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관에게 잔치를 내리고 물건을 내리고, 한명회 등이 전을 올려 사례하다
경연관(經筵官)에게 광연정(廣延亭) 앞에다 잔치를 내려 주었다. 술이 한 순배(巡杯)돌자, 중관(中官) 조진(曺疹)이 와서 어서(御書)를 보이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예로부터 인주(人主)는 배우지 아니하고 능히 나라를 다스린 자가 드물었다. 내가 변변치 못한 몸으로써 외람하게 동토(東土)에 임(臨)하여 황황(遑遑)히 군림(君臨)해 온 지가 지금 이미 8,9년이 되었다. 경 등이 모두 힘써 배우기를 권하여, 나로 하여금 진퇴 존망(進退存亡)의 기틀을 알게 하고, 치란 안위(治亂安危)의 자취를 깨닫게 하였는데, 그 기미(幾微)가 《강목(綱目)》 수백 권(卷)의 내용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에 나를 가르친 그 공(功)을 갚지 않을 수 없어서, 이로 인해 지금 주악(酒樂)을 내려 주고, 또 물건을 내려 주어서 나의 스승[師]을 높이고, 도(道)를 중히 하는 뜻을 보이는 바다. 봄날이 상완(賞玩)할 만하니, 각기 마음껏 즐기어라."
하였다. 영사(領事) 한명회(韓明澮)와 심회(沈澮)·조석문(曺錫文)·김질(金礩)·윤사흔(尹士昕)·김국광(金國光)·노사신(盧思愼)에게 단자(段子) 1필을 내려 주고, 지사(知事) 이극배(李克培)와 홍응(洪應), 동지사(同知事) 서거정(徐居正)·임원준(任元濬)·이승소(李承召)에게 비단[羅] 1필을 내려 주고, 참찬관(參贊官) 현석규(玄碩圭)와 이극기(李克基)·임사홍(任士洪)·한한(韓僴)·손순효(孫舜孝)·홍귀달(洪貴達)·손비장(孫比長)에게 사(紗) 1필을 내려 주고, 시강관(侍講官) 노공필(盧公弼)과 최자한(崔自漢)·이맹현(李孟賢)·유진(兪鎭)·유순(柳洵)·최숙정(崔淑精), 시독관(侍讀官) 유자한(柳子漢)·구달손(丘達孫)·김흔(金訢), 검토관(檢討官) 이우보(李祐甫)·정회(鄭淮)·정지(鄭摯)·성담년(成聃年)·윤희손(尹喜孫)·조문숙(趙文琡)에게 호피(虎皮) 1장을 내려 주고, 사경(司經) 유인동(柳麟童)·최을두(崔乙斗), 설경(說經) 양순경(梁舜卿)·소사식(蘇斯軾), 전경(典經) 서팽소(徐彭召)·민효증(閔孝曾)·최진(崔璡), 주서(注書) 기찬(奇欑)·김심(金諶)에게 녹비(鹿皮) 1장을 내려 주었다. 한명회 등이 전(箋)을 올려 사례(謝禮)하여 이르기를,
"경악(經幄)308) 의 논사(論思)가 시종(侍從)의 반열(班列)을 그릇되고 욕되게 하였는데, 동정(彤庭)309) 의 사연(賜宴)은 우악(優渥)하신 은혜를 외람되게 받은 것입니다. 부복(俯伏)하여 삼가 가혜(嘉惠)를 받으니, 황공[凌兢]하여 몸둘 바를 잃었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 등은 식견(識見)이 천박[膚淺]하고 학술(學術)이 황소(荒踈)310) 한데도 천재 일우(千載一遇)의 풍운(風雲)의 경회(慶會)311) 를 다행히 만나서, 〈하루에〉 구중(九重)312) 에서 세 번 〈전하를〉 접(接)하여, 천일(天日)의 경광(耿光)313) 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건대, 털끝만큼의 보탬도 없으면서 늘 특별하신 은총(恩寵)을 입었으니, 분수에 넘침이 이미 심하고, 두려움이 지나쳐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습니다. 어찌 하루에 세 번 접하는[晉晝] 여가(餘暇)에 연락[需雲]을 내리는 은택(恩澤)을 생각하였겠습니까? 궁호(宮壺)314) 가 흘러 넘치니, 잠로(湛露)315) 의 은혜를 흠뻑 입었으며, 선악(仙樂)을 연구하니, 균소(鈞韶)316) 의 음향이 은은히 울립니다. 더구나 물품의 하사를 겸하여 받으니, 이는 실로 내탕(內帑)317) 의 진기(珍奇)를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크시도다, 말씀이시어! 한결같으시도다. 마음이시어! 정성스럽고 지극하신 천어(天語)를 받으니, 구름을 바라는 듯 해를 향하는 듯 임금의 덕을 우러러보았으며, 신한(宸翰)318) 에 골고루 밝히신 것을 보니, 감격(感激)이 마음속에 넘칩니다. 이미 취(醉)하고 이미 배부른데다, 은사(恩賜)가 뜻밖[望表]에서 나왔으니, 은총(恩寵)의 영광이 천고(千古)에 드물며 미담은 오래도록 전해질 것입니다. 삼가 처음부터 끝까지 학문(學問)에 종사하시었고, 계속하여 빛나도록 마음을 다하셨으며, 좋은 정치를 하려고 남에게 취(取)하지 않음이 없으셔서, 추요(芻蕘)319) 하는 천(賤)한 이에게도 폐(廢)하지 않았으며, 많이 들으시려고 때로 일을 이룩함에 혹은 농마(農馬)의 전우(專愚)320) 도 간혹 취해 쓰심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용렬한 자질로 하여금 거듭 특별하신 은총[異數]을 받게 하시니, 신 등이 감히 한정(漢庭)321) 의 하사를 받지 않겠습니까? 비록 학문의 공[稽古之功]은 없더라도, 주아(周雅)322) 의 노래를 송영(誦詠)하며, 끝없이 산과 같은 수[如罔之壽]를 빌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7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30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왕실-궁관(宮官)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08]경악(經幄) : 경연.
