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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65권, 성종 7년 3월 10일 계축 6번째기사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좌의정 한명회가 사임 상소를 올렸으나 돌려주게 하다

좌의정(左議政) 한명회(韓明澮)가 글을 올려서 사직(辭職)하기를,

"근자에 신이 우분(憂憤)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간절한 심정을 두루 갖추어 성총(聖聰)을 누차 번독(煩瀆)하게 하고 부질(斧鑕)327) 에 엎드려 죄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전하께서 신의 간담(肝膽)을 살피시어 특별히 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누차 중사(中使)를 보내어 곡진히 정녕(丁寧)한 말씀을 주시니, 성은(聖恩)이 지극히 우악(優渥)합니다. 그러나 말하는 자들이 거듭 되풀이하여 신의 죄를 들어 논청(論請)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신의 어리석음은 비록 대죄(大罪)를 받더라도 진실로 감심(甘心)하겠으나, 다만 신의 연고 때문에 우러러 성명(聖明)에 누를 끼치는 것이 신의 실로 가슴 아프게 여기는 바입니다. 대왕 대비(大王大妃)께서 전하께 큰 일을 할 만한 자질(資質)이 있어서 서정(庶政) 만기(萬機)가 움직이면 법도에 맞으시고 그 국가의 일에 다시 돌아보고 걱정할 점이 없다는 것을 알으셨기 때문에 정사를 성궁(聖躬)에 돌이시고 장추(長秋)328) 의 봉양(奉養)을 받으려 하셨습니다. 전하께서 효경(孝敬)이 순수하고 지극하시어 당치 않다고 사양하며 대내(大內)에서 굳이 청(請)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시고, 승지(承旨)를 거느리고 재삼 간청(懇請)하였으나 또한 유윤(兪允)을 얻지 못하시자, 즉시 신과 김국광(金國光)을 불러 이를 청하여 기필코 유음(兪音)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신이 삼가 지극히 간절한 성상의 유시(諭示)를 받들던 중에 그 언어(言語)가 지리(支離)한 것을 잊어버리고 말이 잘못된 데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말을 잘못한 죄는 신이 달게 받으려는 마음이지만, 유자광이 정상(情狀)이 있다고 하고 부도(不道)하다고 하고 무례(無禮)하다고 하고 불충(不忠) 불경(不敬)하다고 하니, 신은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만약 일이 왕명(王命)을 받은 것이 아니고 혹은 발언(發言)한 곳이 천위(天威)의 지척(咫尺)인 앞에 있지 아니하였다면 비록 문(門)을 닫고 마디마디 자르는 일이라도 사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명을 받아 지척(咫尺)인 자리에서 천일(天日)의 앞에 진정(陳情)하였으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신이 감히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단지 간절한 성상의 뜻을 전달(傳達)하였을 뿐입니다. 유자광이 대죄(大罪)라고 지적하여 거듭 소장(疏章)을 올려 신을 불측(不測)한 죄에 두려고 하니, 어찌 성명(聖明)의 조정에 이러한 위태로운 지경에 빠뜨리는 풍속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신은 견마(犬馬)의 나이가 지금 이미 60여 세가 되었고, 은총과 영광이 이미 지극하여 작위(爵位)도 또한 높게 되었으니, 죽더라도 진실로 한이 없으나, 한스러운 점은 신의 아무 정상(情狀)이 없음을 전하께서는 아시는 바이지만 해명을 얻지 못한 것이 한 가지이요, 신의 연고 때문에 소장(疏章)을 연명(連名)하여 아뢰게 되는 지경에 이르러 전하의 청명(淸明)한 정치에 누를 끼치게 된 것이 한 가지이요, 신의 연고 때문에 전하께 간언(諫言)을 거절한 오명(汚名)을 얻게 한 것이 한 가지이요, 신의 연고 때문에 여러 대(代)의 공훈(功勳)이 모두 소인(小人)이라는 욕(辱)을 먹게 된 것이 한 가지이요, 후설(喉舌)의 신하도 또한 소인(小人)이라는 욕을 먹게 된 것도 한 가지이요, 신의 연고 때문에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말을 다하지 아니한 책임을 지게 된 것도 한 가지입니다. 조고(趙高)가 스스로 임금을 속이는 계책을 얻었다고 여겼으나 끝내 그 속인 실상을 천하(天下)에 숨기지 못하여 목숨을 보존하지 못하였으며, 곽광(霍光)이 스스로 권력을 전횡(專橫)할 계획을 얻었다고 여겼으나 끝내 그 권력을 전횡하는 잘못을 한 시대에 능히 숨기지 못하여 그 자손을 보전하지 못하였으며, 양기(梁冀)가 스스로 발호(跋扈)할 계책을 얻었다고 여겼으나 끝내 그 발호한 실상을 당대의 시대에 능히 숨기지 못하여 마침내 그 몸이 죽었습니다. 작더라도 한 나라에는 일국(一國)의 이목(耳目)이 있고 크더라도 천하(天下)에는 천하의 이목이 있으니, 어찌 숨길 수가 있겠으며, 어찌 숨길 수가 있겠습니까? 신을 모함하는 자들이 지목하여 말을 하지만 신이 어떻게 임금을 속였는지, 어떻게 권력을 전횡하였는지, 어떻게 발호(跋扈)하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이것이 신이 가슴 아파하고 뼛속까지 사무치는 까닭입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음식을 먹어도 감히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조정의 재상(宰相)이 어찌 다 신의 붕당(朋黨)이며, 서사(庶士)·백료(百僚)가 어찌 자신의 문객(門客)과 친척으로서 신을 구원하려고 꾀하겠습니까? 저들이 말하는 것으로서는 반드시 신의 임금을 속이고 권력을 전횡하고 발호(跋扈)한 실상을 알고 있을 터이니, 한번 말하는 자들과 대변(對辨)하여 시비(是非)를 밝혀 바로잡는다면 신은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정부(政府)는 정사를 처리하는 관청이고 의정(議政)은 여러 사람이 쳐다보는 자리이니, 진실로 털끝만치라도 밝지 못하면 하루라도 그 자리에 처(處)할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이미 신의 죄를 바로잡아 주시지 아니하고 또 신의 직사(職事)를 해임시키지도 않으시니, 신이 어찌 뻔뻔스러운 얼굴로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신은 젊어서 풍질(風疾)에 걸려 오른쪽 다리에 단종(丹腫)이 난 지 지금까지 13년입니다. 근래 가환(家患)이 거듭 이름으로 인하여 슬퍼하고 마음 아파한 나머지 전의 증세가 갑자기 심해져서 한쪽 발은 능히 제대로 걷지 못합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신의 지극히 위험하고 간절한 사정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의 깊이 쇠약하고 병든 몸을 헤아리시어 본직(本職)을 해임하여 전리(田里)로 돌아가서 남은 목숨을 보전하도록 허락하여 주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명하여 그 글을 돌려주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65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2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사법(司法)

