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추부사 송처관의 졸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송처관(宋處寬)이 졸(卒)하였다. 철조(輟朝)·조제(弔祭)·치부(致賻)를 규례대로 하였다. 송처관은 자(字)를 율보(栗甫)라 하고, 청주(淸州)가 본관(本貫)이다. 선덕(宣德)036) 임자년037) 문관(文科)에 세째로 급제하여, 세자 우정자(世子右正字)에 제배(除拜)되고, 여러 번 벼슬을 옮겨 사헌 감찰(司憲監察)에 이르고, 성균 직강(成均直講)·사헌 지평(司憲持平)을 지냈다. 정묘년038) 에 중시(重試)039) 에 급제하여, 예조 정랑(禮曹正郞)에 제배되고, 기사년040) 에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로 나갔다. 경태(景泰)041) 갑술년042) 에 통정 대부(通政大夫)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에 올랐고, 병자년043) 에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옮기고, 곧 가선 대부(嘉善大夫)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 올랐다. 천순(天順)044) 정축년045) 에 들어와서 예조 참판(禮曹參判)이 되었고, 경진년046) 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옮기고서 가정 대부(嘉靖大夫)에 올랐고, 갑신년047) 에 자헌 대부(資憲大夫)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에 올랐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였는데 68세이다. 시호(諡號)는 평양(平煬)이니, 다스려져서 허물이 없는 것을 평(平)이라 하고, 예(禮)를 떠나고 무리[衆]에서 먼 것을 양(煬)이라 한다. 사람됨이 모릉(模稜)048) 하여 가부(可否)가 없었다. 그 누이가 유성원(柳誠源)의 아내가 되었다가 유성원이 죄를 받고 적몰(籍沒)049) 되자 남에게 품팔고 빌어먹었으나, 송처관의 집은 넉넉한데도 능히 거두어 돌보지 않으니, 남들이 다 비난하였다. 아들이 없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7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07면
- 【분류】인물(人物)
- [註 036]선덕(宣德) : 명나라 선종(宣宗)의 연호.
- [註 037]
임자년 : 1432 세종 14년.- [註 038]
정묘년 : 1447 세종 29년.- [註 039]
중시(重試) : 문과(文科) 당하관(堂下官)을 위하여 둔 과거. 10년에 한 번씩 실시하였으며,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당상(堂上) 정3품의 품계로 올려 주었음.- [註 040]
기사년 : 1449 세종 31년.- [註 041]
경태(景泰) : 명나라 경종(景宗)의 연호.- [註 042]
갑술년 : 1454 단종 2년.- [註 043]
병자년 : 1456 세조 2년.- [註 044]
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註 045]
정축년 : 1457 세조 3년.- [註 046]
경진년 : 1460 세조 6년.- [註 047]
○知中樞府事宋處寬卒。 輟朝、弔祭、〔致〕 賻如例。 處寬字栗甫, 淸州人。 宣德壬子, 中文科第三人, 拜世子右正字, 累遷至司憲監察, 歷成均直講、司憲持平。 丁卯, 中重試, 拜禮曹正郞, 己巳, 出知淸風郡事。 景泰甲戌, 陞通政集賢殿副提學, 丙子, 移吏曹參議, 尋陞嘉善全羅道觀察使。 天順丁丑, 入爲禮曹參判, 庚辰遷同知中樞院事, 陞嘉靖。 甲申, 進階資憲知中樞院事, 至是卒, 年六十八。 諡平煬, 治而無眚平, 去禮遠衆煬。 爲人模稜, 無可否。 其妹爲柳誠源妻, 及誠源被罪籍沒, 傭丐於人, 處寬家饒富, 而不能收恤, 人皆非之。 無子。
- 【태백산사고본】 11책 7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07면
- 【분류】인물(人物)
- [註 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