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학 손비장 등이 구언에 응하여 상소하다
예문관 부제학(藝文館副提學) 손비장(孫比長)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삼가 보건대 근자(近者)에 경기(京畿)에는 장맛비[霪雨]가 그치지 않아서 곡식이 손상되었고, 영남(嶺南)도 산이 무너지는 변(變)이 있었습니다. 전하(殿下)께서는 깊이 두려워하시어, 직위(職位)가 있는 사람을 맞이하여 묻고 여러 백성들에게 널리 물어 그 원인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기를, ‘실로 나의 부덕(否德)한 소치(所致)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비록 성탕(成湯)이 자신에게 죄(罪)를 돌린 것753) 이나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가뭄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덕행을 가다듬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바가 없습니다. 신 등은 고문(顧問)754) 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성상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는데, 감히 한마디 말도 없이 전하의 훌륭한 마음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서경(書經)》755) 에 이르기를, ‘길흉(吉凶)은 사람의 행동에 달려 있고, 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복은 사람의 덕(德)에 달려 있다.’고 하였으니, 재앙과 복이 나타나는 것은 반드시 사람으로 인연하여서 감응(感應)되는 소치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비록 푸르기만 하고 까마득하여 사람과는 서로 접(接)하지 않지만, 착한 일을 하면 복(福)을 내려 주고 착하지 않으면 재앙(災殃)을 내려 주는 것이니, 그 이치의 밝음은 매우 두려워할 만합니다. 만약 임금이 재앙을 만나서 두려워하고 정성을 다하며 좋은 일을 행한다면, 화(禍)가 변하여 복(福)이 되고 재앙(災殃)이 변하여 상서(祥瑞)가 됨이 한 번 전이(轉移)하는 데에 따라 바뀌지만, 만약 경계하고 두려워하여서 좋은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더욱 노(怒)하여 재변(災變)이 닥쳐오는 것이 더 클 것이니, 임금 된 자로서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전하께서는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쓴지 이제 8년이 되었는데, 안으로는 음악과 여색에 그릇됨이 없으셨고, 밖으로는 사냥을 즐기는 일이 없어, 조정(朝廷)이 평화롭게 다스려지고 백사(百事)가 질서가 잡혀서, 재앙을 부르고 변(變)이 이를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근래에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잇달아 일어나고 오곡(五穀)이 풍년들지 않았으며, 금년의 재앙은 또한 성상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으니, 이 어찌 감응되는 바가 없이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신 등은 어떤 일이 어떤 허물[咎]에 응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이목(耳目)이 미치는 바 시정(時政)의 폐단을 조목별로 뒤에 아뢰니, 삼가 재택(裁擇)하시기를 바랍니다.
신 등이 삼가 생각하건대 대간(臺諫)은 임금의 이목(耳目)이고 조정(朝廷)의 법도[繩墨]이니, 임금의 허물과 그릇됨은 오직 대간만이 규찰할 수 있고, 조정의 잘못된 일도 오직 대간이 바로잡을 수 있으므로, 대간의 말을 시행하면 임금과 조정의 위세(威勢)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구언(求言)하고 간(諫)하는 데에 따름에 있어서 진실로 지성(至誠)을 받아들였으므로, 말하는 것이 옳으면 윤허(允許)하여 머물러 두지 않았고, 말하는 것이 그릇되어도 또한 너그럽게 용납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대간(臺諫)이 비록 지당(至當)한 말을 하여도 전하께서는 즉시 쾌히 결정하지 않으시고, 두 번 세 번에 이르러 부득이한 연후에야 따르시니, 간언(諫言)을 받아들이기 좋아함이 지난번만큼 미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비단 이뿐만 아니라, 훈척(勳戚)에 관계되는 말이면 전하께서는 매양 인자하게 용서하고 윤허하지 않습니다. 