遷宮)한 일을 중국[中朝]의 도사(道士)에게 물었더니, 모두 ‘모른다.’고 대답하므로, 흠천감(欽天監)329) 관원(官員) 이순(李純)을 만나기를 청하여 묻기를, ‘《태일국서(太一局書)》에 이르기를, 「간방(艮方)은 요동(遼東)이 되고, 손방(巽方)은 오(吳)가 되고, 곤방(坤方)은 촉(蜀)이 되고, 건방(乾方)은 서하(西河)가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한 바 방위(方位)는 낙양(洛陽)을 천지(天地)의 중심으로 하여 말한 것이오? 〈아니면〉 연도(燕都)로써 말한 것이오?’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연도를 거점(據點)으로 하여 요동이 간방의 분야(分野)가 됨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1. ‘지금 현재 태일(太一)이 무슨 방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오(吳) 월(越)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1. ‘태일이 건방(乾方)에서부터 간방(艮方), 〈간방에서〉 손방(巽方), 손방에서 곤방(坤方), 곤방에서 건방(乾方), 건방에서 중궁(中宮)으로, 매궁(每宮)마다 45년 동안 머물다가 옮기는데, 위의 태일이 44년 동안 머물다가 45년이 되는 초(初)에 옮기는가? 〈아니면〉 45년 동안 머물다가 46년이 되는 초에 옮기는가?’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모른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천문(天文)의 누설(漏洩)은 죄(罪)가 중전(重典)에 있어서, 금의위(錦衣衛)330) 에서 종적(蹤迹)을 찾을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뒤에 〈다시〉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더불어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정승(政丞)을 지낸 이와 관상감(觀象監)·천문학(天文學) 제조(提調)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니, 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조석문(曺錫文)·김질(金礩)·서거정(徐居正)은 의논하기를,
"태일전(太一殿)은 건방(乾方)에서부터 간방(艮方)으로 옮기고, 간방에서부터 손방(巽方)으로 옮기는데, 우리 나라에는 방위(方位)를 정한 문적(文籍)이 없고, 중국에서도 또한 얻어듣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지금 〈태일전이〉 곤방(坤方)으로 옮겼으니, 곤방을 가장 적의(適宜)하게 먼저 정하고, 관상감(觀象監)으로 하여금 방소(方所)를 정하게 한 뒤에 제의(祭儀)는 한결같이 의성(義城)의 예(例)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였다. 이 앞서 전 대구 부사(大丘府使) 최호원(崔灝元)이 상서하기를,
"왕년(往年)에 일찍이 태일(太一)의 예습(隷習)의 명령을 받았었으나, 이내 다시 혁파하여 없애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온오(蘊奧)331) 한 경지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어도 대충 그 입문[閫閾]에 관한 것을 섭렵(涉躐)하였습니다. 오복(五福)의 태일(太一)은 인간(人間)의 오복(五福)의 일을 총관(總管)하고, 세상을 어루만져 함께 변화시키니, 사전(祀典)의 예(禮)를 중(重)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신(神)은 항상 9궁(九宮)을 따라 순환(循環)하며 이전(移轉)하는데, 매궁(每宮)마다 45년 동안 머뭅니다. 지난 선덕갑인년332) 에 손방(巽方)으로 옮겨서, 경상도의 의성현(義城縣)에 사당[廟]을 짓고 봉사(奉祀)한 지 지금 43년이 되었으니, 무술년333) 이 되면 궁수(宮數)가 이미 차서 마땅히 곤궁(坤宮)으로 옮길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관상감(觀象監) 관리(官吏)에게 말하기를, ‘태일이 옮길 곳은 마땅히 곤궁인데, 어느 고을 무슨 지방으로 정했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강화(江華)의 마니산(摩尼山)으로 추정(推定)하였다.’고 하므로, 신이 다시 힐난(詰難)하기를, ‘마니산이 곤방(坤方)이 아닌데, 어찌하여 추정하였느냐?’고 하니, 또 대답하기를, ‘비록 정방의 곤방[正坤]은 아니지만, 실은 이곳이 명산(名山)이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태일이 이미 방위(方位)를 따라 천전(遷轉)하는데, 어찌 명산에 구애되어 〈방위를〉 옳지 못한 곳에 설치하겠습니까? 이는 근거 없는 불경지설(不經之設)334) 이 분명합니다. 산림(山林)의 청결(淸潔)한 곳이 곧 신(神)을 모시는 장소가 될 뿐인데, 어찌 반드시 태산(太山)과 교악(喬嶽)335) 을 구한 뒤에야 태일의 신을 모실 수 있겠습니까? 〈태일전(太一殿)을〉 옮기면서 방위를 가리지 않는다면, 옮기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태일의 신은 일을 따라 천전하고, 또 정수(定數)가 있으니, 어찌 사지(私智)336) 로써 경영(經營)할 수 있으며, 옳지 않은 방위에 모실 수 있겠습니까? 신은 가만히 생각건대, 마니산은 경성(京城)의 서쪽에 있으니, 태방(兌方)이라 하면 가하지만, 신방(申方)·경방(庚方)의 두 방위(方位)를 넘어서 곤방이라 하면, 크게 서로 멉니다. 태일은 곤방에 있는데, 사당[殿]을 태방에 지으면, 모르긴 하지만 태일이 어떻게 사람에게 끌리어서 옳지 못한 그 궁(宮)에 처(處)하려 들겠습니까? 〈태일은〉 곤방으로 옮겼는데 〈사당을〉 태방에 둔다면 다른 해에 태궁(太宮)이 옮겨질 때 다시 어느 방위(方位)에 사당을 설치하겠습니까? 곤방은 마땅히 인천(仁川) 지역에 있으니, 다시 정곤(正坤)의 방위를 추정(推定)하고, 산수(山水)의 청결(淸潔)한 곳을 선택하여 사당[廟殿]을 세워서 태일의 신을 모신다면, 방법이 천도(天道)에 어긋나지 않고, 일이 도리(道理)를 얻을 것입니다. 범사(凡事)가 예비(豫備)하면 이룰 수 있고, 예비하지 않으면 그르치는 것이니, 신은 삼가 원하건대, 9궁의 방도(方道)를 모름지기 인지의(印地儀)337) 를 사용해서 미리 먼저 추정(推定) 하여, 아무 궁[宮]은 아무 고을[某州]의 아무 산[某山]이라고 명확하게 문부(文簿)를 만들고, 돌에 새겨 표(標)를 세워 땔나무와 불을 금하고, 미리 산천(山川)의 기(氣)를 길러서, 수목(樹木)이 울창하고 청기(淸奇)하게 하면, 다른 날에 신을 모실 장소가 될 수 있어, 임시(臨時)에 잘못되고 어긋나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7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31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사상-도교(道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329]흠천감(欽天監) : 명나라에 설치한 천문측후소(天文測候所).