  • [註 327]
    부질(斧鑕) : 도끼 바탕.
  • [註 328]
    장추(長秋) : 한(漢)나라 때 황후(皇后)의 궁 이름. 일명 중장추(中長秋). 장(長)은 오래 살고, 추(秋)는 만물이 성숙하는 때를 말함.

○左議政韓明澮上狀辭職曰:

近者臣不勝憂憤, 歷具情懇, 累瀆聖聰, 伏鑕俟罪, 殿下照臣肝膽, 特宥臣罪, 屢遣中使, 曲致丁寧之訓, 聖恩至渥也。 然言者重複擧臣之罪, 論請不已, 臣之愚戇, 雖受大罪, 固所甘心, 但以臣故仰累聖明, 臣實痛心。 大王大妃知殿下有大有爲之資, 庶政萬幾動合規度, 其於國家之事, 無復顧慮, 故歸政聖躬, 欲保長秋之養。 殿下孝敬純至, 遜避不當, 在大內固請不得, 率承旨再三懇請, 又不得兪允, 卽召臣與金國光, 請之期得兪音。 臣祗奉聖諭之懇至, 忘其言語之支離, 不覺流入於差失。 差失之罪, 臣所甘心, 子光以爲有情, 以爲不道, 以爲無禮, 以爲不忠不敬, 臣切傷痛。 若事非承命, 或發言之處不在於天威咫尺之前, 則雖闔門寸斬, 臣不得辭受命。 咫尺之地陳情天日之前, 當此之時, 臣敢有何心? 但達聖意之懇懇耳。 子光指以爲大罪, 再上疏奏欲置臣於不測之罪, 豈意聖明之朝, 有此傾險之風也? 臣犬馬之齒, 今已六十餘矣, 寵榮旣至, 爵位亦崇, 死固無恨, 所可恨者, 臣之無情, 殿下所知, 而不得明焉, 一也, 以臣之故, 致章牘交奏, 累殿下淸明之政, 一也, 以臣之故, 致殿下得拒諫之名, 一也, 以臣之故, 累世勛庸皆受小人之辱, 一也, 喉舌之臣, 亦得小人之辱, 一也, 以臣之故, 在廷之臣, 皆受不盡言之責, 一也。 趙高自以爲得計於欺罔, 而卒不得掩其欺罔之實, 於天下不得保首領, 霍光自以爲得計於專權, 而卒不能掩其專權之失, 於一時不得保子孫, 梁冀自以爲得計於跋扈, 而卒不能掩其跋扈之實, 於當時竟殞其身。 小而一國有一國之耳目, 大而天下有天下之耳目, 安可誣哉! 安可誣哉! 陷臣者, 指以爲言, 不識臣作何欺罔, 作何專權, 作何跋扈, 而所言若是耶? 此臣之所以痛心切骨泣血而食不敢下咽也。 朝廷宰執, 豈盡臣之朋黨, 庶士百僚, 豈盡臣之門客親戚, 而爲臣營救哉? 彼以爲言者, 必知臣之欺罔專權跋扈之實也, 一與言者對辨明正是非, 則臣雖死無恨矣。 政府鈞衡之司, 議政具瞻之地, 苟毫髮未熙, 則不可一日而處。 殿下旣不正臣之罪, 又不解臣之職, 臣豈可靦面而冒居乎? 況臣少嬰風疾, 右脚發丹腫, 于今十有三年。 比緣家患沓至, 哀傷之餘, 前證轉劇, 跬步不能自致。 伏願怜臣危懇之至, 諒臣衰病之深, 許解本職, 放歸田里, 以保餘齡。

命還給其狀。


  • 【태백산사고본】 10책 65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2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