지금 조정에 늘어서 있는 자 가운데 훈척(勳戚)이 반이나 참여하고 있는데, 만약 모두 훈척이라 하여서 용서한다면, 조정에는 처벌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처벌되는 사람이 없는데도, 조정이 숙연(肅然)하여 법(法)을 범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분수를 범하는 자가 많게 되면, 진실로 조정의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대간에게 탄핵을 당하고도 도리어 대간을 꾸짖기를, ‘아무[某]는 어떠어떠한 허물이 있고, 아무는 어떠어떠한 혐의가 있다.’ 하면서 온갖 계책으로 중상 모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혹은 대변(對辨)하게 하고, 혹은 다른 부서로 옮기게 합니다. 비록 허물과 혐의가 참으로 있다 하더라도 다른 일을 들어서 고(告)하는 것은 법률로 금(禁)하게 되어 있으니, 이와 같이 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진실된 일이 아니고 거짓으로 꾸며대거나 성청(聖聽)을 미혹하여서, 그 일을 말하는 자의 기를 꺾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이러한 풍조를 엄단(嚴斷)하지 않는다면 간사한 무리들의 속이는 말이 분분(紛紛)하여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간은 그러한 중상(中傷)을 두려워하여 또한 직언(直言)을 다할 수 없으니, 대간으로 하여금 그 직언을 다할 수 없게 하는 것도 국가의 복(福)이 아닙니다. 또한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태만하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상정(常情)인데, 대간을 맡고 있는 자만이 오래 있어도 태만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특별히 대간에게 구임(久任)756) 하는 법을 허락하였는데, 근래에 대간은 일에 연좌되어 갈리는 자가 많고, 전조(銓曹)에서 주의(注擬)757) 하여 옮기는 자는 적어서, 혹 30개월이 넘기도 합니다. 아무리 강직한 선비라고 하여도, 만약 조정에서 원한을 사고 전하에게 꺼림을 받게 되면, 어찌 시종(始終) 한결같이 게으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은 원컨대 전하께서는 대간의 말에 따르는 것을 즐겨하시고, 친척(親戚)으로써 국법(國法)을 휘두르게 하지 마시고, 논핵(論劾)을 당한 자의 참소(譖訴)로써 법관(法官)을 의심하지 마시고, 또한 대간을 맡고 있는 자로 하여금 오랫동안 갈리지 않게 하지 않는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신 등이 듣건대 《서경(書經)》758) 에 이르기를, ‘여러 관리들이 임무를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하늘의 일은 사람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된 자는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므로, 천위(天位)를 함께 하여 천직(天職)을 다스리고, 천록(天祿)을 먹는 자는 현명하고 유능한 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개 승전(乘田)759) 으로서 적당한 인물이 아니면 소와 양이 제대로 번성하지 않을 것이고, 위리(委吏)760) 로서 적당한 인물이 아니라면 회계(會計)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고관(高官) 현직(顯職)으로서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안으로는 여러 관직, 밖으로는 여러 고을에, 공경(公卿)의 자제(子弟)로서 그 직위에 있는 자가 반이나 되는데, 옛것을 배우지도 않고 다스리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자가 대개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가 관직을 맡고서 어찌 그 직분(職分)을 다할 수 있겠으며, 일에 임한다면 어찌 그 적절함을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까닭에, 그 관직을 해되게 하고 천직(天職)을 저버리는 자가 반드시 많은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서 말하기를,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잘 아는 사람은 아니고,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배워서 알게 된 사람이다.’ 