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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64권, 성종 7년 2월 28일 임인 2번째기사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좌의정 한명회가 유자광의 탄핵에 대해 변명하고 사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다

좌의정(左議政) 한명회(韓明澮)가 상서(上書)하기를,

"신(臣)이 근일에 듣건대, 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은 신(臣)이 일찍이 대왕 대비(大王大妃)에게 아뢰어 전하에게 정사를 돌려 주는 일을 정지하도록 청한 것을 가지고, 신(臣)의 죄를 만들어 내어 두 번이나 상서(上書)하여서 남김없이 이를 진술했다고 합니다. 신(臣)은 전하(殿下)의 명령을 가지고 되풀이 하면서 계청(啓請)하여 사연(辭緣)이 번거로운데도 죽이지 않았으니, 죄가 진실로 중하므로 만 번 죽어도 유감(遺憾)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유자광이 죄를 만들어 낸 말 가운데 신(臣)의 심정(心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에, 능히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을 수가 없어서 감히 수다스럽게 스스로 변명하게 되었습니다.

유자광이 말하기를, ‘신(臣)이 전하(殿下)를 노산군(魯山君)262) 에 견주어 도리에 어긋나는 무례(無禮)한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요사이 전하(殿下)께서 정사를 돌려주는 일을 사양할 것을 두세 번이나 청하였는데도 능히 이루지 못해서 신(臣)으로 하여금 또 이를 청하도록 했던 것인데, 신(臣)은 이때에 전하(殿下)의 아주 가까운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형세가 매우 군색(窘塞)하고 당황하여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이 나이 어리고 고립(孤立)해 있는데, 부호(扶護)하고 보도(保導)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권세 있는 간신(奸臣)들이 서로 결탁하여 나라의 형세가 거의 위태로와졌는데, 우리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이들을 주살(誅殺)하여 제거하고 시국을 진정(鎭靜)시켰으니, 이에 힘입어 다시 안정되게 되었습니다. 전하(殿下)께서 들어와 대통(大統)을 계승하신 날을 당하여, 큰 일에 참여하여 결단하시어서 모든 정사가 다 함께 새로워져 온 나라 신민(臣民)들이 태평의 복을 누리게 된것은 모두 대비(大妃)께서 보도(輔導)하신 힘인데, 지금 갑자기 겸손해 하시면서 정사에 참여하고 결단하는 데에 힘쓰지 않으려고 하시니, 매우 옳지 못한 일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臣)이 구구(區區)히 계청(啓請)하는 지극한 심정(心情)이었고 다시 다른 뜻은 없었는데, 신(臣)은 유자광이 무슨 말을 가지고 도리에 어긋났다고 하며, 무슨 일을 가지고 예의(禮儀)가 없다고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臣)이 전하(殿下)를 노산군(魯山君)에 견준 것이 아니라, 바로 유자광이 전하(殿下)를 노산군(魯山君)에 견준 것입니다. 말이 불경(不敬)에 관계되는 것이 이보다 심할 수 없으니, 그것을 도리(道理)가 있다고 인정하겠습니까, 그것을 예의(禮儀)가 있다고 인정하겠습니까? 신(臣)의 의혹(疑惑)은 더욱 심하니, 청컨대 유자광과 더불어 법사(法司)의 뜰 아래에 앉아 한 번 대변(對辨)하게 하소서. 신(臣)이 만약 도리에 어긋나고 예의(禮儀)가 없다면 사형[斧鑕之膏]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자광(柳子光)이 말하기를, 신(臣)이 권세의 지위에 오래있었기 때문에 그 권문(權門)에서 나온 사람이 많으며, 또 위세(威勢)에 겁을 내어 한 사람도 그 죄악을 남김없이 말하는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臣)이 듣건대, 인재(人材)를 천거하여 진용(進用)하는 것은 재상(宰相)의 일이라고 합니다. 신(臣)이 비록 공적은 없으나마, 토포 악발(吐哺握髮)263) 하면서 현인(賢人)을 예우(禮遇)하던 일을 감히 잊지 못하여, 또한 쉬지 않고 힘을 써서 인재(人材)를 천거하여 진용(進用)하는 것을 제 임무로 삼고 있습니다. 무릇 문신(文臣)과 무신(武臣)들 가운데 진실로 재간과 도량이 임용(任用)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천거하여 주의(注擬)하도록 했으니, 이것은 세조(世祖)께서 아신 바이고, 예종(睿宗)께서도 아신 바이며, 조정에서도 함께 아는 바입니다. 전하(殿下)께서 즉위(卽位)하신 이래로 신(臣)이 매양 인재(人材)를 골라서 재능 있는 이를 임용(任用)하는 일을 가지고 전하(殿下)께 건의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전하(殿下)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신(臣)은 또 매양 아뢰기를, ‘문사(文士)는 예문관(藝文館)의 관원과 같은 것이 없고, 대간(臺諫) 또한 중신(重臣)이니, 전하(殿下)께서 매양 하루에 세 번 접견(接見)하시어 정치하는 방법을 강구(講求)하신다면,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무사(武士) 등도 마땅히 자주 접견(接見)하신다면 그 사람의 현명함과 우매함을 알 수가 있으므로, 각기 용처(用處)에 맞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신(臣)이 마음 속에 쌓아둔 바이며, 전하(殿下)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신(臣)이 어찌 매관 육작(賣官鬻爵)264) 하면서, 남에게 은상(恩賞)을 주기도 하고 형벌을 주기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유자광은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신(臣)의 문정(門庭)에서 나왔으므로 신(臣)의 위세(威勢)에 겁을 낸다고 하는데, 알 수는 없지마는, 신(臣)의 문정(門庭)에서 나와 신(臣)에게 은덕(恩德)을 입은 사람은 누구이며, 위세(威勢)에 겁을 내어 신(臣)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유자광(柳子光)은 어찌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입니까? 