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75권, 성종 8년 1월 5일 갑진 3번째기사
1477년 명 성화(成化) 13년
동지사 이승소가 왕비의 태실에 수호군을 정할 것을 아뢰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동지사(同知事) 이승소(李承召)가 아뢰기를,
"왕비(王妃)의 태실(胎室)027) 의 수호군(守護軍)은 법에 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궁(中宮)의 태실이 경상도 예천(醴泉)에 있으니, 사람을 보내어 다시 살펴서, 그 산이 불길(不吉)하거든 길(吉)한 곳으로 옮겨 모시고 수호군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수호군을 두면 경작(耕作)을 금하는가?"
하니, 이승소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작을 금하면 백성의 폐해가 많을 것이니, 아직 그대로 두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75권 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0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027]태실(胎室) : 궁가(宮家)의 태를 묻는 석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