하였고, 또 공야장편(公冶長篇)에서 말하기를, ‘열 집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 있어서는 나[丘]761) 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였으며, 또한 위정편(爲政篇)에서 말하기를, ‘서른 살에 뜻을 세웠고, 마흔 살에 주관이 확립되었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성인(聖人)으로서, 옛것을 좋아하고 학(學)을 좋아하는 공부가 또한 이와 같이 지극하였는데도, ‘서른 살이 되어서야 뜻이 섰고 마흔 살이 되어서야 주관이 확립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정치를 하는 자들은 충성과 신의가 반드시 성인(聖人)과 같지 못하고, 옛것을 좋아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공부도 없으며, 또 나이가 서른·마흔이 되지 못하였는데도, 너무 빨리 관직에 올라 후한 녹을 받으며, 부형(父兄)의 권세로 인하여 교만하고 게으른 마음을 갖게 되어서 한 관직에 있게 되면 한 관직에 근심을 끼치고, 한 고을에 부임하게 되면 한 고을에 걱정을 끼칩니다. 국가에 비록 전최(殿最)762) 의 법과 출척(黜陟)의 법이 있기는 해도, 권력이 있는 자제에게는 시행되지 않으므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차 대관(大官)에 이르게 되니, 옛것을 배워서 관직에 들어간다는 의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리하여 부형(父兄)이 된 자는 가까운 효과에만 급급하여 원대(遠大)한 기대가 없으며, 자제(子弟)가 된 자는 이익과 녹봉(祿俸)에만 급급하여 또한 원대한 뜻이 없습니다. 비록 그 가운데 좋은 재간과 아름다운 자질을 가진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침내는 열심히 하지 아니하므로 이름이 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임관(任官)하는 데에 적당한 인물을 잃는 것일 뿐만이 아니고, 또한 교양(敎養)하는 데에 그 방책을 잃는 것이니, 관직에 적당한 인물을 잃고 교양에 방책을 잃는다면, 그 폐단은 이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신 등은 원컨대 중외(中外)의 모든 관리 가운데 나이 어리고 학문이 없는 자는 모두 배우도록 해서, 학문이 이루어진 뒤에 택하여 임용하고 품계(品階)에 따라 알맞게 한다면, 지난번의 소위 옛것을 배우지도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자는 임용할 만한 재주로 바뀌게 될 것이니, 시록(尸祿)·시관(尸官)의 폐단이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신 등이 듣건대 《서경(書經)》763) 에 이르기를,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건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으니, 백성은 실로 나라의 근본으로서,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는데 나라가 위태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평안도(平安道) 한 도는 땅이 중국과 접(接)하여, 무릇 중국 조정에 가는 행차에 짐을 실어나르거나 영송(迎送)하는 데에 그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그 노고(勞苦)를 생각하여, 사사로이 〈물건을〉 감추고 가는 것을 특별히 엄금(嚴禁)하게 한 것은 그 민력(民力)을 쉬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익을 탐하는 무리가 국가의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행차에 관무역(官貿易)이라고 거짓 칭탁하고서 자기의 물건을 많이 가지고 가며, 또 연변(沿邊)의 여러 고을에 후량(餱糧)764) 과 찬구(饌具)765) 를 널리 구하는 등 휴대하고 가지 않음이 없어서, 법 외의 짐이 본래의 수보다도 배 이상 다섯 갑절이나 됩니다. 그래서 험한 산길을 급하게 오르게 되면, 말[馬]이 지탱할 수가 없어서 혹은 진흙에 빠지고 혹은 산골짜기에 엎어져서, 죽지 않으면 쓰러져서 일어날 수 없게 되는데, 심지어는 산채로 그 껍질을 벗겨 가지고 돌아가는 자도 있습니다. 