- [註 330]
금의위(錦衣衛) : 명나라 때 궁전을 지키는 군대.- [註 331]
온오(蘊奧) : 학문이나 지식이 쌓이고 깊음.- [註 332]
갑인년 : 1434 세종(世宗) 16년.- [註 333]
무술년 : 1478 성종 14년.- [註 334]
불경지설(不經之設) : 허망하고 간사한 말.- [註 335]
교악(喬嶽) : 높은 산.- [註 336]
사지(私智) : 한 개인의 작은 지혜.- [註 337]
인지의(印地儀) : 조선조 7대 세조 13년(1467)에 만든 것으로 각도와 축척(縮尺)의 원리를 이용하여 토지의 원근과 높낮이를 측량하는 기구. 일명 규형(窺衡)이라고도 함.○漢訓質正官金錫元上聞見事目曰:
太一星遷宮之事, 問中朝道士, 皆答以不知。 求見欽天監官員李純, 問曰: "太一局書云: ‘艮爲遼東, 巽爲吳, 坤爲蜀, 乾爲西河。’ 所言方位, 以洛陽天地之中而言歟? 以燕都而言歟?" 答曰: "據燕都指遼東爲艮方分野說。" 一。 問: "當今太一在何方?" 答曰: "在吳、越。" 一。 問: "太一自乾而艮, 〔艮〕 而巽, 巽而坤, 坤而乾, 乾而中宮, 每宮住四十五年而遷, 右太一住四十四年至五年初而遷乎? 住四十五年至六年初而遷乎?" 答曰: "不知。" 且曰: "天文漏洩, 罪在重典, 恐錦衣衛尋迹。" 其後求見, 不與語。
命曾經政丞、觀象監天文學提調擬議。 韓明澮、沈澮、曺錫文、金礩、徐居正議: "太一殿, 自乾方移艮方, 自艮方移巽方, 我國無定方位文籍, 於中朝亦未得聞。 臣等以爲今移坤方, 坤方最宜先定, 令觀象監定方所後, 祭儀一依義城例施行。" 前此, 前大丘府使崔灝元上書曰:
往年曾受太一隷習之命, 尋復罷除。 雖未能造其蘊奧, 粗嘗涉躐其閫閾矣。 五福太一, 總管人間五福之事, 撫世儕化, 祀典之禮, 不可不重也。 其神常隨九宮, 循環移轉, 每宮住四十五年。 歲在宣德甲寅移于巽, 在慶尙道 義城縣營廟奉祀, 于今四十有三年, 至戊戌年, 宮數已滿, 當遷坤宮矣。 臣嘗語觀象監官吏曰: "太一之遷, 當在坤宮, 以何邑何地爲定?" 答曰: "以江華 摩尼山推定。" 臣復詰之曰: "摩尼山非坤方, 何以推定?" 又答曰: "雖非正坤, 實是名山故也。" 臣竊念太一旣以隨方而遷轉, 豈拘名山而置之非處乎? 此則無稽不經之說明矣。 山林淸潔之地, 卽爲安神之所耳, 何必求太山喬嶽而後可安太一之神乎? 遷不擇方, 不若不遷之爲愈也。 太一之神, 隨事遷轉, 亦有定數, 則豈可以私智經營, 而可安於非其方乎? 臣竊謂摩尼山在京城之西, 謂之兌則可矣, 越申、庚二位而謂之坤, 則大相遼遠矣。 太一在坤, 而營殿於兌方, 則不識太一肯被人牽而處非其宮乎? 移坤而置兌, 則他年太宮之遷, 更置之何方乎? 坤方則當在仁川之地, 更推正坤之方, 擇其山水淸潔之所, 營建廟殿, 以安太一之神, 則術不違天而事得其理矣。 凡事豫則立, 不豫則廢, 臣伏願九宮方道, 須用(卯)〔印〕 地儀, 預先推定, 某宮則某州某山, 明立簿文, 刻石立標, 禁其樵火, 預養山川之氣, 俾樹木葱鬱淸奇, 則可以爲他日安神之所, 而無臨時錯舛之弊矣。
- 【태백산사고본】 12책 7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31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사상-도교(道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