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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64권, 성종 7년 2월 23일 정유 2번째기사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유자광이 한명회의 처벌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다

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이 상소(上疏)하기를,

"신(臣)이 공훈(功勳)의 끝에 외람되게 참여되여 마침내 이러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으니, 비록 직책이 간관(諫官)은 아니지마는, 국가의 큰 일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듣고 본 대로 충성을 다하고 절의(節義)를 다하여 말하지 않는 바가 없어서, 죽은 후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이로써 이달 19일에 한명회(韓明澮)의 죄상(罪狀)을 가지고 임금의 총명을 모독(冒瀆)하고는 물러나와 대죄(待罪)하였는데, 어제는 특별히 신(臣)을 불러서 신(臣)의 죄를 용서해 주시니,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한명회까지 아울러 용서하고 죄를 다스리지 않았는데, 신(臣)의 어리석은 생각으로서는 또한 할 말이 있으므로, 감히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서 두 번이나 임금의 총명을 모독(冒瀆)하니, 진실로 황공합니다. 신(臣)의 어리석음으로써 삼가 헤아려보건대, 신하에게 큰 죄가 있는데도 다스리지 않는다면, 천하의 법이 바르지 못하며 국가의 정치가 바르지 못합니다. 법이 바르지 못하고 정치가 바르지 못하다면, 국가의 큰 일 가운데 다시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한명회의 말을 들은 사람으로 지금의 신민(臣民)들은 전하(殿下)를 의심할 뿐만 아니라, 천 년 후에도 반드시 전하(殿下)께서 과연 혼자 만기(萬機)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신(臣)은 삼가 전하(殿下)의 명성(明聖)으로서도 이와 같은 의심이 후세(後世)의 사람들에게 있을까를 한(恨)스럽게 여깁니다. 어리석은 신(臣)은 밤새도록 자지 않고서 되풀이하며 이를 생각해 보아도, 한명회의 죄는 다스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그 부형(父兄)으로 하여금 이를 의논하게 하더라도 ‘내 아들은 죄가 없다.’고 할 수가 없을 것이며, ‘내 아우는 죄가 없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형(父兄)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인데, 전하(殿下)께서 죄가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또 전하(殿下)께서는 이미 분명히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한명회의 말이 이와 같다.’고 하셨는데도, 법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 옛날에 한(漢)나라 효질 황제(孝質皇帝)양기(梁冀)를 눈여겨 보고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발호 장군(跋扈將軍)이다.’라고 하였으나, 능히 이를 제거하지 못하니, 양기(梁冀)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반역(反逆)을 도모251)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 까닭을 신(臣)은 생각하건대, 사람들의 죄를 알고서 다스리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여깁니다. 지금 한명회의 죄는 전하(殿下)께서 이미 이를 말씀하셨고, 조정에서도 이미 이를 알고 있으며, 나라 안의 신민(臣民)들도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명회가 비록 억지로 스스로 평상시와 같은 행동거지(行動擧止)를 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말하고 웃으면서 태연자약하지마는, 그 마음은 이미 반드시 스스로 편안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마음으로써 장차 어찌 스스로 편안할 계획을 생각하겠습니까? 옛날에 곽광(霍光)252) 이 오랫동안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처리하고, 피하여 떠날 줄을 알지 못하며 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난 것이 많았으니, 비록 요행히 그 자신(自身)은 화(禍)를 면했지마는, 그 자손(子孫)에 미쳐서는 종족(宗族)을 뒤엎은 화(禍)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평판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난 번에 효선제(孝宣帝)로 하여금 녹질(祿秩)과 상사(賞賜)로써 그 자손(子孫)들을 부유(富裕)하게만 했더라도 그 성덕(盛德)을 넉넉히 보답(報答)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다시 권세(權勢)를 맡겨 일이 번잡(煩雜)해지고 죄과(罪過)가 쌓여진 후에야 제재(制裁)와 탈권(奪權)을 가(加)하려고 하니, 마침내 원망과 두려움이 생겨서 사악(邪惡)한 계획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어찌 곽광(霍光)이 스스로 화(禍)를 초래(招來)한 것뿐이겠습니까? 또한 효선제(孝宣帝)가 〈재화(災禍)의 원인을〉 점차로 양성(養成)한 것입니다. 지금 전하(殿下)께서는 한명회가 여러 조정에 조그만 공로가 있음을 어여삐 여기시고, 또 왕후(王后)의 아버지의 구가(舊家)라고 하여 차마 법(法)대로 처리하지 않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미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물러나서 피할 줄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만일에 다시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게 된다면, 전하(殿下)께서는 효선제(孝宣帝)곽씨(霍氏)의 화(禍)를 점차로 양성(養成)한 것과 같음을 면하지 못할 듯합니다. 과연 전하(殿下)께서 그의 조그만 공로(功勞)와 왕후(王后)의 아버지의 구가(舊家)라는 것을 민망히 여겨서, 차마 법(法)대로 처벌하지는 못하나마 마땅히 먼 지방에 귀양보내어 몸과 목숨만 보전하게 한다면, 전하(殿下)의 은혜는 하늘과 땅처럼 커서 한명회의 몸과 목숨을 두 번 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명회에게도 곽씨(霍氏)와 같은 화(禍)가 없을 것이고, 전하(殿下)도 화의 원인을 점차로 양성(養成)시켰다는 뉘우침이 없을 것입니다. 신(臣)은 또 한명회의 죄를 마침내 국법(國法)으로써 능히 처단하지 못한다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행의(行義)가 없는 사람들이 서로 이르기를, ‘한명회(韓明澮)의 죄가 이와 같이 중(重)하고 큰데, 주상(主上)께서 이를 알면서도 죄를 다스리지 않았고, 조정(朝廷)에서 이를 알면서도 능히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몰래 부종(附從)하는 이가 있게 되어, 한명회의 위세(威勢)가 전일(前日)보다 더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명회곽씨(霍氏)와 같은 화(禍)가 있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며, 전하(殿下)께서도 재화(災禍)를 점차로 양성(養成)시켰다는 뉘우침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신(臣)이 미천(微賤)하다고 하여 그 말을 소홀히 여기지 마소서."