금년에 이와 같고 내년에도 이와 같으면, 이로 인하여 백성들이 살아갈 수 없어서 점차 지치고 곤란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백성들은 동녕위(東寧衛) 사람들이 생업(生業)에 안정하고 있음을 익히 보고서 몰래 따라가 옮겨 사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국가에서 비록 몰래 따라가는 것을 금하고 있으나, 고생을 떨쳐버리고 편안한 데로 나아가려 함은 사람의 상정(常情)이므로, 그 옮겨 가는 것을 진실로 모두 막기는 어렵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폐단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 곤란함이 더욱 심해지고 흩어지는 자가 더욱 많아져, 수십 년이 안되어서 서북(西北) 지방은 비게 될 듯합니다. 대저 한 사람의 백성이 안정을 얻지 못하는 것도 성인(聖人)은 부끄럽게 여겼는데, 하물며 온 도가 그 거처를 잃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신 등은 망령되나마 금일의 폐단을 구할 만한 두 가지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통정 대부(通政大夫)766) 이상은 사라 능단(紗羅綾緞)을 입도록 허락하였는데, 사족(士族)의 부녀(婦女)도 입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대개 사라 능단은 모두 중국의 산물(産物)인데 사대부(士大夫)의 집에서 화려하고 사치함을 다투어 숭상하여, 비싼 값으로 사들이는 것이 그치지 않습니다. 또 기명(器皿)·담요[罽毯]와 같은 종류도 반드시 사들여서 외관상 아름답게 하려고 하므로, 짐바리[駄載]가 많고 사람과 말이 한결같이 피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賤)함은 소용되지 않는 데에서 생긴다.’ 하였습니다. 지금 서적(書籍)과 약재(藥材)를 제외하고 공경(公卿)·사서(士庶)의 집에서는 다른 나라의 토산품(土産品)을 쓸 수 없게 하였으나, 다른 나라의 토산품은 우리 나라에 소중한 것이 아니므로, 비록 권하여도 사람들이 사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조정(朝廷)의 위신이 높아지지 않게 된다.’ 하는데, 이는 매우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禹)임금은 의복(衣服)을 검소하게 입었는데도 성인(聖人)이 헐뜯을 수 없다 하였으나, 상(商)나라 풍속에는 분수에 넘치게 아름다운 복장을 입었으되 전사(前史)에서 그 사치함을 나무랐으니, 어찌 반드시 다른 나라의 토산물을 취해야만 조정의 위신이 높아지겠습니까? 이것이 그 한가지입니다.
국가에서는 매양 부경(赴京)하는 행차가 있을 때마다 으레 검찰(檢察)하는 관원을 보내어서 법(法)대로 하지 않은 것을 규찰하게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그 책임을 다하는 자가 없으니, 이는 진실로 만리(萬里)의 길을 동행하는 까닭에, 비록 범하는 자가 있어도 차마 검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익을 탐하는 무리가 무엇이 두려워 부정을 행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의 생각으로는, 사신이 돌아오는 날에 생각지 못했던 때를 틈타서, 조신(朝臣) 가운데 성상의 뜻을 능히 본받을 수 있는 자를 택해서 보내어, 강(江) 위에서 주머니와 전대[囊橐]를 수색하게 하되, 법(法) 이외의 물건이 있으면 엄하게 다스리고 용서하지 말도록 해서, 한두 사람을 징계하여 그 나머지를 경각시키면,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을 품게 되어, 금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비록 엄하게 검찰하는 해가 없을 수는 없으나, 온 도(道)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또한 그 다음입니다.
하물며 본도(本道)는 오랑캐[戎虜]의 요충지(要衝地)이므로, 진실로 평상시에 일이 없을 때에도 휴양(休養)하며 생활하지 못하는데, 만약 병란(兵亂)이라도 국경(國境)에서 일어난다면, 모르긴 합니다만, 국가에서는 어떻게 방어하겠습니까? 이는 더욱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신 등의 말을 오활(迂闊)767) 하다 하지 마시고, 평안도의 고치기 어려운 폐해를 없애 주신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왕도(王道)가 떨치지 못하면서부터 백성들에게 확고한 의지가 없게 되자, 석씨(釋氏)768) 의 무리들이 그 간교함을 꾸며서 인연(因緣)·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설(說)을 가지고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구도 삼고 있으니, 중하(中下)의 수준은 윤회설(輪回說)에 얽매이고, 용렬하고 어리석은 세속에서는 화복(禍福)을 두려워하여 미혹되어서 헤어나지 못하므로, 세상에 고질(痼疾)이 되고 있습니다. 