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69권, 성종 7년 7월 14일 을묘 5번째기사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도승지 현석규의 청에 따라 첩종·대열 등 무비의 일을 닦도록 하다
도승지(都承旨) 현석규(玄碩圭)가 아뢰기를,
"무비(武備)574) 는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조조(世祖朝)에는 첩 종(疊鍾)575) ·강무(講武)·대열(大閱)576) 같은 것을 거행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군사에 관한 일들을 닦지 않아서 무비가 해이(解弛)하여졌으니, 만약 뜻하지 않은 변고가 있다면 어떻게 거기에 대처하겠습니까? 국가에 일이 생기면 비록 조사(朝士)라도 당연히 종융(從戎)577)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조께서 이시애(李施愛)를 토벌하려고 조정의 신하들로 하여금 모두 종군하게 하여 서교(西郊)에서 무기를 다루게 하였으므로 조사(朝士)들이 모두 갑주(甲胄)를 구비하여 익혔던 것입니다. 청컨대 첩종·대열의 법을 명확히 하여 무사(武事)를 닦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나도 역시 여기에 뜻을 두었는데, 경(卿)의 말은 매우 온당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69권 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35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병법(兵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