신(臣)은 청컨대 대변(對辨)하여서 유자광(柳子光)으로 하여금 일일이 세고 낱낱이 들어 말하기를, ‘아무는 은덕을 입었는데도 말하지 않고, 아무는 두려워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신(臣)은 권력을 남용(濫用)하고 위세(威勢)를 떨친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능히 일일이 세고 낱낱이 들어 말하지 못한다면, 유자광(柳子光)은 임금을 속이고 뭇사람을 속이는 죄를 도피(逃避)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자광이 말하기를, ‘신(臣)이 일찍이 부묘(祔廟)의 집의(執義)로서 조사(朝士)가 부족(不足)하여 이랑(吏郞)을 부득이 보충하여 임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는 말을 가지고, 이것이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것과 다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신(臣)은, 정괄(鄭佸)이 이랑(吏郞)의 관계(官階)를 올려주지 말도록 청하는 때를 당하여 전하(殿下)께서 신(臣)에게 의견을 물으시므로, 신(臣)은 평소에 집사(執事)의 정원(定員)이 거의 2백 명이나 된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으로, 그것은 다른 관원이 부족(不足)하기 때문에 이랑(吏郞)이 자신(自身)들을 차임(差任)시킨 것인가 하는 의심이 나서, 전례(前例)를 상고하도록 청하였던 것입니다. 신의 이 말은 무심중(無心中)에 나온 것이므로, 전하(殿下)를 속인 것도 아니고 칭찬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유자광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진(秦)나라 이세 황제(二世皇帝)가 임금 노릇을 하지 못하니, 조고(趙高)가 신하의 도리에 어긋나서 장차 시역(弑逆)을 행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부종(附從)하는가 부종하지 않는가를 시험하려고 하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는데도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대(萬代)의 후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화가 나서 머리털이 곤두서게 하고 있는데, 그것을 오늘날의 일에 견주겠습니까? 유자광이 신(臣)을 조고(趙高)에 견주었으니, 이는 전하(殿下)를 이세 황제(二世皇帝)에 견주는 것입니다. 전하(殿下)께서 노신(老臣)이 불초(不肖)한 까닭으로 이세 황제(二世皇帝)에게 견줌을 당하시니, 어찌 지극한 덕망을 손상(損傷)시킴이 아니겠으며, 어찌 청사(靑史)265) 를 더럽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臣)은 몹시 분개함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제 목숨을 끊으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신(臣)은 훈신(勳臣)의 원로(元老)에 참여하여 나라와 더불어 기쁨과 근심을 같이하고 있으므로, 간흉(奸兇)이 분수에 어긋난 일을 엿보고 있는 자(者)는 의례(依例) 반드시 신(臣)을 꺼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삼문(成三問)·봉석주(奉石柱)·이시애(李施愛)·남이(南怡) 등 여러 역적(逆賊)이 계획을 꾸밀 적에도 모두 먼저 신(臣)을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유자광은 나라 일을 말하는 관원이 아니고, 노신(老臣)은 나라의 전도(前途)를 그르치는 간인(奸人)이 아닌데도 두 번이나 상서(上書)하여 죄과(罪過)를 얽어서 만드니, 그 뜻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대개 또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성만(成滿)266) 에는 있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신(臣)의 성만(成滿)이 이미 극도(極度)에 이르러서 현자(賢者)의 등용하는 길을 오랫동안 막고 있었으므로 훼방(毁謗)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신(臣)은 죽을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전하(殿下)께서 늙은 몸을 놓아 보내어 전리(田里)에 돌아가서 여생(餘生)을 보전하도록 허가해 주신다면, 비록 죽는 날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다. 글이 올라가니, 임금이 이를 돌려주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9책 31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註 262]
    노산군(魯山君) : 단종(端宗).
  • [註 263]
    토포 악발(吐哺握髮) :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을 때에 손님이 오면, 먹던 밥은 뱉고 감던 머리는 쥐고서 바로 나가 마중함. 주공(周公)이 어진 선비를 환영·우대한 고사(故事).
  • [註 264]
    매관 육작(賣官鬻爵) : 돈이나 재물을 받고 벼슬을 시킴.
  • [註 265]
    청사(靑史) : 역사(歷史).
  • [註 266]
    성만(成滿) : 부귀(富貴) 권세 등이 극성(極盛)함.