어리숙한 백성들은 담석(擔石)769) 의 저축이 없으면서도 중을 대접하는 데에는 빌려오기까지 하여 힘을 다하고, 사찰(寺刹)을 지을 때에는 품을 팔아서 마음을 다합니다. 이로 인하여 거리에는 불찰(佛刹)이 있고, 저자[闤闠]에는 정사(精舍)를 세워, 정역(丁役)770) 을 피하거나 죄(罪)를 짓고 도망다니는 자들이 법문(法門)에 많이 모여들어, 놀고 지내며 놀고 먹는 자들이 호적(戶籍)에 편입된 자보다 많습니다. 대개 공(功)은 귀신(鬼神)으로 하여금 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역인(役人)에게 달려 있는 것이며, 물건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필경 땅에서 나는 것인데, 백성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서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생산되는 것에는 정해진 수가 있는데 허비하는 것은 끝이 없으니, 백성이 어찌 궁핍하고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호활(豪滑)한 중은 거처하는 곳에서 재물을 늘려 사사(寺社)보다 높이 쌓아 놓고서 이를 민가에 뿌리며, 가벼운 가죽옷[裘]을 입고 살찐 말을 타고 촌락(村落) 사이를 횡행(橫行)하면서, 사람들의 재화(財貨)를 훔치고 사람들의 처첩(妻妾)을 도둑질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고 꺼리는 바도 없습니다. 이는 비단 우리 백성들을 해칠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스로 그 도(道)를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총명(聰明) 예지(睿智)하신 자질과 고명(高明)하고 뛰어난 견해로써 백왕(百王)의 위에 빼어나시니, 불교[佛氏]가 국가에 무익(無益)하고 중의 무리가 백성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밝게 살피시어, 승니(僧尼)의 사사로운 도첩(度牒)771) 을 금지하고 불우(佛宇)를 새로 창건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이는 이단(異端)을 누르고 우리의 도(道)를 높이는 것이 지극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외(中外)의 여러 절에는 조세(租稅)를 거두는 자가 있고, 공름(公廩)을 먹는 자가 있으며, 또 정병(正兵)을 가지고 문(門)을 파수하는 자도 있는데, 이것을 옛날 그대로 답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니, 어찌 선왕(先王) 때의 일을 차마 갑자기 고칠 수 없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이 생각하건대 전조(田租)는 백성의 힘에서 나오는 것으로, 위로는 군국(軍國)의 수요(需要)에 이바지하는 것이므로, 헛되게 소비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국가의 토지가 협소하고 조세도 넉넉하지 못한데, 중의 무리들로 하여금 해마다 조세를 거두고 달마다 희름(餼廩)772) 을 먹게 하여, 백성의 힘을 동원하고 군국의 자산(資産)을 써서, 놀고 지내며 놀고 먹는 무리에게 헛되이 허비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월이 오랠수록 비용이 더욱 심해지는데, 이것이 어찌 성인(聖人)의 재화를 허비하지 않고 백성을 다치지 않는 뜻이겠습니까? 또한 정병(正兵)은 본래 왕궁(王宮)을 숙위(宿衛)하는 군졸(軍卒)인데, 절의 문을 지키게 하고 있으니, 어찌 의(義)에 합당합니까? 지키는 군졸은 비록 적지만 의(義)에 해되는 것이 매우 큰데, 이것이 어찌 성상(聖上)의 정치에 한 가지 누(累)가 아니겠습니까? 신 등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조세를 거두는 창고와 중들의 비용을 없애고, 정병(正兵)이 절의 문을 지키는 것을 파(罷)하시며, 사사로운 도첩(度牒)을 금하는 것을 거듭 밝히신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70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7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재정-전세(田稅) / 농업-농작(農作) / 사법-법제(法制) / 사상-불교(佛敎) / 군사-중앙군(中央軍)
- [註 753]성탕(成湯)이 자신에게 죄(罪)를 돌린 것 : 중국 은(殷)나라의 성탕(成湯)이 7년 동안 큰 가뭄이 계속되었을 때에, 비를 빌기 위하여 상림(桑林)에서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자책(自責)한 고사를 말함.