하였다. 전교(傳敎)하기를,

"긴요하지 않은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1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 [註 251]
    양기(梁冀)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반역(反逆)을 도모 : 《후한서(後漢書)》 양기전(梁冀傳)에 보면, ‘후한(後漢)의 충제(沖帝)가 죽자 양기(梁冀)가 질제(質帝)를 세웠는데, 질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양기가 교만하고 횡행함을 알고서 그를 발호 장군(跋扈將軍)이라 부르니, 양기가 이를 듣고 그를 미워하다가 드디어 짐살(鴆殺)하였다.’ 함.
  • [註 252]
    곽광(霍光) : 전한(前漢)의 명신으로, 무제(武帝)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서 소제(昭帝)를 도왔으며, 다음 창읍왕(昌邑王)이 음란하므로 그를 폐위시키고 선제(宣帝)를 세웠음. 전후 20년 동안 나라의 정권을 잡았는데, 그의 딸은 선제의 황후가 되어 온 집안이 부귀를 누렸으나, 이로써 그의 사후(死後)에 선제는 곽씨(霍氏)의 병권(兵權)을 거두고, 모반(謀反)하려 하였다고 해서 친족(親族)을 멸하였음.

武靈君 柳子光上疏曰:

臣叨參功勳之末, 遂至於此, 雖職非諫官, 至於國家大事, 當以所聞所見, 盡忠盡節, 無所不言, 至於死而後已。 是以本月十九日, 將韓明澮罪狀, 仰瀆聖聽, 退而待罪, 昨日(持)〔特〕 召臣, 恕臣之罪, 不勝幸甚。 但幷恕(明會)〔明澮〕 不治, 臣愚亦有說焉, 敢冒萬死, 再瀆聖聽, 誠惶誠恐。 臣愚伏計, 臣有大罪而不治, 天下之法不正矣, 國家之政不正矣。 法不正也, 政不正也, 則國家之大事, 復有加於此者乎? 聞明澮之言者, 不但今之臣民或疑於殿下, 於千載之下, 又必有疑殿下果不能獨當萬機者矣。 臣竊恨以殿下之明聖, 有如此之疑於後之人也。 愚臣終夜不寐, 反覆思之, 明澮之罪不可不治。 雖使其父兄議之, 不可曰: "吾之子無罪也", 不可曰: "吾弟之無罪也。" 父兄亦不得曰無罪也, 而殿下以爲無罪何也? 且殿下旣明謂群臣曰: "明澮之言如此", 而不置於法可乎? 昔 孝質皇帝梁冀曰: "此跋扈將軍也", 未能去之, 則懼遂構不軌之謀。 故臣以爲, 知人之罪而不治, 不如不知之爲愈也。 今明澮之罪, 殿下旣言之矣, 朝廷旣知之矣, 國內臣民無不知之者矣。 明澮雖强自爲平常行止, 與人言笑自若, 其心已必不自安矣。 以不自安之心, 將何以爲自安之計乎? 昔霍光久專國政, 不知避去, 所爲多不道, 雖幸免於其身, 及其子孫有覆宗之禍。 議之者曰: "向使孝宣, 專以祿秩賞賜, 富其子孫, 足以報盛德。 復任之以權, 事叢釁積, 然後欲加裁奪, 而遂生恐懼, 以生邪謀", 豈徒霍光之自禍哉? 亦孝宣醞釀以成之也。 今殿下憐明澮有累朝微功, 又以后父舊家, 不忍置之於法。 然旣持不自安之心, 又不知退避, 萬一復有不可赦之罪, 則恐殿下未免有孝宣醞釀霍氏之禍矣。 果殿下哀其微功后父舊家, 不忍正之以法, 當流之遠地, 以保軀命, 則殿下之恩, 如天地之大, 而再生明澮之軀命矣。 然則明澮霍氏之禍, 而殿下無醞釀之悔矣。 臣又恐明澮之罪終不能正之以法, 則無乃愚惑無行義者相謂曰: "明澮之罪如此其重且大, 而主上知之而不治矣, 朝廷知之而不能發言矣", 陰有所附, 而明澮之威勢有加於前日矣。 然則明澮未免有霍氏之禍, 而殿下有醞釀之悔矣。 伏願, 殿下勿以臣之微而忽其言也。

傳曰: "無多爲不緊之語。"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1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