○左議政韓明澮上書曰:

臣近聞, 武靈君 柳子光以臣嘗啓大王大妃, 請停歸政, 織成臣罪, 再上書極陳之。 臣以殿下之命, 反覆啓請, 辭煩不殺, 罪固重矣, 萬死無憾。 然子光織成之言, 有非出於臣情者, 不能含默, 敢喋喋自明。 子光言: "臣比殿下於魯山, 積不道無禮之心。" 屬者殿下辭歸政, 請至再三而不能得, 令臣又請之, 臣於此時, 在殿下咫尺密地, 勢甚窘遽而啓之曰: "魯山幼沖孤立, 無扶護保導之者, 權姦交結, 國勢幾危, 我世祖大王誅除鎭靜, 賴以復安。 當殿下入繼大統之日, 參決大事, 庶政咸新, 一國臣民享太平之福, 皆大妃輔導之力也, 今遽謙退, 不事參決, 甚未可也。" 此臣區區啓請之至情, 更無他也, 臣未知子光以何言爲不道, 以何事爲無禮。 非臣比殿下於魯山, 乃子光比殿下於魯山也。 言涉不敬, 莫此爲甚, 其可謂之有道乎, 其可謂之有禮乎? 臣惑滋甚, 臣請與子光坐法司庭下, 得一對辨。 臣若不道無禮, 則不得辭其斧鑕之膏矣。 子光言: "臣某久於權勢, 出於其門者多, 且(劫)〔怯〕 於威勢, 無一人極言其罪惡。" 臣聞薦進人才, 宰相事也。 臣雖無狀, 不敢忘吐握禮賢, 亦孜孜以薦進人才爲己任。 凡文武臣苟有材器可用, 必薦注之, 此世廟所知也, 睿廟所知也, 朝廷所共知也。 自殿下卽祚以來, 臣每以擇人任能建白, 此又殿下所知也。 臣又每啓: "文士無如藝文, 而臺諫亦重臣也, 殿下每賜三接, 講求治道, 甚美事也。 武士亦宜數見, 可知其賢否, 而各適於用", 此臣胸中所蘊, 而殿下所知也。 臣豈賣官鬻爵, 作福作威者乎? 子光以在廷之臣, 皆出於臣之門, 怯於臣之威, 不知出於門而德臣者誰歟, 怯於威而畏臣者誰歟? 子光豈不知而妄言乎? 臣請對辨, 使子光歷數而枚擧曰: "某也德之而不言, 某也畏之而不言", 則臣甘受舞權震威之罪。 如不能歷數而枚擧, 則子光不得逃欺君罔上之誅矣。 子光之言: "臣嘗啓祔廟執事, 無乃朝士不足, 吏郞不得已塡差?" 是何異指鹿爲馬? 臣當鄭佸請勿加吏郞之資之時, 殿下顧問於臣, 臣素聞執事員額幾至二百人, 故疑其他官不足, 吏郞自差, 請考前例。 臣之此言, 出於無心, 非欺殿下也, 非要譽也, 子光以爲指鹿爲馬何也? 二世不君, 趙高不臣, 將行弑逆。 欲試人之附己與否, 指鹿爲馬, 而無有言鹿者。 萬代之下, 令人怒髮起立, 其可比之今日乎? 子光以臣比趙高, 是以殿下比二世也。 殿下以老臣不肖之故, 見比二世, 豈非損至德乎, 豈非穢靑史乎? 臣不勝痛憤, 欲自絶而不得者, 非一再矣。 臣忝勳老, 與國同休戚, 故奸兇之覬覦非分者, 例必忌臣。 成三問奉石柱李施愛南怡諸逆之構謀也, 皆欲先除臣。 今子光非言事之官, 老臣非誤國之奸, 而再上書羅罪網, 志欲何爲, 蓋亦不測。 古人云: "盛滿難居", 臣之盛滿已極, 久防賢者之路, 毁謗至此, 臣不知死所矣。 願殿下放骸, 許歸田里, 得保餘齡, 則雖死之日, 猶生之年矣。

書上, 命還之。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9책 31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