- [註 754]
고문(顧問) : 자문(諮問)에 응하여 의견을 말하는 직무.- [註 755]
《서경(書經)》 : 상서(尙書) 함유일덕(咸有一德).- [註 756]
구임(久任) : 하나의 관직에 오랫동안 근무하던 제도. 대개 일정한 기간이 되면 체임(遞任)하는 것이 원칙이나, 특수한 관직에 한하여 구임시켰음.- [註 757]
주의(注擬) : 관원을 임명할 때, 먼저 문관(文官)은 이조(吏曹), 무관(武官)은 병조(兵曹)에서 후보자 세 사람을 정하여 임금에게 올리던 일.- [註 758]
《서경(書經)》 :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 [註 759]
승전(乘田) : 가축 사육을 맡은 관직.- [註 760]
위리(委吏) : 창고를 맡아 보던 관리.- [註 761]
나[丘] : 공자의 이름이 구(丘)임.- [註 762]
전최(殿最) : 관찰사가 각 고을 수령(守令)의 실적을 조사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일. 성적을 고사할 때 상(上)을 최(最), 하(下)를 전(殿)이라고 하여,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하였음.- [註 763]
《서경(書經)》 : 하서(夏書) 오자지가(五子之歌).- [註 764]
후량(餱糧) : 밥을 말려서 만든 양식.- [註 765]
찬구(饌具) : 반찬을 담는 그릇.- [註 766]
통정 대부(通政大夫) : 정3품 당상관.- [註 767]
오활(迂闊) : 사정에 어둡고 현실에 적합하지 아니함.- [註 768]
석씨(釋氏) : 불도(佛徒).- [註 769]
담석(擔石) : 한 섬 정도.- [註 770]
○藝文館副提學孫比長等上疏曰:
臣等伏覩近者京畿霪霖不止, 損傷禾稼, 嶺南又有山崩之變。 殿下深以爲懼, 延問有位, 廣詢衆庶, 推變所自。 乃曰: "實予否德之致", 此雖成湯之罪己、宣王之側身, 蔑以加矣。 臣等職備顧問, 昵承恩眷, 其敢無一言以負殿下之盛心乎? 《書》曰: "惟吉凶不僭在人, 惟天降災祥在德。", 謂災祥之應, 必因人所感而致之也。 天雖蒼蒼冥冥, 不與人相接, 而作善則降之以福, 不善則降之以災, 厥理昭昭, 甚可畏也。 若人主遇災而懼, 推誠行善, 則變禍爲福, 變災爲祥, 在一轉移間耳, 若不戒懼而行善, 則天益怒, 而災變之來也益大矣, 爲人君者, 可不戒哉? 今我殿下勵精圖治, 八年于玆, 內無聲色之誤, 外無遊畋之樂, 朝廷淸明, 百度惟貞, 似無召災致變之道。 而比來水旱相仍, 年穀不登, 今年之災, 又軫聖慮, 安知不有所感而然耶? 臣等不知某事爲某咎之應也, 但以耳目所及時政之弊, 條陳于後, 伏惟裁擇。 臣等竊謂臺諫人主耳目, 朝廷繩墨, 人主愆違, 惟臺諫得以糾, 朝廷失擧, 惟臺諫得以正, 臺諫之言行, 則人主與朝廷之勢尊矣。 殿下卽祚以來, 求言從諫, 實出至誠, 言之而是, 允許無留, 言之而非, 亦賜優容。 近來臺諫雖有至當之言, 殿下不卽夬決, 至再至三, 如不得已而後從之, 從諫之樂, 無乃不逮於曩時耶? 不但如是, 言苟觸於勳戚, 則殿下每以仁恕不允。 