- [註 309]
동정(彤庭) : 궁궐의 뜰.- [註 310]
황소(荒踈) : 거칠고 정밀하지 못함.- [註 311]
경회(慶會) : 경사를 즐기는 잔치.- [註 312]
구중(九重) : 궁궐.- [註 313]
경광(耿光) : 밝은 빛.- [註 314]
궁호(宮壺) : 궁중에서 받은 술병.- [註 315]
잠로(湛露) : 가득하게 내린 이슬.- [註 316]
균소(鈞韶) : 천상(天上)의 음악.- [註 317]
내탕(內帑) : 임금의 사사 재물을 두는 곳집.- [註 318]
신한(宸翰) : 임금의 서찰(書札).- [註 319]
추요(芻蕘) : 꼴과 땔나무.- [註 320]
○賜宴經筵官于廣延亭前。 酒一行, 中官曺疹來示御書, 曰: "自古人主不學而能治國者鮮矣。 予以眇眛, 叨莅東土, 遑遑臨履, 今已八九年矣。 卿等咸勸力學, 欲使我知進退存亡之機, 曉治亂安危之迹, 其幾莫過乎《綱目》數百卷之中, 而乃以敎我, 其功不可不酬。 是以今賜酒樂, 又賜物, 以示吾尊師重道之意。 春日可賞, 其各盡歡。" 賜領事韓明澮、沈澮、曺錫文、金礩、尹士昕、金國光、盧思愼段子一匹, 知事李克培ㆍ洪應、同知事徐居正ㆍ任元濬ㆍ李承召羅一匹, 參贊官玄碩圭、李克基、任士洪、韓僩、孫舜孝、洪貴達、孫比長紗一匹, 侍講官盧公弼、崔自漢、李孟賢、兪鎭、柳洵、崔淑精, 侍讀官柳子漢、丘達孫、金訢, 檢討官李祐甫、鄭淮、鄭摯、成聃年、尹喜孫、趙文琡虎皮一張, 司經柳麟童、崔乙斗, 說經梁舜金卿、蘇斯軾, 典經徐彭召、閔孝曾、崔璡, 注書奇攅、金諶鹿皮一張。 明澮等進箋陳謝曰: "經幄論思, 謬忝侍從之列, 彤庭賜宴, 叨承優渥之私。 俯伏拜嘉, 凌兢失措。 伏念臣等識見膚淺, 學術荒疎, 千載一時, 幸際風雲之慶會, 九重三接, 獲近天日之耿光。 顧乏絲毫之裨, 每荷殊尤之寵, 僭踰已甚, 震越無容。 何圖晉晝之餘, 復霈需雲之澤? 宮壼瀲灔, 濃含湛露之恩, 仙樂鏘洋, 細咽鈞韶之響。 況兼承筐之錫, 實分在笥之珍。 大哉言! 一哉心! 承天語之諄至, 望如雲, 就如日, 覩宸翰之昭回, 感激溢於情中。 旣醉旣飽, 恩私出於望表, 爲龍爲光, 曠千古而罕聞, 喧萬古之傳說。 伏遇終始典學, 緝熙殫心。 爲善無非取人, 不廢芻蕘之賤, 多聞時惟建事, 或資農馬之專。 遂使庸資, 荐承異數, 臣等敢不拜漢庭之賜? 雖微稽古之功, 誦周雅之章, 永祝如岡之壽。"
- 【태백산사고본】 12책 7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30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왕실-궁관(宮官)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