今布(別)〔列〕 朝廷者, 勳戚參半, 若盡以勳戚而恕之, 則朝廷無坐法之人矣。 無坐法之人, 而朝廷肅然無犯法之人乎? 犯分者多, 誠非朝廷之美事也。 至有被臺諫之劾, 而反斥臺諫曰: "某也有某愆, 某也有某嫌", 百計中之, 而殿下或令對辨, 或移他司。 雖信有愆有嫌, 律有告擧他事之禁, 則不當如是。 況非眞實之事, 誣構惑聽, 以折其言事者之氣乎? 若不痛斷此風, 則奸詐之徒, 譸張之說, 紛紛不已。 而臺諫畏其中傷, 亦不得盡其直言矣, 使臺諫不得盡其直言, 亦非國家之福也。 且始勤終怠, 人之常情, 則任臺諫者, 獨能久而無怠乎? 殿下特許臺諫久任之法, 比來臺諫坐事遞者多, 而因銓曹注擬而遷者少, 或過三十朔。 雖謇諤之士, 若賈怨於朝廷, 觸諱於殿下, 安能終始如一而不懈乎? 臣等願殿下樂從臺諫之言, 勿以親戚而撓國法, 勿以被論者之訴而疑法官, 又勿使任臺諫者久而不遞幸甚。 臣等聞《書》曰: "無曠庶官, 天工人其代之。" 王者代天理物, 所與共天位治天職,食天祿者, 非賢者能者, 不可也。 蓋乘田而非其人, 則牛羊不遂矣, 委吏而非其人, 則會計不當矣。 況高官顯職而任之非其人乎? 今也內而百官, 外而列郡, 公卿子弟之居其位者參半, 不學古不識治體者, 蓋多有之。 如此者當官而豈能盡其職, 莅事而豈能盡其宜乎? 其所以關厥官而曠天職者必多矣。 孔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又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 不如丘之好學也。" 又曰: "三十而立四十而不惑。" 孔子旣聖矣, 而好古好學之功, 又如此其至矣, 猶曰: "三十而後立, 四十而後不惑。" 今之從政者, 忠信不必如聖人, 而無好古好學之功, 又年未三四十, 而驟陞膴仕, 席父兄之勢, 挾驕惰之心, 居一官則貽一官之患, 莅一邑則貽一邑之憂。 國家雖有殿最之法, 而黜陟之典, 又不行於權貴之子弟, 悠悠歲月, 馴致大官, 其於學古入官之義何居? 由是爲父兄者, 急於近效, 而無遠大之期, 爲子弟者, 急於利祿, 而又無遠大之志。 雖間有良才美質者, 終於鹵莾而無聞焉。 是則非徒任官之失其人, 抑敎養之失其方也, 官失其人, 養失其方, 弊孰大於此者? 臣等願中外庶官之年少不學者, 竝令就學, 學成而後擇而任之, 隨品所適, 則向之所謂不學古不識治體者, 轉而爲可任之才, 庶無尸祿尸官之弊矣。 臣等聞, 《書》曰: "民惟邦本, 固本邦寧。" 則民者實邦之本也。 邦本搖, 而國不危者, 未之有也。 平安一道, 地接上國, 凡赴朝之行, 駄載迎送, 不得不煩其民。 國家念其勞苦, 而特嚴私挾之禁, 所以休其力也。 然而貪利之徒, 不畏邦憲, 於其行也, 假托官貿, 重挾己物。 且於沿路諸邑, 廣求餱糧饌具, 無不携齎, 法外之駄, 倍蓰本數。 登頓崎嶇之路, 馬不能支, 或陷沈淖, 或仆澗谷, 不斃則僵臥不起, 至有生剝其皮而還者。 今年如是, 明年又如是, 因之而民不聊生, 漸致羸困。 彼民習見東寧之人之安業, 潛從而徙, 或未可知也。 國家雖有潛從之禁, 而去苦就安, 亦人情之常, 則其徙也, 固難盡得而止之矣。 臣等恐此弊不祛, 則其困益深, 流亡益多, 不出數十年, 而西北爲之虛矣。 夫一民之不得其所, 聖人猶以爲恥, 況擧一道將失其所乎? 臣等妄謂救今日之弊, 有二策焉。 今通政以上許服紗羅綾段, 士族婦女, 亦得以服之。 夫紗羅綾段, 皆上國之産, 而士大夫之家, 爭尙華侈, 重購不已。 又如器皿、罽毯之類, 必致之以爲觀美, 故駄載之重, 人馬之困, 一至於此。 古人云: "賤生於無所用。" 今除書籍藥材之外, 公卿士庶之家, 毋得用異土之産, 則異土之産, 不爲我國之所重, 雖勸之而人無買之者矣。 或曰: "如是, 則非所以尊朝廷瞻視也", 是大不然。 昔大禹惡衣服, 而聖人稱其無間, 商俗服美于人, 而前史譏其靡靡, 何必資異土之産, 然後朝廷之瞻視可尊歟? 此其一也。 國家每當赴京之行, 例遣檢察之官, 得以糾擧不如法。 而亦無一人能盡其責, 良由萬里同行之故, 雖有犯者, 而不忍擧也。 然則貪利之徒, 何所憚而不爲乎? 臣等謂使還之日, 出其不意, 擇朝臣能體上意者, 遣之江上, 搜檢囊橐, 如有法外之物, 嚴治罔赦, 懲一二人以警其餘, 則人懷不測之懼, 而不禁自止矣。 此雖傷於苛察, 然救一道之弊, 不得不爾。 此又其次也。 況本道戎虜之衝, 苟於平常無事之時, 不爲休養生息, 而脫有風塵從(僵)〔疆〕 塞而起, 不識國家何以禦之? 此尤不可不慮者也。 願殿下勿以臣等之言爲迂, 以祛平安深痼之弊, 不勝幸甚。 自王道不振, 民無定志, 而釋氏之徒, 得以售其奸, 以因緣果報之說, 爲惑世誣民之資, 中下之才, 纏綿於輪回, 庸愚之俗, 畏懼於禍福, 迷而不返, 爲世痼疾。 蚩蚩者氓, 無擔石之儲, 而飯僧則稱貸而盡力焉, 營刹則傭估而盡心焉。 由是里巷有佛刹, 闤闠立精舍, 逃丁避罪者駢集法門, 遊手游食者多於編戶。 夫功不使鬼, 必在役人, 物不天來, 終須地出, 不損百姓, 將何以得之? 生之有數, 而費之無窮, 奈之何民不窮且困也? 豪滑之僧, 所在殖貨, 峙于寺社, 而散于閭閻, 輕裘肥馬, 橫行村落之間, 攘人之貨財, 竊人之妻妾, 恬不知愧, 無所忌憚。 是則非但蠧耗吾民, 亦且自敗其道者也。 殿下聰明睿智之資, 高世絶倫之見, 超出百王之上, 洞照佛氏無益於國家, 僧徒有害於民生, 而禁僧尼私度, 又禁佛宇新創, 其所以抑異端尊吾道至矣。 然而中外諸寺, 有收租稅者, 有食公廩者, 又有以正兵把門者, 其所以因循至今者, 豈非以先王時事而未忍遽革歟? 臣等竊以田租出於民力, 而上供軍國之需, 其不可妄費也審矣。 況國家壤地褊小, 租入不敷, 而使僧徒歲收租賦, 月食餼廩, 以出民力需軍國之資, 空費之於游手游食之徒? 歲月逾久而(麋)〔靡〕 費愈甚。 此豈聖人不傷財不害民之意耶? 且正兵本宿衛王宮之卒, 而使之守寺門, 豈合於義乎? 所守之卒雖小, 所害於義者甚大, 此豈非聖治之一累事歟? 臣等願殿下革收稅廩僧之費, 罷正兵寺門之守, 申明私度之禁, 不勝幸甚。
- 【태백산사고본】 11책 70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7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재정-전세(田稅) / 농업-농작(農作) / 사법-법제(法制) / 사상-불교(佛敎) / 군사-중앙군(中央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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